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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나른한 몸에 활력 주는 으뜸 산채 취나물 

 

전 세계 100여 종 가운데 60여 종 한반도에 자생
항암·항산화는 물론 감기·두통·진통에도 효과


▎취나물은 벌레에 물린 외상 치료에도 쓰인다. / 사진:연합뉴스
참취는 전국의 산에서 저절로 나서 자라는(자생, 自生) 취나물의 한 종으로 봄나물을 대표하는 으뜸 산채(山菜)로 벌써 맛을 보았네! 이맘때 외따로 산나물 캐러갔다가 실종되는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내 어릴 적 만해도 뒷산자락에서 많이도 뜯었으나 지금은 온 산을 거목들이 짙은 그림자로 지어버려 눈을 닦고 봐도 없다. 산나물들은 하나같이 반그늘에 나는데 숲이 그늘을 지워서 그렇다. 오죽하면 시골사람들이 산불이나 한번 나버렸으면 좋겠다고 반 농담을 하겠는가. 그래서 취나물이나 고사리들 같은 산채를 밭에서 키워먹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자연산 취나물을 채취하거나 재배해 먹는데, 참취는 씨를 뿌려 키우는 종자 번식이나 초봄에 포기나누기(분주, 分株)를 해서 재배한다. 필자도 근래 자드락텃밭의 비탈언덕바지 빈터에 씨앗을 받아 뿌렸더니만 많이 나서 넉넉히 잘라먹고 있다. 씨앗이 작아 골고루 파종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마구 흩어 뿌렸더니만 처음에는 아주 배게 났으나 나중에 저절로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더라.

참취는 키 크고 잎 넓은 풀로 산불·홍수 등으로 벌채(伐採)한 뒤 새롭게 생겨난 이차림(二次林)이나 조림지(造林地) 등 햇빛이 잘 드는 곳에 곧잘 자란다. 그러나 어두운 자연림에서는 절대 나지 않는다.

참취(Aster scaber)는 국화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다년초)로 우리나라 도처의 산에서, 반그늘에 습기가 많은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다. 참취는 잎이나 줄기에 억센 털이 있는데, 학명(學名)의 속명(屬名)인 애스터(Aster)는 취나물을 뜻하고, 종소명(種小名)인 스카베르(scaber)는 잎이 거 을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취 종류는 세계적으로 100여 종이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60여 종이 자생하며, 그중 24종을 식용한다. 참취·개미취·각시취·미역취·수리취·곰취 따위로 참취 수확량(채취량)이 가장 많다. 그런데 이른 봄에 제일 먼저 시장에 나는 봄기운 가득한 취나물은 울릉도산 취나물이다.

참취는 키가 1~1.5m이고, 잎은 줄기 끝으로 갈수록 작아지면서 가늘고 길어진다. 뿌리나 땅속줄기에서 직접 땅 위로 돋아난 뿌리잎(근엽,根葉)은 잎자루가 길고, 심장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굵은 톱니가 있으며, 길이 9~24㎝, 폭 6~18㎝로 잎 양면에 거친 털이 있으나 꽃이 필 때쯤이면 없어진다. 그런가하면 줄기에서 나온 줄기잎(경엽, 莖葉)은 어긋나기(잎이 마디 하나에 한 장씩 좌우로 방향을 달리 해 나는 것)하고, 잎자루에 날개가 있으며, 양면에 거친 털이 있다.

국화과식물이 다 그렇듯이 보드라운 갓털(관모, 冠毛)이 달린 종자는 바람을 타고 퍼져나간다. 한자명인 동풍채(東風菜)는 봄바람(東風)이 불 때 어린잎을 채취해서 나물로 해먹는 습속(習俗)에서 비롯된 명칭이고, 한글 이름 참취는 취나물 가운데 으뜸나물이란 뜻이다.

충매화(蟲媒花)로 흰색 꽃은 8~10월에 피고, 머리를 닮아 두화(頭花)라 부르는 꽃송이의 지름은 1.8~ 2.4㎝로 가지 끝과 원줄기 끝에 달린다. 국화과식물이 갖는 두화는 6~8개의 혀꽃(설상화, 舌狀花)과 샛노란 대롱꽃(관상화, 管狀花)이 있다.

설상화란 ‘혀 닮은 꽃잎’이란 뜻으로 모든 국화과식물의 꽃송이 둘레에 넓적한 꽃잎이 둘러나니 길녘의 코스모스(살살이꽃)는 그것이 여덟 장이다. 코스모스 꽃의 큰 설상화는 비록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벌레들을 끌어 모아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그리고 관상화는 꽃 중앙에 가득 난 볼품없는 자잘한 꽃으로 씨앗을 맺는다.

떡에 넣어 ‘수리취절편’으로 먹기도

꽃줄기가 아래에서 위로 차례대로 달리는데 아래의 꽃줄기가 길고 위의 것은 짧아서 꽃들이 거의 편평하고, 가지런해 접시를 엎어 놓은 것 같이 둥글고 크다. 열매는 11월경에 맺고, 종자 끝에 달린, 꽃받침이 하얗게 변한 갓털의 길이는 3.5~4㎜이다. 바람에 낙하산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원산지는 유라시아로 한국·일본·중국·러시아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걸고 습한 땅에서 자란 취나물은 잎사귀도 크고 보드랍다. 취나물이 자라면 칼이나 낫 등으로 밑동을 베고 보통 세 번을 거둬들인다. 맨 먼저 딴 것이 가장 맛이 좋고 향도 진하다. 6월쯤이면 잎도 억세고 향기도 점차 옅어진다. 취나물은 잎과 줄기에 솜털이 선명하고, 줄기는 붉은색이 감돌며, 특유의 향이 진한 것이 좋다.

참취의 여린 순이나 잎줄기는 쌈으로 먹고, 살짝 데쳐서 갖은 양념에 무친 취나물무침은 봄날의 나른한 몸에 활력을 준다. 취나물은 단백질·칼슘·인·철분, 비타민 B1, 비타민 B2 등이 함유돼 있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맛과 향기가 뛰어나다.

참취는 고사리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묵나물이다. 묵나물이란 봄여름에 뜯어 갈무리했다가 이듬해에 먹는 산나물이다. 예전엔 이른 봄에 야채가 없었지만 요새는 한겨울에도 풋고추나 상추를 먹는 세상이 됐다.

때때로 뱀에 물린다거나 벌레에 물린 외상 치료에 쓰고, 면역·항암·항산화·항염증에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감기·두통·진통에 효과가 있어 한약재로도 이용된다. 세상에 어디 약이 안 되는 풀이 있던가. 식약동원(食藥同源)이요 의식동원(醫食同源)인 것을!

취나물 가운데 ‘수리취’는 어린잎을 떡에 넣어 먹는다. 떡취라고도 하는데 단오에 따로 차려서 먹는 음식(절식, 節食)인 수리취절편으로 유명하다. 옛날에는 다 자란 잎을 말려서 부싯깃(부시를 칠 때 불똥이 박혀서 불이 붙도록 부싯돌에 대는 물건)으로 썼고, 전초(全草)를 지혈·부종·토혈 등에 약용했다.

‘곰취’는 생으로 먹을 수 있는 산나물이라 이용가치가 더욱 높아서 강원도 인제·양구 등지에서 농부들이 밭에서 대량으로 길러 부수입을 짭짤하게 올린다고 한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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