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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박근혜와 황교안 사이에 선 TK 민심 

文 정부 무능·독선 제동 걸 사람이 누구냐에 더 관심 

권혁식 영남일보 기자
출범 초기 7%에 불과하던 TK 국정 부정평가 60%로 증가
계파정치 일삼다 고립 자초한 朴 반면교사 삼아야


▎2012년 12월 경주역광장 유세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애절한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정서적인 것입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독선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대구에 지역구를 둔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대구 북구 갑)이 한국당 2·27 전대를 앞두고 대구·경북(TK)의 보수 민심이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게 기울고 있는 배경을 설명한 말이다.

그는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정치인이다. 이런 논리가 맞다면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도 황 전 총리에게 거는 대구·경북민의 기대감을 막을 수는 없다는 의미다. 당초 황 전 총리는 ‘박근혜의 사람’이라는 브랜드로 승부를 걸 것으로 예상됐지만, 언제부터인가 문재인 정권에 맞서는 대항세력의 구심점으로 몸값을 올리는 양상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대구·경북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대 정서가 어느 정도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YTN 의뢰로 리얼미터가 2월 7~8일 실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결과를 보면 대구·경북 응답자의 60.0%가 ‘잘못한다’고 부정평가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전국 평균 45.4%보다 14.6%포인트 높았다.

한국갤럽이 1월 29~31일 실시한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도 대구·경북 응답자 중 64%가 ‘잘못하고 있다’며 부정평가했다. 전국 평균인 44%보다 20%포인트가 높은 전국 최고치였다(이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구·경북의 ‘반문(反文) 정서’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17년 5월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대구·경북 득표율은 21.7%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대구·경북민들도 새 정부의 출범에 기대감을 보이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한국갤럽이 2017년 5월16~18일 실시한 ‘대통령 직무수행 전망’ 조사에서 대구·경북 응답자 85%(전국 평균 87%)가 ‘잘할 것’으로 봤다. ‘잘못할 것’이란 응답은 7%에 불과했다.

초·재선 의원들이 黃 지지 선봉에 나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2·28 민주운동 첫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기 위해 무대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구·경북 보수층 입장에서는 대선 때 가졌던 좌파 후보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돼버렸다고 할 만하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변되는 좌파 성향 경제정책, 대구·경북에 연고를 둔 보수정권을 겨냥한 적폐청산 작업 등이 대구·경북의 주류 민심을 돌아서게 만든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 광역단체장에만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돼 ‘정치적 섬’으로 고립되고, 중앙정부의 인사 및 예산 배정에서 ‘TK 패싱(passing)’ 지적이 나오면서 대구·경북 보수층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이 같은 TK 민심에 황 전 총리의 1월 15일 한국당 입당은 ‘물 만난 고기’나 다를 바 없었다.

그 같은 징후는 역대 경선에서 유례가 없는 일들이 속출하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출마를 예고했던 일부 당권 주자들이 전대 흥행에 차질이 우려된다며 전대 날짜 연기를 요구했다.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되지 않으면 불출마하겠다며 보이콧을 예고했다. 결국 8명의 예비주자 중 5명이 제풀에 무너지고 가까스로 3명만 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런 무더기 불출마 사태에 대해 후보들은 불공정한 ‘경선 룰’을 문제삼았지만, 당 안팎에선 후보들이 미처 예상치 못했던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홍준표 전 대표가 1월 25일 기자들과 만나 ‘TK 후보단일화’를 제안할 때만 해도 승부욕이 넘치는 듯했다. 황 전 총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친박·비박 계파 구도에 맞서 영남권 표심을 끌어안는 지역 구도로 승부를 걸겠다는 심산으로 해석됐다.

홍 전 대표가 1월 30일 출판기념회에서 정식으로 출사표를 던질 때만 해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을 맡는 등 6·13 지방선거 때까지 6개월 간 ‘대구 정치인’을 자임했다. 따라서 TK 민심은 ‘내 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인 1월 31일 홍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만약 특정 후보를 위해 TV토론을 최소화해 진행된다면 선거하지 말고 그냥 추대해라”는 극한 표현을 써가며 당 지도부에 불만을 쏟아냈다.그는 후보 등록 하루 전인 2월 11일 불출마로 돌아섰다.

황 전 총리가 1월 15일 한국당에 입당할 때만 해도 ‘탄핵 총리’, ‘도로 친박당’이라는 악성 프레임에 걸려 순항하기 어려울 거란 전망도 적지 않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도중하차가 재현할 것이란 관측도 뒤따랐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입당 테이프를 끊자마자 빠르게 지지세를 확산시켰고, 이 과정에서 일부 TK 의원들을 중심으로 친박계 의원들이 발벗고 나선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그들은 박 전 대통령을 출당한 홍 전 대표 체제와 인적쇄신의 칼날을 휘두른 김병준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숨죽이고 버티면서 때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유영하 ‘제동’에도 지지율은 되레 상승


▎황교안 전 국무총리(왼쪽)가 2월 8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칼국수를 먹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당내 초·재선 모임인 ‘통합과 전진’이 그런 움직임의 선봉에 섰다. 이들은 평소 계파청산을 주장했지만 회원 면면은 친박 성향이 강했다. 이들은 1월 28일 황 전 총리의 전대 출마 자격 논란이 뜨거울 때 논평을 내고 “당원 자격만 있으면 전대 출마가 가능하다”면서 황 전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회원 18명 중 대구·경북에서는 이완영(고령-성주-칠곡)·김정재(포항 북구)·백승주(구미갑)·송언석(김천)·이만희(영천-청도)·추경호(대구 달성) 의원 등 6명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보궐선거로 당선된 송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친박 성향으로 분류된다.

특히 추 의원은 황 전 총리가 국무총리로 재임할 때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최측근이어서 일찌감치 ‘친황(친황교안)’으로 분류됐다. 원내부대표인 이만희 의원은 비대위 공개회의석상에서 “당대표 또는 최고위원이 되려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출마해야 한다”면서 황 전 총리 옹호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국당 당규에는 의원들과 당협위원장들의 선거운동을 금하고 있다. 유력 주자 캠프를 들락거리는 과정에서 계파가 만들어지고 경선 후유증이 오래 지속됐던 폐단을 막기 위한 조치다. 따라서 의원들은 경선이 끝날 때까지 웬만해선 특정 주자에 대한 호불호를 드러내지 않는다. 선거 막판 아주 은밀하게 가까운 당원들을 상대로 모종의 ‘오더’를 내려보내는 정도다.

따라서 ‘통합과 전진’이 이렇게 황 전 총리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은 가히 ‘노골적’이라고 할 만하다. 덕분에 황 전 총리는 입당하기가 무섭게 대구·경북이라는 당의 안방까지 차지하는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그렇다면 후보들의 ‘무더기 불출마’ 사태를 초래한 ‘대세’의 실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국당 선관위는 2월 12일 등록을 마친 후보들에게 38만 명에 달하는 선거인단 명부를 교부했다. 하지만 명부에는 안심번호만 들어 있어 직접 이들을 상대로 한 후보 지지도 조사는 쉽지 않다.

그래서 각 후보 진영은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자들의 응답을 근거로 판세를 읽고 있다. [문화일보]가 ‘엠브레인’에 의뢰해 2월 1일 공개한 한국당 차기 당대표 선호도 조사(1월 29~30일 실시)에는 전체 응답자 중 한국당 지지 응답자의 53.6%가 황 전 총리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어 홍 전 대표 10.7%, 오세훈 전 서울시장 10.1%, 김진태 의원 5.9% 순이었다. 나머지 후보들의 지지도는 거의 잡히지 않았다.

또 [데일리안]이 ‘알앤써치’에 의뢰해 1월 30일 공개한 여야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 조사(1월 28~29일 실시)에서는 전체 응답자 중 한국당 지지자 51.5%가 황 전 총리, 16.2%가 홍 전 대표를 각각 지지한다고 답했다. 오 전 시장은 4.6%로 나왔다.

두 조사에서 황 전 총리가 50%를 웃도는 지지를 얻어 ‘초강세’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놀라운 수치가 홍 전 대표가 출마를 선언한 1월 30일 이후 잇따라 공개되자 황 전 총리와 김진태 의원을 제외한 다른 주자들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경선 룰 등을 두고 당 지도부와 강하게 충돌했던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황 전 총리의 당내 안착에는 친박 출신 의원들의 도움이 컸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가 ‘박근혜 사람’이란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원들 사이에는 탄핵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2년 가까이 장기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홍 전 대표가 2월 3일과 4일 연달아 페이스북 글에서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런 이유로 2월 7일 유영하 변호사가 황 전 총리의 면회 신청을 박 전 대통령이 거절한 사실 등을 공개하며 “친박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할 때는 황 전 총리의 당권 행보에 급제동이 걸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홍 전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이 황 전 총리에 대해 배신감을 느낄 것”이라며 “황 전 총리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걸 때는 바른미래당 유승민 전 대표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황 전 총리의 지지세는 ‘옥중 메시지’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펜앤드마이크] 의뢰로 ‘여론조사공정’이 2월 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누가 한국당 대표로 당선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당 지지자 중 57.4%가 황 전 총리를 지목했다. 앞서 1월 23일 실시된 같은 여론조사에선 한국당 지지자 53.6%가 황 전 총리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나 2주 사이에 오히려 비율이 상승했다.

또 [아시아투데이] 의뢰로 ‘알앤써치’가 2월 8~9일 실시한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 조사에서도 한국당 지지자 60.7%가 황 전 총리를 선택했다. ‘알앤써치’가 [데일리안] 의뢰로 1월 28~29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한국당 지지자 중 황 전 총리 지지 비율이 51.5%로 역시 열흘 새 9.2%포인트가 올랐다. ‘옥중 메시지’가 황 전 총리의 지지도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그 이유는 입당 초기에는 ‘박근혜 향수’가 도움이 됐지만, 이후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당원들과 접촉을 늘리는 과정에서 황 전 총리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즉 ‘박근혜의 대리인’에서 ‘문재인의 대항마’로 격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정태옥 의원 발언도 그런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그의 변화된 위상이 ‘반문 정서’가 강한 TK 보수 민심과 교감하면서 ‘황교안 대세론’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나왔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황 전 총리는 대구·경북 출신이 아니다. 서울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보수진영의 대권후보는 TK의 지지 없이 대권을 잡을 수 없었다. 민자당 김영삼 후보도 1992년 14대 대선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앞세워 대구와 경북에서 각각 60.0%, 64.7%를 득표했다(전국 득표율 42.0%). TK에서 YS의 연고지인 부산·경남 다음으로 뜨거운 지지를 보냈던 것이었다.

보수진영 심각한 인물난의 단면일 수도


▎1998년 10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대구 두류공원에서 정권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비(非)TK 출신인 황 전 총리가 앞으로 대구·경북 시·도민들과 만들어갈 정치적 관계를 가늠해 보기 위해선 마찬가지로 비TK이면서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삼았던 이회창 전 국무총리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이 전 총리가 199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을 때 TK에는 이미 ‘반YS 정서’가 퍼져 있었다. 5년 전 대선에서 같은 영남 출신이라고 YS를 밀어줬는데, 1993년 정권 출범 뒤 TK 주요 인사들이 사법 처리되고, 1995년 11월과 12월에는 TK 출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마저 차례로 구속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TK 민심은 배신감을 느끼면서 정권에 대한 강한 반감을 키웠다. 이듬해 4월 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의 ‘녹색바람’이 TK를 휩쓸면서 대구 지역구 13석 중 무려 8석을 차지한 것도 그런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경북에서도 자민련은 2석을 챙겼다.

이 전 총리는 199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 YS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TK 정서에 편승한다. 이 전 총리는 1997년 10월 ‘김대중 670억 원 비자금’을 폭로하며 승부수로 던졌다.

하지만 YS가 대선 이후로 수사를 미루자 이 후보는 YS를 거칠게 비난했다. 경북 포항에서 열린 대선 필승 결의대회에서 이 후보 지지자들이 YS 인형을 몽둥이로 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이 전 총리는 TK 민심을 끌어안았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이 전 총리는 비록 석패했지만 대구 72.7%, 경북 61.9%를 얻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후 TK는 이 전 총리의 ‘정치적 고향’과 다름없었다.

TK의 ‘반문 정서’가 문재인 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유능한 대항마를 원한다면 ‘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나 홍 전 대표가 아닌 황 전 총리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홍 전 대표의 전투력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이고, 오 전 시장도 만만치 않은 내공과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황 전 총리의 또 다른 강점으로 ‘신상(新商)’이라는 점이 꼽힌다. 정치적으로 혹독한 실험대에 올라본 적이 없는 신인이라는 점이 오히려 산전수전 다 겪은 대선배들의 다양한 이력보다 더 호평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보수진영의 심각한 인물난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 지적도 있다.

‘도로 친박당’ 벗어나려고 동지를 희생양 삼는다?

어쨌든 황 전 총리는 앞으로 몇 개의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해야 TK와의 관계를 성숙시켜 나갈 수 있다. 황 전 총리에 대한 현재의 지지세는 정치 신인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기에 향후 실전능력과 역량을 검증받아야 한다.

먼저 보수진영이 한 데 뭉칠 수 있도록 구심점 역할을 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투쟁력도 입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권교체를 위한 보수진영의 대권주자로서 인정받는 수순이 기다리고 있다.

이 전 총리의 경우도 2002년 16대 대선에서 대권에 재수할 때도 TK 민심은 그를 아낌없이 지원했다. 이 전 총리의 대구 득표율은 77.8%, 경북은 73.5%로 전국 최고였다. 5년 전 득표율보다 각각 5.1%포인트, 11.5%포인트 올랐다. ‘보수 종가(宗家)’를 자임하는 TK로선 정권 탈환에 대한 열망이 강했기 때문에 그를 지역 출신 정치인 이상으로 후원했던 것이다.

황 전 총리가 그 단계까지 가는 길의 몇 가지 난제 중 하나가 TK를 중심으로 한 친박 의원들과 관계 설정일 수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미완으로 남겨놓은 인적청산 과제를 그대로 둔 채 한국당이 내년 총선에 임한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황 전 총리는 본인에게 따라붙는 ‘도로 친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내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도왔던 일부 의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과거 이 전 총리도 1차 대권 도전에 실패한 뒤 2000년 4월 16대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최대 후원자들을 내쳤다. 당시 ‘킹메이커’에다 ‘TK 맹주’로 통했던 허주(김윤환)는 1998년 이 전 총리가 당권을 다시 장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도 이른바 ‘공천학살’의 희생양이 됐다.

그렇지만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전체 273석 중에서 133석을 차지해 원내 제1당 지위를 지켰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115석 확보에 그쳤다. 대구 지역구 11석과 경북 16석은 한나라당이 모두 싹쓸이했다. 결과적으로 TK 민심은 공천학살을 지지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최대 패인은 옥석을 가리지 않고 자기사람만 챙긴 계파공천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유의 ‘의리’를 내세워 편을 가르고 계파정치를 일삼다가 민심을 읽는 눈이 멀어버렸다는 지적도 받았다. 황 전 총리가 이를 반면교사 삼아 계파를 멀리하고 민심과 직접 소통하면서 ‘TK가 미는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권혁식 영남일보 기자 kwonhs@yeongnam.com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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