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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입옥자의 아내는 정조를 지켜야 할까” 

 

문상덕 기자

[삼천리(三千里)]는 ‘일제 치하에서 가장 오래 발행된 잡지’로 꼽히는 종합월간지다. 장시(長詩) ‘국경의 밤’으로 잘 알려진 김동환이 1927년 7월 창간해 1942년 1월까지 14년 동안 발간했다. 그가 총독부 출입기자로 활동하다 받은 ‘촌지’를 밑천으로 삼았다는 후문이다.

창간 밑천만큼이나 지면에서 다루는 주제도 독특했다. 1930년 11월호에 실린 앙케트 꼭지 ‘남편 재옥·망명 중 처의 수절(守節) 문제’를 보면 그렇다. 사회주의 운동가 송봉우는 “입옥자의 아내는 믿음과 사랑을 가진 여성동지”라며 “정조를 엄수하라”고 강조한 반면, 그의 연인인 허정숙은 “조선 현실이 강요하는 호구난에 몰리면 개가(改嫁)가 불가피하다”고 반론한다. 언론인 김일엽은 “삼 년간은 참으라”며 절충론을 내놓기도 한다.

엄혹한 시기에 왜 뚱딴지같은 수절 문제일까. 마찬가지로 [삼천리]를 분석한 학술서 [식민지 근대의 뜨거운 만화경](성균관대학교 출판부)에선 “정치운동의 ‘정’자도 쓰지 못하게 된 시대에 정치 문제를 다루는 일종의 ‘서사 전략’일 수 있다”고 풀이한다. 정치를 그처럼 가볍게 다룬 덕에 소위 ‘정론지’들이 침묵했던 시기에도 정치적 사건과 인물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일상에서 정치를 발굴하는 우회 전략이다.

새내기 출판사가 선보인 [삼천리 앙케트]는 조선의 일상을 담은 인터뷰·앙케트·좌담회 꼭지 24편을 엮었다. ‘내가 서울 여시장이 된다면?’ ‘딴스홀(댄스홀)이 되면 춤추러 다니겠습니까?’ 같은 기발한 기획들이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옛 문투(文套)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다듬은 덕에 읽는 맛도 텁텁하지 않다.

- 문상덕 기자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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