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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배고프면 자기 다리 먹는 대게 

 

암(Cancer)이라는 병명도 파고드는 게 속성서 유래
공급 부족해 대게 대신 홍게·킹크랩도 인기


게는 같은 갑각류(甲殼類)인 새우나 바닷가재처럼 겉이 아주 딱딱한 외골격(겉뼈대)을 가진다. 몸은 등딱지로 둘러싸인 커다란 머리가슴(두흉부, 頭胸部)과 일곱 마디의 배(복부, 腹部)로 나뉘는데 배딱지(복갑, 腹甲)는 등딱지(배갑, 背甲)에 비해 아주 작다. 따라서 지식이나 재주 따위가 아주 짧거나 보잘것없는 것을 빗대어 “게꽁지만 하다”고 한다.

배딱지크기는 암컷과 수컷이 다르다. 수컷배딱지는 매우 길쭉하면서 작고 좁은 반면, 암컷의 것은 사방 넓적하고 펑퍼짐해 알을 듬뿍 달라 붙이기에 알맞다. 그리고 두흉부의 앞 끝부분에는 1쌍의 또렷한 눈과 2쌍의 더듬이가 있고, 게 다리는 5쌍으로 집게다리(협각, 鋏脚) 1쌍과 걷는 다리(보각, 步脚) 4쌍이 있다. 뭐니 해도 갑각류의 큰 특징은 길쭉한 더듬이가 2쌍이라는 것이다.

게는 겉껍질이 딱딱하다 보니 해마다 허물을 벗어 몸피(몸통의 굵기)를 늘려간다. 딱딱한 외골격 성분은 큐티클(cuticle)이라는 물질로 그것을 약물 처리해 녹여낸 것이 키토산(chitosan)이다.

그리고 게는 옆으로 기기 때문에 ‘횡행공자(橫行公子)’로, 창자가 적어서 ‘무장공자(無腸公子)’라고 부른다. 또한 해조문(蟹爪紋, 잿물을 입힌 도자기의 겉면에 게의 발이 갈라지 듯 잘게 난 금), 해행문(蟹行文, 게걸음처럼 써 나간다는 뜻에서 옆으로 쓰는 것을 이르는 말) 같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게는 우리 생활과 매우 가까운 동물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게’이다. 대게는 물맞이게과의 갑각류(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인 동물)이다. 대게란 말은 결코 커서 ‘대(大)게’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몸통에서 뻗어나간 다리가 댓가지(죽지, 竹枝)처럼 곧고 길어서 대나무게 즉, ‘대게(죽해, 竹蟹)’라 부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상북도 영덕군과 울진군에서 많이 잡히기에 흔히 ‘영덕게’, ‘울진게’로 불리는데, 서로 자기 이름을 불러달라고 마구 조른다. 북서대서양이나 북태평양이 원산지로 캄차카반도·일본·알래스카·그린란드 등에 분포하며 우리나라 동해안이 남방한계선이라 한다.

그런데 대게(Chionoecetes opilio) 학명(學名)의 동의어(同義語) 중에 Cancer opilio 라는 것이 있는데 그 속명(屬名)이 Cancer로 암(癌)이란 뜻이 아닌가? 사실 게는 땅바닥을 깊게 팔 뿐더러 슬금슬금 옆으로 굴을 파고드는 성질이 있다. 암세포가 게처럼 옆 조직으로 전이(轉移, metastsasis)하는 성질이 있다 하여 게의 속명인 Cancer를 따와 암이란 병명을 붙인 것이다.

스스로 자기 몸을 잘라버리는 자절(自切)이라는 본능

대나무게는 수심이 깊고, 수온이 낮은 곳의 모래나 진흙 속에 몸을 파묻고 산다. 등은 주황색이고, 배는 흰색에 가까우며, 등딱지가 둥근 삼각형이다. 수컷의 평균 등딱지 지름은 16.5㎝, 암컷은 9.5㎝이며, 상품성이 있는 수놈은 0.5~1.4㎏에 달하고, 암컷은 0.5㎏ 정도이다. 대게는 영어로 ‘Snow Crab’이라고 하는데 눈 내리는 겨울에 많이 잡혀서라기보다는 실제로 속살이 눈처럼 새하얗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한국에서 나는 게 중 가장 크고, 몸통가장자리에는 작은 가시들이 줄지어 나며, 윗면에는 오돌토돌한 사마귀 모양의 자잘한 돌기들이 흩어져 있다. 다른 게에 비해 집게다리는 보각보다 훨씬 작고, 네 쌍의 보각 중 1, 2, 3번째의 것은 굵고 길지만 마지막 네 번째 것은 다른 다리에 비해 매우 짧고 가늘다. 어린것들과 성체 암컷은 수심 100∼300m에 서식하고, 수컷은 300m보다 더 깊은 곳에서 지낸다. 수명은 5~6년이고, 암컷은 해마다 알을 15만 여개를 낳으며, 조에아(zoea), 메가로파(megalopa)시기 등 11단계의 유생시기를 거치면서 어른게가 된다.

이들은 야행성으로 이동반경은 4.5㎞나 된다. 갑각류·조개·거미·불가사리·게·새우·오징어·문어·갯지렁이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먹이가 없으면 동족끼리 잡아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것도 안 되면 자기 다리를 스스로 잘라 먹기도 한다.

대게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아주 흡사한 홍게(red snow crab)다. 홍게(Chionoecetes japonicus)는 몸은 짙은 적색이고, 뜨거운 김으로 찌면 훨씬 붉어지며, 대게보다 작고, 대게보다 맛은 덜하다. 지금 와서는 대게 공급이 부족해 그 자리를 홍게와 러시아산 게(king crab)가 메우고 있다. 서식범위가 하도 좁아서 세계적으로 한국 동해안과 일본 서북부, 러시아 남부에만 국한되어 분포한다고 한다.

그런데 부엌에서 이내 과학을 만난다. 어느 날 집사람이 게장을 담으려고 살아 있는 꽃게를 사와서 정갈하게 다듬고 있었다. 게를 거센 쇠솔로 등과 배 바닥을 싹싹 문질러 씻은 다음에 도마에 바로 놓고 칼질을 한다. 잘 드는 칼로 꿈틀거리는 게 다리 끝(넓적한 자리)을 탁 내리 쳤다. 저런, 저런!? 생뚱맞게도 칼이 닿지 않은 다른 멀쩡한 게 다리들도 더불어 마디마디가 자르르, 툭툭 잘려 내리지 않는가!? 그렇다. 스스로 자기 몸을 잘라버리는 자절(自切, autotomy)이라는 본능적인 자해행위다. 도마뱀이 위기에 몰렸을 때 옜다, 먹어라 하고 기꺼이 꼬리를 떼어 주고 도망치듯 꽃게도 서슴없이 다리를 떼 주고 내뺀다.

참고로 큰따옴표(“ ”)를 ‘게발톱표’라고 부른다. 그리고 ‘게맛살’은 동태 살에다 중남미사막의 선인장에 기생하는 깍지벌레암컷에서 뽑아 정제한 붉은 코치닐(cochineal)색소를 섞어 게 살색을 흉내 내고, 흡사한 맛이 나도록 향료를 넣어 가공한 것이다. 사실 아이스크림이나 콜라의 불그스레한 색깔도 코치닐로 물들인 것이요, 빨간 립스틱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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