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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이슈] 총선 ‘태풍의 눈’ 박근혜 사면론 

선거 판도 바꿀 ‘절대반지’?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 jwhn20@naver.com
재판 일정상 불가능에 가깝지만 단행하면 보수에 큰 재앙될 수도
朴의 영향력, 황교안의 장악력, 문 대통령의 결심이 맞물릴 최대 변수


▎2017년 6월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으로 출두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난 6월 4일 대법원발 기사 하나가 정가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기사의 골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6월 20일 속행기일을 진행한다는 것. 속행기일은 선고하지 않고 심리를 계속한다는 뜻이다. 대법원에 넘어온 국정농단 사건은 지난 2월 21일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뒤 이미 다섯 번째 심리를 마쳤다. 통상 전원합의체 사건은 4~5번 정도 심리를 거쳐 선고가 이뤄지는 게 관례여서 6월 내 결론 가능성이 점쳐져 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사안이 복잡한 데다 피고인도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거물급이라 대법원이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한두 차례 심리를 더 할 공산이 커졌다. 이런 대법원의 심리 일정에 정치권은 아무런 공식적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야 모두 재판 지연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을 조심스레 따져본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에서 활발히 정치평론 활동을 하는 한 변호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올 상반기 내 국정농단 상고심 결론이 물 건너감에 따라 ‘박근혜 사면’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내년 4월에 총선이 있다는 점이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박근혜 사면은 여야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다. 당연히 각 정당이 내부적으로 선거 유불리를 놓고 주판알을 튀길 수밖에 없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먼저 대법원 상고심 결론 날짜에 연동해 사면 일정 운운하는 게 마치 유죄를 예단한 게 아니냐는 점이다. 법조 전문가들은 “유죄 예단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볼 때 하급심의 유죄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입을 모은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1심에서 무려 징역 24년 형을 선고받았다. 2심에선 형량이 1년 더 늘어 25년 형이 됐다. 1심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삼성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2800만원을 ‘제삼자 뇌물’로 판단하는 바람에 뇌물 액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1, 2심이 유무죄로 엇갈리기는커녕 오히려 형량이 는 케이스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특히 항소심부터 재판을 전면 거부한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상고를 포기했다. 오히려 2심 형량이 미흡하다고 판단한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결론이 나오기 어렵다.

최종 형량 확정과 동시에 사면설이 제기될 수 있나


▎1996년 8월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 및 5·18사건 관련 선고공판에서 기립해 있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두 사람의 구금 기간은 2년이었다.
두 번째 의문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대법원의 최종판단이 2심 결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적어도 20년 이상 징역형이다. 이런 중형의 수형자에게 어떻게 형량이 최종 확정되자마자 사면설이 제기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을 지낸 인물을 무조건 사면해 주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전례와 형평성 차원에서 진작부터 ‘구속 기한 최대 2년설’이 꾸준히 정가 안팎에서 회자돼 왔다. 전례로 거론되는 사건은 ‘12·12사태’와 ‘5·18내란’으로 구속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판. 이들은 1심에서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 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형량대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 형으로 감형해 줬다. 여기다 최종심이 종결된 지 8개월 만에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모두 풀려났다. 수사기간을 포함, 구금 기간은 2년이었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이 받는 재판은 모두 3건. 국정농단 사건 이외 2016년 총선 불법 공천 개입 재판은 2년 징역형으로 최종 판결이 났다. 국정원장으로부터 특활비를 상납받은 사건은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1심 선고량은 6년이었다. 따라서 현재까지 박 전 대통령이 받은 총 형량은 모두 33년. 이대로 형량이 최종 확정된 뒤 감형이나 사면 없이 복역한다면 만 98세에 만기 출소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를 비롯한 강성 친박(親朴) 지지층들 사이에선 “사실상 종신형” “너무나 가혹한 처사”라는 불평이 쏟아진다. 이들뿐 아니라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에선 전·노 두 사람과의 죄질을 비교하면서 ‘정치보복론’을 펼치고 있다. 전·노 두 사람의 죄목은 반란 수괴, 반란 모의 참여, 내란 수괴, 내란 모의 참여, 내란 중요임무 종사, 내란 목적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등 실로 어마어마하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뇌물, 직권 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강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얼핏 봐도 죄질이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인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은 전·노 두 사람을 넘어선 지 한참 됐다. 대법원 최종 결심이 지연되면 될수록 형평성 시비는 커질 수밖에 없다. 덩달아 보수층의 사면 압력도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고 사면 압력을 낮출 수 있는 방법도 현재로선 꽉 막혀있다. 형벌을 면제해 주는 사면에 앞서 일시 구금을 해제하는 석방조차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사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석방요구는 2017년 3월 31일 구속 수감 직후부터 제기됐다. 태극기 부대와 ‘원조친박’ 조원진 의원이 중심이 된 대한애국당이 강하게 요구해 왔다. 하지만 보수 정치권 주류는 애써 이를 외면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흐름에 지난 3월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계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3월 6일 ‘다스’ 비리와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 중이었던 이명박(MB)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보석 허가. 이 결정이 나오자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석방론이 불거졌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당일 “2년간 장기 구금된 박 전 대통령의 석방도 기대한다”고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 다음 날 황교안 한국당 대표 역시 “(박 전 대통령이) 오래 구속돼 계시고 건강도 나쁘다는 말씀을 들었다”며 “구속돼 재판이 계속되는 문제에 대해 국민의 여러 의견들이 고려된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보석 허가는 법적 장애물에 부딪혔다. 국정농단 재판에선 MB와 똑같이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 미결수 신분이지만, 별건으로 진행된 총선 불법 공천개입 사건 재판에선 지난해 11월 징역 2년 형이 확정돼 기결수가 됐다. 그래서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에 대해서만 가능한 보석 허가 범위를 벗어났던 것이다.

번번이 벽에 부딪힌 석방론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를 비롯한 당원과 시민들이 지난 5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또 하나의 계기는 ‘구속기간 만료’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구속기간은 2개월이다. 그 이전에 재판 결론을 내려 무죄면 풀어주고, 유죄면 기결수로 계속 구금한다. 반대로 재판을 그 이전에 못 끝낼 경우 피고인을 석방시켜야 한다. 다만 재판이 사정상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법원이 판단하는 경우 구속 만료 기간을 최대 3번 갱신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대법원이 모두 3차례 기간을 갱신해 구속 기간 만료가 4월 16일 자정까지였다. 친박 지지층 사이에서 진작부터 ‘4월 16일 석방설’이 나돈 이유다. 실제 적지 않은 지지자들은 당일 밤 서울구치소 앞에서 대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풀려나지 못했다. 앞서의 보석 때와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불법 공천개입 재판에서의 형 확정으로 이미 기결수 신분으로 전환된 만큼 미결수에만 해당하는 구속 만료 기간 석방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던 것.

물론 한국당 측은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최교일 당 법률자문위원장은 “현행법상 미결 구금일수(법원의 판결 선고 전에 구금되었던 기간)는 본형에 산입을 하게 되어있다”며 “국정농단과 공천개입이 형식적으로 별개 사건이긴 하지만, 동일한 피고인이 재판을 받은 이런 상황에서는 형사소송법상 인권 보호, 무죄 추정의 원칙, 불구속 재판의 원칙 등에 비춰 미결 구금일수로 산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얘기하면,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 재판과 관련해 미결수 신분으로 수감됐던 기간이 이미 2년을 넘긴 만큼, 별개 사건이긴 하나 공천개입 사건의 2년 징역형은 이미 다 살았다고 보고 석방해 불구속 상태에서 국정농단 사건 재판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최 의원의 논리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가 주장한 미결 구금일수 산입은 해당 사건에 대해서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국정농단 관련 수감 기간을 공천불법 개입 사건의 ‘미결 구금일수’에 산입해 석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 견해였다.

그러나 일단 수면 위로 올라온 ‘박근혜 석방론’은 바로 가라앉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바라지를 하는 유영하 변호사가 구속기간이 만료된 그 다음 날 형집행정지 신청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그는 신청서에서 “(박 전 대통령이) 불에 덴 것 같은 통증 및 칼로 살을 베는 듯한 통증과 저림 증상으로 인해 정상적인 수면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할 때 병증은 구치소 내에서는 치료가 더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기다렸다는 듯 김무성·홍문종 등 한국당 의원(67명)과 무소속 서청원, 이정현 의원 등 모두 70명의 국회의원도 검찰에 박 전 대통령 형집행정지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장기간의 옥고와 사상 유례 없는 재판 진행 등으로 건강 상태가 우려되는 수준”이라며 “오직 힘없고 약한 전직 여성 대통령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엄한)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수감생활을 독일 나치의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인 ‘아우슈비츠’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검찰은 변호인과 의원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디스크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의료진의 현장 점검 결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 등 형 집행정지 요건과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석 또는 형집행정지 등으로 석방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남는 것은 사면밖에 없다. 하지만 여권 관계자들은 ‘박근혜 사면설’에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고 있다. 당장 사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부정적이다. 5월 9일 취임 2주년 인터뷰에서 “한 분(MB)은 지금 보석 상태지만 여전히 재판받는 상황이고 한 분(박근혜)은 수감 중이고, 이런 상황에 대해 정말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사면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사면에 비판적인 국민 여론을 들어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우리가 어떻게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저버릴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손사래 치는 여권에 의구심 커지는 한국당


▎뇌물ㆍ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3월 6일 보석으로 풀려나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박근혜 사면’에 대해 국민 여론은 싸늘하다. 5월 초 [세계일보] 조사에서 사면 반대 의견(58.5%)이 찬성(35.4%)보다 우세했다. 이보다 보름 앞서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반대가 62.0%로 찬성(34.4%)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민주당의 이 당직자는 최근 공개된 ‘박근혜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 파일을 거론하면서 “그나마 좀 남아있던 박근혜에 대한 동정적 여론마저 한 방에 다 날아가 버렸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이 5월 중순 공개한 이 녹음 파일에는 대통령 취임을 전후한 시점에 박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의 생생한 육성이 녹음돼 있다. 취임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순실의 말 한마디에 움찔하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한 정호성은 대통령보다 최순실의 말에 더 쩔쩔매는 정황도 보인다. 국회 청문회와 특검 조사를 통해 최순실의 위세를 상당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모두 “곤혹” “참담” 등 적잖은 충격을 토로했다. 중앙언론사 정치부장을 지낸 한 인사는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고, 동정 여론조차 차갑게 식은 상황에서 섣부른 사면 추진은 오히려 여권 지지층 반발과 이반을 가져오는 정치적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 관계자들은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황 대표의 한 측근은 “사면은 시간문제”라고 단언했다. 그 이유로 MB 보석 허가와의 형평성 문제, 전·노보다 오랜 구속 기간을 거론했다. 이어 “만약 내년 총선까지 풀어주지 않으면 무려 3년 넘는 감방생활을 감내해야 하는데 그땐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이 만만찮을 것이고, 선거에 임하는 여당으로선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왜 대통령과 여당 인사들은 현 상황에선 모두 ‘아니다’라고 오리발을 내밀까”라고 반문한 뒤 “총선 직전에 전격적으로 사면을 단행해 정치적 효과와 파장을 극대화하려는 속셈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의 한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박 전 대통령 사면 카드는 현재로선 여권의 뜨거운 감자일 수 있지만, 총선이 가까워지면 오히려 한국당의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아마도 총선 직전에 사면 카드를 선거 승부수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테랑급 당 출입기자는 “우리 정치의 과거나 속성상 문 대통령이 퇴임 전에 박근혜 사면을 할 것은 분명한데, 그 시점이 아마도 총선 직전이 될 것이라는 당 관계자들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총선 기획 사면설의 실체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6월 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4대강 보파괴’ 저지 대토론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황 대표도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언급한 바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당의 의구심은 한마디로 ‘박근혜 총선 기획 사면설’로 정리할 수 있다. 재임 시절 콘크리트 지지율을 기록했던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초유의 파면과 구속에도 태극기 부대를 비롯한 열성 팬덤의 동정과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총선에 임박해 사면으로 풀려날 경우 그가 마음먹기에 따라선 ‘친박 신당’이 출연할 수 있다는 게 한국당의 걱정이다.

이 경우 총선에 보수단일 대오로 똘똘 뭉쳐 승부수를 걸어야 하는 한국당의 전략에 큰 차질이 불가피하다. 지난 패스트트랙 정국 때 저지투쟁에 나섰던 한국당 의원의 한 보좌관은 “이 정권이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그 다음 날부터 바로 레임덕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기기 위해서 그 어떤 일이라도 다 할 것”이라면서 “따지고 보면 이번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도 총선 전 ‘친박 신당’에 정치적 미끼를 주려는 속셈도 작용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당은 준연동형 선거제가 받아들여질 경우 범여권의 군소정당 약진 못지않게 친박 신당의 태동 가능성에 신경을 써오던 참이었다. 태극기 부대의 열화 같은 지지에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구심점이 될 경우 당 지지율이 의석 진입 봉쇄조항인 3%를 가볍게 뛰어넘어 두 자릿수 이상의 의석 확보도 전혀 불가능한 게 아니다. 그 때문에 여권으로선 총선 전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통해 보수 분열을 충분히 획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황 대표는 일단 자신감을 보인다. 지난 5월 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당은 이제 친박·비박이 없는 원팀(One Team)이 됐다”면서 “박 전 대통령이 내년 총선 직전 사면된다 해도 당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연세도 적지 않고 몸까지 많이 불편한 상황이라고 하니 국민의 화합적 관점에서 선처가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사면을 재차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분란을 일으키시는 분이 아니고, 한국당을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설사 여권이 “국정(사면)을 가지고 장난을 쳐도” 박 전 대통령이 이를 충분히 간파해 한국당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와 기대를 표한 것이다. 당 소속 전직 의원 역시 ‘달라진 박근혜’를 희망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결국 영어(囹圄)의 몸이 됐지만, 그렇다고 정권이 총선 직전 풀어줄 경우 그 속내를 짐작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여권의 의도와 정반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게 정치적으로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반대 전망도 만만찮다. 과거 박 전 대통령의 야당 대표 시절을 포함해 당의 전략기획 파트에서 오래 일한 전직 당료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비관적 견해를 구체적으로 피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탄핵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포진한 한국당의 안위보다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지지를 보내준 대한애국당에 더 큰 믿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굳이 친박 신당을 만들지 않더라도 대한애국당을 중심으로 태극기 부대를 결집시켜 독자적 정치세력 구축을 꾀할 가능성이 더 크다.”

친박계 사정에 밝은 한 정치평론가도 지난 2월 한국당 전당대회 직전 전해졌던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 사건을 들어 황 대표의 바람과는 달리 “정치적 삐딱선을 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는 당시 이례적으로 방송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황교안 전 총리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교도소 측을 통해 여러 번 전해왔는데, 박 전 대통령이 거절했다. (박 전 대통령이) 거절한 이유에 대해서 저한테 말씀을 했지만 이 자리에서 밝히진 않겠다. 황 전 총리가 친박이냐는 것은 국민들께서 판단하실 수 있다고 본다.” 박 전 대통령이 황 대표에 대해 작심하고 섭섭함을 표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권 인사들은 “박근혜 총선 기획 사면설이 사면설만큼이나 뜬금없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뭐 눈에 뭐밖에 안 보인다고 과거 자신들이 집권 때 모든 국정운영을 정치공학적으로 하던 대로 우리가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말 그대로 착각”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함께했던 부산의 한 지역위원장 역시 “사면을 총선 승부수로 이용한다는 발상은 문 대통령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라며 “그 정도로 정치적 셈법에 능한 분이라면 평생의 동지인 ‘바보 노무현’의 길에 함께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캠프 참여 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한 인사 역시 기획 사면설을 일축하면서 “앞으로 만에 하나 사면을 한다면, 그건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국민 통합과 화합적 차원에서의 결단이 될 것이고, 그것 역시 총선 이후 한참 뒤의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간 당직을 거쳐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민주당 인사는 총선 기획 사면설이 불가능한 이유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돌직구 맞고도 압승 거둔 황교안의 힘


▎2015년 3월 17일 청와대에서 여야 영수회담을 가진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사진:연합뉴스
먼저 총선 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모든 재판이 완료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국정농단 재판의 경우 이르면 9월 최종 선고가 내려질 수 있다. 2016년 총선 불법 공천개입 재판은 이미 2년 형이 최종 확정된 상태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 국정원 특활비 사건은 사정이 다르다. 이 사건에 대한 1심 재판은 지난해 7월 6년 형이 선고돼 종결됐다. 그러나 항소심은 무려 314일 만인 지난 5월 30일 첫 재판이 열렸다. 서둘러 재판을 속행해 올 하반기 중 항소심이 끝난다 해도 대법원 상고심에 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내년 4월 총선 전에 최종결론이 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하려고 해도 아예 사면 절차에 들어갈 수가 없다.

두 번째 ‘박근혜의 힘’이 예전만 하냐는 점이다. 한때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탄핵을 거치며 현저히 약화됐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앞서 소개한 한국당 전당대회 전 박 전 대통령이 황 대표에게 날린 돌직구. 당시 메시지에 대한 진위 논란이 있었지만 ‘황교안 대세론’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게 다수의 관측이었다. 그러나 전대 결과는 황 대표의 압승이었다.

신임 당 대표로 취임한 황 대표가 주변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확실히 당을 장악한 상황도 총선 기획 사면설 전제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 황 대표가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대규모 장외집회에 이어 민생대장정까지, 강경한 투쟁을 이끌면서 최소한 당내에서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계파 간 갈등은 외형상 사라졌다. “이제 당에 친황밖에 없다”는 우스개가 나도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의 거취나 영향력에 의해 흔들릴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反) 문재인 연대’를 황 대표가 주도하면서 태극기 부대를 비롯한 당 밖의 친박 강경파까지 흡수할 수도 있다는 게 민주당 측의 걱정 아닌 걱정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게 양당 대립 구도의 재현이다.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의 선전으로 다당제 구도가 만들어졌지만, 패스트트랙 정국을 거치며 다시 민주당과 한국당의 맞대결이라는 원점으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물론 패스트 트랙에 올라간 준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된다면 양상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민주당 일각의 냉정한 평가다. 현행 소선거구제로 총선이 진행된다면 설사 박 전 대통령의 부추김으로 친박 신당이 뜬다 하더라도 ‘찻잔 속 태풍’에 머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박근혜 총선 기획 사면설은 허깨비에 불과할 뿐”이라면서 “오히려 황교안 체제를 공고화하려는 한국당의 계산된 정치적 엄살”이라고 일축했다.

요즘 보수 정치권 일각에선 또 다른 ‘박근혜의 옥중 메시지’가 은근히 나돌고 있다. 요지는 박 전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측근 유 변호사를 통해 대한애국당 조 대표에게 한국당 홍문종 의원과 함께 친박 신당을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것. 조 대표가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를 언급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그 내용이 퍼지고 있다. 실제 최근 그를 직접 만났다는 한국당 측의 한 인사는 “조 대표가 12월 성탄절 또는 내년 3·1절 특사로 박 전 대통령이 풀려날 것을 확신하면서 ‘친박 의원 40명 정도 모으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며 총선 전 새로운 친박 신당 출범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고 전했다.

정치권 떠도는 ‘박근혜의 옥중 메시지’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이 홍문종 의원의 움직임이다. 그는 6월 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한국당 탈당과 대한애국당 입당을 강하게 시사했다. “저한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빨리 대한애국당에 입당하라는 분들이 있다. 저도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조금 있으면 한국당의 기천명(幾千名) 평당원이 여러분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기 위해 탈당 선언을 할 것이다. 제가 한국당에 있는 친박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보수 우파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제는 태극기’라고 설득했다. 우파 진영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 물론 홍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당 인사들은 홍 의원의 주장이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홍 의원의 집회 발언이 전해진 다음 날인 9일 ‘강성 진박(眞朴)으로 알려진 김진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서 진행한) 자유산악회 첫 산행 잘 마쳤다”며 “홍문종 의원, 정태옥 의원, 허원제 전 정무수석도와 든든했다. 팔공산 갓바위에서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요?”라는 글을 실었다. 당 안팎에선 박 전 대통령 석방과 함께 새로운 친박 신당 태동을 암시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떠돌았다.

황 대표는 이런 친박계 동향과 나아가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을 예의주시하면서 나름 대책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만약 박 전 대통령이 친박 신당 움직임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이면 결연히 갈라설 수밖에 없다”면서 “최근 중도를 강조하는 것도 이를 위한 포석”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다른 관계자는 “진짜 박 전 대통령이 총선 전 풀려나서 친박 신당의 구심점 노릇을 한다면,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는 아주 고약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꾸로 여권 입장에선 총선 기획 사면이 그만큼 총선 승리를 위한 필승카드가 된다는 얘기”라며 “절대 이를 포기할 리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외형상 현재까지 드러난 여권 기류에서 총선 기획 사면설의 단서를 찾기란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과거 집권세력의 경험칙에서만 본다면 총선 전 사면을 통해 ‘야권 갈라치기’를 할 개연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최근 양정철 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의 행보를 보면 과연 그가 왜 선수라는 얘기를 듣는지 이해할 만하다”면서 “총선 승리를 위한 그의 빅 픽처(큰 그림)에 총선 전 박근혜 사면 카드가 충분히 들어있을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면의 열쇠를 쥔 사람은 문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 사면을 남발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그로선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다른 한편으론, 전임 대통령의 장기간 구속에 대한 인간적 부담과 국민통합을 위한 결단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총선 승리의 유혹도 달콤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둘러싼 그의 해법이 진작부터 궁금해지는 이유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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