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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4)] 세계 최대 미용기업 준오헤어 대표 강윤선 

“헤어를 넘어 뷰티로 준오는 끝없이 확장할 것”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 끈기·독서·교육으로 ‘준오 왕국’ 이뤄
아름다움에 관한 건 다 하는 세계 미용 산업 허브로 도약 꿈


▎강윤선 대표는 서울 청담동 준오아카데미 사옥 8층에 있는 ‘윤선의 숲’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큰 즐거움이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그가 1995년부터 매달 한 권씩 정한 ‘이달의 필독서’ 들이다.
'배움이 멈추면 성장도 멈춘다. (Growth stops when learning stops.)’

‘태양은 꽃잎을 물들이지만 교육은 인간의 안목을 물들인다. (As the sun deepens the colors of flower, education deepens a man’s insight.)’

준오아카데미 홈페이지(www.junoacademy.com) 대문에 걸려 있는 문구다. 서울지하철 7호선 청담역 바로 앞에 있는 준오아카데미 사옥 벽면에도 이 글귀가 새겨져 있다. 준오아카데미는 준오헤어를 떠받치는 ‘미의 전사’를 키워내는 사관학교다. 준오헤어는 전국 150개 매장, 직원 수 3000명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미용 그룹이자, 세계의 헤어 디자인 흐름을 선도하는 리딩 컴퍼니다. 1982년 서울 돈암동 미용실에서 시작해 37년 만에 ‘세계의 준오’를 일으킨 강윤선 대표가 오늘 ‘레전드를 찾아서’의 주인공이다.

대한민국 패션 1번지 청담동 중심에 준오가 있다. 청담역 9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8층짜리 준오아카데미 건물이 있고, 그 아래로 1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애브뉴준오(AVENUE JUNO)가 나온다. 이 5층 건물은 서울의 멋쟁이들을 위한 고급 헤어 살롱이다. 5층 꼭대기에 강윤선 대표의 집무실이 있다. ‘독서경영’의 신봉자답게 벽면에 책들이 가득하다. 강 대표와 인사를 나눈 뒤 심명래 애브뉴준오 총괄본부장의 안내로 ‘준오 투어’를 시작했다.

애브뉴준오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면서 심 본부장이 설명을 했다. “여기는 대한민국 상류층이 이용하는 프라이빗 한 공간입니다. 살짝 아이 콘택트(eye contact)를 할 정도만 공간이 트여 있고 나머지는 칸막이로 차단이 돼 있죠. 디자이너와 인턴을 합쳐 150명 정도가 일하고 연 매출 100억원 정도 됩니다. 인턴 기간만 4∼5년을 거친 디자이너들이 고객의 머리를 만지기 때문에 가격도 좀 더 비쌉니다.”

책장마다 만화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게 이색적이었다. 퍼머 하는 동안 고객들이 읽으시라고 갖다 놓은 책이다. 신부 머리와 화장, 웨딩 촬영을 하는 공간도 따로 있다.

애브뉴준오에서 준오아카데미로 걸어가면서 심 본부장에게 ‘준오헤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미용 그룹인지’ 물었다. ‘매장 수로는 1등인지 모르겠지만 직원 수나 매출액은 압도적인 1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프랜차이즈(이름만 빌려주고 영업은 가맹주가 직접 하는 방식)를 했으면 매장 수가 엄청나게 늘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안 하는지 물었더니 자신만만한 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할 수 있죠. 돈 버는 쪽이라면. 저희는 입사해서 스태프와 디자이너 거쳐 대표님의 철학을 습득하고 7년 정도 시간이 지난 직원한테만 직영 매장을 열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익금은 똑같이 나누죠. 프랜차이즈는 우리 브랜드 퀄리티를 잡아먹는다고 생각해요. 직영점도 쉽지 않은 게, 생각이 조금씩 다를 수 있거든요. 하물며 프랜차이즈는 비즈니스잖아요. 저는 ‘엄마는 준오헤어 다녀’ 했을 때 아이가 자랑스러워한다고 믿어요. 그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직영을 고수한다고 생각합니다.”

준오아카데미 건물 벽면에 ‘준오에 입사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이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입니까?” 물었더니 심 본부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저는 이곳에서 남편 만났고, 아이들 키웠고, 부모님 모셨어요. 저 자신도 대학원까지 다녔고 인간적으로도 많이 성장했으니 이만한 효도가 어디 있겠어요.”

내가 갑질? 부끄럽게는 살지 않았다


▎‘윤선의 숲’ 서고에 보관돼 있는 ‘1962년 강윤선 환자 진료사본’ 동판. 어릴 적 큰 화상을 당한 강 대표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 사진:정영재 기자
준오아카데미 8층에 강 대표가 자랑하는 비장의 공간이 있다. 이름은 ‘윤선의 숲’.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운데 고급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정면에 보이는 책장에는 수백 권의 책이 꽂혀 있는데 ‘2012 6’ ‘2018 3’ 같은 숫자가 붙어 있다. 1995년 독서경영을 선포한 이후 강 대표가 매달 선정하는 ‘이달의 필독서’들이다. 책장 맞은편에는 조그만 바가 마련돼 있다.

방 좌우엔 빌딩 숲 사이에 진짜 숲이 조성돼 있다. 나무가 울창하고 졸졸졸 물도 흘러 여기가 강남 한복판 맞나 싶다. 철철이 꽃들이 피었다 지고 새들도 날아와 다리쉼을 한다. 우리 사진기자가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새들이 날아와 멋진 배경을 만들어줬다.

강 대표는 “여기 앉아서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특히 눈 오는 날엔 눈물나게 아름답죠. 가끔 지인들 초청해 와인 파티도 하고, 2000포인트 달성한 직원들도 초대한답니다”고 말했다.

1층부터 7층까지는 교육장과 실습실이다. 준오헤어 매장과 똑같은 의자와 집기들이 마련돼 있다.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같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준오 투어’를 끝낸 뒤 다시 강 대표 집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상대가 얼마나 센지는 잽을 툭 던져보면 안다. “인터뷰 오기 전에 제 단골 미용실 선생님한테 ‘준오헤어 어때요’하고 물어봤더니 ‘글쎄요. 예전에는 참 괜찮았는데 요즘은 좀…. 얼마 전에 사건도 터졌잖아요’ 그러던데요.”

‘사건’이란 지난해 10월 일부 언론에 보도된 ‘강윤선 대표 갑질 논란’ 이다. 강 대표가 매장 원장들로부터 명절이나 스승의 날 같은 때 명품 선물을 상납받아 왔다는 것이다.

강 대표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답했다. “3000명 직원 앞에서 부끄러운 일 한 적 없어요. 그게 부끄러우면 그만둬야죠. 150군데 매장 아무 데나 쓱 들어가 슬쩍 한번 물어보세요. 그런 게 있었으면 벌써 터졌겠죠. 36년 동안 거쳐간 사람만 수십만 명일 텐데….”

준오아카데미는 말하자면 훈련소 같은 곳인데 중간에 그만둔 사람 4명이 퇴직금을 못 받았다며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전부 패소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아는 기자에게 ‘제보’를 했다. 준오에서 관련 자료를 다 갖다주고 소상히 해명을 했는데도 기사가 그냥 나갔다는 게 강 대표의 말이다. 그는 “사업 하다 보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위로들을 하는데 저는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멋있게는 살지 못했지만 부끄럽게 살지도 않았거든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 대표는 자신을 ‘흙수저가 아니라 무(無) 수저’라고 할 만큼 어렵게 자랐다. 서울 서대문에 있는 전수학교에 다니면서 오후에는 작은 회사에서 급사 생활을 했다. 어려서부터 머리 손질에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동네 미장원에 갔는데 “보따리 잠시 맡아달라”는 손님의 부탁을 주인이 냉정하게 거절하는 걸 봤다. ‘보따리를 잠시 맡아주면 이 손님이 단골이 될 텐데. 내가 미용실을 한다면 저렇게는 안 할 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을 계기로 미용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서대문에 있는 1년제 미용학교인 무궁화고등기술학교에 들어갔다. 오전에는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미용실에서 실습을 했다. 선배 언니들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틈틈이 익힌 미용 기술을 밤늦게까지 수없이 연습했다. 손재주가 있는 편이어서 얼굴 특징에 맞게 머리를 잘 만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손님에게 친절하고 싹싹하게 대하니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1982년 서울 돈암동에 자신의 미용실을 차렸다. ‘준오헤어’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두 살 때 큰 화상, 세브란스서 살려줘


▎매년 6월 5일 창립기념일에 열리는 준오헤어 체육대회는 전 직원과 가족이 참가하는 큰 잔치다. / 사진:준오헤어
어릴 때 큰 화상을 입었다면서요.

“기억은 안 나요. 18개월 됐을 때 끓는 물이 담긴 통에 빠졌대요. 엄마가 나를 들쳐업고 서대문 적십자병원으로 뛰어갔는데 “살리기 어렵다”면서 안 받아줬답니다. 다시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는데 거기서도 “초기 응급처치가 안 돼 힘들겠다”며 돌려보냈대요. 엄마가 대책 없이 세브란스병원 정문 앞에서 울고 있는데 어떤 서양 선교사가 우릴 보고 다시 세브란스병원으로 데려가 수술을 받게 해 줬답니다. 몇 년 전 세브란스병원에서 특강을 했는데 정남식 원장님이 동판에 새긴 뭔가를 들고 나와서 ‘이게 바로 1962년 9월, 강윤선 환자의 진료기록부입니다. 의사 한 명의 헌신이 한 생명을 살렸고, 생명을 되찾은 그가 이처럼 큰 일을 하고 있습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지금 그 액자는 ‘윤선의 숲’ 책장 맨 위칸에 보관돼 있다)

화상 환자는 몸과 마음의 후유증이 크다고 하던데요.

“화상을 당한 피부는 죽은 피부라서 새 피부를 계속 이식해야 해요. 저도 다른 곳의 살 많이 붙였죠. 다리살과 뱃살이 도움을 많이 줬어요(웃음). 수술을 10번도 더한 것 같네요. 여름엔 가렵고, 주사 맞으면 더 아파요. 외모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았어요.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데 거울 볼 시간이 어디 있나요. 일에 바빠 콤플렉스 느낄 겨를도 없었죠.”

1993년 집을 팔아 직원 19명과 함께 영국 비달 사순 아카데미에 2개월 연수를 다녀온 게 준오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하던데요. 당시 한국에는 미용의 표준이 없었나요.

“주먹구구식이었죠. 갈라서, 뒤집어서, 올려서, 둘둘 말아서, 더 많이 올려서, 꽝꽝 묶어서…. 뭐 이런 식이니 공통된 용어도 없었고. 세상 어떤 분야든 발전하려면 표준화가 돼야 하는데, 영국 가서 사람 머리통이 둥글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사람 머리가 입체감이 있는 거구나. 그랬던 우리가 비달 사순보다 더 많은 사람이 배우러 오는 미용의 메카가 됐으니 감개무량하죠. 우리는 젓가락 문화가 있어서 손재주가 뛰어나잖아요.”

미용업계 종사자들은 배움이 짧다는 선입견이 있는데요.

“우리의 역사가 남긴 그림자지요. 목공소는 인테리어가 되고, 바느질은 패션이 되고, 주방장은 셰프가 되고, 그렇게 업그레이드가 됐잖아요. 모두가 못 살던 시절, 우리 언니들은 남의 집 식모살이를 했고, 남자들만 공부를 했어요. 그나마 미용하는 친구들은 공장은 안 갔어요. 친구들은 빵 공장 다니면서 밀가루 냄새 풀풀 풍기면서 집으로 왔고, 모자공장에서 하루 종일 미싱 돌리는 애들도 많았죠.”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일본에서는 인기 직종 2위가 헤어 디자이너라고 합니다. 미디어에서 스타 셰프를 만들어 주는 것처럼 헤어 디자이너도 띄워 준다면 일본에서처럼 각광받는 직업이 될 겁니다. 인체에서 미를 다루는 직업은 별로 없어요. 헤어 스타일에 따라 사람 인상이 얼마나 달라집니까. 옛날엔 가수 되겠다 하면 ‘딴따라 하겠다는 거냐’며 기타를 부수고 그랬는데 요즘은요? 지금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이들은 끼도 있고 생각도 바르고 공부도 잘해요. 잘만 받쳐준다면 세계적으로 클 수 있을 겁니다.”

‘미용 일은 독한 염색약 다루고 맨손으로 샴푸 하느라 손가락 짓무른다’며 힘들다는 사람도 많은데요.

“옛날에 비하면 장비도 좋아졌고 염색약도 그렇게 독하진 않아요. 하지만 이 업이 쉬운 건 아니에요. 꿋꿋하게 힘들게 배워야 하는 일이죠. 미용학교 졸업하고도 임상(臨床) 단계를 수없이 거쳐야 해요. 사람마다 모질(毛質)이 달라서 젖은 상태에서 머리카락을 잘라 놓으면 마른 뒤에 얼마나 올라갈지 알 수 없어요. ‘커트가 생각보다 짧게 나왔다’며 당황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의사가 수련의 단계를 밟듯 우리도 인턴 단계에서 많은 실전을 거치고 선배들이 하는 걸 유심히 보고 모방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뚜렷한 목표가 없이 돈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한다면 오래 못 버틸 겁니다.”

헤어 스타일도 국제적인 트렌드가 있나요.

“물론이죠. 옛날에는 모발의 무게감을 강조했는데 요즘은 가볍고 경쾌하게 하는 게 트렌드입니다. 그러다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옛날 스타일로 다시 돌아가는데, 안 따라가면 그 자체가 또 촌스러워지는 거죠. 누군가가 ‘이게 최신 스타일’이라고 발표하면 나비효과처럼 금세 유행을 탑니다. 로레알·웰라·비달 사순 같은 대형 브랜드가 선도를 하죠. 우리도 매년 두 차례 헤어쇼를 하는데 전 세계에서 전문가들이 몰려옵니다.”

‘군인·경찰·소방관 커트 무료’ 봉사 계획

강 대표가 독서경영을 시작한 게 1995년 7월이었다. 처음에는 매달 필독서를 정한 뒤 직원들에게 책을 사 줬다. 직원들이 책 귀한 줄 모르는 것 같아 지금은 공지만 하고 알아서 구입하라고 한다. 읽은 뒤에 깨달은 내용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까를 써내라고도 한다. 요즘은 고객들이 먼저 “이달 필독서는 뭐예요?”라고 묻는다니 책을 안 읽은 직원은 대화 자체가 안 된다. 직원끼리 책을 읽고 토론도 한다. 필독서는 자기계발서·경제경영서의 비중이 큰 편이다. 준오헤어 직원 차도은 씨는 “일종의 마인드 교육인 거잖아요. 다른 미용실에서는 하지 않는 거죠. 준오헤어가 프리미엄 살롱을 지향하며 남다른 자부심을 갖는 데는 이런 요소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2019년 4월의 필독서는 [기본으로 이기다, 무인양품](위즈덤하우스)이다.

독서경영을 하게 된 배경이 있겠죠.

“어릴 적 우리집이 정말 가난했어요. 멀건 수제비국 끓여서 온 식구가 먹었고, 중학교 배정원서 값 600원이 없어 중학교에 못 가고 전수학교 갔으니까요. 아버지는 아프셨고, 엄마가 일 다녔어요. 저녁 늦게까지 같이 놀던 친구들은 엄마가 ‘순이야 밥 먹어라’ 하면 다 들어가는데 나는 불러주는 엄마가 없었죠. 지금도 누구랑 같이 있다가 ‘잘 가’ 하면 불안해져요. 그러던 중에 동네 책방에서 책을 한 권 샀는데 ‘카네기 인생론’이었어요. 어린 마음에도 읽어보니 괜찮더라고요. 그 이후 책을 가까이했고 무협지·만화책·소설 등 닥치는 대로 책을 보면서 성장했죠. 직원들이 세상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책은 역사와 시공을 초월하잖아요. 간디 오빠 알려면 2만원만 내면 되잖아요. 한 사람의 인생이 2만원짜리 책 한 권에 집약돼 있으니까.”

매년 6월 5일에는 창사기념 행사를 시끌벅적하게 한다면서요.

“영어 준(June·6월)과 숫자 5를 합친 게 우리 회사명인 ‘준오’ 아닙니까. 그날은 목동운동장에서 직원과 가족들 수천 명이 모여 달리기·줄다리기·피구 같은 걸 하면서 너무너무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좀 바꿔보려고 합니다. 요즘 들어온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잘 안 해요(웃음). 올해부터는 6월 한 달간 각 매장에서 경찰이나 소방관, 군인 등 제복을 입고 오는 분은 무료로 커트를 해 주는 지역밀착형 봉사를 해 보고 싶어요.”

K-팝에 이어 K-뷰티가 세계를 선도한다고 합니다. K-뷰티 실체가 있다고 보십니까.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선 비달 사순보다 준오 브랜드를 더 선호합니다. 2015년 오픈한 준오 아카데미는 내년 6월까지 교육 예약이 꽉 찼습니다. 대부분 중국·홍콩·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에서 온 겁니다. 그들은 코리아가 뭘 하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BTS(방탄소년단)에게 고맙다고 해야죠.”

오면서 보니까 애비뉴준오에서 웨딩도 하고 네일도 하고 그러던데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장르로서 다른 분야와 콜라보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준오헤어에서 헤어를 빼고 뷰티로 가는 겁니다. 화장도 있고, 화장품도 있고, 네일도 있고…. 아름다움에 관한 건 다 한다는 쪽으로 업의 개념을 바꿔야죠. 비타민이든 단백질이든 몸에 좋은 것도 추천하고, 내적 아름다움도 있으니 명상 같은 것과도 연결하고. 헤어 관련 제품도 직접 만들어서 우리 고객이 씁니다. 일단은 준오만 써도 연 300만 명은 되니까요.”

강 대표 입에서 ‘케렌시아’라는 말이 나왔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쓴 [트렌드 코리아 2018]에 소개된 케렌시아(Querencia)라는 용어는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휴식을 취하는 공간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재충전의 공간, 또는 그런 공간을 찾는 경향이란 뜻으로 쓰인다. 미장원, 미용실을 거쳐 헤어 살롱으로 격상된 공간이 단순히 커트하고 퍼머 하는 곳이 아니라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케렌시아로 개념이 확장돼야 한다고 강 대표는 말했다.

‘술을 부르는 대표님’ 소맥 제조에 능해


▎매년 열리는 준오 헤어쇼는 3000여 명이 참가하는 빅 이벤트다. 준오의 헤어 트렌드를 보기 위해 해외서도 많이 온다. 2018년 준오 헤어쇼는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렸다. / 사진:준오헤어
“들어오자마자 ‘머리 아주 짧게 잘라 주세요’라고 말하는 여성분들과 얘기를 해 보면 ‘엄마가 돌아가셔서, 너무 울적해서 왔어요’ 라든가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헤어스타일 확 바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짧게 자르는 것도 좋지만 머리 색깔을 좀 바꿔보는 건 어때요’라고 권해드립니다. 그분들은 커트를 하러 왔지만 사실은 속마음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어서 온 거잖아요. 요즘 사람들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게 삽니까. 그분들을 편안히 위로해주고, 어쩌면 아름다움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마음을 치료해주는 역할을 우리가 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디자이너들한테 책도 많이 읽고 경험도 많이 쌓으라고 하는 거죠.”

준오아카데미 8층 벽에 ‘준오 500년’이라는 글귀가 있어서 “500년 가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뜻이죠?”라고 물었다. 강 대표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요. 그냥 조선왕조 오백년이란 말을 따라 해본 것 뿐이에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500년은 몰라도 100년은 가지 않겠어요. 아무리 IT(정보기술)·AI(인공지능) 시대가 돼도 머리는 사람이 만져야 되잖아요. 로봇이 커트를 하려고 시도해 보다가 ‘도저히 못하겠다. 이건 사람한테 양보할란다’ 했다잖아요(웃음). 준오는 5년 뒤에는 일본의 츠타야 서점처럼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곳이 될 겁니다”며 미래상을 제시했다.

강 대표가 가위를 놓은 지는 꽤 오래됐다. 요즘은 전국의 매장 원장들을 불러 애로사항을 듣고 경영 컨설팅을 해 주는 게 주 업무다. 직원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술을 부르는 대표님’이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직원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우리 씨원∼한 호프 한잔 하고 갈까”라고 꼬드긴다. 멤버가 구성되면 소맥을 만들어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내가 뭘 도와줄까”라고 힘을 북돋워준다.

준오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미용산업의 허브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강윤선 대표는 끈기·독서·교육으로 ‘준오 왕국’을 이끌어왔다. 준오아카데미 지하 대회의실에 걸린 문구가 그의 삶을 요약해 준다.

‘넘어지는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지만
일어나지 않는 것은 너의 잘못이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와 한양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906호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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