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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토로] 항소심 판결 앞둔 이명박 前 대통령의 일성(一聲) 

“국가의 모든 노력 경제 활성화에 맞춰져야”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 MB정부, 글로벌 경제위기 대처에 자긍심 느껴
■ 잠재성장능력 감퇴하고 일자리 줄어 큰 걱정
■ 이 재판은 이명박 개인 문제 아닌 ‘역사 재판’
■ 법치주의 원칙 지켜 억울한 사람 없도록 해야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 30일 호송차에서 내린 뒤 벽을 짚어가며 서울고등법원 법정을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MB(이명박 전 대통령, 78)가 구속수감된 건 지난해 3월 22일 자정 가까운 시간.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지 사흘 만이었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11시6분쯤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피의자의 지위, 범죄의 중대성 및 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정황에 비춰볼 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MB에 대한 영장심사는 서류 심사로만 진행됐다. MB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審問)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MB는 지난해 1월 1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과 관련된 수사를 문재인 정부의 ‘정치보복’으로 규정했다.

MB는 구속영장 발부 직후 공개된 자필 입장문에서 “누굴 원망하기보다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심정이고 자책감을 느낀다”면서 “깨끗한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지만 오늘날 국민 눈높이에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로부터 5개월여 뒤인 지난해 9월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는 다스(DAS) 자금 횡령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MB의 1심 결심 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MB에 대해 징역 20년과 벌금 150억원, 추징금 11억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의 총체적 비리 행각이 낱낱이 드러난 권력형 비리 사건”이라며 “피고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에게 위임받는 대통령의 직무권한을 사익추구 수단으로 남용해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MB는 최후진술을 통해 “저는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없다”며 “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에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소치”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다스 주식 1주도 가져본 적이 없으며 공직을 이용해 사리(私利)를 챙긴 적이 없다”면서 “검찰이 아무런 증거 없이 죄를 만들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다. 기소 내용이 대부분 돈과 결부돼 있는데 그런 상투적인 이미지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심 공판 한 달 뒤인 같은 해 10월 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는 MB에 대한 1심 선고(협사합의27부 정계선 부장판사)가 내려졌다. “이명박 피고인에 대해 징역 15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82억원을 선고한다.” 얼마 뒤 검찰과 변호인단 모두 1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했다.

측근들 “수면무호흡증 악화로 돌연사 위험 커져”


▎지난해 3월 22일 구속 직전 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필 입장문.
3월 22일 구속수감 직후 MB는 불면의 밤을 보냈다. 며칠 연속 한잠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 80세를 바라보는 고령인 터라 건강은 날로 악화됐다. 지병인 당뇨병에 수면무호흡증이 더해지며 체중은 급격히 감소했다. 처음 수감됐을 때와 비교하면 6~7㎏가량 체중이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MB 변호인단은 1월 29일 “이 전 대통령이 78세의 고령인 데다 당뇨와 기관지확장증을 앓고 있어 어지럼증·수면장애·체중감소 등을 겪고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공판이 종료될 때마다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지 않으면 혼자서 걸어나갈 수조차 없는 상태”라며 법원에 보석을 신청했다. MB 항소심 구속 기한은 지난해 10월 9일 갱신됐다. 올해 4월 8일 밤 12시에 구속 기한이 만료된다.

변호인단은 “이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수면무호흡증까지 겹쳐 고통을 받아왔는데 증상이 누적되면 고령자의 경우 심장에 상당한 부담이 돼 돌연사의 우려가 있다고 한다”며 “얼마 전부터는 양압기(산소마스크 기능)를 구치소 내로 반입해 착용하고 잔다”고 설명했다.

또 MB 측은 “구속 기한 내에 10만 페이지 이상의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고, 5~6명의 핵심 증인을 포함해 최소 10명 이상을 추가로 증인 신문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구속 기한이라는 형식적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깊이 있는 심리와 공정하고도 충실한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그리고 이전 대통령에게 충분한 방어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 보석허가청구는 인용(認容)돼야 한다.”

MB측은 나이 여든에 건강 상태도 심히 우려되는 이 전 대통령을 계속 구금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한다는 게 인권과 국격(國格) 차원에서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신중하게 고려해 달라는 호소를 덧붙였다.

월간중앙은 MB의 심경을 들어보기 위해 그의 변호인단과 수차례 만났다. 변호인단은 매일 접견(接見)을 통해 MB의 심경을 듣고 있다. 개신교 장로인 MB는 성경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며, 틈나는 대로 뉴스도 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인단이나 예전 참모들에게 나라 걱정하는 이야기도 자주 한다고 한다.

변호인단은 “나라가 어려운 이때, 전직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건 적절치 못한 것 같다는 게 그분의 생각”이라면서도 “평소 변호인단의 접견 때, 그리고 참모들의 면회 때 하셨던 말씀들은 몇 가지 새길 만한 게 있다. 그게 심경이고 소회”라고 월간중앙에 알려왔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임기 첫해였던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에 잘 대처했던 데 대해 MB는 상당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변호인단을 통해 전해온 MB의 발언이다.

“MB정부는 세계 금융위기라는 (어려운) 현실에서 통화 스와프(swap), 선제적 재정투자 등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모든 국가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나라는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금의 경제 상황도 마찬가지다. 잠재성장능력이 감퇴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가와 국민의 모든 노력은 경제 활성화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경제위기 직격탄을 맞은 2009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당초 전망을 깨고 0.7%를 기록했다. 2010년에는 6.5%까지 올랐고, 2011년에도 3.7%라는 준수한 성적을 냈다.

재판장 전격 교체… 한 달 내 10만 페이지 읽어라?


▎2015년 11월 22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비록 영어의 몸이지만 한때 자신이 이끈 나라의 경제상황이 퇴조하는 현실에 대한 완곡한 우려의 표명으로 이해된다.

이런 가운데 MB의 앞길에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1월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S빌딩 12층 ‘이명박 대통령 기념재단’ 사무실은 한동안 술렁거렸다. 항소심 재판을 주관해 오던 재판장(김인겸 부장판사)이 이날 전격 교체됐기 때문이다. 재단 소속 한 직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일반인 재판도 아닌 전직 대통령 재판인데 굳이 재판장을 바꿔야 하는 이유가 뭘까.”

대법원은 1월 28일 전국 법원장 및 고등법원 부장판사 33명에 대한 승진·전보 인사를 발표했다. 대법원은 법원 인사·예산 실무를 총괄해 온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을 서울고등법원장으로 발령 내고, 그의 후임으로 김인겸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행정처 신임 차장에 임명했다. 문제는 김 부장판사는 MB 항소심 재판장으로, 이날 전까지 총 8차례나 본공판을 진행해 왔다는 점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과거에도 전직 대통령 사건 재판부는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해 웬만하면 교체하지 않고 연임시키는 게 관례였다. ‘대법원이 전직 대통령 사건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으면 이런 인사를 했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정치적 의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항소심 단계에서 8차례 공판을 진행했다면 재판이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일반인도 아닌 전직 대통령 재판을 맡고 있는 재판장을 빼내는 게 말이 되느냐. 정치적 판결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월 12일 서울고등법원은 사무분담회의를 거쳐 MB 항소심을 심리(審理)하는 형사1부의 재판장에 정준영 부장판사를 낙점했다. 정 부장판사는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 출신이다.

MB 측은 재판장 교체에 따른 부실 재판 가능성을 걱정한다. 판결 한 달 전에는 재판을 모두 마치는 게 일반적이다. MB의 경우도 지난해 9월 6일 1심 결심 공판이 열렸고,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0월 5일 판결이 이뤄졌다. 판결문을 작성하는 데는 한 달가량 걸린다.

이를 기준으로 MB 항소심을 살펴보자. MB의 구속 기한은 4월 8일인 만큼, 원론적으로는 그 전에 항소심 판결이 나야 한다. 4월 8일 이전에 판결이 나려면 그 한 달 전쯤인 3월 10일께 재판을 모두 마쳐야 한다. 2월 12일 발령을 받은 정준영 부장판사로서는 한 달 이내에 재판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재판기록만 A4 용지 기준으로 10만 페이지 분량에 이른다. 하루에 3330페이지씩 30일을 읽어야 10만 페이지를 다 볼 수 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손사래부터 쳤다. “소설책을 보라고 해도 하루에 3330페이지를 읽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항소심 막판에 재판장을 교체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핵심 증인들은 도망 다니고, 재판장이 교체된 상황에서 4월 8일 이전에 항소심 판결이 내려진다면 그 자체가 난센스다. 재판장이 기록도 제대로 안 보고 판결을 내린다는 말 아닌가. 구속 기한에 연연할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핵심 증인들을 불러서 제대로 시시비비를 가린 뒤 판결을 내려야 한다.”

재판장 교체 등과 직접 관련된 입장 표명은 아니지만, MB는 변호인의 접견과 참모들의 면회 때 ‘법치주의’를 강조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문턱에 있다. 정치가 국민의 의사와 능력을 결집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법치주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 임의적 권력행사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

사라진 증인들은 도대체 어디에


▎201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거행된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리를 함께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런 가운데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 제승완 전 청와대 행정관, 김성우 전 다스 사장 등 MB 항소심 공판에서 증인 신문이 예정됐던 핵심 인물들이 죄다 불출석하고 있다. MB 측은 “핵심 증인들을 재판장으로 불러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전 부회장 등은 검찰 조사에서 다스 실소유주 문제와 삼성 뇌물 수뢰 주체에 대해 MB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1심이 MB에게 중형을 선고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이들의 불출석 사유는 폐문부재(閉門不在), 집에 아무도 없어 증인신문 소환장을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MB 측은 “이들이 법정 증언을 회피하기 위해 고의로 소환장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법원 증인신문에서는 유지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심에서는 이들의 진술을 근거로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MB 측은 항소심에서 이들을 상대로 진실 여부를 가리겠다고 나섰다. MB 측이 공세적으로 나선 상황에서 이들이 출석하지 않아 그 배경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성우 전 다스 사장은 지난해 1월 검찰에서 “현대건설에 근무할 당시 이 전 대통령이 ‘자동차 부품업체를 설립하려 하니 일을 해보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사장은 그해 3월 조사에서도 “이명박에게 보고한 뒤 서울에서 4억원 상당이 입금됐다”며 “누가 입금했는지는 모르지만 보고한 대로 입금됐기 때문에 자본금을 이명박이 부담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MB 측은 김 전 사장의 이 같은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 전 사장과 권승호 전 전무가 2008년 다스 경리 여직원 조모씨의 120억원 횡령 사실이 밝혀진 뒤 회사 대주주인 이상은 회장에 의해 퇴사한 만큼 진술에 사적(私的) 감정이 섞여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검찰이 김 전 사장과 권 전 전무의 자금 횡령 사실을 밝혀내고 피의자로 전환했음에도 이들을 기소조차 하지 않은 것은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유죄협상제도)’, 즉 일종의 사법거래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죄를 덮어주는 대신 검찰 입맛에 맞는 진술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MB 측 변호인은 “검찰은 다스 실소유 문제 및 다스 비자금 문제를 규명하면서 객관적 증거보다 진술을 근거로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MB 변호인단은 “소환장 송달이 안 되더라도 다수 언론 보도를 통해 본인의 증인 채택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정당한 사유 없이 소환에 응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 구인장을 발부해 강제로 증인석에 세우는 방안도 검토해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재판과 관련해서도 MB는 변호인단을 통해 월간중앙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이 재판은 내 개인 재판이 아니라 역사 재판이며, 국제사회에서 지켜보는 재판이다. 검찰의 의무는 사실을 밝히고 범인을 찾아내 처벌하고, 억울한 사람의 무고(無辜)를 면해주는 것이다.”

운명 가를 항소심 주요 쟁점 살펴보니…


▎2009년 6월 4일 용인시 풍덕천동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열린 제20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여러 논란 속에서 항소심 판결을 앞둔 MB의 운명을 가를 쟁점은 크게 네댓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다스 실소유주 문제다. 다스 실소유주 논란이 시작된 건 2007년 대선 정국. 그 전까지는 다스 소유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이유는 없었다. 다스는 주주가 3명뿐인 비상장 회사로, 설립 후 20년 동안 소유권 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7년 대선 과정에서 ‘BBK 사건’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다스 실소유주 문제가 국민적 관심을 사게 됐다. BBK 사건이란 BBK를 설립한 김경준이 코스탁 상장회사를 인수해 ‘옵셔널벤처스’로 이름을 바꾸고, 2001년 5월부터 주가조작을 통해 조성한 자금 380억원을 횡령한 뒤 같은 해 12월 미국으로 달아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대선 때 MB의 상대 진영은 ▷이상은·김재정 명의의 도곡동 땅 판매대금 일부가 다스에 투자된 사실 ▷MB가 김경준과 동업해 ‘LKe뱅크’라는 회사를 설립한 사실 ▷다스가 BBK투자자문에 190억원의 자금 운영을 맡겼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의혹을 제기했다.

이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2007년 검찰 수사와 2008년 특검 수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검찰과 특검 모두 다스는 MB 소유가 아니며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및 횡령도 김경준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둘째, MB의 다스 비자금 조성 지시 여부다. 다스에서 금강(MB 처남인 김재정이 다스 생산 품목 중 일부를 가져가 설립한 자동차 부품 회사)으로 이어져 조성된 비자금이 김재정을 통해 MB에게 전달됐다는 김성우 전 사장의 진술이 허위임이 드러나자, 검찰은 다스 비자금을 겨눴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사장 등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MB의 다스 비자금 횡령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변호인단이 제기한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서는 “김성우·권승호의 횡령 혐의는 공소시효가 모두 지나 기소를 면하기 위해 검찰에 유리한 진술을 꾸며서 할 필요가 없었다”고 판결했다.

셋째, 삼성의 다스 소송비 지원 여부다. 검찰은 이학수 전 부회장으로부터 2008년 하반기~2009년 초반 김석한 에이킨검프 변호사가 자신을 찾아와 “청와대에서 MB와 김백준을 만났는데 삼성이 다스 관련된 일로 김석한을 도와주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한 뒤 직원들에게 에이킨검프를 도와주라고 지시해 300만~400만 달러를 다스 소송비용으로 에이킨검프에 송금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보도가 나오자 지난해 2월 19일 이재오 전 의원은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에이킨검프와 ‘프로젝트M’이라는 계약을 맺고 월 10여 만 달러를 정액으로 지급한 것은 2007년 11월부터인데, 이 가운데 2009년 3월부터 지급된 금액만을 잘라 소송비 대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요지의 주장을 폈다.

그러자 검찰은 이 사건 핵심 내용을 ▷삼성은 다스 소송비가 아닌 ‘자금 지원’을 한 것이며 ▷시기는 2009년 3월이 아닌 2007년 11월부터 시작됐고 ▷뇌물의 대가도 이건희 사면이 아닌 금산분리(金産分離)라고 수정했다. 또한 이 전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관련자들의 진술도 모두 번복됐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소송비 대납 시작 시기를 2009년 3월이나 2007년 11월이 아닌 2008년 3~4월쯤으로 판결했다. 청와대를 방문한 김석한 변호사를 MB와 면담하게 했다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진술에 근거한 판결이었다. 삼성이 에이킨검프에 월 12만5000달러씩 송금한 것은 2007년 11월부터인데 2008년 3월 이후 지급한 금액만 MB에 대한 지원이고, 그 이전은 아니라는 판결이다.

그러자 MB측 변호인단은 항소심에서 결정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청와대 출입기록을 보면 2008년 3~4월쯤 김석한 변호사가 청와대를 방문한 날짜는 3월 12일과 4월 8일이다. 3월 12일 방문기록을 보면 김 변호사가 청와대에 체류한 시간은 11시58분부터 12시12분까지다. 언론 보도를 보면 그 시간 MB는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오찬을 하고 있었다. 또 4월 8일 김 변호사가 청와대에 체류한 시간은 11시5분부터 11시57분까지다. 그 시간 MB는 정읍 시청을 방문해 전북지사로부터 조류독감 방역대책을 보고받고 있었음이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공소사실 대부분이 대통령 되기 전의 일 아닌가?”


▎제17대 대선이 치러진 2007년 12월 19일 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부인 김윤옥 여사가 여의도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넷째,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뇌물 문제다. 청계재단 압수수색 과정에서 김백준 전 기획관이 이팔성 전 회장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포착한 검찰은 지난해 2월 21일 이 전 회장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때 이 전 회장은 수사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메모지 한 장을 입에 넣어 삼키려 했다. 수사관들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손가락을 물려 상처가 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이 삼키려고 한 것은 명함 크기의 메모지 한 장이었다. 메모지에는 MB의 사위인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와 이상득 의원의 이름·액수가 적혀 있었다. 메모지에는 이 전 회장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앞두고 10여 차례에 걸쳐 약 20억원을 MB 사위인 이 전무와 친형인 이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또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3억원을 이 전무에게 전달한 내용도 있었다.

검찰은 이 전무 등에게 건네진 자금이 우리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목표로 MB에게 전달된 뇌물로 보고 뇌물수수 혐의로 MB를 기소했다. 그러나 이 전무가 해당 자금을 받아 대선 및 총선 자금을 관리한 이 전 의원에게 전달했으며, MB가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진술이나 정황은 없다.

또 메모지에 적힌 내용은 비망록에는 기록돼 있지 않았다. 검찰이 입수한 이팔성 비망록은 공교롭게도 해당 기간이 누락돼 있었다. 다만 이 전 회장의 비망록에는 30억원을 지원했음에도 대가가 없었다며 MB를 원망한 내용만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당시 감정이 북받쳐 금액을 과장했으며, 이 전무 등에게 건넨 돈은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이라고 진술했다.

그런데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해당 금액은 성동조선으로부터 받은 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기 돈이라는 이 전 회장의 진술은 허위였다. 또한 이 전 회장은 성동조선 관련 허위진술에 대해 검찰의 추궁을 받자 이 전무 등에게 건넨 돈은 성동조선으로부터 RG(선박이 계약대로 인도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손실을 보증하는 보험)를 늘려 달라는 조건으로 받은 돈이며, 이 내용을 MB를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했다고 진술했다. 이 전 회장의 자금 수수가 MB에게 보고됐다는 유일한 진술이다.

하지만 성동조선 전 부회장 김모씨는 “당시는 성동조선의 매출 규모가 크고 조선 경기도 활황이어서 RG 부문에 문제가 없던 상황이었다. RG를 늘려 달라고 요구할 이유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나중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MB 측근으로 알려진 이 전 회장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한 것뿐이라고 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전 회장 뇌물수수와 관련해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MB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의혹·혐의 등과 관련해 MB는 “모든 게 내 부덕의 소치”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측근들에게는 뼈 있는 한마디를 전했다. “적폐청산이라고 하지만 공소사실 대부분은 (내가) 대통령 되기 전의 일이다. 4대강, 롯데월드타워, F35 전투기 도입 등 많은 건(件)이 박근혜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검찰 수사, 감사원 감사 등을 받았다. 그럼에도 비리가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MB정부 때 재직했던) 장관들 가운데 재임 중 비리로 처벌된 사람도 없지 않나?”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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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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