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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문화전문기자의 ‘책과 사람’] 활동 40주년 맞아 시집 두 권 낸 가수 정태춘 

세상에 대한 불 같은 분노 시로 우렸다, 더 뜨겁게 더 말갛게 

시대와 불화 2000년대 초반부터 은둔… 최근 들어 다양한 활동
전국 순회 콘서트에 노랫말 뿌리 된 시집 출간, 붓글씨·사진 전시도


▎데뷔 40주년을 맞아 은둔 생활을 중단하고 다시 바깥 세상으로 외출한 가수 정태춘. 연륜이 묻어난다. / 사진: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의 세대 용어사전에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노래는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라는 뜻으로 등재돼 있다. 들을 만큼 들은 것 같은데 여전히 새롭고 갈급 하다는 의미에서다. 이들의 노래는 대개 어떤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 풍경은 차갑고 정갈한 두레박 물이거나 간밤의 숙취와 만용으로 부끄럽고 고통스럽던 어딘가에서의 대학 MT 두 번째 날이기 쉽다. 당연하게도 ‘촛불’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같은 사랑 노래들이 두레박 물의 이미지를 촉발한다면, MT는 역시 ‘북한강에서’다. 적어도 기자의 경우 대학 시절 실제로 북한강으로 MT를 많이 갔던 것 같은데, 어쨌든 ‘북한강에서’의 가사만 가지고도 아주 많은 얘기를 해볼 수 있다. 우선 이 노래 역시 두레박 계열이면서(실은 이 노래도 사랑노래여서다. 가사 중에 ‘당신 이름’ 부분 말이다) 서정적이고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간다는 분열된 자아에 대한 진술이 있고, 시간은 흘러가도 또 오는 것이라는 어쩌면 달관한, 혹은 순환적인 시간관에 대한 언급이 있다. 1985년 정태춘·박은옥 5집 앨범 안에 들어 있는 이 노래가 만들어진 건 82년 3집이 상업적으로 실패한 직후였는데, 당시 정태춘의 소속사 사장은 “앨범 발표 전에 노래 가사를 신춘문예에 응모해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만큼 시에 가까운 가사라는 얘기다.

나는 부부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무르며 언제까지나 가슴 시리거나 벅찬 노래를 불러주길 바랐는데 언제부턴가 두 사람의 자취를 찾기 어려웠다. 뭔가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시대와 냉전 중인지도 몰랐다. 보다 솔직하게는, 부부의 처지를 잘 몰랐고, 그런데도 한때 부부의 노래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팬으로서 무심했다. 아쉬웠지만 바빴고, 바쁘다는 핑계 뒤에 숨어 부부의 노래가 가르쳐준 그리움을 잊고 살았다.

세 살 차이 정태춘·박은옥 부부 1978년 첫 앨범

부부는 세 살 차이지만 1978년 같은 해에 첫 앨범을 각각 발표했다.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맞춰, 데뷔 40주년이 되는 올해를 규모 있게 기념하기로 하면서 그 동안의 부재 혹은 잠적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도 풀렸다. 정태춘·박은옥을 아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최대한 표시하려 했다는 느낌이 들 만큼 올해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는 구성이 방대하고 내용이 다채롭다. 우선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전국 순회 콘서트가 열린다. 정태춘의 시집 두 권을 포함해 네 권의 책이 출간됐고, 2012년 두 사람의 11집 앨범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후 7년 만에 새 앨범이 최근 나왔다. ‘사람들 2019’라는 타이틀의 새 앨범에는 총 8곡 가운데 신곡이 2곡 포함돼 있다. 정태춘의 붓글씨·사진 전시가 열렸고 부부의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학술대회도 개최된다고 한다.

이 모든 기념사업과 뉴스를 통해 우리가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정태춘의 잠적이 활동 30주년이던 2009년 한시적인 외출, 아내 박은옥의 강권에 정태춘이 움직여 세상에 나온 11집 앨범을 제외하면 200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기자의 기억 속에 정태춘은 단순히 시적인 노랫말에 서정적인 멜로디를 입혀 노래하는 나약한 가수가 아니다. 대학시절이었는지 아니면 신문사에 입사한 초년병 시절이었는지, 한양대로 기억되는 운동장 스탠드를 꽉 채운 거대한 항의 군중 앞에서 강렬한 가창력과 그에 걸맞은 힘 있는 손동작으로 참가자들의 투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던 장면이 인상적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랬던 정태춘은 왜 그렇게 일찌감치 자발적인 유폐를 감행한 걸까. 그 내면을 살펴보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앞서 언급한 네 권의 책들이 이 탐문의 첫 출발점이자 최후의 조회처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시인 정태춘 읽기, 정태춘이라는 텍스트 읽기다.

네 권 가운데 하나인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는 정태춘을 아끼고 따르는 사람들의 글 모음집이다. 부부의 앨범 13장을 13명이 각각 맡아 평한 리뷰 글을 포함해 부부의, 주로 정태춘의 인생 궤적, 이들을 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부부의 모습에 관한 글들을 묶었다. 그 가운데 한 전직 전교조 간부가 정태춘과 전교조와의 인연을 밝힌 글이 있는데, 1989년 당시 문교부가 전국 교육청에 하달했다고 하는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라는 기가 막힌 공문을 소개하고 있다.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학생들에게 자율성·창의성을 높이려는 교사….’ 이런 교사는 전교조 소속일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기준으로도 좋은 교사의 요건이지 문제 삼을 내용은 아닌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년 전 이 땅의 청소년이 놓인 교육 현실이 이랬던 거다.

정태춘은 당연히 그런 현실을 견디지 못했을 게다. 그러니까 전교조 돕기에 발벗고 나선 것 아닌가.

1998년 인터뷰에서 정태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1980년대 말 우리 사회 상황에서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 소용돌이치던 시기, 기존의 지배체제에 대해서 전 민중/시민 진영에서 변화와 투쟁을 요구하던 시기에 나도 여기에 동참하게 되었다…투쟁적 내용 일변도였고 기존의 가요계에서 접근하기를 꺼리는 솔직한 리얼리티를 담고 있었다. 내면에서는 198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변화되고 있었고 1987년 6·29 이후부터 1992년까지 치열했던 싸움이 내가 체험할 수 있었던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5쪽)

그저 가수가 되고 싶어 경기도 평택에서 무작정 상경해 특유 혹은 천부라고 해도 좋을 음악적 서정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랑 노래를 쓰던 한 사내가 차츰 시대와 현실의 모순에 눈 떠 투사, 반골로 변모해간 사상의 궤적이 보인다. 특히 인터뷰 인용문이 언급한 90년대 초반은 정태춘이 정부의 음반 사전 심의를 거부하고 두 장(90년 정태춘 7집 ‘아, 대한민국…’과 93년 정태춘·박은옥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비합법 음반을 출시하며 예술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을 벌이던 때다. 정태춘의 싸움은 96년 헌법재판소의 사전심의 위헌 판결로 마무리된다. 대중음악사에 기록으로 남은 일이다.

정태춘의 노랫말과 멜로디는 그 모든 개인적·사회적 경험을 관류해 우리 눈 앞에 완성된 노래의 형태로 제출되는 것일 텐데, 노래가 꽃이라면 그의 시집은 역시 꽃을 피워 올린 자양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시집 속으로 들어가자.

[노독일처]와 [슬픈 런치](이상 천년의시작). 두 권의 정태춘 시집은 얼핏 10년 이상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다. [노독일처]가 먼저, 2004년에 출간됐다. 하지만 곧 시인에 의해 절판됐다. 아까 언급했던, 세상을 등지고 침잠하며 시집도 폐기했던 거다. 이번에 새 시집 [슬픈 런치]를 출간하며 되살려, 지금 우리가 만나는 두 시집의 출생 시기는 나란히 2019년 봄이다. 하지만 두 시집에 실린 시 작품들은 실제 같은 시기에 쓰였다.

“굳이 이 책으로 다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2003년 4년, 한 1년 여간 시랍시고 짧은 글들을 썼고 그 중, 앞부분이 [노독일처]라는 이름으로 이미 출간된 바 있고 그 후속 작업으로서 그 뒤의 나머지 글들을 정리한 것이다.”

[슬픈 런치]의 자서(自序)의 한 대목이다. 시집을 어떤 식으로 꾸미겠다는 실제적 목적에 따라 두 권에 실을 시들을 구분한 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문면(文面)으로는 그렇게 읽힌다. 앞부분을 정리한 게 첫 번째 시집이라지 않는가. 두 시집을 어떤 순서로 읽어도 큰 상관은 없으리라는 점이다. 그래도 두 번째 시집부터 펼친다. 정태춘의 사랑 노래에 익숙한 독자라면 놀라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 할 것 같다. 6쪽에 걸친 자서는 자본주의와 현대문명에 대한 격렬한 증오, 뿌리 깊은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의 탐욕과 본성에 새겨진 악의가 인류 문명을 파멸 직전의 가파른 언덕 끝까지 몰고 왔다, 한정된 재화와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무자비하고 기회주의적인 전쟁을 벌이는 한편 인간은 끊임 없이 생산하고 소비한다, 지배하는 모든 악은 정당화되고 모든 선의의 저항은 사라져 버렸다, 지구는 파괴되고 있고 파괴한 자들이 생산하는 건 쓰레기들일 뿐, 남은 것은 파멸뿐인데 그 시점이 초읽기에 들어가 있다.’

시인은 그래서 “열차는 달리고 나는 거기서 내렸”노라고 밝힌다. 2000년대 초반 자폐에 대한 언급이다. 물론 시인이 분노에 사무쳐 미쳐버린 건 아니다. 앞서 독한 언급들에 대해 “나의 분노가 조금 가미되었었다”며 스스로 흥분을 가라 앉히고, 컴퓨터 외장하드에 박아둔 시편들을 “가끔씩 꺼내서 읽어보며 혹시, 어떤 정신병적인 증세는 아닐까. 내 문제 모두 나의 문제는 아닐까” 여러 번 생각해본다고 밝힌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바꾸거나 세상과 타협할 생각은 없다. “부디 체제 옹호자들과 만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쓴다. 자신의 시집이 그런 사람들을 피해나가기를 바란다고 덧붙인다.

“정신병적인 문제 아닐까 자문해 본다”


▎1. 정태춘 노래 에세이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 2. 정태춘의 첫 시집 [노독일처] / 3. 정태춘의 두 번째 시집 [슬픈 런치] / 4. 정태춘, 박은옥을 위한 지인들의 글 모음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그러니 이렇게 정리하자. 외통수의 모난 생각을 견디지 못하는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라면 굳이 시인의 시집을 펼쳐들 필요는 없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시인의 마을에 조그만 애정 한 조각이라도 가지고 있는 이라면 시인의 시집들을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로 삼자. 시인은 왜 그렇게 가파른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을까. 그런 점을 헤아려보면서 말이다.

막상 시집 안에서 마주치게 되는 시편들은 자서에 비하면 훨씬 순하고 재치가 있으면서 아름다운 것들이다.

우선 시인이 경계하고자 하는 세상은 시집 안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나의 적은/ 국제 자본주의 그 자체”(‘그대, 아직 꿈꾸는가?’, [슬픈 런치]), “인간들의 소단위 자급자족 체계를 붕괴시킨/ 지구 곳곳의 대공장들과/ 전 지구를 장악한 유통 쪽의/ 주요 물류 기지들”(‘접시 안테나’, [슬픈 런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게 고통일 뿐인 시인은 절규한다. 퀸의 팝송 ‘마마미아’의 소년 살인범처럼 말이다.

“어머니,/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물론, 이런 땅엔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이런 시대가 끝나기 전엔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았으면 해요/ 물신의 세상, 그 물신이 사라지면 또 몰라도/ 인간의 전 지구적 조직화/ 물신숭배의 강고한 조직화/ 그것이 끝나고/ 그 조직이 모두 해체된 뒤라면 또 몰라도”(‘어머니, -권력 41. 어떤 어머니의 아들’, [노독일처]).

시인의 문명 비판 아니 문명 혐오 시편들은 그만 들여다보자. 하루치 복용량을 초과한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을 때론 울리고 때론 즐겁게 한 노랫말·멜로디 배치와 조율의 마법사답게 시인의 관찰력은 역시 범상치 않다. 기자에게는 [노독일처]에 들어 있는 ‘남의 말하기’ 같은 작품이 그런 작품으로 읽힌다. 전문이다.

“진주 문예회관/ 높은 천장에/ 수성페인트 칠하던/ 늙은 남자가/ 잠시 쉬는가/ 내려와/ 매표소 유리창 앞에/ 추레한 얼굴을/ 들이밀고/ 모자/ 벗어 들고/ 부실한 대머리를/ 정성 들여/ 쓰다듬고/ 있더라”.

[슬픈 런치] 맨 앞에 실린 ‘똥’은 해악과 재치 있는 언어 사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역시 전문이다.

“똥을 누며/ 이런 생각을 다/ 했다// 나/ 아무 데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자유로움과…// 슬픔// 나도 세상에서 이렇게 또옹!// 떨어져/ 나와/ …”.

이런 대목에서 엿보이는 시인의 해학은 가령, 1993년 비합법 음반 ‘92년 장마, 종로에서’에 실린 ‘사람들’에 나오는, 필시 음담패설을 쏟아내 민방위 대원들의 환호를 이끌어냈을 외부 강사에게 구청직원이 건네는 ‘반응이 좋으시군요, 또 모셔야겠군요’ 같은 아첨에서 보이는 익살의 원형인 것처럼 보인다.

세상과 싸움을 할 건지, 붙어볼 건지, 도망갈 건지


▎4월 서울 세종미술관에서 열린 기념 전시. 미술가들의 헌정작품 50여 점과 정태춘의 붓글 작품 30여 점을 선보였다. 자신의 작품을 설명 중인 정씨. / 사진:4월 서울 세종미술관에서 열린 기념 전시. 미술가들의 헌정작품 50여 점과 정태춘의 붓글 작품 30여 점을 선보였다. 자신의 작품을 설명 중인 정씨. 신준봉 기자
시인의 요즘 일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드러낸 것처럼 보이는 작품은 [노독일처]에 실린 ‘외로운 전사 소일 풍경-권력 37. 소일도 이런 식으로, 제기랄’ 같은 시편이다.

“초겨울 찬바람에/ 나는/ 따듯한 마스크도 없이/ 외로운 전사가 되어가고 있다/ 아무에게도/ 위협적이지 않은/ 꼬마 전사가 되어가고 있다// (…) //왜 난,/ 날 방어하기 위한 아무것도 없이/ 함부로 제 운명을 담보하는/ 전사가 되려는 걸까?// (…) // 서울 송파의 한 못난 놈이 오늘도 여전히/ 국가, 자본, 권력 뭐 이런 거를 생각하며/ 미제 두발자전거를 타고/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올림픽공원 공터를 휘휘/ 하릴없이/ 오후 내내 돌고 있다/ 살아생전의/ 김남주도 얼핏 얼핏 생각하며/ 비둘기들이 더러/ 날아오르고/ 공원은 그저 공원일뿐// 모두들/ 이런 정서불안 증세 자체를/ 주목하지도 않는데/ 야무진 칼 한 자루도 없이/ 로맨틱한 비장감도 없이/ 실현성 있는 대안도 없이/ 그저 혼자 가슴 두근거리며/ 겨울바람 속으로/ 탱탱한/ 자전거 고무 바퀴를 굴려가면서/ 이상한 모자를 눌러 쓰고/ 쿳션도 없는 안장/ 때론/ 덜컹거리는 노면에/ 항문을 꽉꽉 쪼으면서/ 세상과/ 한판 싸움을 할 건지 말 건지/ 붙어볼 건지/ 아이구,/ 도망갈 건지”.

이런 시인을 미워할 수는 없다. 시인을 강퍅하게 만든 건 우리 자신,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따라서 우리 책임이다. 그리고 시인의 시편들은 최대한 비틀고 뒤집어 현란하고 난해한 요즘 현대시 이전 말갛고 순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아름다운 어떤 노래들처럼 말이다.

※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사에서 10년 가까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상식의 눈에는 괴짜인 문인들, 그들이 생산한 영롱한 것들을 초롱초롱한 독자들에게 중개하는 일, 제도로서 문학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다.

201906호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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