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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돌아온 김병준 前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의 돌직구 

“文 대통령의 권력은 자잘하다”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 녹취 정리 이태림 인턴기자
■ 대구든 어디든 험지 출마 마다하지 않을 것… 세상 바꾸는 ‘마이크’ 되고파
■ 국가주의에 함몰된 현 정부 정책은 지지기반 민원해결 수준에 맴돌아
■ 한국당 인적청산은 단계적으로 가야… 황교안과 지향성에서 어긋나지 않아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잿빛과 같은 권력의 심연으로 뛰어들었다.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목적이 그의 권력의지 원천이다.
김병준(65)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6월 4일 입국했다. 4월 2일 미국으로 떠났을 때부터 귀국 티켓을 이날로 잡았다. 미국에 머물던 기간 중 35일은 미 서부를 렌터카로 여행했다. 그곳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것을 느꼈을까.

김 전 위원장은 LA에서 두 딸을 위한 에세이를 집필했다. 그는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잠든 적이 없었다”고 돌이키기도 했다. 그렇다고 늦게 들어온다고 뭐라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딸들은 ‘내가 귀가하지 않으면, 아빠는 잠들지 않고 있다’는 원칙을 알 뿐이었다. 성적 관리나 진로 등 거의 모든 일에서 딸들의 판단을 존중했다는 게 그의 양육론이기도 하다.

이런 김 전 위원장의 교육방식은 그의 국정운영 철학과도 맥이 닿는 듯하다. 국가주의를 배격하고, 개인(시장)의 자율을 신뢰하는 가치체계가 그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저서 [대통령 권력]에서 “권력은 잿빛”이라고 썼다. 이제 돌아온 그는 그 잿빛을 추구하는 행보를 사실상 시작했다. 귀국 당일 영남대를 찾아가 강연했다. 정치권은 TK(대구·경북)를 향한 포석으로 해석했다. 특히 대구 수성갑이 지역구인 김부겸 민주당 의원과의 대결구도가 부각됐다. 6월 11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난 김 전 위원장은 권력 쟁취 자체보다 그 권력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더 많은 관심을 표했다. 인터뷰의 방점도 거기에 찍혔다.

“대구에서 ‘김부겸을 이길까’가 나의 고민 아니다”


▎김병준 전 위원장(왼쪽)은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 등 요직을 거쳤다. 그는 코드가 아니라 정책철학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통했다고 믿는다.
미국에서 지내니 한국이 다르게 보이던가?

“땅과 자원도 그랬지만, 역시 자유주의 정신이 부러웠다. 한국은 소위 국가 통제가 굉장히 강하다. 밖에서 보니 더 잘 보이더라. 한국사람 고유의 창의적 정신,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활동을 억제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한국 뉴스를 안 보려 했는데…. 거기 교민들도 나라 걱정을 많이 하더라.”

귀국 당일 곧바로 대구로 내려갔다.

“TK 정치 행보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구·경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내 고향(경북 고령)이다. 대학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최근 고향 분들의 마음이 무겁다. 그런 점에서 늘 신경이 쓰인다. 또 TK는 자유한국당의 심장이다. 보수정치의 심장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대구 수성갑에서 김부겸 민주당 의원과의 대결이 점쳐진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지금 내 고민은 어디 출마하느냐에 있지 않다. 출마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내 출마가 큰일이 아니다. 진짜 큰일은 대한민국이 지금 보통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현실이다. 굉장히 위험하고 불안한 요소가 첩첩이 쌓여있는데 문 정부가 이를 더 악화시키거나 방관하고 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푸느냐에 관심이 가 있다.”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아무래도 자유한국당이 중심이 되어서 풀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런 뜻에서 당에서 요청해 오거나, 내가 판단하기에 (출마)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하겠다.”

선거에 나서면 이길 자신이 있나?

“김병준이 서울에, 대구에, 어디에 출마하느냐는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김병준 한 사람이 되고, 떨어지는 게 대수인가?”

현실정치에서는 당락이 중요하다.

“굳이 말하자면 이기는 게 (정치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정당의 목적이 집권이란 것은 교과서적인 얘기다. 그게 다 옳진 않다. 왜냐하면 정당의 집권은 지속가능해야 된다. 그러려면 국가가 갖는 난제를 풀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난제를 풀 실력도 안 되는데 집권하면 부메랑이 되어서 자기를 때리게 된다.”

김 전 위원장은 ‘실력’이라는 용어를 자주 꺼냈다. “제대로 실력을 갖추고, 우리 시대의 역사 흐름이나 과제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고 풀어내야 집권이다. 실력도 안 되는데 집권하면 서지도 못하는 친구가 외나무다리 걷겠다고 설치는 거다. 그러면 조직도 정당도 국가도 망하는 거다.” 문재인 정부를 겨냥하는 소리로 들렸다. 어투는 온건했지만 평가는 단호했다. 실제 김 전 위원장은 문 정부를 향해 “어떻게 할지 아무 생각이 없으니 대한민국을 가라앉힌다”고 단언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선 김병준 개인이나 한국당의 총선 승리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바꾸는 이슈의 전파’가 정치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세력 없이 목적한 바가 실현 가능하겠나?

“어떻게 힘을 가질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건 힘이 아니라 ‘마이크(발언의 영향력)’를 쥐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세력과 내가 말하는 세력은 다르다. 국회의원 공천해서 측근 두고 이런 것이 아니라 가치와 명분이 세력을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치를 하지 않아도 세력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소득주도 성장과 추경은 심장병에 두통약 처방한 격”


▎김병준 전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지지 세력으로 분류되는 노조를 건드릴 수 없다고 본다.
정치하기에는 권력의지가 약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는데.

“나만큼 권력의지 가진 사람을 못 봤는데.(웃음) 나는 역사의 흐름이 잘못 가고 있다고 보기에 바꾸고 싶다. 이보다 큰 권력욕이 어디 있겠나? 누구 장관 시키고, 누구 죽이고 이러는 것은 권력이 아니다.”

문 대통령 들으라고 하는 말 같다.

“대통령이 총리 지명하고, 기업 하나 죽이고, 살릴 수 있고 이런 권력은 작은 거다. 그럼 어떤 게 큰 권력이냐? 산업구조를 바꾸고 노동시장을 개편하는 권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 정도의 큰 권력을 쥐려면 국민을 설득하고 통합할 수 있는 힘을 쥐어야 된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자잘한 권력을 권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방향이 문제인가? 실력이 문제인가?

“의제가 없다. 산업구조, 노동시장, 동북아 질서를 어떻게 세울지, 고민을 그만큼 안 해본 것이다. 지금 정부는 국가적 의제를 꺼내놓는 게 아니라 자기 개인의 의제 리스트를 내놓는다. 산업 구조조정과 육성, 교육, 노동개혁 같은 큰 권력을 쥐고 싶은 마음이 없다. 개인적 의제, 김원봉의 케이스처럼 자기들이 억울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신원 복원해주고, 부당하게 돈 벌었다고 생각한 사람 처벌하고…. 그거는 다 개인 의제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의도된 발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큰 지도자는 국가적 의제를 위해 자기 의제는 뒤로 미룰 줄 알아야 한다. 의도건 뭐건 개인 민원을 자꾸 꺼내놓는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하려다가 핵심 지지층이 이탈했다. 그 학습효과 아닐까?

“그래서 내가 얘기하는 것이 대한민국 대통령 하려면 목숨 걸고 하라는 것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큰 의제를 던지고 때로는 자기편과도 척을 질 수 있어야 된다. 위험한 길로 갈 수도 있다. 그 당시에는 이쪽 저쪽에서 공격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다음 그 뜻을 알아주는 법이다. 당장의 세력을 위해서 민원 해결 하려면 뭐 하러 대통령 하나?”

정책 우선순위를 잘못 정했다는 뜻인가?

“그랜드 디자인이 없는 것이다. 경제도 없다고 본다. ‘그걸’로 나라가 어려워질 텐데도 그걸 가져왔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다른 정책 패러다임이나 패키지가 없어서다.”

‘그것’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지칭하는 것으로 들린다.

“경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수출주도형 국가에서, 자영업자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제일 많은 나라에서, 소득주도 성장 모델이 작동한다고 말을 하겠나? ILO(국제노동기구)의 임금주도 성장을 베낀 거다. 서유럽과 미국은 대기업 고용이 많고, 자영업자의 숫자가 많지 않다. 그런데 자영업자 수가 26%인 국가(한국)에서 종업원 월급을 더 주게 하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나? 이거는 경제에 대한 판단이 없는 거다. 대안이 없는 것이다.”

이 정부가 특정 세력에 부채의식을 가진 이상, 정책 변경은 쉽지 않을 듯하다.

“노조나 시민단체의 반발을 살 수 있으니까 못하는 거다. 기존 정치단체와 시민단체, 이해관계자들을 넘어야 되기 때문에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심장에 병이 왔는데 두통약을 처방하는 꼴이다. 약효도 제대로 없는데 ‘약 안 먹어서 심장이 아픈 거’라고 한다. 심장에 메스를 가할 생각은 안 하고. R&D(연구개발) 체계 바꾸고, 인재양성 체계 바꾸고, 특히 노동개혁을 해야 바뀐다. 추경으로 뭘 바꾸겠다는 것인가. 일시적으로 30분 덜 아플지 몰라도 그건 아니다.”

“다음 세대는 아버지 세대보다 못살 수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열린 지난 2월 전당대회서 황교안 대표는 한국당 수장이 됐다. 최근 둘은 다시 만났다. / 사진:연합뉴스
공공부문 확장은 어떻게 보나?

“공공부문이 확대될 필요가 있는 영역도 있다. 예를 들면 복지가 그렇다. 그러나 다른 부분을 줄여줘야 한다. 아이들에게 ‘공무원 왜 하느냐’고 물으면 ‘편하고 오래가서’라고 답한다. 그만큼 긴장감이 낮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조직이라는 것 아닌가. 생산성을 높이면서 필요한 영역이 있으면 늘린다든지 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공무원과 공공부문을 늘리는 쉬운 방식으로 해결될 것 같으면 정부가 왜 필요한가?”

국가는 어디까지 해야 되고, 어디까지 하지 말아야 하나?

“인간의 이기성은 결국 공공선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메커니즘만 잘 살펴봐주고 조금 인내하면 그런 질서가 자리잡는다. 우리는 그걸 믿지 않고, 인간의 이기심이 나쁘다고 만 생각하고, 국가가 통제한다. 자율적 질서가 나오기도 전에 국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곳곳에 국가권력이 들어가 있다. 줄기세포, 드론 실험도 못하게 하고…. 국가 영역은 실력이 없다.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의사결정도, 효율적 집행도 못하는 집단이다. 이런 집단이 우리 경제를 끌고 나가게 할 순 없다. 국민 스스로 창의력과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자율의 질서체제다. 이래야 한국의 미래가 있다.”

현실의 정치가 국가주의, 대중영합주의, 패권주의의 관성을 떨칠 수 있겠나?

“실패하는 정부가 대중의 표는 필요하니까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로 가는 거다. 우리 정치권이 뚜렷한 가치를 보여주면서 국민을 이끌지 못하니 표심만 따라다닌다. 정치가 국민을 리드해도 시원치 않은데. 민심도 보편적 민심이 아니라 힘세고 목소리 큰 민심을 따라가기 바쁘다. 대중영합주의로 가서 엉망이 되니까 화합을 못하고, 끼리끼리 하는 패권주의로 간다. 이 출발이 과도한 국가주의에 있다고 본다.”

문 정부는 적폐청산의 끈을 놓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미국에서 생각했는데 이 정부는 성공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정경유착, 갑질이라는 진흙탕을 거쳐서 성공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발에 진흙이 묻었다. 문재인 정부가 그 진흙을 털라고 하는 것은 좋은데 자기들도 진흙탕에 들어와서 밟고 있다. 이번에 (환경부) 블랙리스트 같은 것이 나오지 않나? 자기들도 밟고 있으면서 성공한 자들을 진흙 묻었다고 적폐청산이란 이름 아래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 국민화합이 안 된다.”

그럼 어찌해야 되는 건가?

“떨어져 있어 보니 ‘문 정부가 큰일 났다’ 싶더라. 성공한 자들을 죽이려고만 들면 사회의 성장 동력이 죽는다. 또 하나 가슴 아픈 점은 젊은 세대들은 ‘아버지 세대보다 못살 수도 있다’고 느끼는 첫 세대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시대는 없었다. 성공한 자를 처벌해 동력이 죽고, 동력이 죽으면서 젊은이들의 희망이 사라지는 것이다. 본인들은 정의를 위해 온갖 이름들을 붙이지만 자기들도 이미 상당부분 진흙탕에 발 디디고 있으면서 그게 정의가 되나?”

한국당이 그 대안을 찾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미국에서 한국 국민이 위대함을 다시 확인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청소부로 시작해서 부동산 부자가 되고. 생선 튀기다 프랜차이즈 주인이 되고. 이렇게 머리 좋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뛰도록 해주면 된다.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 뛰는 것이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그동안 대안보다 투쟁에 집중했는데.

“그쪽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본다. (정부·여당이) 패스트트랙 같은 것을 얹히니까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큰 틀에서 새로운 가치에 대해 당내 일각에서 얘기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다.”

“김대중·노무현·박근혜 간판 내려놓고 실력으로 정치하자”


▎김병준 전 위원장은 험지 출마를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의 꿈은 국회의원이 되는 것 이상인 듯하다.
비대위원장을 맡았을 때, 후임 대표가 되돌릴 수 없는 공천 시스템을 짜겠다고 했다.

“솔직히 막판에 손을 못 봤다. 평가 체계를 만들긴 만들어 놨다. 의원들이 합의를 못 봤다.”

황 대표가 계승할 거라고 보나?

“어쨌든 많은 참고가 될 거다. 결국 평가는 국민들 의지가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스템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공정하게 되느냐다.”

전략적 우선순위가 있겠지만 한국당 내 인적쇄신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도 있다.

“인적쇄신은 단계별로 꾸준히 하는 거다. 일차적으로 당협위원장을 바꾸는 것도 인적청산이고, 세월이 흘러서 공천 과정에서 또 청산하고, 마지막으로 국민이 (선거에서) 또 해주는 것이다. 당시 비대위가 국회의원 목을 칠 수 없었다. 공천을 새로 할 수도 없었다. 당협위원장 교체가 최대의 카드였고, 우선적으로 했다. 새 지도부를 형성하는 전당대회도 인적청산이다.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단계별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결국 ‘친박’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얘기로 귀결되는 것 아닌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 친박은 모두 죄인인가? 비박은 다 괜찮나? 난 그렇게 안 본다. 그건 감정적으로 보는 거다. 당에서는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필요하다.”

황교안 체제에서 친박과 선긋기가 가능하겠나?

“내가 비대위 할 때에도 친박의 핵심과 탈당의 주역들 양쪽에 다 책임을 물었다. 친박청산이 인적쇄신의 전부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은 탄핵을 어떻게 결산하는 게 옳다고 보나?

“논의가 언론이나 학계 등 당 밖에서 이뤄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 논의가 자연스럽게 당으로 들어와주면 좋겠다. 한편으로 ‘너희 당 문제를 시민사회가 왜 다루냐’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당의 문제도 국가 문제 중 하나라는 차원에서 보면 밖에서 논의할 수 있다.”

세간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될 것이고, 보수가 분열될 것이란 관측이 있다. 보수진영에서 무겁게 우려하는 이 시나리오에 관해 김 전 위원장은 “(여권의) 그런 플롯은 패착이 될 거다. 박 전 대통령이 일국의 대통령을 한 사람 아닌가?”라고 낙관적으로 답했다. 여권의 의도에 말려들 만큼 박 전 대통령의 판세 읽기가 떨어질 리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박 전 대통령이 황교안 대표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정황들은 포착된다.

박 전 대통령 의중과 무관하게 한국당을 뛰쳐나온 친박이 그를 업을 수도 있다.

“거기에 박 전 대통령이 업힌다는 보장도 없다. 정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욕보일 수도 있다. 그렇게 정치하면 안 된다. 박 전 대통령을 업을 생각 말고 스스로의 실력으로 해야 된다. 민주당에도 똑같이 얘기했다. ‘김대중, 노무현 간판 내려놔라. 정정당당하게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앞에 놓고, 실력으로 정치하라’고.”

유권자도 정책보다 특정 인물의 카리스마와 이미지를 우선시하지 않나?

“앞서간 사람들 유산 위에 얹혀가겠다는 것은 여당이고 야당이고 변화무쌍한 사회에서 올바른 정치를 하는 자세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 업고 정치하겠다는 것은 성공해서도 안되고, 성공할 수도 없다. 한편으로는 측은하다. 안 되면 그만두지 왜 당당하게 못하나? 유권자도 (인물 기준 선택이) 쉬우니까 그렇게 해왔는데, 이제 과거지향적인 이름 싸움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이 설득력을 얻고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황교안 대표 만났다. 서로 서운함 없다”

지금 한국당만 봐도 황교안이라는 브랜드 아래 결집하고 있는데.

“사람 이름이 아니라 결국은 무엇을 지향하느냐다. 자유시장주의, 민주주의 속에서 시장을 보다 자유롭게 하고, 발전을 위해 개인이 앞서갈 수 있게 국가가 틀을 마련해줘야 한다. 국가는 한발 물러서서 시민사회나 시장이 못하는 일을 해주면 된다. 성장의 축은 시장과 개인이고, 국가는 돌봄과 분배의 축이 되는 틀이다.”

김 전 위원장의 그런 방향성과 황 대표는 결이 같다고 보나?

“황 대표는 내가 잘 모르겠다. 솔직히 깊은 얘기를 안 나눠봤다. 내 감으로는 최소한 나와 생각이 어긋나지 않는다.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 틀을 존중하고 지켜나가려는 성향이 굉장히 강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국가주의적이고 국가권력을 통해서 우리 사회 전체를 통제하려는 민주당 문재인 정권과 차이가 있다고 본다.”

당 경선을 앞두고 황 대표에게 불출마를 권유했다. 그쪽에서 서운해하지 않던가?

“없다. 자기 판단에 따라 하는 것이다. 나는 권하고 상대는 안 받았다.”

귀국하고 황 대표와 만났나?

“만났다. 서로 고생했다고 덕담하고 인사했다.”

김 위원장이 꿈꾸는 국가 그랜드 디자인을 그리려면 대통령이나 총리는 돼야 가능하지 않겠나?

“안 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다. 총리도 거국내각에서 대통령에 준하는 그런 위상을 가져야 가능하다. 나는 (꼭 그런 자리가 아니어도 국가 정책 제시가) 앞으로 쉬워질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이게 사람의 문제, 당의 문제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경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당연히 새로운 담론을 기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러다보면 그에 맞는 정치 지도자를 기대할 것이다.”

정치인은 존재감과 신비감을 줘야 할 텐데 향후 행보는?

“계획이 없다. 내가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안 하고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권력이 얼마나 괴로운지 아는 사람 중 하나다. 권력이라는 게 고통스럽고 어둡다. 그래도 하겠다는 사람들은 의제가 없거나 잘 몰라서 그렇다. 우리 국민이 훨씬 더 잘할 수 있는데 (잘못된 시스템 탓에) 퇴행하는 모습을 보니 답답하다. 그런 소리 하다보니까 총리 지명도 받고, 비대위원장도 됐다. 평생 무슨 자리에 가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세상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은 있다. 그게 내 권력의지다. 대구 수성구, 서울 어디에 출마할지, 대통령에 출마할지 알 수 있겠나? 대신 다른 사람들이 해주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지만….”

내년 총선 때 대구보다 더 험지로 가야 된다는 말도 있다.

“어디가 험지인지 모르겠지만 만일 나간다면 내가 쉬운 길가서 되겠나? 많은 사람들이 정치하는 이는 당선부터 돼야 한다고 말하는데 반대로 죽어서 사는 사람도 많다. 정치적으로 실패와 성공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 대통령 되면 성공한 거 같지? 아니다.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된 게 곧 실패다. 우리 역사가 승자의 저주를 말해주지 않나.”

옳은 일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된다.

“그 힘이 행정, 정치 권력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는 이제 하고 싶어도 안 되는 시대다.

“대한민국 대통령 권력은 역삼각형 구도다. 윗변 꼭짓점들인 국민적 기대와 헌법적 의무는 엄청나게 크다. 그러나 아래 꼭짓점인 권력기반은 약하다. 조금만 바람이 불면 삼각형이 흔들린다. 실제로 3년만 지나면 대통령은 없다. 삼각형이 쓰러진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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