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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테이지 인터뷰] 몬테카를로 발레단 예술감독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춤은 두 존재의 만남 무용수들은 벌거벗어야 한다.” 

유주현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기자 yjjoo@joongang.co.kr
작은 나라 모나코를 세계 모던 발레 중심으로 이끈 안무가
6월 12~14일 예술의전당서 14년 만의 ‘신데렐라’ 내한 공연


▎14년 만의 내한 공연을 갖는 몬테카를로 발레단 ‘신데렐라’를 안무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예술감독./사진:마스트미디어
'모던 발레의 중심’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 ‘신데렐라’가 14년 만에 찾아온다. 유리구두 대신 맨발에 금가루를 뿌린 몬테카를로의 ‘신데렐라’는 ‘역대 신데렐라 중 가장 성공한 발레’로 불린다. 1993년부터 몬테카를로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작품이다. 그를 e메일로 먼저 만났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발레를 사랑했던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유지를 받들어 1985년 설립된 발레단이다. 25년 넘게 이곳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전통과 아방가르드가 대화하는 듯한 파격적인 스타일로 세계 모던 발레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로미오와 줄리엣’(1996) ‘라벨’(2011) ‘말괄량이 길들이기’(2014) 등 그의 작품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베자르 발레 로잔, 볼쇼이 발레단과 같은 세계 주요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다. 1999년작인 ‘신데렐라’도 20년 동안 세계를 돌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5년 공연됐고, 우리 국립발레단이 라이선스 무대를 제작하기도 했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14년만의 내한 공연에 대해 한국인 무용수 안재용의 활약을 차별점으로 꼽았다. 2016년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입단해 지난 1월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안재용은 이번에 왕자와 아빠 역으로 교차 출연한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는 원작을 해체하는 마이요 스타일이 뚜렷한 무대다./사진:마스트미디어
신데렐라는 99년작이고 한국에서도 2005년 공연했다. 20년 동안 공연에 변화도 있었나.

“단원들의 입단, 탈단으로 불과 몇 년 사이에 무용단의 얼굴이 바뀌기 마련이다. 지난 몇 년간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레퍼토리의 캐릭터가 경직되지 않고 살아 숨쉬도록 하는 새로운 인재를 중요하게 여긴다. 안재용이 그 완벽한 예시다. 내가 내 작품을 다시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두 번 다시 같은 것을 보지 않는 데 있다.”

한국인 무용수 안재용을 입단 2년 만에 수석으로 발탁했다. 무용수의 숨은 장점을 발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안재용의 숨은 장점은 어떤 것이었나.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오디션을 보러 오거나 솔로 역할을 맡고자 하는 무용수라면 모두 그만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다. 재용은 테크닉 면에서 자질을 충분히 갖추기도 했지만, 그가 연기하는 방식을 보면서 내가 만든 캐릭터를 내가 재발견하게 되곤 한다. 내 레퍼토리가 진화하는 것을 보는 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마이요의 주특기는 원작 해체다. 과감한 삭제와 생략은 물론, 없는 인물을 창조하기도 하고 작은 배역을 전격 부각 시키기도 한다. 동화 ‘신데렐라’의 주요 모티프는 유리구두지만 이번 무대에 유리구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마이요판 ‘신데렐라’의 시그니처는 금가루를 뿌린 맨발이다.

유리구두는 없다, 맨발의 신데렐라


▎왕자와 아빠 역으로 교차 출연하는 한국인 무용수 안재용은 2016년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입단한지 2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사진:마스트미디어
유리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인 동화와 달리 신데렐라만 토슈즈를 신지 않는 게 아이러니하다.

“무용수의 발은 나에게 중요한 상징이다. 바닥과 맞닿은 채로 균형을 유지하게 해주는 동시에 무용수를 날아오르게 만들어주는 게 바로 발이니까. 하늘과 땅 사이의 이원성이자 꿈과 현실이 공유하는 선(線). 원작 동화에서 유리구두가 상징하는 게 정확히 이거다. 한편으로 신데렐라의 맨발은 순수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위적인 세계에서 살아가는 부유한 왕자 앞에 이 젊은 여성은 자신의 맨발을 내놓는다. 나는 이렇게 순수하고 진실된 젊은 여성을 창조하고 싶어서 화려한 옷을 입고 온갖 보석으로 예쁘게 꾸민 흔한 신데렐라와는 거리를 두었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아름답고 에로틱한 파드되는 발레의 정수를 보여준다./사진:마스트미디어
스토리도 동화와 사뭇 다르다. 신데렐라와 왕자 뿐 아니라 계모와 요정, 아빠 등 주인공을 다각화하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에 비해 남성 캐릭터는 우유부단하고 연약하게 설정한 이유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흔히 이상적인 남편을 찾는 이야기라고 들 생각한다. 하지만 원작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가까운 이의 죽음에 방점이 찍힌 것을 알 수 있다. 사랑했던 부모를 잃고, 다시 밝은 가족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어려움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샤를 페로는 이러한 문제에 사로잡힌 복합적인 인물들의 관계도를 탁월하게 구성해놨다. 내가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를테면 신데렐라의 언니들도 아주 흥미로운 인물들이다. 그들의 내면이 추한만큼 외면은 아름답게 그리고자 했다.”

마이요의 무대가 스토리만 파격적인 건 아니다. 미니멀하되 강렬한 무대와 조명, 의상 등 비주얼 효과, 전통과 혁신이 교차하는 안무 자체도 한번 보면 그만의 스타일이 뚜렷이 각인될 만큼 개성적이다. 신데렐라 솔로에는 일본의 가부키 동작이 보이다가, 신데렐라와 왕자, 요정과 아빠의 아름답고 에로틱한 파드되에선 발레의 정수를 보여주는 식이다.

“가부키는 작은 몸짓 안에 풍성한 의미와 시(詩)를 농축하고 있다. 안무의 관점에서 아주 흥미롭다. 신데렐라의 솔로 파트가 가부키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은 건데, 인물의 얼굴 높이에서 반달 형태의 몸동작이 어렴풋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가부키 극에서 눈물을 훔치는 인물을 그렇게 묘사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이를 차용했다. 파드되에는 언제나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다. 오로지 무용수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만이 중요해지는 순수한 진실의 순간이니까. 춤이란 무엇보다도 두 존재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무용수들은 속임수를 쓸 수 없다. 벌거벗어야 한다. 그래서 나의 파드되는 에로틱할 때가 많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이란 무용수들이 진심과 성의를 온전히 다할 때에만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무대와 조명, 의상 등 비주얼 이펙트도 강렬하지만 춤을 가리지 않는다. 춤을 돋보이게 하는 무대 연출의 노하우가 있다면?

“안무라는 직업은 존재 자체가 다른 예술가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음악 없이는 무용수들이 춤을 출 수가 없고, 조명 없이는 무용수를 볼 수가 없고, 의상이 없으면 인물들을 구분할 수가 없고, 무대장식이 없으면 서사 구조 속에 인물들을 배치하는 게 매우 어려워진다. 발레가 펼쳐지는 시간 동안 무용에 봉사하는 여러 분야들이 교차하는 자리에 바로 안무가 있다. 이 분야들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당연한 말이지만 참여자들의 재능이 있어야 내 발레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가 생겨난다. 그렇기에 매번 창작을 할 때마다 작품을 거시적으로 보려 하고, 유능한 예술가들을 주변에 두려고 애쓰는 편이다. 에르네스 피뇽 에르네스, 제롬 카플랑과 같은 친구들이다.”

볼쇼이가 전막발레로 초빙한 첫 외국인 안무가


▎마이요의 무대는 미니멀한 세트와 강렬한 조명, 파격적인 의상이 돋보이지만 개성적인 안무를 결코 가리지 않는다./사진:마스트미디어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20세기 초 디아길레프와 니진스키의 활약으로 발레 혁신의 상징이 된 러시아 ‘발레 뤼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디아길레프가 모나코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아 발레 뤼스의 본거지를 모나코로 옮겨 몬테카를로 오페라극장의 상주단체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발레 뤼스는 1929년 디아길레프의 사후 해체됐지만, 모나코는 지속적으로 발레 뤼스의 부활을 도모해 왔다. 마이요도 2009년 발레 뤼스 100주년을 기념하는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발레 뤼스의 레퍼토리를 적극적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발레 뤼스를 계승한다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몬테카를로 발레단 뿐 아니라 다른 모든 현대 무용단들이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가 후대에 남긴 유산에 의존하고 있다. 디아길레프의 천재성 덕택에 무용은 오페라에서 분리되어 대등한 관계의 예술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콕토·마티스·피카소·스트라빈스키·라벨·샤넬 등 그 당시 최고의 인재들을 곁에 두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아직도 그 운영 방식을 고수하며 그가 걷던 길을 뒤따르고 있다. 물론 ‘신데렐라’도 안무를 중심으로 영입된 일류 조형예술가·디자이너, 그리고 여러 창작자가 모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2014년 볼쇼이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안무했다. 볼쇼이가 전 막발레로 초빙한 첫 외국인 안무가인데, 볼쇼이에서 당신에게 뭘 원했나.

“볼쇼이발레단이 나를 섭외한 것은 발레단의 정체성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무용수들에게 현대적인 표현양식을 개방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내 작업이 가능했던 이유기도 하다. 볼쇼이와 작업하면서 굉장히 뛰어난 무용수들을 만났다. 그들이 내 안무 작업을 캐치하고 몰두하는 모습을 통해 오히려 내 안무를 스스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20여 년간 그가 창작한 40여 편의 레퍼토리가 몬테카를로 발레단을 세계적 발레단으로 키웠지만, 그는 작은 나라 모나코가 세계 모던 발레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힘을 “카롤린 공녀의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렸다. “무용을 최고의 위상으로 끌어올리고자 한 카롤린 공녀의 노고 덕분에 모나코 국경을 넘어 뻗어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춤을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무대 지향”


▎몬테카를로 발레단 ‘신데렐라’는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2011년 발레단과 그레이스 공비 아카데미, 모나코 댄스포럼을 통합한 조직을 만들고 수장이 됐다. 통합된 조직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는 무엇인가.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내가 무용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모나코 댄스 포럼은 전세계 발레단들이 모나코에 모여 최신 경향을 혼합시킨 창작 안무를 전파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그레이스 공비 아카데미로 말할 것 같으면 전도유망한 무용수들을 가르치고 졸업 후 모두 프로 발레단에 입단시키는 최종 목표를 갖고 있다. 이 세 단체의 시너지를 통해 창작·전파 그리고 교육이 가능하게 된다. 이는 특히 면적이 작고 문화적 공급을 분산 배치하기 어려운 모나코라는 나라의 특수성에 부합한다. 나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그 역할을 최대한 채우도록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다.”


▎마이요의 신데렐라는 토슈즈도 신지 않은 맨발로 등장한다. 온몸에 붕대를 감은 것은 성형수술을 한 인공적 아름다움을 상징한다./사진:마스트미디어
‘신데렐라’가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는 마이요의 무대가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마이요는 평소 “춤을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지향한다”는 소신을 드러내 왔지만, 그렇다고 그저 아름답기만 한 무대는 아니다. “무용을 창작하거나 스스로 춤을 추는 사람만이 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늘 반대해 왔다. 모두가 무용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육체를 가졌고, 우리 모두가 이미 연결된 상태기 때문이다. 모든 안무가는 스스로의 감수성에 따라서 고유한 테마와 문제의식을 이끌어낸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라는 복잡한 문제에 흥미를 느낀다. 그게 내 발레의 소재다 보니 내 작품들이 많은 이에게 울림을 주게 되는 것 같다. 춤으로 존재의 허무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과 증오, 육신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쉽다.”

그는 26년간의 예술감독 역임으로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자신의 레퍼토리만 고수하지는 않는다. 유망한 젊은 안무가들을 발레단에 적극 초청해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다양한 창작을 위한 단체다. 단원들이 다채로운 스타일을 함양하고 이를 위해 많은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인정받은 사람들이기도 하고, 때론 새롭게 떠오르는 예술가들이기도 하다. 칼 라거펠트가 나에게 종종 말했듯, 젊은이들을 항상 신뢰해야 한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젊음의 기질 때문이기도 하고, 어쨌든 그들이 무용의 다음 역사를 써내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201906호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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