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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인터뷰] 연극계 종횡무진 ‘12년차 배우’ 오종혁 

“가수 오종혁, 이제는 민망하게 들려요” 

유주현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기자 yjjoo@joongang.co.kr
아이돌 ‘클릭비’ 시절 받은 상처, 무대 위에서 치유해
서울시극단 연극 [함익]에서 ‘연우’ 역 열연


▎2013년 1월 1일 새벽, 경북 포항 도구해안에서 1㎞ 바다를 헤엄쳐 나온 오종혁 병장이 동료를 안고 기뻐하고 있다.
잘 나가던 아이돌 가수가 한창때를 지나 뮤지컬 배우로 전향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배고프고 폼 안 나는 연극 무대를 찾는 일은 거의 없다. 예외가 있다. 1999년 데뷔한 원조 아이돌 클릭비의 리드싱어 오종혁(36)이다.

오종혁은 예쁘장한 외모로 200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05년 멤버 김상혁의 음주운전 사건으로 클릭비가 와해되면서 자의반 타의반 공백기를 가졌다.

이후 2008년 뮤지컬 [온에어]로 무대에 데뷔해 [그날들] [공동경비구역 JSA] [노트르담 드 파리] 등 인기 뮤지컬에서 활약해왔다. 그런데 이 남자, 서울시극단의 연극 [함익]에 출연하고 싶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대학로 상업극도 아닌 정통 순수연극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주려는 걸까.

‘줄리엣이 되고 싶었던 햄릿.’ 연극 [함익]의 부제다. 국내에서 가장 바쁜 연출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서울시극단 김광보 예술감독의 셰익스피어 시리즈 중 하나다. 재기 넘치는 젊은 극작가 김은성이 ‘복수극의 원조’로 꼽히는 [햄릿]을 모든 걸 가졌으나 사랑 한 번 못해 본 여인의 비극으로 치환시킨 작품이다.

“좋아하는 선배들이 평소에 김광보 연출님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어요. 배울 점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연극 경험도 적은 제가 고전(古典)에 뛰어들기엔 부족하다고도 생각했죠. 그런데 [함익]은 현대극으로 변주한 고전이니 [햄릿]을 미리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잘하는 일보다 힘든 일 선택했죠”


▎4월 1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상연되는 연극 [함익]에서 배우 오종혁이 ‘연우’ 역할을 맡았다. / 사진 : 서울시극단
후드 티에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나타난 오종혁(36)은 소년 같았다. “빠른 83년생이라 사회 나이로는 벌써 서른여덟”이라고 수줍어하면서 귀를 쫑긋 기울여야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지만, 무대와 작품에 대한 사랑은 진솔하게 들렸다.

“사실 극단 작업도 꼭 해보고 싶어서 무리수를 뒀어요. 자신감은 없었지만 도전한 거죠. 늘 그래왔어요. 잘할 수 있는 것보다 좀 힘들 것 같은 무대를 찾고 있죠.”

[함익]의 주인공은 재벌가 출신의 연극과 여교수인 ‘함익’이다. 덴마크 왕자였던 ‘햄릿’과 병치된다. 오종혁이 맡은 역은 ‘함익’이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하게 되는 제자인 ‘연우’다. 늘 주연을 맡던 그로선 비중이 적지 않냐는 물음에 “역할보다 작품이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극중 연우는 함익의 억눌린 잠재의식을 대리로 표출하는 창구예요. 어두운 인물의 밝은 내면, 여성스럽고 싶은 내면을 대신 표현해내야 하죠. 어떻게 해야 극에 도움이 될지 고민이 많아요.” 또 연우는 “함익에 의해 보여지는 인물이기에” 캐릭터 설정은 쉽지 않았단다. 무슨 얘길까.

“어찌 보면 평면적인 인물일 수 있어요. 여교수를 좋아하는 남학생으로만 읽힐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연습을 거듭하면서 점점 다른 게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함익에게 자극을 주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내가 대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로 인해 함익이 어떻게 변화하려 하느냐가 중요하단 거죠. 결국 변화하지 못하고 다시 자기 안에 갇혀버리지만요.”

‘인간의 목소리로 신의 노래를 부르는 고독한 전사.’ 극중 연우가 ‘햄릿’에 대해 내리는 정의다. 그렇다면 그는 ‘연우’를 어떻게 정의할까.

“그 대사에 빗대자면 ‘가장 순수한 열정으로 깨끗한 열망을 보여주는 친구’랄까요. 주변에 분명히 이런 친구가 많을 거예요. 지금 연기를 공부하는 친구들은 꽤 많이 그럴 걸요. 좋아하는 일 잘하고 싶고, 꼭 하고 싶고. 내가 부끄럽지 않다면 주변 시선 의식하지 않고 배우려 나서는, 그런 순수한 친구들을 대변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극중 재벌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의 속물적인 모습과 대척점에 있는 순수한 열망덩어리죠.”

그는 “그런데 순수하게 선한 사람은 항상 당하게 되는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연출자와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정의로운 사람은 언제나 깨지기 마련인 걸까. 저도 오래 살진 않았지만 살아오면서 언뜻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좀 여우같아야 되나? 연우는 그런 게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이고,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죠. 그러다보니 상처받고 무너지고.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 다시 일어날 것 같아요. 연우는 그런 친구예요.”

무대인들의 열정, 감당 안 될 만큼 좋아


▎연극 [함익]에서 ‘연우’ 역을 맡은 오종혁이 출연진들 앞에서 연습하고 있다. / 사진:서울시극단
2008년부터 무대에 서 왔지만 극단의 작업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평소 극단 작업을 꿈꿔왔다.

“부끄러운 얘긴데, 공연을 오래해 왔지만 기본기 배울 시기를 놓치고 들어왔어요. 그때그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었어요. 극단에서 같이 연습을 하다 보니, 연수단원조차도 너무나 뛰어난 발성과 발음, 표현력을 갖고 있더군요. 기본기에서 밀리면 안 되겠구나 싶어 바짝 긴장하고 있어요.”

그는 가요계에서 공연계로 넘어온 이방인이다. ‘이방인스러움’이 몸에 짙게 뱄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스타일이지만, 서울시극단에서의 이번 작업이 그에게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극단에서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났어요. 선배님들이 먼저 다가와 줘서 지금은 미주알고주알 여쭤보고 있죠. 사실 그전엔 제가 유일하게 뭘 묻는 사람이 뮤지컬 배우인 이석준 선배였어요. [함익]을 하게 된 것도 선배를 통해서고요. 선배에겐 다 내려놓고 계속 조언을 구해요. 연극 [킬 미 나우]에서 처음 같이 무대에 올랐는데, 힘들어하는 제게 형님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배우들 믿고 한번 맡겨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굉장히 많이 달라지더군요. 석준 선배는 열심히 하는 후배에게 한없이 다 베풀어주시는 고마운 선배에요.”

아이돌 오종혁은 ‘내가 아닌 내 모습’


▎오종혁(오른쪽)이 뮤지컬 [그날들]에서 열연하고 있다. [그날들]은 고(故) 김광석이 불렀던 노래들로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이다.
그는 정극 배우들도 어려워하는 작품에 거침없이 도전해왔다. 연극과의 첫 인연은 2014년 [프라이드]다. 이례적으로 긴 러닝타임(180분)과 동성애 문제를 다룬 까다로운 무대에서 신고식을 치렀다. 2년 뒤엔 [킬 미 나우]에서 온몸을 뒤틀며 연기해야 하는 지체 장애인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연극 선배들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2시간 동안 마이크도 없이 멋진 연기를 보여주니까요. 일부로 ‘폼 잡는’ 느낌이 없었어요. 감히 도전할 용기를 못 내고 있었는데, 2014년 김동연 연출님이 [프라이드]란 좋은 작품으로 손 내밀어 주셨어요.”

작품의 무게만큼 첫 도전이 순탄치는 않았을 법하다.

“초반엔 너무 어려웠어요. 마이크 없이 객석 저 멀리까지 전달하는 게 큰 과제였죠. 그걸 조금씩 극복해 가니 어느 순간 너무 재밌는 거예요. 지금은 사실 노래가 더 부담스러워요. 공연 보러 와주는 친구들도 제가 노래할 땐 두 손 꼭 모으고 보고, 되레 연기할 땐 맘 편하게 본다고 하네요.(웃음)”

원조 꽃미남 아이돌 출신으로서 작은 무대에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정반대란다.

“오히려 저쪽에서 힘들었어요. 제가 학교에서 문제아였는데(웃음), 땡땡이치고 나오다 길거리 캐스팅됐거든요. 뭣도 모르고 엉겁결에 시작해 익숙해질 때쯤 사건이 터져서 활동을 쉬게 됐어요. 좀 쉬고 나서 솔로활동을 시작하며 방송국에 갔는데, 신인 때 친하게 지내던 조연출이 보이기에 반가워서 ‘형!’하고 불렀거든요. 그런데 PD가 된 그 형이 제작사 관계자들에게 둘러싸여 제게 거리를 두더라고요. 너무 상처를 받았어요.”

냉정한 연예계에 상처받고 힘들어할 무렵 공연계 러브콜을 받았다. 역시 ‘엉겁결에’ 시작한 공연 한 편에서 만난 사람들의 에너지가 “감당 안 될 정도로 좋았다”고.

“처음엔 이 기운과 열정이 이해가 안가더군요. 저 나이에 이 돈 받고 어떻게 즐겁지? 평생 처음 보는 열정이었죠. 저는 연습생 때도 그런 열정이 없었어요. 시켜준다고 해서 왔는데 연습하라니까 하고, 언제 데뷔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의구심만 있었거든요. 근데 이 친구들은 공연이 올라가든 못 올라가든 맡은 역할이 너무 즐겁고 좋은 거예요.”

그가 상처를 털어낸 때도 그 즈음이다.

“내가 진짜 못났었구나. 나를 여기저기서 다 움직여주는데도 부정적 생각만 가득 차 있었구나. 처음엔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재밌지’ 이상하던 게 같이 땀 흘리며 어울리다 보니 너무 좋고, 한 번 더 해보고 싶었죠. 한 무대, 한 무대 하면서 지금도 그래요. 허락만 해준다면 계속 무대에 있고 싶어요.”

가수로서 미련은 없다. 연기가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예전보다 못 벌지만 즐겁고 행복해요. 좀 더 많은 돈, 화려함 위해 이 행복을 포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노래를 싫어하지 않으니 나중에 언젠가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면 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요즘에 어디 가서 ‘가수 오종혁’이라고 소개받으면 괜히 민망하던데요.”

최근 아이돌 스타들의 일탈은 화려한 연예계의 그늘을 실감케 한다. 오종혁도 아이돌 시절 ‘진짜 내가 아닌 모습을 보여줘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단다.

“일단 저는 담배를 못 끊는 사람이에요.(웃음) 제 성격 자체가 화려하고 고상한 스타일이 아니에요. 별명이 ‘종구’라고, 행동이 그만큼 촌스럽고 멋이 없거든요. 근데 ‘테리우스’처럼 보여야 한다며 ‘말하지 말고 그냥 웃고 손만 흔들어주라’고 하더군요.”

테리우스가 되기 위해 머리도 길러야 했다.

“여자 같다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어요. 2집 때 반 정도 치고 가니 팬이 반이나 떨어져나갔다며 다시 기르라더군요. 사실 제 몸에 큰 문신이 있어요. 아는 형 문신하는 데 따라갔다가 그 형이 너무 아파하는 걸 보고, 어린 마음에 내가 저걸 참아낸다면 나도 뭔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바로 따라 했죠. 큰 차이는 없더군요(웃음).”

“텔레비전을 봐도 연극 무대만 생각났어요”

어느덧 30대 중반에 무대 생활도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소년 같은 이미지 때문에 10대 역할까지 맡기도 한다.

“스스로 민망해질 때가 있어요. 전작 [뱀파이어 아더]도 대본상 17살이었는데, 도저히 이건 아닌 것 같아서 20살 넘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느낌으로 잡았었죠. 스스로 민망해할 때 관객도 100% 어색함을 느끼거든요. 이제 좀 더 남성스러운 역할을 맡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아직 피부에 뭐가 나고 있어서 어려 보이나 봐요.(웃음) 제겐 극복해야 할 과제죠.”

그는 지금 뮤지컬 [그날들]에 겹치기 출연하는 등 쉴 새 없이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고 있다. ‘워커홀릭’이냐 물으니, 매력적인 작품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단다.

“특히 [그날들]은 저에게 뜻깊은 작품이에요. 군대 내무반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전혀 텔레비전에 나가고 싶단 생각이 안 들었어요. 무대만 너무 그리웠거든요.”

오종혁은 2011년 해병대 병 1140기로 입대해 수색대대에서 복무했다. 법정 전역일은 2013년 1월 13일이었지만 수색대 훈련을 끝내기 위해 전역일을 연기하기도 했다.

“군대 있는 동안 무대에서 잊힐까 봐 조바심 나던 찰나에 대본을 받고, 전역한 이튿날 바로 [그날들] 연습실로 갔어요. 그때부터 끊어지지 않는 길의 초석이된 작품이라, 이번에 안 하면 스스로 서운할 것 같더라고요. [함익]과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죠.”

‘원조 아이돌’ 팬덤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런데 아이돌 시절 팬덤과 공연계에서 얻은 팬덤은 서로 문화가 너무 달라 충돌이 일어나곤 한다. 지난 2월 그가 직접 팬 사이트를 새로이 오픈한 이유다.

“조용히 줄 서서 사인 받는 공연계 팬덤과 함성을 내는 아이돌 팬덤은 상극이에요. 팬들 사이에 싸움이 많이 있었어요. 방치도 해보고 부탁도 해봤는데 답이 안 나오더군요. 남세스럽지만 제가 직접 팬 사이트를 만들었어요. ‘여긴 클릭비가 아니라 오종혁의 공간이니 들어올 사람만 들어와라, 이 안에서는 제발 싸우지 말자’는 룰 하나만 놓고 만들었죠. 다행히 첫 모임도 갖고 잘 정착되고 있는 것 같아요. 서로 좋은 추억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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