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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이슈] 지자체 금고에 눈독 들이는 시중은행의 셈법 

배보다 배꼽이 더 커도 일단은 먹고 본다?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뭉칫돈 쾌척하며 금고 유치에 매달리지만 수익성은 의문
시중금리로 거래하는 일반 고객들에게 부담 전가 비판론도


▎지자체 금고 유치에 사활을 건 시중은행들이 금고 협력사업비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인천지법 형사8단독 재판부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신한은행 지점장 A씨(57)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시(市) 금고 선정을 위한 불법 로비자금 명목으로 회삿돈 1억 원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같은 혐의로 범행에 가담한 신한은행 본점 팀장 B씨(52)에게도 벌금 500만원을 물렸다.

A씨와 B씨는 신한은행의 지자체 금고 선정 및 운용에 관계된 직원들이다. 이들은 신한은행이 인천시금고로 선정되도록 회사 돈을 몰래 빼내 로비에 사용하자고 사전에 공모했다. A씨는 모 언론사 주최 행사에 2억원을 후원하는 것처럼 허위 기안문을 작성해 본점에 보냈다. 본점에서 서류를 받은 B씨는 2억원을 행사 업체 대표에게 송금한 뒤, 그 대표로부터 1억원을 수표로 돌려 받아 A씨에게 보냈다. 결과적으로 은행돈 1억원이 A씨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흘러들어가서 문제가 된 것이다.

신한은행은 2007년부터 인천시 제1금고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입찰에서도 다시 시금고 관리 은행으로 낙점받아 2022년까지 운영권을 가져갔다. 은행 차원에서는 굵직한 자금원인 시금고 사수에 전력을 기울였을 법하다. 이 와중에 돈에 눈 먼 직원들의 횡령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작으면 수천억원에서 많으면 수십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관리하는 지자체 금고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은행 관계자들이 형사 처벌까지 받는 일까지 터져나온다.

이는 지자체 금고를 차지하기 위한 시중은행들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진 데 따른 것이다. 예컨대 올해 계약 만기를 앞두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금고는 총 50곳. 특히 한 해 예산이 평균 8조원이 넘는 대구·울산·충남·경북·경남 등 광역자치단체 금고가 격전지로 꼽힌다. 10조원 규모의 대구·부산·울산·창원지법 등 법원 공탁금 보관은행 재지정도 올해 예정돼있다.

출혈 경쟁 마다 않는 은행, 속내는


▎지난해 11월 광주 광산구 1금고 심사위원 명단이 사전 유출된 사건과 관련 광주지방경찰청 수사관들이 광산구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중 은행들이 지자체 금고 확보에 목을 매는 가장 큰 이유는 실적 때문이다. 잠재 고객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상품 판매 등 공격적 영업을 펼 수 있다.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나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매력적인 카드다. 지자체 외에도 30여개 대학교 계좌·체크카드 사업자 등 기관영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지자체 금고 운영권을 확보하자면 행정안전부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행정안전부 예규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금고 선정 기준’은 크게 6가지 항목이다. ▷금융기관 신용도 및 재무구조 안정성(30점) ▷지자체에 대한 예금·대출금리(15점) ▷지역주민 이용 편의성(18점) ▷금고 관리능력(19점) ▷지역사회 기여 및 자치단체와의 협력사업(9점) ▷기타 조례나 규칙으로 정하는 사항(9점) 등이다.

지자체 금고를 노리는 은행이라면 기본적으로 이들 6개 항목에서 엇비슷한 경쟁력은 확보하게 마련이다. 업계에서는 ‘지역사회 기여 및 자체단체와의 협력사업’ 중 ‘지역사회 기여실적’(5점)을 주목한다. 배점은 작아도 은행 하기에 따라서 당락에 영향을 줄 격차를 마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기여실적 중에서 ‘금고 협력사업비’가 ‘판도라의 상자’로 지목된다.

금고 협력사업비란 금고로 선정된 금융기관이 금고 입찰시 자치단체에 출연하거나 지원하기로 제시한 현금 및 물품 등을 말한다. 한마디로 은행이 지자체에 협력의 명목으로 그냥 주는 반대급부라고 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지자체 금고 유치 여부에 따라 은행 임원들의 운명이 갈리기 여사다. 시·도금고는 물론이고 구금고만 유치해도 당장 수익은 나지 않더라도 실적으로 인정받는게 금융권의 실상이다. 결국 은행이나 구성원이나 생존 차원에서 지자체 및 기관 금고 유치에 올인하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최근 들어 금고 협력사업비의 규모도 치솟는 추세다.

올해부터 2022년까지 금고은행을 선정한 서울시의 경우, 1금고로 선정된 신한은행으로부터 3015억원, 2금고로 선정된 우리은행으로부터는 1100억원의 금고 협력사업비를 현금으로 출연받을 예정이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단수금고 체제를 복수금고로 전환키로 했다. 과거 단수금고 시절 서울시 금고를 맡아온 우리은행이 4년 간 금고 협력사업비로 서울시에 제공한 1400억 원의 2.9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2017년 농협과 신한은행을 금고은행으로 선정한 경기도 역시 4년간 540억원의 출연금을 받는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금고 상황도 엇비슷하다. 강남구가 제1금고인 신한은행과 제2금고인 우리은행으로부터 4년간 받을 출연금은 각각 153억원, 60억원 등 총 213억원에 달한다. 강남구의 올해 예산은 약 8800억원이다. 서초구의 경우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으로부터 약 152억원의 출연금을 받을 예정이다.

일단 따내고 보자는 은행, 역마진 가능성 높아


이처럼 과도한 입찰 경쟁에도 불구하고 지자체 금고 유치가 정작 은행의 수익 창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나온다. 유주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사무총장은 “은행은 영업 활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하지만 전반적으로 수익이 발생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며 “지자체 예산은 연초에 들어와 연말까지 묶여 있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지자체 금고를 유치한 은행으로 매달 세수가 들어와서는 짧게는 7일, 10일이나 길면 1~2달 있다 빠져나간다. 서울시의 경우 1년 예산이 수십 조에 달해도 평균 잔고는 수조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은행도 돈이 들락날락하는 조건에서는 장기적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에 1년에 1000억원 가까운 출연금을 주고도 은행이 돈을 남길 지는 의문이다.”

이 같은 지적에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고는 자금을 조달하는 사업으로서, 타 부문에서 조달된 자금과 혼합돼 운용한 결과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기 때문에 금고 자체 수익 규모는 별도로 분리돼 산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과도한 금고협력비 출연이 영업비용 증가를 가져와 궁극적으로 금융소비자인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주선 사무총장은 “입찰에 성공했을 경우 점포 개설, 시스템 안정화 사업, 마케팅 활동 등에 비용과 인력이 투입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추가 지출에다 지자체에 주는 수백억 상당의 비용을 메우고자 일반 소비자들에게 금리 인상 등 불이익을 안기는 경우도 배제하지 못한다. 게다가 해당 지자체 구성원들에게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는 일반 고객에게 적용되는 시중금리보다 낮게 책정되고 있어 더욱 이런 의구심을 부추긴다.”

과도한 협력사업비를 지출하는 경우에는 엄청난 고금리로 예금을 유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역마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달라진 금융 환경이 출연금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도 지목된다고 한 금융권 관계자는 설명한다. “과거에는 영업점의 지점장이 전결로 처리해 입점한 기관 직원들에게 금리 우대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지적이 많아지면서 현재는 사라졌다. 금리 경쟁이 여의치 않다보니 출연금 대결 양상으로 바뀐 측면이 있다. 다만 기관에 입점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입출금이나 대출 등 직원들의 거래실적이 올라가 우대금리를 제공할 수는 있다.”

지자체, 출연금 집행 내역 공개에 인색


▎올 1월, 서울시 제1금고 변경으로 새롭게 문을 연 서울시청 금융센터 개점식에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네 번째)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온갖 잡음과 구설이 따른다.

금고지정심의위원회의 심사위원 명단이 유출돼 금고 선정이 무효가 된 사례를 보자. 광주 광산구는 지난해 10월, 제1구금고 은행으로 국민은행을 선정했다. 하지만 경쟁 상대였던 농협이 “금고지정심의위원 명단이 사전에 유출됐다”며 광산구를 상대로 국민은행과의 1금고 지정계약의 체결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과 금고지정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입찰 절차의 공공성과 공정성이 현저히 침해됐다”며 광산구의 국민은행에 대한 1금고 지정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심의위원회가 개최되기 전날, 광산구 담당 공무원이 국민은행 담당 직원에게 심의위원 명단을 유출했고, 해당 직원이 심의위원들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이 내놓는 출연금의 덩치가 커질수록 운용에는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 예규에 따르면 각 자치단체는 금고 약정 개시 후 30일 이내에 금고은행에서 출연할 협력사업비 총액을 홈페이지와 자치단체 공보(시보·도보·군보·구보)에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협력사업비의 세입예산 편성 내역, 세출예산에 편성한 경우에는 집행 내역까지 재정 공시 항목에 포함해 공시해야 한다.

실상은 조금 다르다. 17개 광역지자체 2017년 회계연도 재정공시를 분석한 결과, 지역에 따라서 출연금 활용이 불투명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광역지자체는 금고은행명과 출연액만 세입예산으로 편성했다고 명시할 뿐, 세출예산 편성과 집행 내역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충청북도는 2017년 한 해 동안 제1금고와 제2금고를 맡고 있는 농협은행과 신한은행으로부터 각각 19억원과 4억원, 총 23억원을 출연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출내역은 알 수 없었다. ‘용도 지정 없이 일반예산으로 편성 집행했다’고만 공시한 탓이다. 경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북은 농협은행(제1금고)과 대구은행(제2금고)로부터 총 12억원을 금고 협력사업비로 받았다. 그러나 별도로 세출예산으로 편성하지 않고 일반재원으로 편성·사용했다고 밝혔다. 충남의 경우 금고 협력사업비 운영 내역이 포함된 2018년 결산 재정공시 자료 자체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체 지자체의 2017 회계연도 금고협력사업비 집행내역 공시 여부를 조사했다. 17개 광역단체 중 단 3곳, 226개 기초단체 중에는 43.8%에 해당하는 99곳만이 사업별 집행내역을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4개 광역단체와 127개 기초단체는 ‘세입예산에 편성함’ 수준의 설명으로 갈음했다. 이에 예규에서 정한 공개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지자체가 절반 이상이라고 이 의원은 지적했다. 이 의원은 “지자체 금고 선정을 둘러싼 은행권의 과도한 출혈경쟁으로 인해 금고 협력비는 해를 거듭할수록 폭등하며 합법을 가장한 리베이트화되고 있지만, 이를 대비할 방안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자체·은행 사이에서 곤혹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시중 은행의 금고 유치 과열 경쟁을 막고자 예규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은행의 과도한 출연금은 지난해 국감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은행들이 시도금고 유치를 위한 과당경쟁으로 해당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우려되고 소비자한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면서 “과당경쟁 방지 방안이 있을지 지방자치단체 관련 부처와 상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금융위는 ‘지역 재투자 제도’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제도는 금융위가 지난 10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으로 금융회사가 지역에서 받은 예금을 지역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구상이다. 국가 경제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중(전국 총생산 대비 지방 총생산)은 대략 50%에 달하고 사업체의 비중도 마찬가지로 절반을 오르내린다. 하지만 지방에 대한 여신 규모는 40% 미만을 맴돌 뿐이다. 결국 지방의 돈이 수도권으로 쏠리는 등 금융 분야에서도 지방은 홀대받는다는 말이 된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지역 재투자 제도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지역 재투자 제도의 주요 평가항목으로는 ▷지역별 예대율 ▷지역경제 대비 여신괴리율(괴리율은 우선주와 보통주의 차이를 뜻하며 숫자가 낮을수록 가격 차이가 작다는 것을 의미) ▷지역별 중기 예대율 ▷인구대비 점포 및 ATM 수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기관은 평가에 따라 지자체 금고은행 및 법원 공탁금보관은행 선정 과정에서 인센티브를 받을 수도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관련 부처 및 업계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역 재투자 문제 뿐 아니라 출연금 비중 조정 등 금고 선정에 영향을 미치는 항목들에 대한 결론이 난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출연금 경쟁 유도 자제해야


▎지난해 11월 광주 광산구청에서 구 금고 선정 심의 결과에 반대하는 농민단체 관계자가 나락 톤백(Ton Bag)을 쌓으며 시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행안부의 입장도 비슷하다. 행안부 관계자는 “금고 선정 기준에 대한 지표나 배점, 비중 등 구체적 사항이 확정되지 않아 아직 공개할 시점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다만 올 들어서도 새로 금고은행을 선정하는 기관이 많은 만큼 상반기 중에는 예규를 개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고 협력사업비의 거취도 관심사다. 지자체는 현행대로 가자는 입장이고, 은행은 기본적으로 없애자는 쪽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자체로서는 금고 협력사업비가 세입에 직결되고, 은행은 목돈이 나가는 터라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다만 은행 별로 이에 대한 찬반이 나뉘는 경우도 있다. 지방자치단체, 은행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제각각인 까닭에 조율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구본성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자체도 단순히 재정 확충의 일환으로 출연금 경쟁을 유도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은행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자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부가적인 금융 서비스 모델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유인해야 한다. 이를테면 지자체 사업 추진 과정에서 투자나 사업 자문, 대출 한도 확대 등 사업의 목적과 의도를 명확히 제시하고 금융기관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

201904호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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