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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문재인 정부를 살아가는 부동산 부자들의 직격토로 

“교회 나가 빨리 정권 바뀌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임대·매각 어려운 데다 공시지가도 올라 은행 빚 많은 건물주에겐 직격탄
재력가들에게 자산 저평가된 지금이 투자 기회… 최저임금 인상으로 서민 일자리만 감소


▎주요 도시 중 공실률이 가장 높은 세종시의 한 상가에 세입자를 구하는 광고가 붙어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에 태국음식점을 연 자영업자 A씨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딱히 반감이 없었다.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내놓고, 없는 사람의 삶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공동체 전체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종업원들의 인건비 부담이 커졌음에도 최저임금 인상에 거부감이 적었다.

그런 그가 2019년 초 가게 문을 닫았다. 건물주는 임대료를 올렸고, 매상은 예전만 못하니 견딜 재간이 없었다.

A가 가게를 폐업한 원인은 최저임금 탓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A의 신념과 별개로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경제는 모든 게 맞물려 돌아가고 그게 개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2019년 기준 시급 8350원)에 부담을 갖게 된 자영업자들·건물주들·고용주들은 이를테면 이전까지 2명 쓰던 직원을 1명으로 줄인다. 남은 1명은 이전보다 나은 대우를 받겠지만 다른 1명은 일자리를 잃는다. 구조조정, 실업으로 구매력이 상실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가령 예전에는 같이 일하던 2명이 A씨의 가게를 1주일에 한 번씩 찾았다고 하자. 그러나 구매력을 상실한 1명은 더 이상 가게에 갈 여력이 없다. 소득 여건이 나아진 남은 1명이 그렇다고 1주일에 2번 가게를 가진 않는다. 불확실한 세상에 저축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결국 가게 매상이 예전만 못하게 된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A씨가 입점한 건물의 주인도 늘어나는 공실이 고민이었다. 어떻게든 벌충하려니 임대료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건물주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완전 시행(올 4월 17일) 전에 미리 손을 써두고자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는 악덕 건물주’라는 지탄을 듣더라도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했다.

이는 실존 인물에게서 모티프를 얻은 사례다. 가진 이에게 불리한 정책이 덜 가진 이의 행복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혈관처럼 연결되어 있는 경제는 어느 한군데가 막히면, 나머지도 순환이 어렵기 때문이다.

부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는 개개인의 가치판단 영역이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이 딱히 가진 이에 반(反)하는 정서를 담고 있다고 단언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정책의 선량한 의도와 무관하게 월간중앙이 직·간접적으로 접한 부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공시지가 상승, 부동산 과세 강화 등에 압박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세금 부담 증가가 문재인 정부를 살아가는 부자들의 진짜 고충일까? 취재 결과,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부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본질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차단’에 있었다. 이를 부자들의 탐욕으로 볼지, 자본주의 시장 흐름의 인위적 억제로 볼지는 정치의 영역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부자와 서민, 어느 계층도 행복하기 어려운 현실 그 자체에 있다.

명동 건물주, “갑을이 바뀌었다”


▎2019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8350원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주로 저임금 일자리를 파괴하는 역설이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다.
명동에 상가 건물을 한 채 가지고 있는 건물주 B씨. 그는 전통적 부자에 해당할 명동과 강남의 부자에 속한다. 그 일대의 건물주들이 대개 그렇듯 재산을 물려받은 토박이다. 주변에서는 세상 아쉬울 것 없겠다고 부러워하지만 요즘 명동과 종로 일대를 걷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B씨 자신의 건물을 포함해 비어 있는 상가 1층이 하나둘이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천하의 명동’이 이렇게 전락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임대료 수입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때문”이라며 격분했다. B씨는 “요즘 교회에 나가 ‘빨리 정권이 바뀌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하소연했다.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떠올리면 참았던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5%로 인상폭이 제한될뿐더러 한번 계약하면 10년 동안 내보낼 수가 없다. 세입자가 임대료를 연체시키지 않는 한, 내쫓을 방편이 없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라고 갈수록 상황은 곤혹스러워지고 있다. 공실이 생기는 것만도 고통스러운데 기존 세입자들은 “임대료를 깎아 달라”고 아우성이다. “경기가 안 좋아 매출이 줄었고, 최저임금이 올라서 종업원 월급 주기도 힘들다”고 그들은 호소한다. 실제 어떤 건물주는 공실을 최소화하고자 고육지책으로 ‘6개월 임대료 무료 보장 계약’까지 제공했다.

B씨는 아직까지는 그럴 의향이 없다. “나도 하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당장 돈이 궁한 것이 아니다. 굳이 임대료 깎아 세입자를 채워봤자 건물 값만 떨어진다. 그다지 득 될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B씨가 이렇게 말하는 결정적 이유는 대출 이자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대대로 금수저 출신인 그는 부채가 없다. 2018년 부동산 광풍에 힘입어 건물 가격은 잔뜩 올랐다. 임대료를 내리는 순간, 건물 가치가 하락한다. 소탐대실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섣불리 ‘불량 세입자’를 들였다간 상가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명동과 종로, 을지로 일대의 1층 공실을 둘러본 B씨는 “이 건물주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귀뜀했다. 그는 “솔직히 이거 공실로 가도 굶어죽을 거 아니니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물론 건물에 공실이 발생할수록 손해는 커진다. 세입자를 들이지 못하면 관리비와 유지비 조로 건물주가 감당할 몫이 올라간다. 그러나 그 폭이 생각만큼 심각하진 않다. 어차피 건물 관리인이야 둬야 한다. 건물에 붙는 세금도 세입자가 많든 적든 내야 할 돈이다. 수도, 전기, 냉·난방비용은 공실이면 불 끄고 문 닫아 놓으면 된다.

건물주도 등급이 있다. 소위 ‘옛날 부자’라 할 명동·강남의 건물주들이 진정한 알부자에 해당한다. 가령 아주 오래전, 평당 1000만원에 건물을 올렸는데 지금은 평당 1억원이 된 것이다. 주인이 그대로이므로 앉은 자리에서 돈을 번 게 된다.

이런 부자들에게 공실은 짜증나는 일이긴 하겠지만 치명적 악재는 아니다. 실제 명동 등 도심의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층만 비어있을 뿐, 2~3층 이상은 가득 차 있는 현상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한 금융권 전문가는 “1층은 주로 음식점이 위치하고, 2층 이상에는 학원이나 PC방 등이 들어온다”면서 “학원이나 PC방은 1층에 비해 빨리 안 망하는 업종”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종로나 강남권 같은 노른자위 지역은 건물이 통째로 공실이 될 일은 좀처럼 없는 것이다.

‘스세권’을 몰라본 초보 건물주의 패착


▎서울 명동의 스타벅스 지점. 유동인구가 많은 만큼 땅값도 비싸진다.
경기도 신도시에 새로 건물을 올린 C씨의 케이스는 또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변동성을 예측하지 못하고 스스로 곤경을 자초했다. C씨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토지에 상가건물을 세웠다. 총 공사비 250억원. 이 가운데 자기 돈은 70억원이 들어갔고, 나머지 180억원은 은행 대출이었다. 지난 1월 건물이 완공됐다. 이른바 신흥 건물주 대열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성취감은 잠깐이었다. C씨가 올린 건물 주변부의 인프라가 문제였다. 온통 공사판이었다. 상가는 필수적으로 주변에 오피스텔이나 회사가 입주해야 기능할 수 있다. 즉 사람이 몰려야 그곳에 장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선다. 그런데 건물을 처음 지어 본 C씨는 대출이자 부담과 투자금을 하루빨리 회수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판단을 그르쳤다. 건물만 덩그러니 세워졌고,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형국이 됐다. 졸지에 C씨가 모든 것을 걸었던 모험은 유령건물을 낳고 말았다. 도심에 아파트가 들어서더라도 상가가 차는 건 입주가 다 된 후의 일이며 이는 업계에서는 상식적인 패턴으로 통한다.

당장 은행 대출이자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1년 이자만 대략 6억원이 발생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월 5000만원 꼴이다. 세입자가 전무한 상황에서 온전히 C씨가 져야 할 몫이다. 그는 거래은행에 이자 상환용 대출을 다시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자도 못 내는 건물주에게 180억원 대출을 승인한 주거래은행의 지점장도 좌불안석이 됐다. 2018년 9·13대책 이전까지의 이른바 ‘미친 부동산’을 보고 장밋빛 미래를 그렸겠지만 이후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사실 C씨에게는 한 번 기회가 있었다.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가 그를 찾아왔던 것이다. 미팅 자리에서 스타벅스 측은 “보증금은 내지 않겠다. 월 매출액의 12%를 임대료로 내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이 제안을 C씨는 뿌리쳤다. 그 순간 그의 운명은 사실상 산산조각이 났다.

속칭 ‘스세권(스타벅스+역세권)’이라 불리는 스타벅스의 파워를 간과한 것이었다. 업자들에게 항상 슈퍼갑인 백화점이지만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한테는 예외다. 파격적 혜택을 제시하며 ‘모쪼록 우리 백화점에 입점해 달라’고 읍소한다. 샤넬이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백화점 이미지가 업그레이드되고 ,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샤넬은 콧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건물에선 스타벅스에서 나타난다. 스타벅스가 입점만 하면, 유동인구가 늘어난다. 그러면 그 건물은 공실이 생길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렇기에 스타벅스가 내미는 조건을 건물주들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정우·전지현 등 유명 연예인들이 보유한 빌딩에 스타벅스가 입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직군일수록 스타벅스의 효용에 더 밝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C씨의 패착은 ‘보증금을 내지 않겠다’는 스타벅스의 안을 일종의 ‘갑질’로 여긴 데서 비롯됐다. 금융권 인사는 “건물주들이 일일이 계약서를 보여주지 않겠지만 스타벅스는 통상적으로 매출액의 8~12%를 임대료로 지급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전했다. 다시 말해, C씨는 그나마 꽤 괜찮은 조건으로 제안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스타벅스를 뿌리친 뒤, 그의 건물은 더 불확실한 미래로 빠져들었다. 언젠가 일대의 개발이 완료되겠지만 그때까지 C씨가 버틸 수 있을진 미지수다. ‘건물주=불패’ 신화는 이렇게 깨져가고 있다.

건물 청소가 깔끔하지 않게 된 이유


▎소득주도 성장을 주도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거주한 아파트에서 2018년 경비원 감원 찬반 투표가 진행됐다.
강남 건물주 D씨는 최저임금 인상 전엔 관리인을 두 명 뒀다. 청소 아줌마도 두 명 이상 고용했다. 그러나 제도가 바뀐 뒤 관리인 한 명을 해고했다. 그 대안으로 사설경비시스템인 세콤을 설치했다. D씨는 “나머지 한 명도 자를까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청소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줄이다보니, 세입자들 사이에서 “예전보다 건물이 청결하지 않다”는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관리인도 건물에 필요한 존재다. 잡상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방문자도 안내해야 한다 . 주차 관리나 긴급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불편을 조금 더 감수하더라도 사람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더 커진다. 건물에서 들어오는 수입은 전과 비슷하거나 떨어졌는데 지출을 그대로 가져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강남의 몇몇 건물은 관리인을 전부 내보내고, 세콤과 같은 사설경비시스템으로 대체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설경비시스템은 24시간 활용 가능한 장점이 있다. 예전엔 관리인들을 낮과 밤, 2교대로 돌렸다. 건물 한편에 관리인 전용 방도 마련했다. 그러나 야간 근무수당 지출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세콤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D씨는 말한다.

나름 정(情)들었던 관리인 할아버지를 내보내야 하는 D씨의 마음도 편치 않다. 일자리를 잃게 되면 어디서 이만한 수입을 얻을지 걱정도 든다. D씨는 문득 근본적 의문을 갖게 됐다. 도대체 이 정책으로 누가 행복해진 것일까? 최저임금을 올렸고,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서 얼핏 종업원과 자영업자가 더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세 자영업자일수록 최저임금 인상으로 힘들어한다. 종업원들도 예전보다 실직이 늘고, 구직이 어려워졌다.

지난 4월 3일 청와대에 초청된 경제원로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우려를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체적인 정책수단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서 소득주도 성장의 목표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생산성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은 교육해서라도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 같은 직언이 나왔다.

금융권에서는 요즘 강남 상가수익률을 2%대로 추정한다. 한마디로 은행 예금금리보다 못한 수준이다. 공시지가 현실화에 따라서 종부세와 재산세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은행에서는 “명동 상가수익률도 고작 3%대 수준일 것이다. 건물의 메리트가 거의 없어졌다”고 말한다.

이렇다 보니 팔고 싶어도 사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강남 일부 지역의 건물주들은 최근 모임을 갖기도 했다. ‘나만 내릴 수 없으니, 다 같이 임대료를 내려서 공실을 줄이자’고 합의를 봤다. 예전에 없었던 풍경으로 그만큼 강남 부자들도 심각하다는 정황 증거다.

“종부세 때문에 적금 든다”


▎서울의 부동산 거래는 냉각된 상태다. 그러나 이를 집값 하락으로 단정짓기에는 이르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지향은 명료하다. ‘집은 한 채만 갖고 살아라. 안 그러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조이겠다’는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 투기냐 투자냐를 논하기 전, ‘다주택자는 응징하겠다’는 취지다. 세무 전문가들은 최근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관해 “굉장히 촘촘하고 정밀하다”고 평가한다.

일단 종부세율이 과세 구간에 따라 누진제로 올라간다. 여기에 더해 보유 주택수에 따라 세율이 더 가산된다. 가령 30억원 아파트 1채를 가진 사람과 15억원 아파트 2채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후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구조인 것이다. 다주택 보유에 관한 일종의 페널티다. 심지어 예전에는 임대소득이 연 2000만원 이하인 경우, 소득신고를 하지 않아도 됐는데 이것도 과세하는 쪽으로 변경했다. 퇴직금 털어 노후에 자가 주택 한 채, 임대주택 한 채만 가지고, 월세(월 167만원) 받는 은퇴생활자의 주머니도 팍팍해진 것이다.

여기에 현재 85%인 공시지가 현실화율이 매년 5% 비율로 상승할 예정이다. 공시지가가 오를수록 종부세 부담도 비례한다. 주목할 사실은 이 대상이 강남·용산 등 최근 많이 오른 아파트를 주로 겨냥했다는 점이다. 공시지가가 치솟아도 핫 플레이스가 아닌 지역 아파트 거주자들은 세 부담이 훨씬 덜하다. 소위 조세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다.

일부 부동산 부자들 사이에선 “종부세 때문에 적금 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아파트 부자들에게는 보편적 유사점이 있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서 부동산을 사들이다보니, 의외로 현금이 많지 않다.

‘그렇게 못 견디겠으면 아파트를 팔면 되지 않나’라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음미할 만한 화두가 등장한다.

문 정부는 아파트를 파는 퇴로조차 한껏 좁혀 놓은 것이다. 구입 뒤 일정 기간을 소유하지 않은 채 매각하면 양도세가 중과된다. 상황이 이러니 아파트 부자들은 원하든, 아니든 버텨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은행권 관계자의 진단이다.

“대출을 많이 당겨서 집을 샀다. 이자를 생각하면 집값이 올라야 남는 게 있다. 지금처럼 집값이 정체된 상태에서 대출 이자는 계속 갚아야 하는데 종부세는 올라간다. 양도세 중과가 있으니 파는 것도 어렵다. 헉헉대며 상승 때까지 버티려 할 것이다.”

근본적 질문은 ‘이런 상황을 정부가 의도한 것일까’라는 데 있다. 집값을 잡은 것까진 적중했는데, 거래가 얼어붙은 것을 어찌 봐야 하는가의 문제다.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매물이 나와야 집값이 떨어지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현재 아파트 시장은 매물 없이 집값이 동결된 상태에 가깝다. 이는 부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출을 끌어들여 똘똘한 한 채를 장만한 중산층이나 서민에게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고민이다.

결국 문 정부와 아파트 부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전선(戰線)이 형성된 셈이다. 부동산 정책은 당장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다면 문 정부가 현 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면, 향후 2~3년 후 약발은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즉,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다주택자가 나타날 것이란 뜻이다. 그렇게 매물이 쏟아지면 집값은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상 이랬던 전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정권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금융권과 부자들 사이에선 “당장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하거나, 대선에서 우파 정당이 집권하면 집값이 꿈틀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인간은 경험의 동물이다. 학습효과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이제껏 다주택자들은 정부에 굴복한 적이 없다. 잠깐은 밀렸을지 몰라도, 최후의 승자는 늘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정부와 다주택자의 대치국면이라 할 수 있다.

집값 하락인가? 증여인가?


▎2019년 공시지가 상승률은 강남이 가장 높았다. 사진은 강남구 삼성동 일대 아파트. / 사진:연합뉴스
최근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호가가 몇 억 떨어졌다’, ‘마포 래미안푸르지오아파트 실거래가 몇 억이 내려갔다’는 유의 기사를 목격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몇몇 언론은 ‘드디어 집값이 잡혔다’는 식의 헤드라인을 뽑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정말일까? 이런 의구심을 갖는 이유는 증여가 부동산 시장 가격에 착시현상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은행권에서는 “다주택자 부자들이 팔긴 팔아야 하는데 양도세가 너무 비싸니 증여를 한다”고 설명한다,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오르긴 오를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싸게 남한테 주기는 아까우니까 이 참에 자식들에게 미리 증여를 한다는 것. 특히 공시지가 상승분이 반영될 5월 이전에 증여가 활발했다. 문 정부의 정책이 촉진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주택자인 E씨는 1990년 마포에 1억원을 주고 아파트를 샀다. 이 아파트가 2018년 15억원이 됐다. E씨는 최근 매매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다 증여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 계산법은 이렇다.

만약 타인에게 15억원에 팔면 ‘15억-1억(첫 구입가)인 14억원’에 대해 양도세를 물어야 된다. 그러나 자식에게 15억원에 증여를 하면, 양도세가 아니라 증여세를 낸다. 이때의 증여세는 양도세보다 적은 액수다. 그 다음에 자식이 아파트를 몇 년 더 보유했다가 16억원으로 올랐을 때 판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16억-15억(구입가)인 1억원’에 관한 양도세만 내면 된다.

쉽게 말해서 증여세와 양도세는 반비례의 관계에 있다. 증여세를 많이 내면, 나중에 양도세를 적게 낼 수 있고, 증여세를 적게 낸 다음 양도세를 많이 낼 수도 있다. 어쨌든 증여 목적의 매매 거래는 원래 시장가격보다 훨씬 높거나 낮게 형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동산 전문가들은 “최근 거래된 아파트 가격이 시세보다 훨씬 싸거나 비싸다면 증여인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봐야 된다”고 말한다. 증여 가격을 시세처럼 여기고, 집값이 잡혔다고 간주한다면, 결과적으로 시장을 교란하는 셈이 된다. 증여 여부는 그 부동산의 주소만 알면 등기부 등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부자들이 갖는 분노의 뿌리는?


▎대형마트는 2010년 12월 중단했던 통 큰 치킨의 판매를 최근 재개했다. 그만큼 기업도 여건이 좋지 않다.
현재의 부동산 시장을 ‘매수자 우위’로 단정하는 것 역시 무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거래량 자체가 가뭄에 콩 나듯”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처럼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은 아니다. 전셋값 하락은 집값 하락의 전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 정부 정책에 집 가진 이들이 관망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보다 현실에 가깝다.

2018년 11월 일본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2019년 연간 최저임금은 1인당 GDP 대비 47%로 일본(42%), 대만(34%)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기업가들이 짊어질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다. 인건비가 올라간 만큼 수출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 환율은 둘째 문제다.

통계청의 4월 10일 발표에 따르면 청년층의 확장실업률은 25.1%로 나타났다. 2015년 이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치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4개월 연속 줄었는데,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2개월 연속 늘었다.

수출은 부진하고, 일자리는 늘지 않으니 정부가 택한 대안은 예산 투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7조원을 넘지 않는 규모의 추경 편성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미 문 정부는 470조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을 운영 중이다. 그만큼 세금이 많이 걷혔고, 이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뜻이다.

경제학계에서는 ‘기업의 낙수효과’에 대비해 이를 두고 ‘정부의 분수효과’에 비유한다. 그러나 정부가 분수를 뿜어내려면 세금이 많이 걷혀야 하는데 민간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대기업이 운영하는 마트에 ‘통 큰 치킨’이 다시 등장했다. 예전에는 ‘자영업자들 다 죽인다’는 우려에 거둬들였는데 이제 기업들도 ‘일단 우리부터 죽게 생겼다’며 주위의 눈치를 살피지 않겠다는 태세다. 대기업조차 자기 앞가림에 바쁜 세상이 온 것이다.

그래도 이 시기가 진짜 부자들에게는 기회라는 견해도 나온다. 한 은행 PB는 현 세태를 이렇게 압축했다.

“진정한 부자들은 세금 생각 안 한다. 자산이 저평가된 지금이 오히려 투자 기회라고 볼 수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어디를 갔다 놔도 번다. 오히려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돼 더 가난해질 것이다. 부자들이 갖는 분노의 근원은 세금이 아니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는 것이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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