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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분석] 그때 그 시절 우리를 열광케 한 ‘한국판 히어로’ 

‘태권V’ 발차기에 열광하고, ‘김두한’ 주먹에 희열 느끼다 

이태림 월간중앙 인턴기자 rim_ki@naver.com
시대상과 맞물린 대중문화 속 영웅들 국민 시름 덜어줘
인기 캐릭터에 따라 당시 사회상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진행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격변의 시기였다. 매 시기마다 국민들의 애환과 시름을 달래준 것은 대중문화 속 ‘난세의 영웅’이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함께 국민들의 마음속에 희망과 동경의 불을 지켰던 아련한 우리의 ‘영웅’을 반추해본다.

1970년대


국산 만화영화가 거의 없던 70년 대는 [철인28호] [우주소년 아톰] [마징가 제트(Z)]와 같은 일본에서 건너 온 로봇 만화가 브라운관을 주름잡았다. 70년대 후반 들어 한국 로봇 만화영화의 효시격인 [로보트 태권V]가 개봉, 서울 관객 18만명을 동원하는 등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78년 [똘이장군-제3땅굴 편]이 흥행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최초의 극장용 장편 반공만화영화인 똘이장군의 ‘북한괴뢰’와 맞서는 액션과 주제가는 아이들의 정서를 사로잡았다.

※ 박정희 정부는 1972년 비상계엄을 선언한 뒤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시켰다. 대통령에 권한을 집중시키는 이른바 ‘유신시대’가 열렸다. 동시에 “100억 달러 수출, 1000달러 소득, 마이카 시대”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경제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웠다. 1973년에는 영화법이 개정되면서 검열에 통과하기 쉬운 아동용 영화 제작이 늘기 시작했다.

1980년대


1986년 [영웅본색]은 한국 극장가에 ‘홍콩 누아르’ 시대를 열었다. 홍콩 영화는 [대부]와 같은 서양 갱스터 무비와 달리 한국 관객과 공유하는 아시아적 문화 코드가 있었다. 특히 의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홍콩 영화 속 인물들은 민주화 등 정치적 격변기에 놓인 한국 남성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긴 버버리 코트를 걸친 주윤발의 카리스마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영웅본색2]는 서울에서만 26만여 관객을 동원했고, 주윤발은 ‘사랑해요 밀키스’라는 광고 카피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돌리려는 ‘3S(영화·스포츠·섹스) 정책’을 펼쳤다. 88서울올림픽 유치 성공 이후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학교에서는 두발과 교복이 자유화됐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민주화에 대한 시민의 열망이 폭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같은 해 6월,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지며 민주항쟁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1990년대


홍콩영화의 인기로 위축된 한국영화 시장을 살린 건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이었다.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가 정치 슬로건이었던 1990년대 초반, 독재에서 갓 벗어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보통사람 시대’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장군의 아들] 속 김두한은 보통사람이지만 일제강점기 야쿠자와 대적하는 영웅이었다. 서양 갱스터 무비와 홍콩 누아르로 액션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김두한’이라는 실존 인물이 일본 폭력조직과 맨주먹으로 맞서 싸우는 ‘한국식’ 액션에 애국심을 느끼며 열광했다.

※ 1990년대는 성취와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 격동의 시대였다. 1993년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세계화, 시장개방, 민주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페리호 침몰,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IMF 외환위기를 맞는 등 큰 시련을 겪었다. 상위 20%의 인구가 부의 80%를 소유하는 양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된 계기가 됐다.

2000년대


2000년대에는 현실과 분리된 ‘판타지 세계’를 그린 영화가 인기를 얻었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해리포터] 시리즈가 한국에서도 흥행몰이에 나섰다. 2001년 개봉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가상의 마법 세계로 어린이 관객을 매료시켰고, 10여 년간 8편의 시리즈는 누적 관객 수 2850만 명을 기록했다. 2001년부터 3부작으로 제작된 [반지의 제왕] 시리즈 역시 15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판타지 시대를 여는 쌍두마차 역할을 했다.

※ 2000년대는 민주화 이후 다양한 정치·사회적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미군 기지 평택 이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미 FTA, 용산 재개발 참사,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 등의 문제를 두고 시민사회와 정부 사이에, 또 진보와 보수 사이에 치열한 다툼이 계속된다.

201906호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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