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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두메산골에 날리는 인문학 향기 ‘파랗게날’ 

매월 마지막 토요일엔 거창에 간다 

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8년간 단 한 번의 휴강도 없는 87회째 인문학 모임… 월간지 [초록 이파리]도 펴내
하토야마, 문정인에서 지리산 토벌대와 빨치산 할아버지까지 시공을 아우르다


▎2019년 3월 30일 거창 동호마을에서 열린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의 강연은 파랗게날 창립 이래 전국적 관심을 끄는 계기가 됐다.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

간혹 인문학 열풍이 불 때면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도 한두 번은 접할 법한 안내문의 한 구절 같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듯 한철 유행이 지나면 이런 류의 인문학 강좌도 속절없이 자취를 감추곤 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오지인 경남 거창군에 뿌리를 둔 인문학 포럼 ‘연구공간 파랗게날’(대표 이이화)은 명멸하는 모임들과는 그 결을 확연히 달리한다. 이 포럼이 매달 마지막 토요일 진행하는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은 올해로 8년째를 맞는다. 2012년 1월 첫 강좌(전양 전 충남대 교수)를 개설한 이래 2019년 3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강좌까지 8년간 단 한 번의 휴강도 없이 87회의 장정(長程)을 꼬박 이어오고 있다. 이 모임에서 펴내는 소식지 격인 월간 [초록 이파리]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어름 어딘가에서 문학·역사·예술·철학 등 다채로운 인문 감성과 만난다”고 ‘연구공간 파랗게날’의 근황을 소개하고 있다.

강좌에 앞서 미리 공부하는 회원들


▎2012년 7월 21일 거창 신원면 소진정에서 ‘18세기 영남 정치세력’을 주제로 열린 인문학 강좌. / 사진 : 연구공간 파랗게날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에서 ‘고택’이라 함은 처음엔 거창군 옹양면 동호리 소재 동호서원을 일컬었다. 동호서원은 조선시대부터 마을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그친 적이 없는 배움의 요람으로 기능했었다. 하지만 현대 들어서는 공식행사 외에는 사람의 발길이 뜸한 후미진 공간으로 밀려나 있다. ‘연구공간 파랗게날’의 이이화 대표는 “인문학 강좌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체온과 향기로 동호서원을 채워 보자고 주변 분들과 뜻을 모았다”고 인문학 모임이 고택에서 태동한 경위를 소개했다.

산수 경관이 수려한 거창은 누정(樓亭, 누각과 정자, 고택) 문화의 보고로도 유명하다. 침류정, 건계정, 모현정, 소원정, 관수루 등 정자와 누각이 유달리 발달한 고장이다. 예로부터 심신을 수양하고 풍류를 즐기는 문화가 발달했고, 후손을 가르치는 열정이 넘치는 곳이라는 게 유년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이이화 대표의 기억이다.

당초 동호서원 중심으로 이뤄지던 이 모임은 이제는 거창을 비롯 함양·산청·성주·담양 등 전국의 고택들을 찾아가는 답사 모임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연구공간 파랗게날’의 저력은 120여 명에 달하는 연구회원, 후원회원에서 나온다. 이들이 내는 일정액 이상의 연구비 또는 후원비가 인문학 연구와 강좌, 소식지 발행의 재정 기반을 이룬다.

더 놀라운 건 지난 8년간의 인문학 모임을 거쳐 간 강사들의 면면이다. ‘이런 시골에서 어떻게 이런 섭외가 가능했을까’라는 물음이 절로 나온다. 당대 각 분야에서 획을 그은 유명 인사를 열거하자면 성유보(한겨레신문 초대 편집국장), 이장무(전 서울대 총장),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장), 함세웅(신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도법(스님,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이주화(이맘,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김기석(청파교회 담임목사), 김연철(현 통일부 장관), 윤구병(동화작가),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박석무(다산연구소 이사장), 이이화(원로 역사학자), 안병욱(역사학자), 문정인(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조갑제(언론인), 하토야마 유키오(전 일본 총리) 등등 이루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더 특이한 건 올 연말까지 1년치 강사 명단이 미리 공개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올 12월 28일 마지막 토요일엔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낸 신경림 시인이 ‘연구공간 파랗게날’ 회원들과 만날 예정이다. 한 해 강사진 면면이 연초에 확정된다. 거창이라는 두메산골에서 열리는 공부 모임인지라 적어도 1년 전에 섭외를 마쳐야 원하는 분들을 모셔올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강사진이 이미 공개되는 덕분에 회원들도 관심 갖는 주제를 미리 공부할 여유도 갖게 된다. ‘연구공간 파랗게날’의 이이화 대표는 “강사진 대부분이 멀리서 오는 귀한 손님인데 우리 회원들이 기본 학습은 하고 강좌에 임하게는 예의”라고 말한다.

강사 선정에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연구공간 파랗게날’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강사로 모실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참여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개방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서울역 대합실에 누워있는 노숙자와 국내 재벌의 총수 간 대화도 가능한 게 ‘연구공간 파랗게날’의 인문학 강좌라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터질 듯한 긴장감- 빨치산과 토벌대의 21세기 만남


▎2013년 7월 27일 남명과 퇴계를 주제로 한 여름 학술토론회에 참여한 파랗게날 회원들과 일반 시민들. / 사진 : 연구공간 파랗게날
8년간 개최한 인문학 강좌 목록은 이 모임의 치열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렬하고도 선명한 충돌을 떠올릴 인물들이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3년 9월 마지막 토요일 거창군 위천면 구연서원에서 열린 강좌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두 언론인이 자리를 함께했다. ‘진정한 관용을 가져오는 진정한 말’이란 주제로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김형국씨와 한겨레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성유보씨가 대담을 나눴다. 또 2014년 8월엔 이수석 당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과 김연철 당시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이 ‘통일의 실마리, 햇볕인가 강풍인가’를 주제로 만났다 이수석 연구위원은 우리 정부가 대북(對北) 원칙을 관철해야 한다는 주장을, 김연철 소장은 새로운 평화전략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지를 각각 펼쳤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한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터질 듯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상봉도 주선됐다. 6·25 한국전쟁 당시의 지리산 빨치산과 토벌대의 만남이 그것이다. 2015년 8월 29일 경남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 전란 당시 국군과 빨치산의 전투가 치열했던 이 유서 깊은 사찰에 파랗게날 회원들과 함께 낯선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란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 유격대로 활동한 송승학·임방규씨와 당시 육군 11사단 소속 군인 신분으로 빨치산 토벌대로 활동한 임명근·김기태씨가 이날의 게스트였다. 60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상면한 이들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행사를 주관한 이이화 대표는 “역사의 격동기에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탓인지 말을 섞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며 그날을 돌이켰다. “긴장한 마음 탓인지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자리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굳었던 감성을 건드리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을 할아버지들이 헤어질 때는 ‘그동안 수고 많았다. 오래 사시라’고 인사를 건네더라.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토벌대와 빨치산 할아버지들의 만남은 이듬해(8월 27일, 벽송사)에도 더 많은 이들이 참가한 가운데 이어졌고 2017년엔 그 후손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남로당 조직부부장 정운창의 딸로 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낸 정지아 작가가 2017년 8월 26일 벽송사를 찾았다. 토벌대 쪽에서는 토벌대장을 지낸 차일혁 경무관의 손자인 차현석 극단 ‘후암’ 대표가 참석했다. 서로 총을 들고 싸운 당사자가 아닌 후손들이어서 그런지 얘기가 술술 잘 풀렸다고 한다. 앞서 두 번의 모임에 참여한 분들 중에는 그 사이 세상을 등진 이도 있다. 파랗게날은 앞으로 남북 관계의 추이를 보면서 필요하다면 이들 할아버지들의 만남을 다시 주선할 계획이다.

파랗게날은 초청 명사 지명도나 이벤트의 강렬함 이상으로 자랑하는 미덕이 하나 있다. 바로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결속력이다. 이 모임은 늘 강연과 토론이라는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지역의 직장인·주부·학생 등 시민이 중심이 되는 토론이 인문학 강좌의 핵심이라고 파랗게날 측은 강조한다. 얼마 전 교직에서 물러나 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한 회원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에도 귀 기울이는 게 인문학을 하는 이의 기본 소양”이라며 “토론을 통해 시야도 넓어지고 사고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고 말했다.

연구공간 파랗게날은 이처럼 정례 오프라인 모임과 더불어 [초록 이파리]라는 월간지도 매월 펴낸다. 통권 75권째 발행되는 2019년 3월호는 부피가 제법 나간다. 총 60쪽에 ▷펴낸이의 편지 ▷3월 강좌 스토리 ▷ 언론에 보도된 시사 관련 칼럼, 대담, 연설 발췌문 ▷ 회원 알림마당과 동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커뮤니티의 소식을 담았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이 모임의 지향점과 활동상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우리는 안으로만 굽지 않는다”

사실 거창은 행정구역은 경남이지만 부산보다는 대구에 더 가깝다. 이념 성향도 보수가 우세하고 지역 국회의원과 군수 모두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이런 곳에서 때론 시대의 통념과 지역사회의 공론에 맞서기도 할 강연과 토론을 갖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에 모두 열려있다고 하지만 풀뿌리 시민단체이자 인문학 공부 모임을 지향하다 보면 현실비판적 시각이 앞서게 마련이다. 지역의 주류에서는 이런 모임에 약간의 불편한 시선을 보낼 때도 있다. 이이화 대표는 “파랗게날이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만큼 안으로만 굽거나 논쟁을 두려워하진 않는다”면서 “주제와 인물에 성역을 두지 않을 뿐 외부의 비판에도 열린 자세로 경청한다”고 말했다.

증자의 가르침 중에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인(以友輔仁)’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 어짐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인문학 모임이 만들어지고 앞으로 걸어갈 길도 이 구절에 잘 녹아 있다고 파랗게날은 설명한다. 이들이 펴내는 월간 [초록 이파리]에는 그들이 인문학을 대하는 방식을 간결하게 압축한 대목이 나온다.

“문학, 역사, 예술, 철학, 말과 글 등 인간의 근본 문제를 성찰하는 인문학은 인간의 내적 성장을 그 이념으로 합니다. 나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게 하고,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 하고, 그리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사이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인문학에 인간의 숭고함이 있습니다.”

[박스기사] ‘파랗게날’ 대표 이이화의 ‘시골에서 인문학 공부하기’ - “성역을 두지 않고 뭐든 묻고 답한다”


▎파랗게날의 이이화 대표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의 진심이 궁금했다”고 말한다.
인문학 포럼 ‘파랗게날’이 8년간 활동을 이어 오기까지는 이 모임의 대표연구원으로 활동하는 이이화씨의 역할이 컸다. 3월 30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의 방문을 앞두고서는 몸무게가 7㎏ 줄었다고 한다. 경남 거창군 웅양면 동호마을 뒤편 언덕 사과 밭에 수백 명이 들어가는 대형 천막을 치고 회원들이 앉는 자리를 마련하느라 입술이 다 갈라질 정도였다. 공중화장실 설치와 음료, 다과를 준비하는 일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 이런 억척스러움이 있었기에 경남의 한 시골 마을에 반듯한 인문학 강좌가 열매를 맺고 꽃을 피워가는 듯했다.

이런 모임을 만든 취지는?

“금기와 터부를 넘어서고 싶었다. 성역을 두지 않고 뭐든 묻고 답하면서 미래를 열어가고자 했다. ‘뭐든지 말하자’가 우리 모임의 모토다.”

8년 동안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모임이 열렸다. 그리고 강사진 섭외나 월간 [초록 이파리] 발행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내 성격이 좀 끈질긴 구석이 있다. 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런 개인적 특성도 작용했다고 본다.”

월례 모임이 무산될 뻔한 적은 없었나?

“한 번 그랬다. 메르스 사태가 전국으로 번지면서 오기로 했던 강사가 피치 못한 사정으로 불참을 통보해 왔다. 그때도 급하게 대타를 내세워 인문학 강좌를 이어갔다.”

비단 거창뿐만 아니라 함양, 산청, 성주 등 지방의 고택을 순회하면서 모임을 열었다고 들었다. 매번 다른 고택을 섭외하는 것도 쉽지 않을 법한데.

“고택의 어른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다. 허락을 받으면 미리 가서 청소도 하고 준비를 한다.”

전직 일본 총리가 다른 나라의, 그것도 아주 오지의 인문학 모임에 온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토야마 전 총리를 초청하게 된 배경은?

“그는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해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일제강점기를 사죄했다. 또 합천을 찾아 원폭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솔직히 그의 진심이 뭔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만나 보자고 마음먹었다.”

“공공기관 도움 없이 자립하는 날 오길”

그래서 결론을 내렸나?

“진심을 담은 장문의 전자메일을 그에게 보냈다. 당신이 말하는 ‘우애’ ‘이웃’의 정의에 대해 알고 싶다고도 했다. 그랬더니 선뜻 초청을 수락하는 게 아닌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오더라. 하토야마를 아는 서울의 지인들이 지원해준 덕도 있지만 본인이 결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감동적이었다.”

명칭이 왜 ‘파랗게날’인가

“내가 시집을 한 권 냈다. 그 시에 나오는 구절에서 ‘파랗게날’을 따왔다. 또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얼어붙은 대지에서 생명의 기운이 파랗게 돋아난다. 우리는 여기서 신비로움과 희망을 본다. 누구는 파랗게 싹이 난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파랗게 날을 세운다는 의미로 파랗게날을 새기기도 한다.”

재정은 어떻게 충당하나

“연구회원, 후원회원이 내는 회비만으론 감당하기 어렵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군청에서 일부 보조를 받는다. 후원 체제가 정착해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립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962년 거창에서 태어난 이이화 대표는 마산고·거창고를 거쳐 연세대에서 사학을 전공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사무국장과 생명평화마중물 책임편집인을 지내고 지금은 인문학적 사유에 관한 인문 평론 [고택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를 집필 중이다.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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