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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 그랜드 CEO in KOREA (4)] ‘취임 1년’ 구광모 LG 회장을 읽는 7가지 키워드 

선택과 집중으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한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40대에 ‘존경받는 기업’ LG 회장 취임, 겸손한 실용주의로 호감 상승
현장중시 행보와 외부 수혈 마다 않는 인적 쇄신, 기술력으로 ‘1등 LG’ 목표


▎구광모 LG 회장(앞줄 왼쪽 3번째)이 지난 2월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 테크 컨퍼런스 현장을 찾아 연구 인력들과 만났다. / 사진:연합뉴스
구광모(41) LG 회장은 2018년 6월 29일 ㈜LG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9년 5월15일 LG그룹의 차기 동일인(총수)이 구 회장이라고 지정했다. 취임 1년을 앞두고, 공식적인 LG의 수장으로서 전면에 나설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구본무 회장이 2018년 5월 20일 별세한 뒤, LG는 구광모 당시 LG전자 상무 중심의 승계체제에 돌입했다. 다음 달 29일 ㈜LG 임시주주 총회에서 일약 회장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고(故) 구본무 회장의 동생이자 구광모 회장의 작은 아버지인 구본준 ㈜LG 부회장은 바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구 부회장이 일정 기간 후견인 역할을 맡아줄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이 빗나갔다.

‘장자(長子) 승계’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LG 가문의 유교적 가풍이 발현된 것이다. LG는 구인회, 허만정 공동 창업주가 1947년 창업한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에 모태를 두고 있다. 구 창업회장이 1969년 12월 31일 세상을 떠나자 맏아들인 구자경 회장이 럭키금성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한 그룹을 이어받았다. 교사로 일하다 ‘장자 승계 원칙을 따르라’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기업가가 된 구자경 회장은 1995년까지 재임했다. 건강에 별 문제가 없었음에도 70세가 되자 큰아들인 구본무에게 회장직을 물려줬다. 구본무 회장은 취임 당시 매출 30조원이었던 럭키금성을, 2017년 매출 160조원의 글로벌 LG그룹으로 키웠다.

동업자였던 허씨 가문은 2005년 계열분리를 통해 GS그룹을 차렸다. 혈육끼리도 분쟁이 비일비재한 판인데, 지분 다툼 없이 마무리하는 품격을 보여줬다.

이런 구씨 가문은 2004년 12월 가족회의를 통해 중대결단에 합의했다. 구본무 회장이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의 양자 입적을 결정한 것이다. 구본무 회장은 그해 사고로 하나뿐인 친아들을 잃었다. 슬하에 딸 둘이 있었지만 LG家는 장자 승계가 대원칙이었다.

당시 26세의 구광모는 미국 뉴욕 로체스터 인스티튜트 공대 재학 중 군 복무를 위해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임직원 23만 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대기업 LG의 최고 경영자 지위를 운명이자 소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한 이래 이듬해 과장, 2011년 차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2013년에는 LG전자 HE(홈 엔터테인먼트)부문 부장이 됐다. 다시 2년 뒤 2015년 ㈜LG 시너지팀 상무 겸 LG전자 B2B 사업본부 ID(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 사업부장으로서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2018년 6월 ㈜LG 대표이사 겸 그룹 회장으로 추대됐다. 그로부터 약 1년, 회장 구광모는 무엇을 목격했고, 실행했고, 생각했을까. 취임 후 구 회장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의도 트윈타워 LG 본사 30층 회장실에 매일 출근한다. 그 외에는 동선을 굳이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는 지난 1년간의 공개된 행적들일 수밖에 없다.

월간중앙은 ‘4세 경영 시대’의 포석을 짜고 있는 구 회장의 지향성을 7가지 키워드로 압축했다. 이는 곧 ‘뉴LG의 길(New LG Way)’이기도 할 터다.

01. 겸손 | “회장이 아닌 대표로 불러달라”

구광모 회장은 ㈜LG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된 자리에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동안 LG가 쌓아온 고객가치 창조, 인간존중, 정도경영이라는 자산을 계승·발전시키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지키는 보수(保守)가 아닌 개선하는 보수(補修)를 선언한 것이다. 큰 틀에서 선대 회장들의 철학을 존중하되, 시대정신과 산업 트렌드에 맞춰 바꿀 건 바꿔 나가겠다는 소신이다.

재계는 위계적인 사회다. 장유유서의 문화가 견고한 한국에서 40대 구 회장이 취임 직후부터 소신 발언을 쏟아내긴 어려운 구조다. 구 회장이 아직 나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20일 방북은 LG 회장으로서 첫 외부 이벤트에 해당했다. 그러나 구 회장은 “많이 보고 듣고 왔다. 그러나 아직은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대한민국 4대 그룹 총수로서 존재감이 희미했다’는 평가도 없지 않았겠지만 말을 아끼는 자체가 역설적으로 일종의 메시지일 수 있다. 정연아 이미지컨설턴트협회 회장은 “구 회장의 첫인상은 공대 모범생”이라고 분석하며 “단정하다, 반듯하다, 젊다, 실용적이다 등의 이미지로 떠오른다”고 압축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기업가 같은 이미지와 LG의 전통 이미지가 부합하는 겸손함을 동시에 담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는 2019년 3월 자산총액 기준 30대 재벌을 대상으로 이미지 조사를 했는데 가장 호감 가는 기업 1위가 LG로 집계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가장 신뢰받는 기업인 조사에서 취임 1년도 되지 않은 구광모 회장이 1위로 나타났다. LG그룹을 향한 시민들의 신뢰도와 구 회장에 대한 기대감을 읽을 수 있다. 구 회장에 대해 우호적 이미지를 갖는 이유는 정연아 회장이 평한 것과 거의 일치했다.

실제 구 회장은 “회장이 아닌 대표로 불러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회장 취임식도 열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넥타이도 매지 않는다. 겸손과 소탈함으로 긍정적 인상을 주고 있는 구 회장에게 남은 과제는 CEO로서의 추진력을 검증받는 일이다. 정 회장은 “국민과 소비자는 구 회장에게 신중함과 추진력의 이미지를 모두 확인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02. 현장 | 데뷔 무대를 LG사이언스파크로 정한 이유


▎구광모 회장(오른쪽) 앞에는 LG의 미래 성장 모델을 개척해야 된다는 책무가 놓여있다. / 사진:LG
LG그룹 수장이 된 뒤, 구광모 회장의 첫 방문지는 LG사이언스파크였다. 취임 후 약 50일이 흐른 2018년 9월 12일이었다. 40대 젊은 총수의 선택은 ‘현장’이었던 것이다.

서울시 강서구 마곡에 위치한 사이언스파크는 LG의 융복합 R&D(연구·개발) 클러스터다. 2018년 4월 문을 열었다. 국내 최대의 글로벌 연구단지로 꼽힌다.

구 회장 취임 이후 권영수 ㈜LG 부회장을 비롯해 안승권 LG사이언스파크 사장, 박일평 LG전자 사장, 유진녕 LG화학 사장, 강인병 LG디스플레이 부사장, 김동수 LG 테크놀로지 벤처스 대표 등 계열사 R&D 책임 경영진이 동반했다. 구 회장은 “사이언스파크는 LG의 미래를 책임질 R&D 메카로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중요성이 계속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데뷔 무대에서 구 회장은 “미래 성장 분야의 기술 트렌드를 빨리 읽고 사업화에 필요한 핵심 기술 개발로 연결할 수 있는 조직과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런 인재를 발굴하고, 조직 문화를 유도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그 촉(觸)을 놓치지 않으려면, 현장을 멀리할 수 없다는 것을 구 회장은 자각하고 있었다. 그는 “LG의 미래에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한 사이언스파크에 선대 회장께서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셨듯이 나 또한 우선 순위를 높게 두고 챙겨나갈 것”이라며 “최고의 인재들이 최고의 연구개발 환경에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고, 저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탈권위적인 젊은 총수는 엘리베이터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 구본무 회장의 가르침이었다. 구본무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존댓말을 건넨 경영자였다. 수행비서 없이 LG 야구를 보러 잠실야구장을 몰래 찾을 때도 있었다. 인(人)의 장막에 싸여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환경을 평생 경계한 것이다. 그런 현장존중의 정신이 전수되어 구광모 회장의 첫 공식행사부터 발현된 셈이다.

03. 책임 | 상속세 정공법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다

LG는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역사를 갖고 있다. 구인회 LG 창업회장은 1942년 중국 충칭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찾아온 백산 안희제 선생에게 당시 돈으로 1만원을 건넸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액수였다. 구 창업회장은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請)에 힘을 보태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이 발설되면 일제의 핍박을 받으리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독립운동을 도왔다. 구 창업회장의 독립운동 지원은 아버지의 영향 덕분이었다. 아버지 구재서도 상해 임시정부를 돕고자 당시 돈 5000원을 보낸 바 있었다.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 LG하우시스는 2015년부터 현충시설 개보수 사업을 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충칭 임시정부 청사, 서재필기념관, 윤봉길기념관, 이회영기념관, 안중근기념관, 만해기념관, 안창호기념관 등 총 7곳의 독립시설 관련 시설을 개·보수했다. 2016년부터는 국가유공자와 국내외 참전용사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도움을 주는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구본무 전 회장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義人)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뜻을 세우고, 2015년 9월 LG 의인상을 만들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104명의 의인에게 위로금을 전달해왔다. 또 LG복지재단은 1995년부터 키가 크지 못하는 증상을 겪고 있음에도 경제적 사정 탓에 치료를 못 받는 아동들을 위해 LG화학이 개발한 성장호르몬제 ‘유트로핀’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LG의 사회적 책임 정신은 구광모 회장의 상속세 납부에서도 증명됐다. 구본무 전 회장의 ㈜LG 보유주식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상속세 9215억원이 발생했다. 국내 역대 상속세 최대 금액임에도 구 회장은 5년에 걸쳐 전부 내겠다고 약속했다.

04. 쇄신 | ‘외부 인재영입 1호’는 신학철 발탁


▎구광모 회장(오른쪽 셋째)은 이재웅 쏘카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평양에서 지난해 9월 기념촬영을 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사진을 찍어줬다. / 사진:연합뉴스
구광모 회장의 첫 인사는 2018년 7월 16일 실행됐다. LG유플러스 권영수 부회장을 ㈜LG 부회장으로 불러들였다. LG유플러스 부회장 자리에는 ㈜LG 부회장이었던 하현회 부회장을 보냈다. 즉 두 사람을 맞트레이드한 셈이다. 이로써 권 부회장은 지근거리에서 구 회장을 보좌하게 됐다.

이후 구 회장은 2018년 11월 27~28일에 걸쳐 ‘혁신 인사’를 단행해 대내외에 메시지를 전파했다. LG는 ‘미래 준비와 성과주의에 기반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그 결과 신규 임원인 상무 134명이 대거 발탁됐다. 2004년 완료된 GS와의 계열분리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승진이었다. 아울러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대표이사 CEO 및 사업본부장급 최고경영진 11명을 교체했다. 그 공백을 구 회장은 외부 영입 등 쇄신 인사로 보강했다.

그 상징적 조치가 LG화학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에 취임한 신학철 전 3M 수석 부회장의 발탁이었다. 신 부회장은 1984년 3M 한국지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이래 필리핀 지사장, 3M 미국 본사 비즈니스 그룹 부사장을 거쳐 한국이 최초로 3M의 해외사업을 이끌며 수석 부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구 회장의 외부인사 영입 1호 케이스가 된 신 부회장은 LG화학의 정보전자사업본부와 재료사업부를 합치고, 첨단사업 본부를 신설했다. 2019년 4월 ‘여수산업단지의 LG화학 폴리염화비닐 공장이 대기오염물질 측정값을 조작했다’고 발표하자 곧바로 사과 성명을 내고 공장을 폐쇄했다. 기술 유출 혐의를 두고 경쟁사 SK이노베이션과의 국제 소송전도 불사하고 있다. ‘LG의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 밖에 홍범식 베인&컴퍼니 대표를 ㈜LG 경영전략팀 사장으로, 김형남 한국타이어 연구개발 본부장 겸 부사장을 ㈜LG의 자동차부품 팀장으로, 은석현 보쉬코리아 영업총괄상무를 LG전자 VS(자동차에 들어가는 전기·전자 부품) 사업본부 전무로, 김이경 이베이코리아 인사 부문장을 ㈜LG 인사팀 인재육성 담당 상무로 영입했다. 구 회장은 여성 임원 7명을 신규 선임했고, LG전자 중국 동북 지역 영업담당 쑨 중쉰을 상무로 승격하는 등, 외국인 임원 확대 기조도 유지했다.

05. 기술 | “고객의 삶을 바꾸는 감동을 만들자”


▎구광모 체제에서 LG는 성과주의에 입각한 인사와 실용주의적 그룹 포트폴리오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구광모 회장은 2019년 첫 대회 행보로 LG 테크 컨퍼런스를 선택했다. 2월 13일 LG사이언 스파크에서 이공계 석·박사 과정 R&D 인재 350여 명을 대상으로 개최한 행사다. 2012년부터 시작된 테크 컨퍼런스는 LG의 기술혁신 현황과 비전을 살피는 무대다. 종전까지 서울 시내 호텔에서 열었는데 구 회장은 LG사이언스파크로 장소를 옮겼다.

LG는 투자비 4조원을 투입해 2020년까지 2만2000여 명의 연구 인력을 집결시키는 사이언스파크를 조성하고 있다. 축구장 24개 크기의 땅에 건물을 올리고 있다. 이미 2017년 10월 입주가 시작됐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LG생활건강, LG하우시스, LG유플러스, LG CNS 등 핵심 계열사가 입주했다.

구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LG 대표로 부임하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사이언스파크이고, 사무실을 벗어나서 가장 자주 방문한 곳도 사이언스파크를 비롯한 R&D 현장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객과 사회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 싶은 LG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믿음과 의지를 실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LG가 국민과 고객들 사이에서 신뢰할 만한 그룹으로 인정받는 원천은 기술에 있다. ‘LG 제품이라면 믿고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로 그 정신을 압축했다.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찾아 먼저 도전하는 구인회 창업회장의 개척정신을 재정립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구본무 회장이 제시한 ‘1등 LG는 고객이 신뢰하는 기업이자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기업’으로 이어졌다. 이를 계승한 구광모 회장은 “LG가 고객의 삶을 바꾸는 감동을 만들자”라고 표현했다. 구 회장은 4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그곳에 유학 중인 R&D 석·박사 인재 유치를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06. 미래 | “시장을 선도하는 영속적인 LG가 목표”


▎LG는 혁신기술을 통한 고객 신뢰 확보에 존재 이유를 두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선전에서 열린 중국정보기술엑스포에 LG디스플레이 제품이 전시됐다./사진:LG디스플레이
구광모 회장은 지난 3월 26일 취임 이후 첫 영업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LG는 연결회계 기준으로 매출 11조9448억원, 영업이익 1조9638억원의 성과를 달성했다.

그럼에도 구 회장은 안주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의 융복합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산업 간 경계부터 기업들의 경쟁 구도까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LG는 자회사들과 함께 시장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시장을 선도하고 영속하는 LG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LG전자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에 관한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로봇 산업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지난해 7월 17일 한국 로봇기업 로보스타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8월에는 캐나다 토론토에 해외 첫 인공지능 연구소를 설립했다. 2019년 1월에는 네이버와 로봇 연구개발 협약을 했고, 4월에는 CJ푸드빌과 식당용 ‘푸드 로봇’ 공동 개발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LG화학은 지난해 7월 캐나다 네마스타리튬사와, 9월 중국 쟝시깐펑리튬사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재료인 수산화 리튬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7월 2조원을 투자해 중국 난징에 배터리 2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여수와 당진에 공장 증설(2조6000억원 투자)과 산업단지(2000억원 투자)를 조성할 계획이다.

9월에는 베트남 완성차 업체 빈페스트와 사업협약을 맺고, 미국 자동차 접착제 업체 유니실을 인수하는 데 1500억원을 투입했다. 2019년 4월 2일에는 미국 듀폰사로부터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핵심 플랫폼이라 할 솔루블 OLED 재료기술을 인수했다.

LG유플러스는 2019년 2월 14일 ‘CJ헬로비전 지분 50%+1주를 8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유료방송 시장의 경쟁력을 확보한 동시에 5G 시대에서 통신업계 판도를 흔들겠다는 행보다.

07. 실용 | LG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하자

구광모 회장의 ‘실용’은 언행은 물론, 패션과 헤어스타일에서도 묻어난다. 젊은 해외 유학파의 실용적 감각은 LG의 미래 행로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구 회장이 등판한 이후 LG는 ‘선택과 집중’이 일상적 화두가 됐다. ‘이 사업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필연성에 관한 답을 주지 못하는 업종은 그동안 아무리 주력회사였을지라도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LG전자의 연료전지 사업부 청산, LG디스플레이의 일반 조명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사업 철수 등이 결정됐다. LG전자는 4월 25일 경기도 평택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베트남 하이퐁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한 생산 거점 재배치 전략이다. LG전자의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 사업의 누적 적자는 3조원이다. 반등 기미도 잘 보이지 않는다. 구 회장은 LG전자 사업 본부장을 대부분 유임시켰지만 MC사업본부만 변화를 줬다. 2013년 8000명이 넘었던 이 부문 인력을 4000명까지 줄였다. 평택공장 스마트폰 생산 인력은 다른 사업장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이에 관해 LG는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그러나 그룹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구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여러 경로를 통해 추론할 때, 구 회장 체제에서 LG는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을 피하지 않을 듯하다. ‘LG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노선이다.

운동선수가 성적으로 말하듯, 경영인은 실적으로 평가받는다. LG의 전임 회장들은 70세 안팎의 나이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 관례에 비춰보면 구 회장에게는 향후 적어도 30년의 시간이 남아있는 셈이다. LG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 전체가 구광모 회장을 주시하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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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호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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