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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키덜트의 진화’ 수제 무선조종(RC)자동차의 질주 

우리 차가 작아졌어요! 

사진·글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운전자 움직임에 세월 흔적까지 재현… 고가에도 주문 이어져
‘클레이 모델링’ 적용 맞춤형 거푸집 제작이 디테일의 비결


뉴코란도 차량 한 대가 흙탕물을 튀기며 캄캄한 동굴 속을 빠져나온다. 차체 이음새마다 싯누런 진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울퉁불퉁한 지면을 견디려 쇼크업소버(shock absorber, 충격 흡수 장치)가 안간힘을 쓴다. 운전대를 쥔 안홍권(39)씨도 입을 앙다문 채 전방을 주시한다.

사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인간이 아닌 피규어다. 안씨가 자신을 본떠 만들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모습이 실제로 운전하며 주행 트랙을 살피는 듯하다. 뉴코란도 무선조종(RC)카도 그가 손수 만든 작품이다. 실물의 10분의 1 크기다.


▎경기도 파주시 감악산 자락에 지프 체로키(Cherokee) 무리가 모였다. 대부분 20년 넘는 연식을 자랑한다. 오른쪽으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체로키 한 대가 더 보인다. 안홍권 씨가 10분의 1 크기로 제작한 미니어처 체로키다. / 사진:안홍권
안씨가 만든 ‘RC카+피규어’ 세트는 1000만원을 호가한다. 제작 기간만 두 달이다. 바로 구입할 수 있는 범용 제품의 가격은 50만원 내외다. 이렇게 가격 차이가 크게 나는데도 해외에서 주문이 몰려온다. 국내외에서 찾아보기 힘든 RC카 수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안씨는 “최근 한 주한 외국 대사가 뉴코란도 RC카를 주문했다”고 귀띔했다. 고가에도 인기를 끄는 비결은 뭘까?

그의 독특한 작업방식에서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실물 없이 사진만 보고 작업함으로써 오히려 디테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애마(愛馬)’와 함께 한 사진 속 추억까지도 미니어처로 재현 가능하단 뜻이다. 현실에선 충족키 어려운 ‘오프로드 판타지’도 맛볼 수도 있다. 험지를 돌파하며 새긴 녹과 흠집은 ‘오프로더’들의 훈장일 테다. 천편일률적인 광택을 내는 범용 RC카가 흉내내기 어려운 기술이다.


▎1976년식 포드 픽업트럭. 도색 처리를 통해 차체의 녹을 구현했다. 휠은 소금물을 뿌려 부식시켰다. 실제를 모사한 차대(車臺)와 서스펜션(suspension, 충격흡수 장치) 등을 장착했다.
이런 작업 방식은 안씨가 점토와 친숙한 조소를 전공한 덕분에 가능했다. 의뢰인 요구에 따라 점토로 맞춤형 거푸집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업계에선 ‘클레이 모델링(clay modeling)’이라고 부른다. 실제 차량 제작업체를 통틀어도 클레이 모델링 작업이 가능한 전문가는 손에 꼽는다. 안씨는 “앞으로는 국내 자동차 업체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안홍권씨는 오프로드 RC카 전용 실내 트랙까지 손수 제작했다. 진흙·동굴·다리·하천·자갈밭 등을 표현했다.



▎특별한 도구 없이 의뢰 차량 사진만으로 작업이 가능하다.



▎6분의 1 크기의 인물 피규어는 제작하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



▎RC카 계기판에 불이 들어와 있다. 범용 RC카로는 범접할 수 없는 ‘안작가(ANZAKA)’표 디테일이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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