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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탐방] 북한·4차산업 날개 달고 도약 준비하는 한국도로공사 

‘아시안 하이웨이’ 열어 세계로 진출하는 통로 만든다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중소기업과 착한 동반성장 ‘도공 기술마켓’ 국가 모델로
첨단 스마트고속도로 위에 자율협력주행 눈앞에 성큼


▎한국도로공사가 개최한 ‘제16회 길사진 공모전’에서 고속도로 부문 은상을 수상한 송재석 씨 작품. / 사진:한국도로공사
대한민국의 산업지도는 1970년 7월 7일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이 날은 총 공사비 429억 원, 연인원 829만 여명이 동원된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공사였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날이다. 착공 2년 5개월 만에 서울과 부산을 잇는 428㎞의 왕복 4차선 고속도로가 깔리자 1인당 국민소득 142달러에 불과했던 한국 경제는 탄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경부고속도로는 수도권과 영남공업지역, 인천항과 부산항을 연결하는 한국 산업의 대동맥 역할을 했다. 물류비용의 감소는 자동차와 중화학 공업의 압축 성장을 이끌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5시간에 이르던 운행 시간도 5시간30분대로 단축되면서 전국은 ‘1일 생활권’이 됐다. 이후에 건설된 88올림픽고속도로(현 광주대구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등 전국 곳곳에 뻗은 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

대한민국의 성장과 함께 해 온 기업이 있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한국도로공사(사장 이강래)다. 1969년 2월 15일 창립한 도로공사는 경부고속도로를 포함해 현재까지 30개 노선, 총연장 4151㎞의 고속도로를 건설해 관리하고 있으며, 민자고속도로 중 3개 노선 159㎞를 위탁 관리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도로공사도 양질의 성장을 거듭했다. 2018년 기준 도로공사의 법정 자본금은 35조원, 자산은 62조원에 달한다. 300명 남짓이던 임직원은 6320명으로 늘어났고 연간 통행료 수입은 4조원에 육박한다. 명실상부 세계최고 수준의 고속도로 전문기관이자 대한민국 대표 공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국가 간선도로망 구축과 이용객들의 편의 증진을 위해 50년을 달려온 도로공사는 현재 갈림길에 서 있다. 건설 물량 감소로 물리적 성장은 한계에 다다랐다. 더 이상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유지관리하는 기업에 머물러서는 시대적 변화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로공사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이제 도로공사는 미래형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 선도 기업으로 탈바꿈하려 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지난해 종합적인 대내·외 상황분석과 일반 국민 1000명과 도로공사 임직원 500명, 외부전문가가 참여해 ‘미래상 정립을 위한 방향성과 핵심이슈 도출을 위한 공사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가 “사람을 위한 미래 교통 서비스 기업”이라는 미래상이다. 이를 토대로 ‘5대 약속’(안전·소통·신뢰·선도·혁신)과 ‘20대 실천 과제’를 선정했다.

‘5대 약속’ 가운데 도로공사가 최우선으로 내건 가치는 안전이다. 교통·주행·시설·작업장 안전을 통해 국민과 근로자의 생명을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도로공사가 특히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고속도로 사망자 줄이기’다. 지난해 고속도로 사망자는 227명으로 역대 최소를 기록했던 2017년(214명)보다 증가했다. 화물차 사고가 늘어난 것이 요인이었다. 화물차 사고의 주요 원인은 과적 및 적재불량, 야간 운행과 휴식 부족으로 인한 졸음운전 등이다. 특히 졸음운전은 최근 5년간 고속도로 사망사고 원인 가운데 주시태만(33,2%)과 함께 가장 높은 비중인 32.7%를 차지하고 있다.

‘고속도로 사망자 줄이기’에 두 팔 걷어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2월 14일 경북 김천 본사에서 열린 창립 50주년 기념식 자리에서 “50년 전 국민과의 약속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듯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도로공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장거리 및 야간 운전이 많은 화물차 운전자를 위해 우선 기존 휴게소 내에 별도 공간을 마련하여 샤워실, 수면실 등 화물차 운전자들이 선호하는 편의시설을 갖춘 ‘ex 화물차라운지’를 설치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10개소를 개장하였으며, 올해도 10개소를 추가 개장해 20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지난해 4월 개장한 매송 화물차 복합휴게소와 같이 검사, 정비 서비스가 가능한 화물차 복합 서비스 센터를 조성해 화물차 운전자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현재 21개소인 화물차 전용 휴게소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졸음쉼터의 환경 개선에도 발 벗고 나섰다.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기존 190m였던 진입로(감속차로)를 215m로, 진출로(가속차로)는 220m에서 370m로 확대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졸음쉼터 확대와 함께 쉼터 내 화물차 주차면도 지속적으로 늘여나갈 예정이다.

이밖에 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경찰청 등 정부 관계자들과 화물연합회, 대한교통학회 관계자들이 패널로 참여하는 ‘졸음사고 예방 토론회’도 개최했다. 졸음사고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실질적인 예방대책들을 도출하는 등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자 노력 중이다.

아울러 ‘사고발생 즉시알리미’ 앱을 개발해 전방 사고 상황을 신속 전파해 2차 사고를 예방하고, 실시간 결빙구간 알림시스템 구축으로 블랙아이스 구간 안전운행을 유도하는 등 사고 예방을 위한 기술들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안전순찰원의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위한 제도 정비도 추진 중이다. 안전순찰원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안전교육과정을 신설하고, 이들의 단속 및 위험방지 조치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도로교통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간 법적 권한이 없어 운전자가 2차 사고 예방조치를 따르지 않더라도 처벌이 이뤄지지 못한 점을 감안한 대책이다.

공기업다운 사회적 가치 창출


▎창립 50주년 기념 ‘도로공사 10대 뉴스’ 2위에 꼽힌 1970년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 완전 개통. 국토를 관통해 수도권과 부산항을 연결하는 한반도의 대동맥으로서 대한민국 산업화와 근대화의 마중물이었다. / 사진:한국도로공사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이 2017년 11월 취임 이후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공기업다운 공기업’을 만드는 것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기술(신공법, 신제품 포함)을 보유하고도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을 위한 ‘도공 기술마켓’이다. 중소기업이 보유한 우수 기술의 원활한 시장진입과 연구개발을 돕는 지원체계로 기술을 가진 기업은 누구나 제안하고 심의를 통과하면 시장진입은 물론 신기술 개발도 제안할 수 있다. 현재까지 심의를 통과한 신기술 289건 중에서 148건이 건설 및 유지관리 현장에 적용됐다. ‘도공 기술마켓’은 지난해 8월 대통령 주재 공공기관 CEO 워크숍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 대표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올해는 정부에서 구축하는 ‘SOC 공공기관 통합 기술마켓 플랫폼’의 기본모델로 활용될 예정이다.

도로공사는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고속도로 휴게소에 사회적 기업 매장 12개소를 개장해 취약계층 44명에게 양질의 신규 일자리를 제공했다. 커피가격 인하를 위해 도입한 ex-cafe 매장 8곳 중 7곳에서도 취약계층 청년들에게 운영을 맡겨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도로기반(2600개), 기술혁신(1500개), 사회통합(3000개) 일자리 등 향후 약 7000개의 일자리 확대도 계획하고 있다. 도로기반 일자리의 경우 건설현장 안전관리원 등 안전한 주행 환경 실현을 위한 전문인력 양성과 기술기반 사고예방 체계 구축을 통한 일자리를 뜻한다. 판교분기점의 복합물류 시설과 화물차 서비스센터에서도 일손을 충당할 계획이다.

여기에 앞으로 도로공사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C-ITS(Cooperative Intelligent Transport System), 드론, 스마트톨링 등 자율협력 주행을 위해 필수적인 전문인력도 양성해 채용할 계획이다. 이밖에 청년고용의무제(5%), 푸드트럭, 사회적 기업 유치, 벤처 창업 지원 등 청년과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일자리도 확충할 계획이다.

사회공헌활동도 꾸준히 지속할 예정이다. 도로공사의 대표적 사회공헌활동인 장학사업을 통해 지난해까지 고속도로 교통사고 유자녀 5611명이 약 80억 원의 장학금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고속도로 장학생 힐링캠프’를 개최해 장학금을 지급하는 경제적 지원을 넘어 교통사고 트라우마, 취업, 학업 상담 등 심리상담도 병행했다.

지난해 6월에는 “고속도로 의인상”도 제정했다. 고속도로에서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의식을 발휘해 타인의 생명을 구하거나 대형 사고를 방지한 의인을 기리기 위해서다. 도로공사는 총 7분을 선정해 포상했다.

지난 2008년 공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도입한 헌혈뱅크도 꾸준히 운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2만여 명의 직원이 헌혈에 참여해 2만여 장의 헌혈 증서를 모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이용객을 대상으로 ‘헌혈증 기부 캠페인’을 진행해 많은 백혈병 및 희귀난치병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북한도로 현대화 사업으로 끊어진 혈맥 잇는다


▎창립 50주년 기념 ‘도로공사 10대 뉴스’ 1위에 선정된 ‘하이패스 전국 확대 구축’ 사업. 고객들은 달리는 차안에서 통행료를 납부하며, 일상화된 혁신을 경험하고 있다. / 사진:한국도로공사
지난해부터 남북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면서 도로공사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경부고속도로로 한국 경제가 돌파구를 찾았듯이 향후 경협 과정에서 북한의 인프라 구축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남과 북이 제일 먼저 대화를 나눈 것도 도로였다. 지난해 6월 남북은 ‘남북도로협력분과회담’을 통해 경의선 개성-평양 구간과 동해선 고성-원산 구간의 현대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같은 해 8월에는 경의선 개성-평양 고속도로 남북공동 현지조사를, 9·19 평양공동선언에서는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 개최에 합의하기도 했다.

정부도 발 빠르게 11월 문산-도라산 구간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결정, 전체 사업비 5843억원 가운데 올해 사업비로 230억원이 이미 반영됐다. 국고 92억원, 도공 자체 예산 138억원이 투입된다. 12월에는 동해선 고성-원산 및 경의선 연결도로 남북 공동 사전 현장점검을 거쳐 착공식도 열리게 됐다. 도로공사는 “경의선, 동해선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등 정부정책을 적극적으로 이행함으로써 남북의 끊어진 혈맥을 잇고, 남북간 소통과 협력의 통로를 마련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남북 도로 연결은 그 자체로 의미 있지만 국제 간선도로망인 ‘아시안하이웨이’(AH·Asian Highway)가 완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아시안하이웨이는 아시아 지역의 32개국을 지나는 14만5302㎞ 길이의 규모를 자랑하는 도로 구간으로 통합물류망 구축의 근간이다. 우리나라로서는 또 다른 성장동력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SOC다. 이강래 사장도 “‘아시안 하이웨이’의 물꼬를 터 우리나라가 세계로 진출하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남북 도로 연결과 함께 도로공사가 미래 사업으로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은 첨단 스마트고속도로(C-ITS)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지능형 도로를 구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기술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2007년부터 차량과 차량 및 차량과 도로 간의 통신기술 등 자율협력주행의 핵심기술을 연구, 개발했고 2015년 대전-세종 간 도로에 시스템을 설치해 시범 운영했다. 실시간 위치 기반 맞춤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발에도 심혈을 쏟는 중이다. 향후 자율협력 주행 도로시스템 개발, 군집주행 연구 등 국가 R&D를 통해 높은 수준의 지능형 도로를 구현하는 게 목표다.

교통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교통 빅데이터 플랫폼이란 도로·철도·항공 등 개별 모빌리티 데이터를 통합·분석하는 교통시스템을 구현해 민간과 공공영역에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교통데이터 서비스를 뜻한다. 이 플랫폼이 구축될 경우 정확한 교통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정밀 분석을 통해 예측 정보를 제공, 이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2019년은 한국도로공사가 창립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지난 50년간 국민과 함께 해 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미래를 더 철저히 준비하는 한 해로 만들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이 사장은 또 “안전하고 편안한 고속도로, 편리하고 수준 높은 휴게시설을 만드는데 임직원들의 모든 역량을 쏟을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지난 반세기보다 더욱 성장할 도로공사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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