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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복거일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여진 이름 (제1부 광복) 

제16장 사이판 (4)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배는 일본 정치권의 책임 공방과 세대 교체로 이어졌다. 일본의 해외 팽창 정책의 구심점이었던 도조 내각은 천황과 군부의 신뢰를 동시에 잃었다.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지고 본토가 미국의 직접 공격에 노출됐다는 공포가 열도를 삼키고 있었다. 승리를 움켜쥔 미국도 지나치게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데 대한 책임을 두고 군부 내 갈등이 격화되고 있었다.
'필리핀 해 싸움’과 ‘사이판 싸움’에서의 패배는 일본군에 결정적 타격이 되었다. 항공모함 함대가 궤멸된 일본 해군은 미국 해군에 맞설 길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급급했고, 태평양의 여러 섬들에 분산된 일본군 부대들을 연결해 주는 임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 제해권과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한 미군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때를 골라 전력을 집중시켜 작전할 수 있어서, 싸울 때마다 상대적으로 작은 손실을 입으면서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반면에, 일본 육군은 필요한 곳에 때 맞춰 병력을 보낼 수 없었었으므로, 요충들에 큰 부대들을 주둔해도 조만간 병력과 보급의 부족으로 패배하게 마련이었다.



사이판의 전략적 중요성은 패배의 영향을 크게 증폭시켰다. 사이판을 잃어 남태평양의 기지들과 본토를 연결할 길이 사라지면서, 그 기지들에 주둔한 병력들과 무기들이 전쟁 수행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절대 국방선’의 핵심인 사이판이 미군에 함락되자, 본토까지 미군의 직접적 공격에 노출되었다. 이제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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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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