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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정권 안테나’ 靑 민정수석실 잔혹사 

대통령의 ‘조국 사랑’ 임기 끝까지 계속?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국정원 국내파트 폐지, 기무사 해체 등으로 정보 집중
특감반 3개팀 과당경쟁, 정권 기반 흔들 우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조국 민정수석이 12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민정수석비서관도 비서일 뿐이다. 비서는 대통령의 이목(耳目)이지 스피커가 아니다. 대통령의 스피커 노릇을 하고 싶었다면 대변인을 하지 그랬나?”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던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월간중앙과 만난 자리에서 한숨부터 내쉬었다. 은퇴한 지 오래됐지만 그는 누구보다 민정수석 업무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이 크다. 그는 “비서는 입이 없다. 조국 민정수석이 현안과 관련해 페이스북 같은 데 글을 올리는 것은 비서로서 매우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라며 “역대 어느 민정수석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의 말이 이어진다. “조 수석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서울대에 사표부터 냈어야 했다. 청와대에서 나오면 백수가 돼도 좋다는 각오로 들어가야 하는 자리가 청와대의 참모다.” 민정수석 임명 당시 조 수석은 안식년이었고, 학교에는 휴직을 신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인 2017년 5월 11일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민정수석에 임명했다. 당시 임종석 비서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 출신이 민정수석을 독점하고 국정농단의 한 축으로 기능했다”면서 “비검찰 출신 법학자를 임명해서 권력기관을 정치에서 독립시키는 동시에 권력기관 개혁 의지를 담았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경찰·국가정보원·감사원·국세청 등 5대 권력기관을 전부 관할한다. 대통령 친·인척 동향 파악뿐만 아니라 공직자 인사를 검증하고 감찰하는 청와대 비서실의 핵심 조직이다.

민정수석이 마음만 먹으면 검·경 등 사정당국을 통해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역대로 민정수석에는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 할 만한 검찰 출신들이 주로 발탁됐다. 조 수석의 임명은 그야말로 깜짝 카드였다.

대통령을 지근(至近) 거리에서 보좌하는 민정수석은 늘 야당의 표적이 돼왔다. 문재인 정부 역시 출범 1년8개월이 지난 현재 민정수석실이 야당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비서실장·정무수석 등 청와대 비서진 개편이 이뤄진 1월 8일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교체 대상에 경질 요구가 거셌던 인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과녁을 빗나간 인사”라며 조국 수석을 겨냥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1월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조 수석은 그동안 인사검증 실패와 김태우 감찰반원 폭로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정수석은 1968년 박정희 정권 때 신설된 자리다. 초대 민정수석은 유승원 전 의원이다. 전두환 정권 때는 이학봉·김용갑 등 군 출신 핵심 인사들이 민정수석을 맡았다. 노태우 정권 때는 민정수석실과 사정(司正)수석실이 통합됐다 분리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청와대 비서실의 핵심 조직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1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입장하고 있다. 앞은 조국 민정수석.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김영삼 정부 때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국정원 1차장을 지낸 김영수 민주자유당 의원이 첫 민정수석으로 발탁된 뒤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이동했다. 김영삼 정부 후반기에도 검찰 출신인 문종수 전 민정수석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김대중(DJ)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정수석을 폐지하는 대신 민정비서관과 사정비서관으로 조직을 분리했다. 하지만 옷 로비 사건이 터지자 1999년 민정수석을 되살렸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등 지난 20년 역대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맡았던 인사는 모두 20명(문재인은 중복)이다. 출신 이력을 보면 검찰 출신이 14명으로 가장 많다. 이런 이유로 검찰과의 유착 우려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변호사 출신으로는 노무현 정부 때 문재인·전해철 등이 있다. 비법조인 중에서는 김성재·이호철·조국 등 3명이 민정수석에 발탁됐다. 검찰과 거리를 두겠다는 의지로도 읽혔다.

전직 검찰 고위직 관계자는 “8월 13일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 장면을 보면 조국 수석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무한신뢰를 잘 알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이 사법부 행사에 임석(臨席)해서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을 앉혀둔 채 훈시(訓示)성 축사를 한 것도 문제이지만, 그 자리에 민정수석을 대동한 것은 더 놀랄 장면이었다. 민정수석의 권한이 그토록 막강한지 새삼 놀랐다.”

민정수석실은 국가 사정 권력의 정점이다. 6급 검찰 직원이 장관을 독대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은 청와대 내 어느 조직보다 독특하게 운영된다. 검찰·경찰·국세청·관세청·금융감독원 등 사정기관 인사들이 한데 섞인 ‘다국적군’ 구조다. 비서관이나 팀장급은 주로 검사가 맡지만, 구성원들의 ‘본적’이 다르다 보니 끈끈함과 일사불란함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권의 성패보다는 승진 등 개인 목표가 우선순위에 있을 수 있다. MB 정부 때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검찰 직원은 “대체로 정권 초기에 들어갔다가 중반기쯤 친정으로 복귀해서 승진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임기 말까지 남아 있다가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순장조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처음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온 뒤 자신과 인연이 있는 인사들을 주로 뽑는다는 지적을 받은 것도 이런 정황과 무관치 않다. 로열티(royalty)를 중시해야 할 만큼 구성원들을 믿기 어렵다는 얘기도 들린다.

민정수석실에서는 공직 기강과 부패 여부를 점검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사 검증도 해야 한다. 활동이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을 공개했던 오픈하우스 때도 민정수석 관할 사무실과 국가안보실만은 문을 잠갔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조국 민정수석의 집무실만 공개했다.

민정수석 아래 선임 격인 민정비서관·반부패비서관·공직기강비서관·법무비서관 등 4비서관 체제를 갖췄다. 수석실 기준 비서실에서 가장 큰 조직이다. 30여 명인 정무수석실의 두 배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인원수는 비밀이다.

“인사검증 부실은 내각 패싱 탓”


▎자유한국당 정상화를 위한 평당원 모임 관계자들이 1월 11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외교부 공무원 사생활 감찰과 관련 직권남용 협의로 고발했다. / 사진:연합뉴스
민정수석은 법무부-검찰총장과 대통령의 가교 역할을 한다. 청와대 인사위원회 멤버로 인사검증에도 참여한다. 민정비서관은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국정 관련 여론과 민심 동향을 파악한다.

반부패비서관은 포청천으로 불린다. 평소 공직비리 동향을 파악한다. 특별감찰반이 바로 반부패비서관 소속이다. 특감반은 고위공직자 등 비리를 사정하고 예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공직기강비서관은 청와대 직원들을 긴장시키는 자리다. ‘770-○○○○’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청와대 직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법무비서관실은 각종 국정현안, 비서실 업무에 대해 법률 판단·해석을 내린다. ‘청와대 로펌’인 셈이다.

이처럼 막대한 권한을 움켜쥐고 있음에도 이 정부 들어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은 낙제점에 가깝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조 수석은 특감반 비위 의혹 이전에도 계속되는 인사 검증 실패와 청와대의 공직 기강 해이 문제로 야당의 비판을 받아왔다. 2017년 6월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이후 지금까지 낙마한 차관급 이상 인사만 8명에 이른다.

과거 정권에서 민정수석을 지냈던 인사의 분석이다. “진보정권은 보편적 라인이 직접 개입해서 총의(總意)를 모으려 하는 태생적 특성을 갖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회의체 형식으로 통합과 결의를 하려 하지만 리더십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가 내각 소외다. 이 정부 들어 인사검증이 잦은 까닭은 내각 패싱(passing)과 무관하지 않다.”

민정수석실의 알력이나 균열은 정권에 직격탄이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 초 민정수석실 내에서 민정비서관실과 공직 기강비서관실 간 힘겨루기가 있었다는 것이 당시 몸담았던 일부 직원들의 시선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내부 알력이 발단이 돼 정권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참여정부 초기 민정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대통령 친·인척 비리 파문 등으로 1년 만에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 첫 번째 민정수석도 4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번 청와대 민정수석실 파문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건 ‘민정수석실 잔혹사’가 정권마다 되풀이돼 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에 비서실장·민정수석·국민소통수석이 일제히 십자포화를 퍼부었던 이유를 곱씹어볼 만하다.

그럼에도 파문이 쉬이 가라앉지 않자 조국 민정수석은 또다시 정치권의 표적이 됐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부에서도 조 수석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산하 비서실 구성원들의 잇따른 사회적 물의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신속하게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대통령이 조국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이번 사건은 조 수석이 책임질 성격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조 의원은 입을 닫게 됐다. 그러나 조 의원은 박근혜 정부 첫 공직기강비서관을 맡았던 인물이다. 민정수석실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발언은 정권이 중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내부 잡음을 잘 단속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 수석의 유임을 결정하긴 했지만, 그만큼 현 정권의 정치적 부담은 커졌다. 검찰의 수사 결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경우 그 파장은 오롯이 대통령과 조 수석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리고 검찰개혁론자인 조 수석이 역설적으로 자신의 거취를 검찰의 감찰에 맡겨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현 검찰 수뇌부가 검·경수사권 조정에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렇다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문 대통령은 조국 수석을 버리게 될까. 정치가 ‘생물’이라지만 그동안 대통령이 보여온 ‘조국 사랑’을 감안하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시 각도 있다.

정부가 공언한 적폐청산과 사법개혁 과제를 변함없이 추진해 나가겠다는 문 대통령 의지가 조 수석 유임으로 표출된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조 수석은 1월 6일 페이스북에 “검찰의 불가역적 변화를 위해 법률적 차원의 개혁이 필요하다.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라고 검찰개혁 의지를 내비쳤다. 청와대 비서진 개편이 자신과는 무관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전직 검찰 고위 관계자는 뼈있는 말을 전했다. “정권이란 것은 잡는 순간 정의가 된다. 또 반대세력은 납작 엎드린다. 하지만 이런 구도는 오래가지 않는다. 감찰이란 명목으로 민정수석실 산하 4개 팀 중 3개 팀에서 정보팀(감찰반)을 운영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또 조국 수석은 외교관을 조사하겠다며 휴대폰을 넘겨받았다. 예전 같으면 휴대폰이 업무일지다. 박근혜를 잡을 때도 청와대 수석들의 업무일지를 뒤졌던 것 아닌가?”

조 수석은 ‘특별감찰반의 공무원 휴대전화 조사’와 관련해 1월 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당사자 동의 하에 이뤄진 절차”라고 해명했다. 감찰을 받은 공무원들이 동의서를 쓰고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했다고 했지만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압수”로 보고 있다. 또 특감반 감찰을 받은 외교부 공무원들은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하면 의심받을까 봐 냈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웠다”고 말한다.

민정수석을 지낸 전직 검찰 고위 관계자는 나라가 걱정된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비서실장 그만둔 임종석은 원래 정치인이니 당으로 가면 되지만 조국은 다르다. 조국 자신도 물러남과 동시에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알지 않겠나? 그렇다면 대통령은 왜 조국을 버리지 못할까? 그만큼 부리기가 편하기 때문 아니겠나? 사법개혁 완수라는 명분으로 조국은 문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할 것이다. 청와대 권력과 민정수석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들 생각하더라.”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902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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