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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아베의 한국 ‘패싱전략’ 

갈등 현안은 외면 또는 회피, 스포츠·관광 증진 등에 방점 

콘도 다이스케
초계기 갈등, 3·1운동 100주년 등 외교·안보 이슈와 거리두기
내년 도쿄올림픽 앞둔 한국 관광객 유치와 민간 교류에 치중


▎1월 28일 열린 일본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 사진:연합뉴스
1월 28일 일본에서는 제 198차 정기국회가 개막됐다. 회기는 6월 26일까지 150일 간이다. 올해는 5월 1일에 천황이 교체되고 연호 개정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국회 폐막 직후에는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등, 예년보다 훨씬 분주한 국회 운영이 예상된다.

정기국회에서는 개막에 앞서 총리 시정 방침 연설이 이루어지는데, 이 연설을 통해 일본 정부가 한 해 동안 어떤 정책과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할지가 드러난다. 올해 정기국회 첫날에도 아베 신조 총리가 자신의 8번째 시정연설을 50여 분에 걸쳐 쏟아냈다. 새해 들어 부친인 아베 신타로 전 외무장관(1991년 사망)을 방불케 하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쓰기 시작한 아베 총리는 천황 교체 건을 시작으로, 내정에서 외교까지 다방면에 걸친 일본 정부의 과제를 연설했다.

그런데 이 시정 방침 연설에서 전대미문의 일이 일어났다. 아베 총리의 연설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연설 내용에 관한 대목이 아닌, ‘연설을 하지 않은’ 대목이었다.

아베 총리는 하필이면 한국에 대한 부분을 의식적으로 건너뛴 것이다.

아베 총리는 올해 시정 연설에서 미국의 트럼프 정권과의 긴밀한 미·일 동맹을 강조하고, 지난해 가을 베이징을 방문하는 등 관계가 개선되는 중인 시진핑 정권과의 올해 전망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후술하는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문제 교섭에 대해서는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게다가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과의 외교에 대해서까지 세세하게 언급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의 외교만이 통째로 빠져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이라는 단어를 딱 한 번 언급했다. 북한과의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대목이었다.

“북핵, 미사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상호 불신의 껍질을 깨고, 다음번에는 제 자신이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만나서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하겠습니다.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지향하겠습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와 긴밀히 연계해 나가겠습니다.”

문 대통령, 3·1운동 기념식에 아베 초청할까


▎북방4도 반환 관련 행사에서 발언 중인 아베 일본 총리. 일본은 올해 북방 섬 반환에 총력전을 펼 방침이다. /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북한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연계해 나가겠다고 말한 것이 전부이다. 게다가 ‘한국과’가 아니라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와’라고 한 것이다. 나는 이 연설을 들으며 아베 총리에게 주된 목적은 어디까지나 북한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주변국들과 협력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베 총리가 이처럼 완전히 한국을 무시한 전례는 기억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즉시 총리 관저의 관계자에게 경위를 물었다. 그러자 그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솔직히 한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언급할지에 대해 많이 망설였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과 우리와는 작년 가을부터 관계가 좋지 않고, 더구나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있을 때라 관계가 조속히 개선되기는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몇 가지 표현을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은, ‘차라리 빼 버리자’가 된 것이다. 침묵은 금이란 말도 있으니….”

한국 언론은 아베 총리의 침묵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기자들 중에서 나처럼 평소 한·일 관계를 쫓고 있는 일부 기자를 제외하고는 아베 총리가 한국을 무시한 줄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일본인 기자들, 나아가 일본 국민은 한국 언론의 보도를 접하고야 비로소 “그리고 보니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구나”라고 재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총리관저 관계자가 말했듯이 3·1운동 100주년은 아베 정권이 골머리를 앓는 사안 중 하나이다. 이 총리 관저 관계자가 계속한다.

“작년 말쯤부터 총리 관저에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에서 6000명 규모의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총리관저가 특히 고심하고 있는 문제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기념식전의 초대장을 보내 올 것인가. 만일 초대장을 보내왔을 경우에는 출석해야 할까,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까. 둘째, 기념식 자체에 대해 일본 정부로서 어떤 성명을 내야 하는가, 또는 내지 않을 것인가. 셋째, 일본과 북한 간의 문제에 이번 기념식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또한 그 시기에 북한의 김정은이 서울을 방문할 가능성은 있는가. 넷째, 미 트럼프 정권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 관계 부처의 간부들을 모여서 하나하나 정밀하게 조사해 간 것이다.”

일본 외무성에서는 1월 29일부터 2월 1일까지 아시아대양주 국제기구 대사 회의가 열렸다. 이는 아시아와 대양주 각국에 흩어져 있는 일본 대사, 북미 지역 일본 대사, 유엔 등 국제기구 대표부의 일본 대사, 그리고 외무성 간부가 1년에 한 번씩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다. 1월 30일 저녁에는 고노 다로 외무장관도 가세했다.

다음은 외무성 관계자가 밝힌 내용이다.

“올해 회의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대사가 가장 주목을 받았다. 그 어려운 한국에서 잘 버텨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의는 베이징 주재 중국 대사의 현황 보고로 시작되는 것이 관례지만, 올해는 나가미네 대사의 보고가 가장 관심을 끌었다. 나가미네 대사로부터 한·일 관계의 엄격한 현황을 보고받은 뒤, 참석자들은 ‘조만간 문재인 정부에 항의해 나가미네 대사의 소환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가미네 대사는 1월 30일 오전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외교부회에도 참석 요청을 받고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설명했다. 참석한 자민당 의원 중 한 명은 흥분한 나머지 “나가미네 대사는 이제 서울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이대로 일본에 머물러 한국에 대한 항의의 뜻을 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무성과 함께 가장 긴장하고 있는 곳이 방위성이다. 방위성은 지난해 12월 21일에 “어제 한국의 구축함으로부터 P1초계기가 레이더 조사를 받았다”고 발표한 이후 한국에 대한 시각이 180도 바뀐 것이다.

한국의 가상 적국, 북한에서 일본으로 이전?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아베 총리가 검은 뿔테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한 방위성의 간부는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그 레이더 조사 사건은 한국군이 일본을 미래의 가상 적국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일 것이다. 그렇게 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1월 23일에는 한국 국방부가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이어도 근해에서 한국 해군의 구축함인 대조영함에 대한 위협 비행을 감행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다음날인 24일에는 사진까지 공개했다. 이러한 행동들도 한국이 일본을 적대시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을 가상적국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 언론이 이 문제를 크게 보도한 것은, 1월 15일 한국 국방부가 국방백서를 공개했을 때였다. 문재인 정권하에서 처음 나온 국방백서에서는 과거에 있었던 북한을 적대시하는 표현이 삭제됐다. 대신 적의 개념은 주변의 모든 위협과 침해 세력이 됐다. 또 일본과는 자유·민주 등의 공통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표현도 사라졌다.

이런 일들이 일본 측으로 하여금 한국의 가상 적국이 북한에서 일본으로 이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 것이다.

방위성 간부가 계속하여 들려준다. “실제로 한국군은 이지스함, 잠수함, P3초계기, 상륙함 등을 일본이 건조하면 늘 간발의 차이로 같은 종류를 건조했다. 그래서 한국의 군사비는 얼마 안 있어 5조 엔(약 50조원) 규모로 늘어날 것이며, 일본의 방위비를 따라잡고 있다. 인구·면적·GDP에서 모두 일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한국이 왜 일본과 동등한 방위력을 가지려 하는가? 그것은 오로지 일본을 미래의 가상 적국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증거로 한국의 최대 상륙함의 이름이 독도호, 잠수함에는 안중근이나 윤봉길처럼 일본을 적대시할 수밖에 없는 네이밍이 늘고 있다. 그 외에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당초 북한용으로 개발된 탄도 미사일 ‘현무’를 2000기 정도가 실전 배치될 예정이지만, 현재 미사일 생산의 주력이 사거리 1500㎞의 ‘현무 3C’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 순항미사일이 진짜 북한용이라면 사거리 500㎞인 현무-3A나, 사거리 1000㎞인 현무-3B로 충분할 것이다. 1500㎞란 서울에서 일본 열도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거리이고, 한국은 사실상 일본을 겨냥한 미사일 개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필자는 얼마 전 3·1독립운동의 계기가 된 2·8독립선언의 현장인 재일본한국YMCA를 찾아봤다.

2·8독립선언이란 1919년 2월 8일 재일본도쿄조선YMCA(현재는 재일본한국YMCA)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은 조선인 유학생들이 ‘조선유학생학우회총회’를 열고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것으로, 다음 달에 한국 전역에서 일어난 3·1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재일본한국YMCA는 도쿄 진보초의 한적한 골목에 조용히 서 있다. 입구에는 ‘조선독립선언 1919.2.8 기념비’가 놓여 있었다.

필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YMCA 직원에게 2월 8일에 이곳에서 어떤 행사를 예정하고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러자 “2월 9일 토요일 오후 15시부터 18시 반까지 2·8 독립선언 1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심포지엄을 예정하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팸플릿을 건네받았다.

“일본을 적으로 돌린 총련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


▎국방부는 1월 4일 한·일 ‘레이더 갈등’ 일본 측 주장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사진은 당시 일본 초계기가 촬영한 영상. / 사진:연합뉴스
2월 9일 3명의 전문가가 기조 강연을 실시했다. 오노 야스테루(小野容照) 규슈대학 준교수의 ‘동아시아사 안의 2·8독립선언’, 윤경로 전 한성대학 총장의 ‘한국근대사에 있어서의 2·8의 의의’, 서정민 메이지학원 대학 교수의 ‘한일기독교사의 2·8독립운동과 3·1독립운동’이다. 이후 ‘한국, 일본, 재일사회의 향후 과제’를 태마로 하는 토론이 열렸다. 8월에는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 논집으로 발간한다고 한다.

이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행사는 일본에서는 별로 큰 뉴스가 되지 못했다. 역시 일본 국내에는 이 운동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소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의 일본 활동에 대해 거류민단(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관계자에게 계획을 묻자, 그는 뜻밖에도 다음과 같이 답했다.

“본국으로부터 큰 행사를 치르도록 수차례 촉구를 받고 있으며, 조선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으로부터도 공동사업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본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거나 일본과 비즈니스를 위해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일본을 적으로 돌리는 이벤트는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하면서, 일본 내에서 일본인 납치문제에 관해 대북한 비판이 들끓었을 때, 당시 총련은 본국(평양)의 지시에 따라 본국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그 결과 일본 정부 및 일본 국민을 완전히 적으로 돌려버리고 해체 직전까지 내몰린 것이다. 우리는 조총련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 본국의 심정은 알겠지만 일본에선 가능한 한 그냥 놔두면 좋겠다.”

일본에서는 또 하나,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2월 22일 ‘다케시마(독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1905년(메이지 38년) 2월 22일 시마네현 지사가 시마네현에 다케시마의 편입 고시를 했다’는 주장과 함께, 이후 100주년이 되는 2005년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를 정한 것이다. 우익들은 매년 이 날이 되면 시마네현으로 가자며 들썩인다.

이처럼 한·일 관계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하지만 아베 정권에게는 언제까지 한국을 비난만 할 수 없는 사정도 있다. 그 이유의 하나가 아베 총리가 올해 최대 외교 안건으로 내건 북방영토 문제와 관련된 사항이다. 앞머리에서 언급한 1월 28일의 시정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이렇게 강조했다.

“러시아와는 국민끼리 서로의 신뢰와 우정을 돈독히 하고 영토 문제를 해결하며 평화조약을 체결할 것입니다. 전후 70년 이상 풀지 못한 이 과제를 다음 세대에 넘겨주지 않고, 반드시 종지부를 찍겠다고 하는 강한 의지를 푸틴 대통령과 공유했습니다. 정상 간의 깊은 신뢰관계 위에 1956년 선언을 기초로 하여 협상을 가속해 나가겠습니다.”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가로놓인 북방영토 문제에 관해선 한국 독자들에게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알려진 대로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국 측에 무조건 항복했다. 그런데 6일 전인 8월 9일 상호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가세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일본의 항복이 임박했음을 깨달은 소련이 일본을 급습한 것이다. 그리고 그 즉시 소련은 홋카이도의 끝에 위치하는 하보마이·시코탄·쿠나시리·에토로후, 이른바 북방의 4개의 섬을 점령했다(소련군은 홋카이도도 점령하려고 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일본은 9월 2일 무조건 항복에 조인했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1956년 일본과 소련은 일·소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평화조약 체결 후에 (소련은 일본에)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인도하겠다”고 명기하고 그에 따라 일본은 유엔 가입을 완수했다.

하지만, 일본과 러시아의 북방영토 반환 문제는 이후로는 63년간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북방 4개 섬이 전면 반환되지 않는 한, 일본의 전후문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의 전후문제의 총결산 ‘북방 섬 반환’


▎2018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경합을 벌인 한국의 이상화 선수와 고다이라 나오 선수.
2014년 2월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아베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푸틴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2개 섬+알파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즉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1956년 일·소 공동선언에 명기된 대로 하보마이와 시코탄은 일본에 반환한다.(그래도 북방 4개 섬 면적의 7%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나머지 2개 섬은 일본인들에게 자유왕래 등 사실상 국경을 없앤다. 대신 일본은 러시아와의 우호를 위해 경제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 달 크림 반도 점령을 예고하며 서방세계로부터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각오하던 푸틴 정권이 어떻게든 일본을 러시아 쪽으로 끌어들이려던 승부수였다. 그리고 아베 총리는 이 손짓에 응답한 것이다. 그것은 일본 정부가 기존의 4개 섬 일괄 반환을 포기하고 2개 섬 반환으로 마무리 짓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음을 뜻했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흘렀고, 아베 총리는 올해 1월 4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는 북방영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겠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전후 70년 이상 해결하지 못한 이 과제를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일 없이 반드시 종지부를 찍겠다는 강한 결의를 작년 싱가포르에서 푸틴 대통령과 공유했습니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이번 달 하순에 제가 러시아를 방문해 평화 조약 교섭을 전진시킬 생각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전후 일본 외교의 총결산을 실시해 갈 것입니다. 올해는 그 목표를 향해 크게 전진하는 한 해로 만들 생각입니다.”

1월 들어 아베 총리는 모스크바 크렘린을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무려 25번째인 러·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 시간에 40분이나 지각하는 ‘초조전술’을 썼다. 이와 함께 ‘2개 섬 반환을 담은 평화조약 조문 작성을 위한 실무협의’로 진행되어야 할 회의가 푸틴 대통령의 뜻에 따라 50분간의 약식회담(통역만 대동한 양 정상의 비공식 회담)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아베 총리가 일본으로 귀국한 뒤, 일본 정치의 중심가인 나가타초에서는 다음과 같은 소문이 무성했다. “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의 읍소에 당한 것 같다. 푸틴 대통령은 ‘지금은 러시아 내의 반대 여론이 너무 강해서 2개 섬을 당장 반환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일단은 일본에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협력의 뜻을 보이고 영토 반환을 위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겠나’고 제안한 것이다. 이에 아베 총리는 답변을 보류하고 귀국했다.”

이 소문에 대해 전출의 총리 관저 관계자에게 확인을 요청했으나 “그 건은 지금은 대답할 수 없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소문이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어차피 앞으로 2개 섬의 반환 분위기가 고조될 경우, 일본이 해야 할 일은 주변의 주요 3개국에 대한 사전 정지작업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미국의 경우는 이미 여러 차례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의해 많은 양해를 구했다. 즉 평화조약을 맺고 2개 섬을 러시아로부터 돌려받는 것, 반환된 후 북방영토에는 미군기지를 두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국의 의향인데, 마침 작년부터의 미·중 무역전쟁으로 상당히 피폐해진 시진핑 정권이 그때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미소 외교’로 일본에게 손짓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아베 총리가 방중했고, 올해 6월에는 시진핑 주석이 일본을 공식 방문할 예정이다.

하지만 한국이 문제다. 아마도 문재인 정권은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북방영토를 일부라도 반환받게 되면 다음에는 한국에게도 독도를 돌려달라고 주장할 것이라고 의심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대대적으로 북방영토 반환 반대의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북방영토 반환과 한국 정부의 선택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홍보탑 제막식에서 김구, 유관순 등 순국선열을 재현한 동상 퍼포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냉정하게 생각하면 북방영토 문제와 남한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한국이 역사문제로 시끄럽게 굴게 되면 상당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점이 위안부문제, 징용문제 등에서 증명되었다. 그래서 일본으로서는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라도 올여름까지는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것이 본심이다.

앞서의 외무성 관계자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일관계가 사상최악이라고 하지만 지난해 일본에 753만9000명이나 되는 한국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이는 전체 외국인 관광객 3119만 명의 약 24%에 해당한다. 내년 도쿄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을 앞두고 아베 정권은 40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라는 큰 목표를 내걸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연간 1000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해주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언제까지 문재인 정권과 감정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이는 통계가 아닌 나의 개인적인 경험치이지만, 한 번이라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는 한국인이 강렬하게 반일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시부야역의 하치코 동상 앞의 사거리를 걸어보면 지금의 일본인이 군국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이 일목요연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 스포츠 이벤트는 한국과 일본을 일체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나는 아직도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의 감동을 기억하고 있다. 아직도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리스트인 고다이라 나오(小平奈緒) 선수와 은메달리스트인 한국의 이상화 선수와의 우정의 포옹이 기억에 생생하다.”

필자는 매주 한 번 도쿄 6개 대학 중 하나인 메이지대학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론 수업을 맡고 있다. 학생 수는 약 300명이며 이 중 50명이 한국인 유학생이다. 한국인 유학생 중에는 졸업 후 그대로 일본에서 취업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또 일본 학생들은 K팝과 한국 드라마 팬이 많아 부모 세대의 혐한 감정에 강한 위화감을 갖고 있다.

즉, 젊은 세대간의 ‘한·일 관계’는 지극히 양호한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은 한국에게 소중한 이벤트일지 모르지만, 그 행사를 치르고 난 후에는 한·일 정치지도자들도 젊은 학생들을 본받았으면 한다. 한국에게 있어서도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일본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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