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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특집] 인연으로 보는 2019 프로야구 판도 

투타 탄탄 SK·두산·키움 우승권에 가장 근접 

김효경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kaypubb@joongang.co.kr
10개 구단 감독 중 4명이 ‘새 얼굴’… 어느 해보다 경쟁 치열
염경엽과 김기태는 친구 사이, 양상문과 이동욱은 사제 관계


▎2019년 프로야구 3강 후보로 SK·두산·키움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왼쪽 사진부터 염경엽 SK 감독, 김태형 두산 감독, 장정석 키움 감독. / 사진:연합뉴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화백이 그린 그림이자 가수 유심초가 부른 노래 제목은 야구계에서는 격언으로 통한다. 워낙 좁은 바닥이라 친구·선후배, 스승과 제자, 혹은 경쟁상대였던 이들이 다른 관계로 얼굴을 맞대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단을 이끄는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지만 자존심이 걸린 지략 대결을 피할 수 없다. 올 시즌 프로야구 10개 구단을 이끌 사령탑들 사이엔 어떤 인연이 있을까. 감독 10명을 통해 2019 프로야구의 판도를 전망해 본다.

2019년 사령탑이 바뀐 팀은 4명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팀은 지난해 챔피언 SK 와이번스다. 외국인 감독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트레이 힐만 감독이 병환 중인 노모의 간호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SK는 발 빠르게 새 사령탑에 염경엽(51) 단장을 앉혔다. 염 감독은 넥센 히어로즈 시절 약체였던 팀을 포스트시즌 단골로 변신시켰다. 덕분에 ‘염갈량(염경엽+제갈량)’이란 별명을 얻었다.

2016시즌을 마지막으로 물러난 그는 2017년 SK 단장으로 변신했고, 2년 만에 팀이 정상에 오르는 데 기여했다. 오너 일가의 신임도 대단하다. 축승회에서 최창원 구단주가 직접 “염경엽 만세”를 외쳤다. 3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염경엽 감독은 “잘해야 본전”이라고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단장뿐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팬들은 염 감독의 현장 복귀가 결정되자마자 일찌감치 SK와 히어로즈의 대결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염 감독과 히어로즈의 결별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후임 감독인 장정석(46) 키움 히어로즈 감독과의 대결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컴백 ‘염갈량’ 판도 뒤흔들까


▎지난해 연말 한 시상식장에서 자리를 함께한 양상문 롯데 감독(오른쪽)과 이동욱 NC 감독. / 사진:연합뉴스
염 감독과 장 감독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엔 선수로 5시즌 동안 함께 뛰었고, 은퇴 이후엔 프런트로 일하기도 했다. ‘감독 염경엽’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도 장 감독이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1군 매니저를 맡았다. ‘주무’라고도 불리는 매니저는 감독의 식사, 이동 등 일거수일투족까지 챙긴다. ‘감독 장정석’의 교범이야말로 염경엽이었던 셈이다.

SK와 히어로즈는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명승부를 펼쳤다. 올 시즌도 뜨거운 대결이 예상된다. SK는 에이스 메릴 켈리가 떠났지만 제이미 로맥과 앙헬 산체스가 잔류했다. 게다가 FA 최정과 이재원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최정과 이재원의 잔류로 지난해 홈런 1위에 오른 막강한 타선은 건재하다. 무엇보다 염 감독이 단장으로서 일군 팀인 만큼 선수들의 특징을 잘 알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올해도 전문가들은 SK를 두산과 함께 우승후보로 꼽고 있다.

넥센타이어와 계약이 종료된 뒤 키움증권을 새 스폰서로 맞은 히어로즈도 만만찮은 전력을 갖췄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홈런 2위에 오른 박병호, 2년차 징크스를 무색하게 만든 2017년 신인왕 이정후, 마운드의 중심으로 우뚝 선 제이크 브리검 등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최원태·송성문·김혜성·안우진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도 무섭다. 두산과 SK를 위협할 다크호스로도 히어로즈가 꼽힌다. 공교롭게도 SK엔 손혁 투수코치·김택형·고종욱 등 히어로즈 출신이 많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뜨거운 대결이 예상된다.

장정석 감독보다 염경엽 감독을 잘 아는 사람은 따로 있다. 김기태(50) KIA 타이거즈 감독이다. 둘은 광주 충장중-광주일고 동기다. 이강철(53) KT 위즈 감독까지 광주일고 출신 감독만 세 명이나 된다. 나이는 염 감독이 한 살 많지만 고교시절 몸이 약해 1년 유급을 하면서 동급생이 됐다.

김기태 감독은 “선배들이 동기가 된 뒤엔 ‘경엽아’라고 부르라고 시켰다. 하지만 둘이 있을 땐 ‘형’이라고 불렀다”며 “고등학교 때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훈련이 힘들어서 함께 학교 담을 넘어 도망간 적도 있다”고 웃었다.

김기태 감독이 LG 지휘봉을 잡았을 당시엔 염경엽에게 수석코치를 맡기려고도 했었다. 전지훈련지인 일본 오키나와에서도 염경엽 감독이 일부러 시간을 내 김기태 감독을 만나기도 했다.

2017년 챔피언 KIA는 지난해 5위로 추락했지만 3년 연속 가을야구엔 성공했다. 최근 5시즌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에이스 양현종이 건재하고, 최형우·안치홍·김주찬 등 강타자들이 많다. 새 외국인 선수 조 윌랜드와 제이콥 터너가 제 몫을 한다면 포스트시즌은 충분히 갈 수 있는 전력을 갖췄다는 평이다.

김기태 감독과 염경엽 감독은 4시즌 동안 감독으로 맞붙었지만 포스트시즌에선 만나지 못했다. 죽마고우의 가을 야구 대결이 성사될지 흥미로운 대목이다.

최근 몇 년간 최강 팀은 두산 베어스였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두 차례 정상에 올랐다. 두산이 강팀으로 군림하기 시작한 건 2015년 김태형(52)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부터다. 김태형 감독은 현역 시절 수비형 포수로 수퍼스타는 아니었다.

하지만 주장을 맡을 만큼 뛰어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통솔했다. 김태룡 두산 단장은 “선수일 때도 구단에 할 말은 했다. 그때부터 감독감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감독이 된 뒤에도 김태형 감독은 뛰어난 팀 장악능력을 발휘했다. 야구는 투수와 타자의 일대일 대결이 이어지는 경기지만 좋은 팀이 되기 위해선 ‘원 팀’이 돼야 한다. 김 감독은 두산 특유의 두꺼운 선수층을 잘 활용했다.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 건강한 팀을 만들었다. 지난해부터 두산 유니폼을 입은 조인성 배터리코치는 “감독님 판단력과 행동력이 대단하다. 팀이 체계적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두산은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2년 연속 수석코치가 다른 팀의 감독으로 임명된 것이다. 2017시즌 뒤엔 한용덕(54) 수석코치가 한화 이글스 사령탑으로, 2018시즌 뒤엔 이강철 수석코치가 KT 감독으로 임명됐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투수 출신이고, 선배지만 김 감독을 수석코치로 보좌했다는 것이다. 현역 시절 큰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둘의 능력만을 보고 김태형 감독이 영입했다.

감독 ‘사관학교’ 두산


▎류중일 LG 감독(오른쪽)과 김기태 KIA 감독은 삼성 시절 한솥밥을 먹은 인연이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용덕 감독은 두산 시절을 떠올리며 “솔직히 말하면 난 김태형 감독과 살가운 편은 아니었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감독님이 나를 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수석코치로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팀을 운용하는 방법에 대해선 많은 공부를 했다.” 이강철 감독 역시 “넥센에서도 수석코치를 지냈지만 두산은 또 다른 방식으로 팀이 돌아갔다.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 수석코치라서 감독이 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감독이 될 분들이 고맙게도 함께해 주신 것이다. 내가 인복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형 감독은 “함께 있던 사이라 경쟁이라 하기엔 그렇지만 뭔가 새로운 기분은 든다”며 “프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웃었다. 한용덕 감독도 “어차피 그라운드에서는 승부를 펼친다.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한화와 두산은 8승8패 호각세를 보였다.

한용덕 감독은 한화 팀 컬러를 바꾸는 과정에서 두산을 벤치마킹했다. 한화는 2000년대 이후 신인 선발, 육성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30대 선수들이 팀의 중심이 됐고, 2008년 몰락 이후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한용덕 감독은 한화 부임 이후 과감하게 신인급 선수들을 기용했다. 수비 능력이 하락하자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를 과감하게 2군으로 보내고, 신인 정은원을 기용했다. 마운드에서도 서균·박상원 등 젊은 투수들을 중용했다. 이 과정에서 베테랑 선수들과 마찰이 일기도 했지만 결과는 좋았다. 정규시즌 3위로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자신감을 얻은 한용덕 감독은 더욱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전지훈련에 7명의 신인을 데려갔다. 자연스럽게 베테랑 선수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정근우는 외야수 변신 중이고, 김태균은 그 어느 때보다 수비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한용덕 감독은 “냉정하게 봤을 때 선발진이 약하다. 팬들은 지난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지만 천천히 갈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두산처럼 오랫동안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선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일 참”이라며 “FA 양의지를 영입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라고 설명했다.

이강철 감독 역시 비슷한 방향을 선택했다. KT는 올 시즌 뒤 외부 FA를 영입하지 않았다. 대신 내부 FA인 박경수·금민철을 붙잡고 지난해 40홈런을 친 멜 로하스 주니어와 재계약에 집중했다. 창단 이후 4년 동안 끌어 모은 유망주들과 기존 선수들로 팀을 꾸리겠다는 계획이다.

냉정하게 봤을 때 한화와 KT가 두산을 뛰어넘긴 쉽지 않다. 기본적인 전력 차가 있기 때문이다. 두산은 양의지가 빠지긴 했지만 조시 린드블럼-세스 후랭코프란 외국인 원투 펀치가 든든하다. 김재환·오재일·오재원·김재호·허경민 등 야수진도 화려하다. 이영하·박치국·함덕주 등 젊은 투수들의 성장세도 무섭다. 올해도 가장 탄탄한 전력을 가졌다는 평가다.

한화는 선발 후보 중 10승 경력이 있는 선수가 없다. 외국인투수 2명도 모두 교체했다. 송은범·이태양·정우람 등의 불펜진에 의존도가 올해도 높을 수밖에 없다.

한용덕 감독은 “지난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긴 쉽지 않다. 5강 다툼을 벌이면서 리빌딩에 성공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KT는 외국인투수를 모두 교체했고, 지난해 토종 투수 중 가장 성적이 좋았던 언더핸드 고영표가 군입대했다. 지난해 타율 10위 안에 든 선수는 유한준뿐이고, 로하스를 제외하면 신인 강백호가 제일 많은 29개의 홈런을 쳤다. 이강철 감독은 “초보 감독이지만 첫해부터 가을 야구를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낙동강 더비 앞둔 양상문과 이동욱


▎이강철 KT 감독은 1년 후배인 김태형 두산 감독과 2년 후배인 염경엽 SK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를 지냈다. / 사진:연합뉴스
더비(derby)는 축구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같은 지역 또는 인근 지역 팀들끼리 대립하는 관계를 말한다. 그 동안 프로야구에서 더비라고 할 만한 관계는 잠실구장을 함께 쓰는 LG와 두산이 거의 유일했다. 유럽 축구에서 보는 만큼 경쟁심이 치열한 건 아니지만 두산과 LG 사이엔 묘한 경쟁심리가 있다. 지난 시즌엔 LG가 두산에 상대전적 1승15패를 당하는 바람에 가을 야구를 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2013년 더비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대립 관계가 나타났다. 부산 연고의 롯데와 창원 연고의 NC 다이노스다. 제9구단 NC 창단 과정에서 당시 롯데 자이언츠 장병수 대표이사는 반대의사를 밝혔다. 롯데 제2연고지인 마산구장과 경남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한 것이다. 창단이 결정된 뒤 NC는 보란 듯이 이상구 전 롯데 단장을 초대 단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NC는 제2대 감독으로 이동욱 수비코치를 임명했다. 이동욱 감독은 프로야구 팬들에게 가장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감독은 동래고-동아대를 거쳐 고향팀 롯데에 입단했다. 하지만 프로에선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7년 만에 은퇴했다. 당시 롯데 감독이 올해부터 다시 롯데를 이끌게 된 양상문 감독이다.

이동욱 감독은 현역 시절 화려하진 않았지만 명석한 두뇌와 성실함을 인정받아 구단으로부터 프런트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그를 눈여겨본 양상문(56) 감독이 2군 수비코치를 제안했다. 양 감독의 배려로 만 30세의 젊은 나이에 코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동욱 감독은 “양상문 감독님 덕분에 빨리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양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코치에서 물러난 이동욱 감독은 전력분석원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 2007년엔 LG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2011년 NC 창단 멤버가 된 이동욱 감독은 8년 만에 감독직까지 오르게 된다.

역시 롯데를 떠났던 양상문 감독은 14년 만에 사령탑으로 돌아왔다. 이동욱 감독은 “감독이 되고 나서 전화를 드렸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감독님께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양 감독도 “이동욱 감독이 좋은 지도자가 될 줄 알았다”며 흐뭇해했다.

두 사람은 이제 ‘낙동강 더비’의 축으로 맞붙어야 한다. NC는 2016년 롯데에 15승1패 절대 우위를 뽐냈다. 그러나 이대호가 돌아온 뒤 최근 2년 동안은 롯데가 9승7패로 근소한 우위를 보였다. 이동욱 감독은 “올해는 NC 팬들에게 더 많은 웃음을 드리겠다”고 했다. 4월 12~14일로 예정된 롯데와 NC의 첫 대결도 벌써부터 눈길을 끌고 있다.

롯데는 손아섭·민병헌·전준우로 이어지는 강력한 외야진을 갖고 있다. 37세의 이대호 역시 여전한 기량을 뽐내고 있다. 1루수 채태인, 2루수 카를로스 아수아헤, 3루에서 경쟁할 전병우-한동희 등 내야 자원들의 타격 능력도 뛰어나다. 타격만 보면 두산이나 SK와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

문제는 배터리다. 2017년 시즌 막판 돌풍의 주역이었던 젊은 투수들 중 상당수가 지난해 부상과 부진에 시달렸다. 10여년간 안방을 든든히 지켜준 포수 강민호의 공백도 컸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국내파 투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노경은도 계약하지 않았다. 투수 전문가인 양상문 감독이 능력을 발휘해야 할 시기다.

지난해 최하위 NC는 반등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겨울을 후끈하게 달궜던 최고 포수 양의지 영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양의지는 타격도 뛰어나지만 젊은 투수들을 이끄는 능력을 높게 평가받는다.

이동욱 감독도 “양의지가 공을 받는 것만으로도 투수들에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NC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임창민·김진성·원종현 등 불펜투수들이 부활한다면 새 창원구장에서 가을 야구를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떠난 자와 이어받은 자의 운명


▎한화 한용덕 감독(왼쪽)과 장종훈 수석코치. 둘은 빙그레 시절부터 30년 넘게 우정을 다져왔다.
2017년 LG 트윈스의 선택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양상문 감독을 단장으로 선임하고, 야인이었던 류중일(56) 전 삼성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것이다. 특히 현직 감독이 단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양상문 감독이 지난 시즌 이후 롯데 사령탑에 오르면서 두 사람은 감독으로서 경쟁하게 됐다. 양상문 감독은 10명의 감독 중 최연장자이며 그 다음이 류중일 감독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전임 감독과 후임 감독은 껄끄럽기 마련이다. 공과(功過)를 두고 엇갈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더라도 후임 감독은 전임 감독의 색채를 지우려고 할 때가 많다. 성과를 내더라도 전임 감독에게 공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장-감독으로 호흡을 맞춘 양상문-류중일 콤비는 조금 달랐다. 두 사람이 한솥밥을 먹은 건 처음이었지만 큰 무리 없이 구단을 운영했다. 특히 류 감독은 LG 지휘봉을 잡은 뒤 양상문 단장이 감독 시절부터 육성한 채은성·유강남·이형종·양석환 등에게 기회를 줘 주축 선수로 성장시켰다.

삼성과 LG는 전자업계 라이벌이다. 야구단도 ‘앙숙’에 가까웠다. LG는 MBC를 인수해 창단한 첫해인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했다. 1997년엔 최다 점수차 패배(5대 27)를 당하자 삼성 선수들이 부정 배트를 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큰 감정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삼성은 2002년 LG를 상대로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상문 감독이 LG에 부임한 뒤 두 구단의 관계는 부드러워졌다.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서 류중일 감독은 사령탑을, 양상문 감독은 수석코치를 맡은 인연이 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호흡을 맞출 뻔했으나 양상문 감독이 LG 감독직을 맡으면서 무산됐다. 그러나 양 감독은 빚을 잊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대표팀을 지원했다. 조계현 투수코치와 유지현 수비코치를 보내고 평가전 상대로도 나서기도 했다.

류중일 감독은 자신의 후임자와도 대결을 펼친다. 바로 김한수 삼성 감독이다. 삼성은 2016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뒤 류중일 감독이 기술자문으로 물러났고, 김한수 타격코치를 새 감독으로 앉혔다.

두 사람은 5시즌 동안 유격수와 3루수로 함께 내야를 지켰다. 2011년부터는 감독과 코치로 삼성의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일궈냈다. 똑같은 감독 입장으로 대결한 건 지난해가 유일하다. 순위는 삼성(6위)이 LG(8위)보다 높았지만 상대전적에선 LG가 9승7패로 앞섰다. 삼성으로선 LG전에서 1승만 더 챙겼다면 가을 야구도 할 수 있었다.

류중일 감독과 김한수 감독은 나란히 마음고생을 했다. LG는 지난 시즌 믿었던 투수진이 무너지면서 가을 야구에 실패했다. 시즌 중반엔 2위까지 달렸지만 주축 투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후반기 대추락을 겪었다. 특히 불펜 평균자책점이 5.62(9위)까지 치솟으면서 뒷심 부족을 드러냈다.

삼성은 정반대였다. 외국인투수 아델만과 보니야가 시즌 초반 부진하면서 5월까지 꼴찌를 달렸다. 하지만 최충연·장필준·심창민이 버틴 불펜진을 앞세워 후반기엔 5할대 승률을 올렸다.

LG는 중위권 전력으로 평가받는다. 메이저리그 출신 1루수 토미 조셉을 영입한 데다 3루수 김민성을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데려와 안정적인 라인업을 구축했다. 류중일 감독은 “박용택과 김민성이 6, 7번을 맡는다. 타선 고민을 덜었다”고 했다.

마운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장원삼과 심수창, 두 명의 베테랑 선수도 영입했다. 특히 장원삼은 넓은 잠실구장을 활용한 투구를 한다면 더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 개막 전 도박과 음주운전이란 악재를 겪었지만 선수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이종범·손민한·이호준… 돌아온 스타 코치들


▎김한수 삼성 감독(오른쪽)과 류중일 LG 감독은 삼성 시절 같은 선수로, 코치와 선수로, 감독과 코치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다.
삼성은 지난해 27홈런을 친 김동엽의 가세로 타선이 업그레이드됐다. 마운드에선 마무리 심창민(군입대)와 선발 양창섭(팔꿈치 수술)이 빠져나갔지만 외국인투수들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삼성은 지난 3년간 외국인 투수들이 고작 26승을 합작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전지훈련에서 덱 맥과이어와 저스틴 헤일리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한수 감독은 “두 외국인 투수가 차근차근 준비를 잘하고 있다. 기대감이 있다. 두 자릿수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야구계에선 선수 못잖게 코치 영입전이 뜨겁다. 뛰어난 코치를 데려가기 위해 계약금까지 줄 정도다. 그만큼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선 좋은 코치가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2019시즌을 앞두고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지도자로 그라운드에 대거 돌아왔다.

이호준 NC 타격코치는 1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이 코치는 초대 주장으로서 창단팀 NC가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게 팀을 이끌었다. 2017년 은퇴 이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에서 지도자 연수(타격코치)를 마치고 1년 만에 복귀했다.

현역 시절 등번호(27번)를 그대로 단 이호준 코치는 선수 때보다 더 날렵한 몸매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박민우는 “지난해 성적이 좋지 않아 조금 처진 분위기였는데 이호준 코치님이 오시면서 선수단 분위기가 잡혔다”고 말했다.

이동욱 NC 감독의 옆에는 또 다른 거물급 코치가 있다. 손민한 코치다. 손 코치는 2015년 은퇴 이후 유소년 야구 육성코치를 지냈고, 프로에서 지도자를 맡은 건 처음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이동욱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여 수석 겸 투수코치를 맡았다. 현역 시절 롯데 에이스로 활약한 손민한 코치가 투수진을 이끄는 것만으로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도 5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왔다. 2013년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화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종범 코치는 2015년부터 해설위원으로 일했다. 지난해엔 대표팀 코치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아들 이정후와 함께 출전해 금메달을 따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종범 코치는 차명석 단장의 제의를 받아 LG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당분간 ‘부자(父子) 대결’은 볼 수 없다. 1군이 아닌 2군 총괄코치를 맡았기 때문이다.

201904호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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