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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전문기자의 대학총장 열전] 대학 혁신 파이어니어 유지수 국민대 총장 

“창의·융합형 인재 키워내 공동체·실용주의 정신 구현”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국내 최초로 2개 전공 융합 팀팀 클래스 창안
지역사회 이슈 해결 커뮤니티 매핑도 도입해
학생 감소시대 생존하려면 ‘온리원’ 특성화 절실


▎유지수 국민대 총장이 취임 이후 진행한 수많은 혁신 사업은 여타 대학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국민대(國民大)는 상해 임시정부 지사들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에 뜻을 모아 1946년 세운 ‘국민의 대학’이다.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국민대학관’ 개관 당시 대학 설립 기성회 발기인 대표로 백범 김구 선생이 나섰고, 해공 신익희 선생이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1959년 성곡 김성곤 선생이 재단법인 국민대를 인수한 뒤 1971년 현 북악캠퍼스(성북구 정릉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 창학(創學)의 역사가 말해주듯 국민대는 ‘공동체 정신’과 ‘실용주의’가 교육철학이다. 개인플레이보다는 교수·직원·학생의 팀워크와 팀플레이를, 이론보다는 실용학풍을 교육의 가치로 내세운다.

73년 역사의 국민대는 사실 그동안은 크게 두각을 보이지는 못했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의 그늘에 가려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국민대는 2012년 3월부터 유지수 총장이 대학을 이끌면서 교수도, 직원도, 학생도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창의적 혁신가인 유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인재 양성에 대학의 미래를 걸었다. 경계 없는 학문 생태계 구축과 현장을 학교화하고 학교를 현장화하는 실용학풍 확산을 기치로 커리큘럼 대개혁에 나섰다.

캠퍼스에는 열정과 자신감이 넘실거렸다. 2017~2018년에는 국내 대학 최초로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도 열었다. 자율주행차, 3D 프린팅, 스마트패션, 춤추는 로봇(휴머노이드로봇) 등 교수와 학생의 성과물이 쏟아졌다. 자동차공학과·바이오발효융합학과 등 개성 있는 학과와 국내 최초로 비 이공계 코딩 교육도 치고 나갔다. 지난해부터는 미국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의 와그너대(Wagner College)를 모델 삼아 공대·예술대·법대 등 13개 단과대 간 융합 수업을 개발해 대학가에 바람을 일으켰다. 유 총장은 ‘나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팀 플레이어’를 강조한다. 팀(TEAM)에는 생각하고(Think), 표현하며(Express), 실천하고(Act), 창조한다(Make)는 의미도 담겨있다.

성과는 교육부 평가에서도 나타났다. 2014년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육성사업을 시작으로 수도권 대학 특성화, 창업선도대학 육성,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사업 등에 잇따라 선정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4차 산업혁명 혁신 선도대학과 대학혁신지원 시범(PILOT) 운영 사업에 뽑혀 여타 대학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가장 발전하는 대학, 4차 산업혁명 상징 대학이란 명성을 얻고 있는 까닭이다.

2012년부터 대학 이끌며 혁신경영으로 융·복합 주도


▎2018년 5월 국민대 대운동장에서 국내 대학 최초로 열린 4차산업혁명 페스티벌 전시회에 참여한 유지수 총장이 제품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 : 국민대
4월 11일 꽃이 만발한 국민대 캠퍼스에서 유 총장을 만났다. 마침 그날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던 날이어서 인터뷰의 의미도 남달랐다. 유 총장은 겸손했고 담대했다.

국민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앞서 나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7년간 대학을 이끄셨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신선한 충격을 통해 자신감을 불어넣는 일에 중점을 뒀습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최대한 강하게 만들자며 구성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어요. 사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대학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체 왜 대학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가, 왜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나’를 고민의 출발점으로 생각했죠. ‘사회 수요에 안 맞게 움직이고 있다. 학생과 세상은 저만큼 달려가는데 대학만 굼뜬 게 아니냐. 우리가 바꿔야겠다.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전공 경계를 허무는 창의교육과 융·복합교육을 혁신적으로 진행하셨군요.

“서로 다른 전공 2개를 융합해 하나의 교과목으로 만든 팀팀 클래스(Team Team Class)와 지역사회 이슈를 직접 수집하고 그 정보를 웹 지도에 공유하는 커뮤니티 매핑(Community Mapping) 프로젝트를 도입했습니다. 팀팀 클래스는 응용학과와 도자공예학과 등 서로 다른 두 개의 전공을 융합해 하나의 교과목으로 만든 개념입니다. 2개의 수업을 동시에 들으면서 융·복합 교육을 받고 지역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혁신적인 교육 방법입니다. 우리가 국내 대학 최초로 설계한 전공 프로그램이죠. 건학이념인 실용주의와 공동체 정신을 갖춘 인재 육성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유 총장은 지난해 말 과학과 예술이 만난 도자공예품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도자공예과 학생들이 유약을 화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응용 제품을 만들자, 응용화학과 학생들은 산화물의 발색 현상을 도자공예에 적용해 화학 현상이 제품에 구현되는 실제 사례를 찾아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료의 화학적 특성과 유약의 도자공예적 특징을 결합해 밤에도 전기 없이 빛을 낼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축광유약이 탄생했다. 유 총장은 “제품이 상용화될 수 있도록 창업까지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민대는 올해 1학기에는 팀팀 클래스를 11개 개설했다. ‘생애사 아트북 만들기’(한국역사학과+입체미술 전공), 초 연결 사회를 위한 수리통계학과 통신공학의 만남(정보보안 암호수학+전자공학),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마케팅 전략(경영학 전공+빅데이터 경영통계 전공), 기억과 기념의 사회적 퍼포먼스(사회학과+연극 전공), 쿠민이의 걸릴레오 TV(사업학 전공+영화 전공) 등이다.

구체적으로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나요?

“쿠민이의 걸릴레오 TV의 경우 학생은 지적재산권(3학점) 과목과 온라인 영상콘텐츠 기획개발(2학점) 과목을 동시 수강합니다. 교수들은 각 과목을 강의하다 공동강의를 통해 실용융합 교육을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축광유약처럼 새로운 개념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교과과정 뜯어고치자” 티칭 명성 와그너대 모델 적용


▎2017년 12월 국제 마이크로 로봇대회에서 우승한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는 유지수 총장. / 사진 : 국민대
그런 수업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데 가보자’고 고민하다 와그너대를 가봤습니다. 스탠퍼드대나 하버드대는 항공모함인데 우리는 몇백t짜리 배니까 모델을 적용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교육중심 대학으로 유명한 와그너대를 모델로 삼았죠. 1883년 설립된 와그너대는 재학생 2200여 명의 소규모 대학입니다. 학생 수가 적어 가족적인 분위기였어요. 같이 공부하고 같이 연구하고, 심지어 총장이 청소하는 분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어요. ‘대학은 공동체’라는 교훈도 다시 깨달았고요. 예를 들어 스페인어 클래스와 공동체 정신 과목이 있는데 합반을 하더군요. 미국에는 히스패닉이 사는 안 좋은 동네가 있잖아요. 공부하고 몇 주는 나가서 스페인 사람들하고 대화하면서 그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거예요. 교무처장을 파견해 본격적으로 모델 연구를 시작했죠.”

그게 언제입니까?

“2년 반쯤 됐을 거예요. 교무처장이 가서 자세히 알아왔습니다. 팀팀 클래스와 커뮤니티 매핑이 도입된 배경입니다. 팀팀 클래스는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교수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13개 단과대로 확산했어요. 그런 시도를 많이 하는 단과대는 가점과 예산 지원을 많이 받게 되죠.”

융합은 추상적 총론이 아니라 구체적 각론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자칫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도 있어요.

“맞아요. 선별적으로 해야 합니다. ‘융합이 대세’라고 말하는 건 너무나 일반적인 얘기입니다. 실제로 융합 콘셉트를 실현하려면 사회 수요와 필요한 인재상을 잘 판단해서 해야 합니다. 무조건 융합으로 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인문사회계 쪽은 격려를 많이 하며 융·복합을 강화해야 합니다. 공대 쪽은 다릅니다. 심화 전공을 하고, 융·복합은 대학원에 가서 해야죠. 취업할 때도 100% 직무역량이기 때문에 어설픈 융합이 낭패를 겪을 수도 있어요. 공대의 경우 센서·소프트웨어·기계 등 배워야 할 게 많아요. 엉뚱한 과목을 융합이라고 집어넣으면 죽도 밥도 안 돼요. 서로 다른 전략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전공의 경계를 허무는 융·복합은 어떤 효과가 있나요?

“각각의 응용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응용할 때 어떤 지식이 필요한지 융합지식이 생깁니다. 굉장한 효과입니다. 전공에 대한 자긍심과 의지도 생기고요.”

그런 과정을 통해 어떤 인재를 키우려 합니까?

“경험하지 못하면 지식을 이해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4차 혁명과 호모 헌드레드 시대에는 학생들의 집중·몰입·집념과 사회 공헌이 중요합니다. 미래 사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 거꾸로 생각하고 기존의 원칙을 뒤집는 집중력,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집념을 갖춘 인재를 원합니다. 온통 기술로 가득한 세상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 자신만의 창의력을 가지고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을 키우려고 합니다. 잠자는 혁신 DNA를 일깨워 베스트(best)보다는 온리원(only one) 창의력이 넘치는 인재를 많이 키워야 합니다. 세상에 베스트는 많지만, 온리원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융·복합 사고와 팀플레이를 통해 오리지낼리티(originality)가 있는 독창적인 아이디어, 창의적인 팀 프로젝트가 많이 나오게 할 겁니다. 국민대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교육부도 놀라고, 다른 대학의 벤치마킹 대상도 되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교육 혁신 파일럿 실험을 했는데 국민대가 서면 평가와 대면 평가 모두 1등을 했습니다. 전혀 예상을 못했는데 전율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경쟁에 참여했던 14개 대학도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문의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의 위상이 달라진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국민대는 유독 팀플레이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공동체 정신의 맥락으로 팀 클래스를 만들고 팀플레이를 강조한 것입니다. 물론 스타 플레이어도 많이 나와야 합니다. 스타 플레이어나 스타 팀도 같이 생각하고(think), 같이 표현하고(express), 같이 행동하고(act), 같이 만드는(make) 과정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신입생 전원 코딩 교육… “나도 코딩 매력에 빠진 중독자”


▎2016년 12월 GM PACE 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유지수 총장. / 사진 : 국민대
4차 산업혁명에 밝은 유 총장은 자신은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 중독자”라며 웃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공부를 하던 시절에 코딩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으로 박사 논문을 작성한 것을 계기로 그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그의 관심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주말에는 두문불출하고 인터넷 코딩 강의(UDEMY)를 듣는다. 이공계 교수들도 그의 앞에선 코딩 얘기를 꺼릴 정도로 ‘특별한 취미’가 ‘남다른 실력’이 됐을 정도다. 최근에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파이썬(PYTHON), 장고(Django)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도 공부한다. “자바스크립트는 프로그래머가 원하는 기능을 가진 라이브러리를 사용하면, 원하는 웹을 쉽고 정확하게 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파이썬은 AI 머신러닝에 주로 사용됩니다. 파이썬의 웹 프레임워크이자 웹 개발을 쉽고 빠르게 하는 틀인 장고를 배우면 간단한 웹페이지는 30분 만에 만들 수 있어요. 물론 제대로 하려면 굉장히 어렵지요.”

유 총장은 “코딩을 하면 도전의식이 충만해진다”고 했다. “대체 왜 안 되는지 하나하나 깨쳐 가면서 알게 되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융·복합 교육에도 코딩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2015년부터 1학년 학생들에게 코딩교육을 의무화했어요.”

코딩 실력이 만만치 않으시다는 평이 들립니다.

“관심이 많을 뿐입니다. 경영학 교수는 코딩을 가르치지 않으니까 까먹었죠. 그러다가 경영대에 비즈니스학과를 만들 때 코딩을 가르칠 사람이 없어 서울 삼성동에 있는 썬마이크로 교육센터 가서 자비로 자바를 두 달 배웠어요. 수강생 중 제일 나이 많은 학생이 저보다 20살 어리더라고요.”

1학년 코딩 교육을 의무화했는데 어떤가요?

“코딩 교육은 진짜 어렵습니다. 수시로 컴퓨터공학부 교수들과 토론하고 있어요. 코딩 교육은 반드시 학생 중심으로 이뤄져야 해요. 인문·이공 계열 학생들에게 똑같은 교육을 하면 안 돼요. 배경 지식에 따라 구분해서 가르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죠.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은 비교적 창의성이 좋은 편이고, 이공계는 전공 특성상 한 분야만 깊게 탐구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1학기에 신설한 ‘융합프로젝트 스튜디오’는 무엇인가요?

“창업 역량을 강화해 주기 위한 공간입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다양한 교수들이 다양한 학생들을 교육하는 일종의 ‘다학제 융합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죠. 전공이 다른 4~5명의 학생 그룹을 공동으로 가르쳐 집중도를 높이는 프로그램입니다. 우리 대학 강점인 자율주행 자동차와 소프트웨어·전자공학·로봇시스템 등에서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요즘 신입생들은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유레카 프로젝트’와 ‘S-TEAM 클래스’도 특이합니다.

“유레카도 ‘온리’ 국민대 프로젝트입니다. 선(先)이론, 후(後)실습의 순서를 뒤바꾼 역발상이죠. 제가 경영대 교수였지만 1학년 학생들에게 경영학 원론을 먼저 가르치면 안 된다고 봐요. 경영학 원론은 기업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기능과 분야가 있는지를 배우고 정리하는 개념인데 신입생들은 무슨 소린지 잘 모릅니다. 공대도 똑같아요. 학생들은 이런 이론이 어디에 쓰이는지 잘 몰라요. 학습효과가 뚝 떨어지죠. 그래서 거꾸로 4학년 과목을 2학년 1학기 때부터 하는 겁니다. 선 체험, 후 이론 과정이죠. 탁월한 발명을 뜻하는 ‘유레카’를 따 유레카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어요. 지난해부터 시작했고요. 저학년 때 현장을 체험하고, 고학년 때 개론 수업을 수강하는 학습 과정 파괴입니다. 자동차융합대가 성공하고 있는데 점차 다른 단과대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 선 체험-후 이론으로 역발상 교육


▎2017년 6월 교내 교무위원 IoT(사물인터넷) 1차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유지수 총장. / 사진 : 국민대
‘S-TEAM 클래스’는 무엇입니까?

“이공계는 덜하지만 인문사회계 학생들은 적성에 꼭 맞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꼭 이걸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 2~3년간 방황해요. 4학년이 되면 인생 설계와 진로가 달라 당황합니다. 그래서 신입생들이 4년간 대학 생활을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교수와 직원이 진로 컨설팅을 해줍니다. 창업지원센터와 산학협력단, 경력개발센터 직원들도 나섰습니다. 아마 우리 학교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핵심은 구성원을 움직이는 것인데요, 어떻게 하셨습니까?

“(웃으며) 사실 잘 안 움직이죠. 그래서 보직 교수, 학장, 학부장 ,학과장, 전공 주임교수들과 세미나를 했어요. 아마 열 번도 넘을 겁니다. 학교는 교수와 직원이 안 움직이면 그만이죠. 계속 설득하는 겁니다. 놀라운 건 처음에는 소수가 시작해 어려웠는데, 성공사례를 갖고 하니까 깜짝 놀라 우리도 하겠다고 신청을 했어요. 대학은 인내심을 갖고 이끌어야 해요. 교수들은 ‘논문 하나 더 쓰면 승급·승진하는데 왜 교육에 시간을 쏟아붓나’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안 하겠다는 사람보다 할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인센티브를 주고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 움직이는 거죠.”

4차 산업혁명의 리더이지만 애로점도 있을 것 같네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반드시 만들어 보고 사람을 만나 체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책으로만 공부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 데이터가 없는 게 문제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풀어 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만들어 볼 수가 없어요. 학생들이 어떤 전형으로 들어와서 어떻게 취직을 하는지를 분석하려 해도 현행 법으론 불가능해요. 중국은 규제가 없으니까 날고 있잖아요. 자율자동차든 인공지능(AI)이든 실제 데이터로 실습을 못하면 아무리 이론을 잘 알아도 소용이 없어요.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유 총장은 자동차 전문가다. 한국자동차산업학회 명예회장과 ‘중앙일보 올해의 차(COTY)’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미국 유학 시절,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이 일본에 추월당해 일본 자동차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뤄져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경영학 전공 세부 분야인 생산관리 분야 박사학위 과정 중이었다. 국민대 교수로 부임 후에는 전국 자동차 부품업체 40여 곳을 조교와 함께 카니발을 몰고 직접 찾아다녔다. 산골짜기까지 가서 공장마다 두 시간씩 인터뷰를 했다. “제가 책으로만 공부를 끝내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전 세계에서 저처럼 공장 많이 찾아간 사람은 없을 거예요.” 유 총장이 자동차 전문가가 된 비결이다. 국민대는 자동차 분야에서 국내 최고를 자부한다. 자동차공학·자동차 IT(정보통신)융합·소프트웨어학과 3개 전공의 교과과정을 통합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 분야 교수만 25명에 이른다. 2015년에는 ‘세계 대학생 자작자동차 대회(Formula-SAE)’에서 세계 4위(아시아 1위), 2017년에는 국내 대학 최초로 친환경 자율주행 트램을 선보였다.

부품업체 40곳 찾아다니며 연구한 자동차 전문가


국민대가 자동차에 강한 배경이 있나요?

“1993년이죠. 쌍용자동차가 공중분해 되기 전 학교에 자동차 관련 학과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어요. 쌍용에서 기자재를 많이 줬고, 출발부터 실습 위주로 했어요. 설계 도구인 ‘카티아(Catia)’를 처음으로 가르친 거예요. 현대기아차와 GM코리아에서 국민대 학생들을 써보니까 우수하잖아요. 명성이 나기 시작했죠. 다른 대학 출신들은 1~2년 가르쳐야 하는데 국민대 출신들은 곧바로 하니 말입니다.”

총장께서 날개를 달아주셨군요.

“어느 대학이든 자동차학과를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들어요. 기계과에서 반대하니까. 2012년 총장 취임을 하고 나서 국내 유일의 ‘자동차융합대학’ 단과대를 신설했습니다. 자동차에 빠져 자동차만 고집하는 학생들이 밤샘도 불사하며 공부하는 곳입니다.”

다른 분야는 어떤가요?

“디자인과 자동차, 그다음은 소프트웨어 분야입니다. 벌써 사고를 치기 시작했어요. 소프트웨어융합대가 따로 있는데 소프트웨어 중심대학으로 선정됐고, 학생들이 최우수상도 받았어요. 해커톤 대회를 하는 대학도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 2박3일 경쟁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합니다.”

국민대가 요즘처럼 화제가 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정부 정책에는 명암이 있지 않습니까?

“순기능이 훨씬 크다고 봅니다. 국내 대학은 마치 자동차 엠블럼처럼 순위가 정해져 있어요. 이걸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정부 재정 사업을 통해 어떤 대학이 어떤 분야에 강점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바꾸는 거죠.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브랜드 네임에 안주하면 안 됩니다. 경쟁을 시켜야 합니다. 역기능도 경계해야 합니다. 대학이 지표에 맞추려고만 하면 안 돼요. 창업의 경우 어떤 지원과 어떤 연결을 해줘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애로사항이 너무 많아요. 교육부 입장은 이해되지만, 전부 서류로 만들어야 합니다. 보고서는 80페이지밖에 안 되는데 부수 서류는 산더미 같아요. 자동차 사고가 나면 접수 마감 시간을 못 맞출까 봐 서류 실은 차량 뒤에 백업차가 따라가고…. 교육부도 효율적인 평가 연구를 해야 할 것 같네요.”

국민대는 종합적으론 최상위권은 아닙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 급감 시대에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무위원들에게 전략적 포지셔닝(strategy positioning)을 잘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해요. 전략적으로 시장에서 우리한테 가장 잘 맞는 곳에 자리매김하자는 얘기죠. 물리학과가 ‘양자물리학’을 한다고 해 ‘잘못된 거다. KAIST 이길 수 있느냐. 센서 쪽으로 하자’고 했어요. 신소재 분야도 반도체는 성균관대가 강자인데 이길 수 없다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특성화입니다. 중소형 대학이 조 단위 예산 대학과 똑같은 분야를 경쟁하면 승산이 없어요. 대학만의 ‘온리’ 전공, ‘온리’ 특성화 분야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어요.”

‘스카이 캐슬’에 갇힌 입시와 학벌주의를 어떻게 봅니까?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보다 ‘사교육비’ 줄이는 게 목표인 것 같아요. 실제 성공한 건 없고, 오히려 사교육비만 늘고 있잖아요. 공교육을 더 강화해 공부를 더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에 경쟁 없는 사회가 어디 있습니까? 아프리카 밀림에서 태어날 때부터 경쟁하는 것이 인간인데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동차·화장품·학벌은 항상 최고를 지향한다는 말이 있어요. 벤츠 자동차가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이 팔리고, 외모 지향적이라 화장품이 잘 팔리고, 간판을 중시한다는 말이지요. 그런 고정관념을 깨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교육부 재정사업 효율적인 평가 더 고민해야

원래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나요?

“사실 어릴 때는 멋 모르고 외교관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대학에서 공부를 안 했고, 대학원 가서야 회계학이 재미있었어요. 우연히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들어갔는데 박사학위가 없어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미국 유학을 떠났어요. 원래 교육자가 되려고는 안 했는데 32년째 대학에 있네요.”

총장직을 7년 하셨는데 어떤 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네요. 명예가 아닌 멍에를 짊어진 자리라고 말하는 분도 있고요. 학교에서 잘할 수 없는 사람이 군인과 기업체 사장, 검찰 출신이라는 말도 있죠. 대학은 버튼만 누르면 쫙 움직이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만큼 어렵지만 긍정과 용기, 희생이 필요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유 총장은 한국전쟁 중인 1952년 부산의 한 소금 창고 건물에서 2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소금 창고에서 태어나 성격이 짠 것 같다”며 웃는다. ‘원칙을 지키지 말자’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도, 새로운 교육을 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그런 유 총장의 신념이 국민대에 녹아든 7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간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총장직을 마무리하면 직접 블로그나 사이트를 만들어 늘 안타깝게 생각하던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박스기사] 유지수 총장 약력

■ 1952년 12월 27일생
■ 1971년 경복고, 1975년 서울대 농학과 졸업
■ 1981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학 석사
■ 1986년 경영학 박사(생산관리)
■ 1987년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재무조정처장, 경상대학장,경영대학장, 연구교류처장
■ 2012년 3월 국민대 총장~현재
■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 현대자동차 인재개발원 자문교수,한국어학당 원장

※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고려대 영어교육학과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교육저널리즘으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교육데스크, 정책사회데스크, 사회1데스크, 행정국장, 사회에디터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마음은 따뜻하고 시선은 엄정해야 한다는 저널리즘 소신을 갖고 있다. 공저[한국의 파워 엘리트]와 역서[멀티미디어 조직혁명]이 있다.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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