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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평양] ‘이동통신 가입자 600만 명’ 시대 연 북한 

“평양 지하철에 ‘스마트폰 좀비’ 득실” 

박용한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park.yonghan@joongang.co.kr
와이파이 ‘미래’, 배달 앱 ‘옥류’ 등 관련 서비스 활발
실시간 가격도 확인 가능… 북한판 ‘보이지 않는 손’ 될까


▎4월 7일 평양에서 열린 ‘만경대 상(賞) 국제마라톤대회’에서 외국인 참가자가 마지막 구간을 달리고 있다. 뒤쪽에 평양 개선문이 보인다. / 사진:AFP/ 연합뉴스
휴대전화 5세대(5G) 통신망이 열렸다. 4월 3일 밤 11시 한국 이동통신 3사가 5G 상용화 서비스를 개시했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보다 2시간가량 앞섰다. 버라이즌이 상용화시기를 11일에서 4일로 앞당기자 한국 통신사들이 대응에 나선 결과다. 그만큼 5G 선점 경쟁이 치열하단 방증이다.

평양은 어떤 모습일까. 4월 7일 시내 모습이 사회관계망(SNS)에 가감 없이 공개됐다. 이날 열린 ‘만경대 상(賞) 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찍어 올린 영상이었다. 콜린 브룩스 북한 주재 영국대사도 대열에 함께했다. 평양개선문과 김일성광장 등 평양 명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체육용품 무역회사와 건강보조식품 광고판도 눈에 띈다.


▎콜린 크룩스 북한 주재 영국대사가 4월 7일 트위터 계정으로 평양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 모습을 공개했다. / 사진:콜린
북한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은 더 이상 이채롭지 않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여러 차례 북한 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3월 10일 조선중앙통신은 한국의 총선에 해당하는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를 마친 가족의 기념사진 촬영 장면을 해외로 전송했다.

한 달 앞선 2월에도 북한 관련 SNS에 북한 휴대전화 광고로 추정되는 영상이 올라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버스 지붕에 매달린 북한 남성이 등장한 영상이다. 나중에 확인해본 결과 이 장면은 광고와 거리가 멀었다. 지난해 10월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흥미있는 요술의 세계’ 프로그램의 일부가 최근 재방송되면서 휴대전화 광고라는 착각을 낳은 것이다. 북한 국립교예단 요술사(마술사)들이 선보인 마술이 낳은 해프닝이었다.

통신망은 3G… 와이파이 상용화 잰 걸음


▎3월 10일 한국의 총선에 해당하는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맞아 투표를 하고 나온 가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북한 주민들이 체감하는 ‘모바일 시대’는 어떨까. 북한 휴대전화 사용자는 최근 6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5G 통신망은 언감생심이다. 여전히 3G 통신망을 사용한다.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엄연히 국제 기준에 따른 서비스가 제공된다. ‘미래’라고 이름 붙인 와이파이(Wi-Fi) 서비스가 이미 평양에서 상용화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8일 조선중앙TV는 북한이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아리랑 171’을 ‘미래’에 접속하는 장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북한이 제공하는 데이터 속도는 최대 70Mbps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도 접히는 휴대전화는 이미 과거다. ‘지능형 손전화기’, 즉 스마트폰이 이미 주류로 자리 잡았다. 북한 주민이나 북한 출신 탈북자에게 “스마트폰을 아느냐”고 물으면 실례가 될 정도다.

통신망이 아닌 스마트폰만 놓고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과 성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북한에서 출시된 스마트폰 ‘평양2423’은 운영체계로 안드로이드 8.0을 탑재했다. 당시 한국에서 나온 안드로이드 계열 스마트폰과 동일한 수준이다. 평양 2423은 5.5인치 화면에 배터리 용량도 3000㎃h로, 동기간 국내 시판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북한의 스마트폰을 한국의 그것과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먼저 북한에서만 운용하는 내부망(국가망)으로만 접속할 수 있다. 외부저장장치(SD 카드 등)도 삽입할 수 없다. 한국 영화와 음악과 같은 외부 정보의 유입을 꺼려해 물리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이같은 제약에도 북한 주민들의 스마트폰 사랑은 날로 커져만 간다.

“평양 지하철은 게임이나 영화, 뉴스를 보는 ‘스마트폰 좀비’로 가득하다.” 3월 3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북한 내부 소식을 전했다. 북한에 유학 중인 호주인 알렉시글리가 보내온 글을 통해서다. 스스로를 ‘북한에 사는 유일한 호주인’이라고 소개한 그는 “북한은 고립에서 벗어나 패스트푸드, 스마트폰 그리고 성형으로 옮아가는 과도기 국가”라고 묘사했다. 또 “내가 만난 사람 중 스마트폰을 갖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2000년식 노키아 스타일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73세 문학이론 교수가 전부”라고도 주장했다.

이런 스마트폰은 북한 주민들의 일상 생활에 쏠쏠한 재미를 불어 넣는다. ‘셀카(셀프 카메라)’는 물론이고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해 여러 사람이 함께 게임을 즐긴다. 북한 내부망(인트라넷)에 접속하면 유료 게임을 포함해 수백 종의 게임을 접할 수도 있다. 최근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북한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만화영화를 보여주면서 아이들을 달랜다”며 “한국 마냥 북한의 아이들도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고 전한다.

북한도 이통사 3사 경쟁 구도 마련


▎지난해 6월 평양 주민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관련 뉴스를 스마트폰으로 시청하고 있다. / 사진:평양 교도/ 연합뉴스
북한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배달 앱이 인기다. 재일조총련이 발행하는 [조선신보]는 2015년 4월 배달 앱의 일종인 ‘옥류’를 소개했다. 옥류관 대표 메뉴인 평양냉면을 비롯해 각종 요리를 배달 주문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식료품·화장품·의약품·신발 등 제품을 구매에도 활용할 수 있다. [조선신보]는 “특히 직장에 다니는 가정주부들 속에서 상점에 가지 않고도 필요한 상품을 구입할 수 있어 편리하다는 반향이 많다”고 보도했다.

북한 이동통신서비스는 최근 10년 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북한은 2002년 11월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다 2004년 4월 용천역 폭발 사건 이후 그해 6월부터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용천역을 지나가던 순간을 노리고 휴대전화로 기폭장치를 작동해 폭탄 테러를 시도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2008년 이집트 통신사 오라스콤텔레콤이 북한에 3G 이동통신망을 구축하면서 휴대전화 서비스도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라스콤은 북한 체신성 합작사인 이동통신업체 고려링크를 설립했다. 고려링크 지분 가운데 75%는 오라스콤이, 나머지 25%는 북한 체신성이 갖는다.

아직은 사용 범위가 제한적이다. 고려링크의 휴대전화는 북한 내부 음성통화만 할 수 있다. 국제전화 연결은 불가능하다. 또 온라인 접속도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국한된다.

북한은 최근 고려링크와 별도로 ‘강성네트’와 ‘별’을 설립, 3사 경쟁 구도로 가는 중이다. 그 결과 2010년 50만 명이던 북한 이동통신 가입자 수가 2012년 100만 명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 말엔 580만 명을 기록했다.

이동통신망 확충과 스마트폰 사용자 증가는 사회적 문제를 낳는 법이다. 스마트폰 중독과 그에 따른 건강 악화가 대표적이다. 2014년 ‘2.16예술교육출판사’가 펴낸 [예술교육]은 ‘손전화기 사용에서 주의할 점’을 소개한다. [예술교육]은 “최근 젊은 사람들 속에서 망막박리 증상이 훨씬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며 “그 원인은 바로 밤에 손전화기를 자주 사용하는 데 있다”고 언급한다. 같은 해 근로단체출판사에서 펴낸 [조선녀성]에서도 “잠자기 전에 손전화를 하면 불면증과 머리 아픔, 집중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며 올바른 스마트폰 사용을 권고했다.

더 큰 변화는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상인들이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대금을 처리한다. 배달 완료 여부를 확인하는 데도 스마트폰은 유용하게 쓰인다. 접경지역의 몇몇 상인은 중국 통신망에 연결된 중국산 스마트폰을 통해 중국 도매상에게 주문을 넣는다. 중국 통신망에 연결된 스마트폰 덕분에 상거래 행위가 실시간으로 신속하게 이뤄진다.

물류가 유통되는 방식에도 변화가 온다. 북한 내 개인 택배 차량인 ‘서비차’가 크게 늘었다. 서비차는 ‘서비스’와 자동차’의 합성어다. 신의주와 같은 접경지역으로 들어온 물건을 북한 전 지역으로 배송하는 데 쓰인다. 서비차 운전사도 스마트폰으로 주문을 주고 받는다.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물건을 배달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프라가 바로 이동통신인 셈이다.

이동통신 기반 ‘서비차’, 경제 실핏줄로


▎평양의 휴대폰 매장. 폴더식 휴대전화부터 스마트폰까지 다양한 제품이 거래된다.
이동통신망은 소비재 가격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북한 전역에 유통되는 쌀, 채소 같은 곡물은 지역별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이 제각각이었다. 지역에 따라 가격 편차가 제법 크게 벌어질 때도 있었지만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난 요즘은 가격 평균화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곡물 가격뿐 아니라 공산품 가격도 평균 가격에 가까워진다. ‘보이지 않는 손’에 판매가가 정해지는, 소비자 수요 중심의 가격 결정구조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다.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보다 편리한 환경에서 상거래를 가능케 한 게 이러한 이동통신서비스인 셈이다.

앞으로는 모바일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쓰임새가 확장되리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대북제재 완화 이후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금융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날로 시장경제가 확장되는 북한이 경제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나아가 “북한은 스마트폰 사용자의 확산에 따라 모바일 금융 활성화를 구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황정권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간부는 지난 3월 중국에서 열린 국제금융포럼에서 금융 분야에서의 국가간 협력과 소통 강화를 강조했다. 최근에는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주민금융 활성화를 주제로 한 논문이 북한에서 발표되기도 했다고 조 부소장은 밝혔다.

북한 금융의 전면적 개방 내지 활용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장 휴대전화 요금 납부 방법부터가 간단치 않다. 통신국 등 지정된 장소를 직접 방문해야 요금 납부가 가능하고 금융 네트워크를 위한 ATM기기 설치 작업도 더딘 편이다. 기술력이 아직 충분히 지원되지 못하는 탓이다. 조 부소장은 “북한의 모바일 금융 도입 구상은 거점형(ATM) 통신요금 입금, 모바일 통신요금 송금 , 모바일 결제 시스템, 모바일 종합금융 등 4단계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600만 명에 달한다는 북한의 휴대전화 인구는 주로 평양 등 대도시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적 편중 현상이 아주 클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그 수치에도 거품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이 2~3대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 실질 가입자 수는 400만~50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스마트폰 보급과 이동통신망 확대는 북한 경제에 분명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구체적인 실태는 아직 장막에 가려져 있다고 하는 게 타당하다.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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