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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역사는 사실의 숲속에 가려진 진실” 

 

김환영 대기자
이승만은 ‘거룩한 사기꾼’… 김구는 ‘읍내 교회의 순진한 목사님’
제주 4·3과 여수·순천 10·19은 민중항쟁


[우린 너무 몰랐다]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의 사학자적 면모를 자랑하는 책이다.

표지에서 도올이 한글 자모 기역(ㄱ)을 가리키고 있다. 다자인상의 우연일까. 우연은 종종 깊은 메시지를 창출한다.

속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역사 문해력(historical literacy)’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린 너무 몰랐다]는 우리 현대사의 핵심 사건인 제주 4·3과 여수·순천 10·19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해소한다. 또 우리의 반성과 운동을 촉구한다.

‘도올 필법’의 특징은 ‘멀리 돌아가기’와 ‘뜸 들이기’다. (사실 기초체력 마련이 지름길이다.) 도올은 우선 전남 구례, 황제의 나라 고려, 마가복음 이야기를 한다. “고려제국은 당시의 미국이었다” “정도전에게 칼 마르크스는 맹자였고, 레닌은 이성계였다”와 같은 탁견 혹은 ‘황당한’ 주장도 나온다. ‘제주·여수·순천 이야기는 언제 나올까’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4·3과 10·19의 전개 과정과 근인(近因)·근인(根因)·원인(原因)·원인(遠因)을 망라한 이 책의 결론은 둘을 하나의 사건으로 통관(通觀)해야 한다는 것, 둘 다 ‘민중항쟁’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 결론이 나왔을까. 도올의 역사관의 산물일 것이다. 그는 여수MBC에서 행한 강연의 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에는 분명 사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궁극적으로 해석의 체계입니다. 사실을 아무리 나열하여도 그것은 역사가 되지 않습니다. 역사는 사실의 숲속에 가려진 진실입니다.”

해석이 더 중요하지만 아예 사실이 잘못 알려진 경우도 많다. [우린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바로잡는다. 예컨대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4·19하면 우리는 대학생들이 일으킨 혁명인 것처럼 잘 못 알고 있는데, 대학생들은 오히려 늦게 참여했다.”

도올의 북한관을 압축하는 말도 이렇게 나온다. “나는 북한의 역사진행을 근원적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긍정적일 수도 있는 부분에 관해서는 마음을 열고 정직하게 수긍해야 한다. 특히 6·25이전까지의 북한의 사회변화는 매우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현대사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평가가 담겼다. 이승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실로 이승만은 ‘거룩한 사기꾼(a holy imposter)’이다.” 이 대통령에 대한 도올식의 최고의 찬사라고도 볼 수 있다.

김구에 대해서는 다음 같은 대목에서 애증의 감정이 엿보였다. “그런데 ‘나의 소원’이라는 글을 읽고 났을 때, 나는 김구라는 사람의 사유체계가 너무도 나이브하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조그마한 읍내 교회의 순진한 목사님 수준의 이야기 이상, 그 아무 것도 없었다.” “백범은 실제로 요즈음 말로 하면 ‘우익꼴통’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우리가 그를 ‘국부(國父)’로서 존경하는 이유, 그가 평생을 조선민족의 독립을 위해 하자 없이 헌신했기 때문이고….”

이 책은 ‘대중적 학술서적’이다. 도올이 참조한 수많은 자료 중에서 127권을 엄선해 ‘참고문헌’에 실었다. 82페이지 분량의 ‘제주 4·3―여순민중항쟁 연표: 1943년~1955년’은 역사학자 김인혜의 작품이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도올 선생, 참 별나다”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말투에서 ‘별나다’는 긍정적인 뜻이었다고 한다. 이 책 앞날개에 보면 이 책과 함께 읽는 책으로 [도올의 마가복음서 강해]를 소개한다. 참 별난 책 선전일까? 아니다. 알 만한 사람은 두 책 사이의 연결고리를 안다.

- 김환영 중앙콘텐트랩 대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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