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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단란한 거실’은 공산품(工産品)이다 

 

신재현 인턴기자

어떤 경우 한국인에게 집은 상품이다. 대출이기도 하다. 되팔 때 대출액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길 바란다. 감가상각과 개발호재를 둘러싼 가격 싸움이다. 흠이라도 잡힐까 집에 최대한 손을 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 한국인이 한집에 머무는 평균 기간인 8년 동안 식탁 자리, 책상 자리 하나 바꾸기가 조심스럽다. 모델하우스 속 전시공간처럼 그 모습 그대로 박제되는 꼴이다.

그러나 일본의 건축가인 저자가 규정하는 집은 다르다. 상품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다. 인간의 삶이 끊임없이 모습을 달리하며 바뀌어 가듯, 삶을 담는 ‘그릇’인 공간도 그에 맞춰 바뀌어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작게는 내 가치관부터 크게는 자녀의 출생과 독립을 거치며 공간의 쓰임새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양육법은 ‘리노베이션(Re+Innovation)’이다. 인테리어 소품, 공간 재배치 등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방법이다. 원상복구를 뜻하는 ‘리폼(Re+Form)’과는 다르다. 예컨대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거실을 어떻게 꾸며낼까. 저자는 열용량이 높은 노출 콘크리트 바닥을 기본으로, 구성원 각자의 취미생활이 가능한 공간을 제안한다. 단란함을 강요하기보단 각자의 사생활을 자연스레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렇게 자재의 기능과 사람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게 ‘기르는’ 집짓기다.

저자는 집을 설계할 때부터 어떻게 길러나갈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간에 여백이 있어야 변화도 용이하단 것이다. 저자는 2015년 아파트 리노베이션으로 일본의 ‘주거환경 어워드 블루&그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동산 성공 신화가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집과 함께 성숙해가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201902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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