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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기중기(크레인)도 두루미(crane)를 닮았다 

 

학익진, 학수고대 등 다양한 일상 언어에 활용돼
일부일처로 살며 돈독한 부부애와 정절로 유명


▎강원도 철원평야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두루미.
우리나라에서는 두루미를 장수·행운·평화와 고매한 기품·기상을 나타내는 새로 섬긴다. 그리고 두루미는 다름 아닌 학(鶴, crane)이다. 그래서 우리 500원짜리 동전에 두루미 문양이 찍혀있고, 또 두루미는 일본항공(Japan Airlines, JAL)의 공식 로고(logo)로 높은 고도를 비행하는 것을 상징한다. 여러 평범한 사람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러 “뭇 닭 속의 봉황이요 새 중의 학 두루미다”라고 한다. 두루미를 학(鶴)·백학(白鶴)·선학(仙鶴)·야학(野鶴)이라고도 부르고, 높은 고층건물을 지을 때 긴 팔을 쭉 벌리고 있는 기중기(起重機)도 두루미를 닮았다 해 크레인(crane)이라 부른다.

옛날에 전투를 수행하고자 진을 치는 방법에 학익진(鶴翼陣)이란 것이 있었으니 학이 날개를 펼친 형태의 진법으로 반원 꼴로 군사들이 대오(隊伍)를 이룬다. 이는 적을 포위하면서 공격하기 적합한 진이다. 안익진(雁翼陣)이란 것은 기러기 무리가 나는 모양을 본뜬 것으로 전면 중앙에 있는 부대를 중심으로 다른 부대가 좌우대칭으로 빗금 꼴을 이루는 진형이다.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두루미 무리 중에서는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그 밖에 검은목두루미, 흑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3종도 한반도를 방문한다. 강원도 철원에는 재두루미와 흑두루미 700여 마리가 매년 찾아와 월동한다. 안타깝게도 모두 멸종될 위기에 처한 종(endangered species)들이다.

두루미(Grus japonensis)는 두루밋과(科)의 대형조류로 아주 희귀한 새이다. 두루미란 이름은 새 울음소리에서 유래된 순우리말로, ‘뚜루루루~, 뚜루루루~’하고 쩌렁쩌렁 울어제치기에 두루미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두루미를 ‘red-crowned crane(정수리에 붉은 관을 인 새)’라 부르는데 중국에서도 같은 뜻으로 단정학(丹頂鶴: 붉을 丹 정수리 頂 학 鶴)이라 한다.

두루미는 일생 동안 일부일처로 살아서 돈독한 부부애와 정절을 지키는 새로 우아하고 고고하며, 단아하고 고혹한 멋쟁이 새라 할 수 있다. 또한 두루미는 몸길이 136∼140㎝로 더할 나위 없이 멀끔하고 번듯하다. 썩 키가 크고, 날개 편 길이가 240㎝이며, 몸무게는 거의 10㎏이나 나간다. 그리고 몸집(덩치)에 비해 유달리 머리는 작고, 목과 다리가 유별나게 훤칠하다. 두루미의 외형에서 유래돼 학처럼 목을 기름하게 빼고 오매불망 간절히 기다리는 것을 일러 학수고대(鶴首苦待)라 한다.

온몸이 고운 은빛흰색이고, 이마에서 멱까지만 검정색이다. 정수리가 붉고, 어린 두루미는 닭 병아리가 볏이 없듯이 단정이 없다. 그런데 두루미 꼬리는 새까만 것이 몸뚱이에 걸맞잖게 퍽이나 짤따랗다. 그래서 “두루미 꽁지 같다”는 말은 머리카락이나 수염 숱이 많고, 몽땅하면서 더부룩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 지정된 멸종위기종

두루미는 봄과 여름에는 시베리아, 중국 북부, 몽골 북부에 살면서 번식하고, 매우 추운 겨울에는 한국, 일본, 중국 남부로 겨울나기(월동)를 위해 날아오는 겨울철새다. 강원도 철원평야가 가장 큰 월동지고, 다음이 경기도 연천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중국 창강 하구에 약 1200마리, 일본 홋카이도에 1000마리, 우리나라에 어림잡아 700마리 등 통틀어 고작 2900개체 정도가 전 세계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두루미는 사람과 검독수리 외에는 천적이 없으나 약골이거나 어린 것은 삵이나 여우 등의 먹잇감이 된다. 강한 잡식성으로 식물성 먹이로는 곡식 낟알, 갈대 순, 도토리, 풀씨가 있고, 동물성 먹이는 미꾸라지·지렁이·다슬기·새우게·개구리·도롱뇽·달팽이·잠자리·도마뱀 등이다.

번식기의 수컷은 단정이 더 붉어지고, 부리를 사방 문대며, 화려한 춤으로 구애한다. 번식지에서는 짚이나 마른 갈대를 땅바닥에 쌓아 올려 커다란 접시모양의 둥지를 지어서 한 배에 2개의 알을 낳지만 그 중 한 마리만 가까스로 살아남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재두루미 설명을 간단히 덧붙인다. 재두루미(Grus vipio) 역시 두루밋과의 새이다. 몸길이는 약 119㎝로 두루미보다 좀 작고, 암수 모두 몸이 회색이며, 머리와 목은 흰색이고, 눈 주위는 붉으며, 부리는 황록색이다.

먹이를 찾을 때는 긴 목을 S자 모양으로 굽힌다. 날아오를 때는 날개를 절반 정도 벌리고 몇 걸음 뛰어가면서 활주한 다음 떠오른다. 10월에 날아와 탁 트인 평원·논·하구·갯벌에 크게 떼를 지어 곡식 낟알, 풀뿌리 등을 먹으며 겨울을 지낸다. 중국·몽골·러시아에서 번식하고, 환경 오염과 서식지 파괴로 역시 멸종 위기에 처해 있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흑두루미는 총 중에 유난히 키가 작고, 온 몸이 흑색이며, 머리와 목만 희다.

해·산·물·돌·구름·솔·영지·거북·학·사슴이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는 십장생(十長生)이라 부른다. 그런데 앞에서 본 것처럼 두루미는 땅에서 생활하고 좀처럼 나뭇가지, 소나무 따위에 절대로 앉지 않는다. 그러므로 십장생 자수나 십장생도의 소나무 위의 학은 결코 두루미가 아니라 어슷비슷하게 생긴 황새(stork)이거나 백로(heron)이다. 그리고 “학이 곡곡 하니 황새도 곡곡 한다”는 말은 주견(主見)이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할 때를 비유한 말이렷다.

그리고 두루미를 ‘천 년을 사는 학’이라 칭송하지만 실제로는 고작 80여 년을 살 뿐이라 한다. 어쨌거나 두루미 당신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노니, 모쪼록 꿋꿋이 버티고 살아남아 차디찬 겨울엔 안심하고 이 땅에 들러서 당신들의 조상이 그래왔듯이 세세만년(歲歲萬年)의 복을 누려주시게나.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904호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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