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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16)] 유(遊): 유희하는 인간, 유어예(遊於藝) 

이젠 노동도 놀이로 승화시켜 삶을 더욱 살찌울 때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유희를 부정하려는 경향
‘의미 있는’ 일하기를 즐기는 게 우리 시대의 새로운 흐름으로


▎500여 전부터 전승되고 있는, 농사 지으며 부르는 소리인 전북 순창군 ‘금과 모정 들소리’ 민요 공연이 흥겹게 펼쳐지고 있다.
1. 자신을 위한 즐김, 놀이와 유희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우리말로 옮기면 ‘유희하는 인간’ 정도가 될 것이다. 인간의 여러 욕망 중 ‘유희’도 그 근본적인 것에 속한다. 어쩌면 일하는 속성보다 더 근원적인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가가 지배해 온 동양에서 특히 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선에서 인생의 목표는 언제나 출세에 있었다. 그리고 출세의 본질은 가족과 가문을 빛내고 나아가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데 있었지, 한 인간의 삶이나 인류의 창의적 발전에 있었던 건 아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사회 구성원들이 그들의 삶을 위한 ‘즐거움’의 추구나 즐김, 놀이는 물론 인류를 즐겁게 할 창의적 상상 등은 다소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제한돼 왔다.

유희나 놀이가 사람의 근본적 욕망의 하나이자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공감능력과 직결된 일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 어찌 즐기는 행위가 없을 수 있었을까만, 우리 동양사회는 이를 지나치게 절제하고 부정하고 금기시했다. 이 때문에 놀이에 관한 한자도, 기록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동서양을 구별 짓는 것 중의 하나가 삶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그들이 삶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을 일을 하면서 산다면, 우리는 어쩌면 일을 위해, 남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산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서구 사람들은 종종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사람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삶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위해 삶을 산다”고 꼬집기도 한다.

유(遊)·유(游) 모두 씨족·부족의 ‘집단 이동’을 의미

오후 서너 시면 퇴근해 가족이나 친구들, 그리고 연인과 함께 나일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맥주 파티도 한다. 독일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를 보면 독일이 정말 선진국이구나 싶고, 부럽기 그지없다.

그렇다. 이번 정부에서도 ‘저녁이 있는 삶’을 지향해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삶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노동을 위한 노동을 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아직은 해결해야 할 일도 많고, 가야 할 길도 멀다. 그렇게 녹록지 않은 듯 보인다.

우리 동양에서는 놀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해 왔을까? 그리고 그 놀이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이 땅을 사는 우리에게 놀이는 무엇일까? 어원을 따라 그 역사적 여행을 떠나 보자.

2. 유(遊)와 유(游), 전쟁의 한 모습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백희도(百戲圖)의 일부. 묘주(墓主)로 추정되는 사람과 손님들이 나무 아래서 원숭이가 벌이는 놀이(猴戲)를 감상하고 있다.
놀이를 국어사전에서는 보통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겁게 노는 일, 또는 그런 활동”으로 풀이하고, 유희(遊戲)를 “즐겁게 놀며 장난함, 또는 그런 행위”로 해석한다. 의미의 차이에 크게 구별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한자어냐 순우리말이냐의 차이 정도로 보인다.

유희의 유(遊)는 놀다는 뜻이고, 희(戲)는 희학질하다 즉 실없는 말로 농지거리를 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遊)는 원래 유(游)라고 썼던 것이 변한 글자이다. ‘놀다’는 의미를 왜 유(游)라고 했던 것일까? 왜 이 글자에 물(水)이 들었고, 또 나머지 유(斿)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유(游)는 글자 그대로 水(물 수)가 의미부고 斿(깃발 유)가 소리부인 구조로, 물길(水)을 따라 유람함(斿)을 말한다. 이로부터 수영하다, 한가롭게 노닐다, 사귀다 등의 뜻이 나왔고, 강의 한 부분을 지칭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斿)를 자세히 보면, 다시 㫃(깃발 나부끼는 모양 언)과 子(아들 자)로 구성됐는데, 언(㫃)은 끝에 술이나 깃발이 달린 깃대를 그렸고, 자(子)는 아이를 그려 자손이나 가족을 뜻한다. 그래서 유(斿)는 부족이나 씨족의 상징이 그려진 깃발을 높이 들고 앞세우며 구성원들을 이끌고 집단으로 모여 다니는 모습을 형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사회에서의 이동도 지금처럼 물길을 따라 이뤄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이동이 물길을 따라 이뤄졌다는 뜻에서 수(水)를 더해 유(游)가 됐다. 또 다니는 행위를 강조해 이동의 뜻을 상징하는 辵(쉬엄쉬엄 갈 착)을 더해 遊(놀 유)로 분화했다.

이렇듯 놀다는 뜻의 유(遊)나 유(游)는 모두 씨족이나 부족의 ‘집단 이동’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러한 이동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을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전쟁이 아니면 일반인들의 외부와의 접촉은 매우 제한됐다. 외부로의 정벌이나 전쟁이 역설적으로 외부세계로 나아가고 그들과 접촉하고, 외부 세계와 문명을 주고받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됐던 것이다.

한자에서 여행과 전쟁이 같은 어원을 가진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오늘날 여행(旅行)을 뜻하게 된 려(旅)가 유(游)와 매우 비슷한 모습을 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이는 영어에서의 ‘travel’이 고행, 즉 고생스런 여행을 뜻해 성지순례를 연상시키는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또 일을 위해 매일 왔다갔다해야 하는 이동을 뜻한 데서 출발한 ‘journey’와도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旅(군사 려)는 나부끼는 깃발(㫃, 언) 아래에 사람(人)이 여럿 모인 모습을 형상한 글자인데 자형이 조금 변해 지금처럼 됐다. 깃발은 부족이나 종족의 상징으로, 그 깃발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전쟁과 같은 중대사가 생겨 이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여(旅)의 원래 뜻이 군대(軍隊)나 군사(軍師)의 편제를 뜻했고, 지금도 이 글자의 훈이 ‘군사’로 남아 있다. 옛날에는 500명의 군사를 여(旅)라 했다. 여단(旅團)은 지금도 운용되는 군대 편제로 여(旅)의 원 모습이 군대였음을 보여주는 잔흔이라 할 수 있다. 여단은 커다란 군대 편제 단위를 뜻해 보통 두 개 정도의 연대(聯隊)를 지칭한다.

군대의 소집은 출정을 위한 것이었고, 그래서 여(旅)에는 ‘군대 편제’나 ‘무리’ 이외에도 ‘출행(出行)’이라는 뜻이 생겼고, 다시 ‘바깥을 돌아다니다’는 뜻까지 생겼다. 그리하여 여행(旅行)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이로부터 여권(旅券)이나 여관(旅館)·여객(旅客)·여비(旅費) 등의 단어가 나왔다.

또 하나, 이러한 이동은 집단으로 이뤄졌고, 그 대열에는 언제나 ‘깃발’이 앞섰다. 지금도 동양인들의 여행이 깃발을 앞세운 단체여행이고, 내용도 개별적인 주제보다는 집단이 함께하는 통합적 주제가 주를 이루는 이유도 여기서 근원한 것이 아닐까?

전쟁과 여행과 유희가 같은 데서 근원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문명적인 전쟁은 고상한 놀이와 같다고 했던가? 중국의 고대 역사서를 보면, 전쟁할 때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대라면 미리 알려주고 대비하게 하는 정공법을 택하고, 적장이라도 인재라면 아껴 인정하고 대우하던 그것은 분명히 매우 문명적인 모습이다.

게다가 중세 서양의 기사도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최후의 결투를 연상하듯, 진영을 대표하는 장수가 나와 단신 결투로 결판을 내는, 그래서 희생을 최소한으로 하는 전쟁의 모습에도 신사적 배려가 들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의 고차원적인 놀이로 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사이버시대가 도래한 지금도 전쟁과 미지로의 여행은 가장 중요한 유희로 게임으로 남았다.

3. 전쟁과 여행에서 유희로


▎1975년 경주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주령구.
자기가 살던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의 이동은 언제나 새로운 일이었다. 고대사회이고 폐쇄된 사회라면 더욱 그렇고, 지구상 어디로든지 온갖 여행이 자유로운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행은 여전히 그러하다. 여행이라는 공간 이동을 통해 환경이 다른 곳에서, 낯선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서, 자신들과는 전혀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문물, 새로운 가치관과 특이한 이해 방식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은 자신이 살던 곳의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가 됐고, 사람들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러한 공간에는 응당 커다란 놀이 거리가 함께 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장이 서는 날이라도 되면 온갖 기이한 물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약장수들은 묘기를 부리고, 사람을 부르는 각종 음악과 노래가 등장하고, 운이라도 좋은 날이라면 서커스 같은 평생 보기 힘든 진기한 묘기도 구경할 수 있었다.

창으로 호랑이를 희롱했던 중국인들

한자어에서 ‘놀이’를 뜻하는 단어인 유희가 먼 곳으로의 여행을 뜻하는 유(遊)와 희학질을 뜻하는 희(戲)가 결합돼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러한 배경을 반영한다. 희곡(戱曲)이나 희롱(戲弄)을 뜻하는 희(戲)는 호랑이(虎, 호)를 창으로 장난질하던 데서 유래했다.

즉 글자의 구조를 자세히 살피면 戈(창 과)가 의미부고 䖒(옛 질그릇 희)가 소리부인데, 희(䖒)는 다시 호랑이를 뜻하는 호(虍: 虎의 생략형)와 굽이 높은 받침대를 뜻하는 두(豆)로 구성됐다. 그래서 받침대 위에 호랑이(虍)를 올려놓고(䖒) 창(戈)으로 희롱하며 장난치던 모습을 그린 글자다. 이후 희(䖒)가 허(虛)로 변한 희(戱)로도 쓰기도 했다.

오늘날 현대 중국의 간화자에서는 허(虛)를 간단한 부호 又(또 우)로 바꿔 희(戱, xì)로 쓴다. 다만 그렇게 줄임으로써 안타깝게도 중원 지역에서 보기 힘든 백수의 제왕 호랑이를 인간 앞에 데려다 놓고 희학질하던 역사적 흔적은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중국의 중원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호랑이, 그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살던 지역의 북방에서 가져온 신기하고도 무서운 동물이었을 것이다. 평소 보지 못했던 무서운 동물을 무대 위에 놀려 놓고 창으로 약을 올리며 장난치던 모습은 고대사회에서의 ‘놀이’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이후 이러한 놀이는 계속 확장돼 백희(百戲)로 발전한다. 백희는 글자 그대로 ‘백 가지 놀이’라는 뜻으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놀이들이다 등장한다. 특히 축제라도 벌어질 때면 갖은 제주를 뽐내는 배우(俳優)들이 등장해 새로운 놀이, 더 신기하고 더 자극적인 놀이를 선보이고 유행시켰다.

4. 유희의 종류


▎당나라 때의 춤추는 도용(陶俑). 1976년 낙양(洛陽) 북망산(北邙山) 서촌(徐村)의 당나라 무덤에서 출토됐다.
온갖 놀이를 뜻하는 백희는 사실 한나라 때 자주 쓰이던 단어였다. 축제 기간 동안 각종 묘기를 보여주는 잡기(雜技)는 물론 힘 센 사람들이 서로 겨루는 씨름(角., 각저), 변신술은 물론 칼이나 불을 삼키고 내뿜는 등의 각종 묘기가 다 등장했다.

한나라 때의 생활상을 돌에다 새겨 놓은 각지의 화상석(.像石)에도 이러한 백희도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즐기고 놀았던 모습의 반영에 다름 아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죽은 사람들에게도 내세에서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도용을 만들어 무덤 속에 넣어줬다.

같은 시기를 살았던 동북쪽의 고구려 벽화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들은 역사서에서 가무와 놀이에 능한 민족이라 평가받지 않았던가?

중국에도 다양한 종류의 놀이가 존재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둑이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과의 대국으로 더욱 유명해진 바둑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지능적 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외에도 쌍륙(雙陸)·칠교판(七巧板)·익지도(益智圖)·장기·교환(巧環)·구성격(九宮格)·축국(蹴鞠)·씨름(摔跤) 등 사람이 직접 하는 놀이는 물론 개 싸움, 귀뚜라미 싸움 등 애완동물을 겨루게 해 즐기는 놀이도 있었다. 중국어로 마장(馬將, májiàng)이라 불리는 마작(麻雀)은 서구에도 크게 소개돼 ‘mah-jong(g)’이라는 중국어 이름 그대로 남았다.

신라에도 옛날의 유희를 상상하게 해주는 멋진 놀이가 있었다. 술 마실 때 즐겼던 재미난 놀이가 그것인데, 술 마실 때의 벌칙을 담은 조그만 주사위가 하나 출토돼 신라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게 됐다. 대단히 해학적인 놀이였다.

신라의 수도 경주, 당시의 연회장이었던 동궁의 연못 월지(안압지)에서 1975년 출토된 주령구(酒令具)가 그것이다. 주령구는 글자 그대로 ‘술 마실 때(飮酒, 음주) 지켜야 할 명령(行令, 행령)을 적어놓은 도구’라는 뜻이다. 이 주사위를 던져 주사위에 새겨진 글귀 그대로 상대에게 벌칙을 주며 즐기는 놀이 도구였다.

낭만적이고 격조 있었던 선조들의 놀이 문화

각각의 면에는 행해야 할 벌칙 14가지를 적어 놓았는데, ‘금성작무(禁聲作舞)’ 즉 무반주 댄스라 할 ‘노래 없이 춤추기’에서부터 ‘음진대소(飮盡大笑)’ 즉 원샷을 뜻하는 ‘술잔 한 번에 다 비우고 크게 웃기’나 ‘농면공과(弄面孔過)’ 즉 ‘얼굴을 간질여도 참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해학적이며 풍류가 가득하다. 천 년도 더 된 옛날, 우리의 선조들이 술자리에서조차도 얼마나 낭만적이며 격조 있게 놀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특히 이 주사위는 과학적으로도 크게 주목받았다. 그것은 지금의 주사위처럼 6면체가 아니라 6개의 정사각형과 8개의 육각형 면을 교묘하게 결합한 14면체의 특이한 모습으로 됐는데도 각각의 면이 나올 확률이 거의 14분의 1로 균등하게 돼 있다는 점에서였다.

사실 주령(酒令)의 역사는 오래돼 서주(西周) 때부터 생겨났다고 하는데, 수당(隋唐) 때 이르러 매우 유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시 짓기가 대표적이었다. 당시의 사대부들은 술이라도 마실 때면 종종 즉석 시를 짓게 해 벌칙으로 삼곤 했다.

당나라 때 백거이(白居易)도 벌칙으로 지은 시에 “꽃 피는 봄날 함께 취한 술, 마음 속 시름 다 녹여버리고, 술 취해 꺽은 나뭇가지로 먹은 술잔 헤아리고 있네(花時同醉破春愁, 醉折花枝當酒籌)”라는 시구를 남겼다.

그전 한나라 때의 가규(賈逵)는 [주령(酒令)]이라는 책을 편찬했다고 하고, 청나라 때의 유효배(俞效培)가 편집한 [주령총초(酒令叢鈔)](4권)가 전해 벌칙으로 지었던 각종 시구를 모아 놓기도 했다.

5. 여행에서 기행으로


▎예로부터 군대와 깃발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KBS 사극 [태조왕건]의 한 장면.
사람들은 새로운 곳으로 다니면서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여행기가 등장한 것이다. 이를 반영한 단어가 기행(紀行)이다. 기(紀)는 기록하다는 뜻을 가진다. 왼쪽의 멱(糸)은 사(絲)의 원래 글자로 ‘비단 실’을 뜻하고, 오른쪽의 기(己)는 실 그 자체를 그렸다.

‘실’은 문자가 발명되기 전 기록의 주요한 보조수단으로 쓰였던 ‘결승(結繩)’ 즉 새끼나 실매듭을 상징한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던 잉카인들이 사용했던 퀴푸(Quipu)도 그것의 일종이다.

외부세계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이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것이다. 이야기에서 기록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것은 책이라는 매체와 인쇄술과 경제의 발달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기록하다는 뜻의 기(紀)는 달리 기(記)로 쓰기도 하는데 실을 뜻하는 멱(糸)이 말을 뜻하는 언(言)으로 바뀌었을 뿐 의미는 같다. 유성언어인 말을 문자부호인 문자로 ‘기록하다’는 뜻을 더 형상적으로 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지금도 기록(紀錄)을 기록(記錄)·기념(紀念)을 기념(記念)으로 달리 표기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에 가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은 모두 언제나 새롭고 경이롭다. 경이로움에 찬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경험을 기록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기를 보통 ‘견문록(見聞錄)’이라 불렀다. 다른 세상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라는 의미다.

‘예술’에 ‘노닐’ 때 진정한 ‘예술’ 이뤄져

견문록 하면 뭐니뭐니해도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이 최고일 것이다. 중국어로는 여전히 [유기(游記)]라 불리는 이 책은 13세기 베네치아공화국 출신의 상인이었던 마르코 폴로가 27년 동안 중앙아시아와 아시아 등 ‘동방’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보고 겪었던 사실들을 그의 구술로 루스티첼로가 기록했다고 하는 책이다.

1271년부터 1295년까지 여행했으니, 서양인이 동양을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13세기의 기록인 셈이다. 이로부터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경모(敬慕)는 본격화됐고, 그 경모는 역설적이게도 600년 후 동양에 대한 지배로 바뀌었다.

6. 진정한 삶, 노동하는 인간을 넘어서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공간 이동을 통해 새로운 문물과 가치관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근대 이후, 특히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노동을 지고지상의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여겨왔다. 심지어 노동이 인간의 고유함이며 인간을 동물과 구별해 준다고 여겼다. 사실이기도 하고, 근면함과 근실함을 선천적으로 타고 났던 우리에겐 더욱 와 닿는 말이다.

노동은 인간 본질의 하나이다. 그래서 인간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노동하는 인간’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의 노동은 단순한 일을 넘어서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 작업을 말한다.

동양의 숭고한 정신이자 삶에 대한, 예술에 대한 고차원적 이해를 집약한 그 한마디, 유어예(遊於藝). ‘예술에 노닐다’는 이 말에서 예술로 번역되는 예(藝)를 주나라 때는 육예(六藝), 즉 예(禮: 매너), 악(樂: 음악), 사(射: 활쏘기), 어(禦: 말 몰기), 서(書: 글쓰기), 수(數: 셈)로 풀이해 인간 생활에 필요한 고급적인 6가지 범주의 지식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 예(藝)는 이전의 연재에서도 파헤쳤던 것처럼 ‘나무심기’로부터 출발했고, 기술의 의미가 강한 글자이다. 기술은 노동을 의미한다. 물론 주나라 때 풀었던 6가지 범주의 지식도 인간만의 고유한 고차원적이고 의미 있는 노동을 위한 원천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역사가 진전해 예(藝)는 예술을 뜻하게 됐다. 예술은 인간의 가장 창의적인 노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놀다는 뜻의 유(游)를 인간의 가장 창의적인 일이라 할 예술(藝)에 결합한 것은 고대인들의 빛나는 혜지가 아닐 수 없다.

‘노님과 놀이’를 뜻하는 유(游)를 ‘기술과 노동’이라는 예(藝)에 접합한 옛 사람들의 혜지는 노동과 놀이라는 인간의 두 가지 본성과 욕망을 하나로 통일시키고 승화시킨 변증법적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의 주요 형태인 미술이나 서예나 시나 음악 등이 모두 ‘빈둥거림’과 ‘즐김’을 근본 요소로 한다는 것도 ‘예술’에 ‘노닐’ 때 진정한 ‘예술’이 이뤄짐을 보여준다.

노동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것, 의미 있는 일하기를 즐기는 것, 이것이 이 시대 우리가 고민하고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나가야 할 화두가 아닌가 싶다. 이제 노동조차도 즐기고 기술조차도 놀이로 삼아, 새로운 창의를 만들어 내며 우리의 삶을 더욱 살찌울 때다.

※ 하영삼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다. [한국역대한자자 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201904호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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