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청설모도 공격하는 어치 

 

올빼미·매 등 천적 소리 흉내로 상대 기 죽여
낙엽 밑에 도토리 숨겼다 겨우내 찾아 먹기도


▎까마귓과의 어치는 구관조나 앵무새처럼 길들이면 사람소리도 낼 수 있다고 한다.
'저어새(산까치)’는 필자가 사는 춘천시 시조(市鳥)라 그런지 더 정감이 간다. 하루도 빼지 않고 심신을 푸느라 걷는 애막골 산등성이 산책길에서는 어치·청설모·다람쥐·쇠딱따구리·고라니는 매우 자주 만나는 편이고, 겨울엔 산토끼도 간혹 맞닥뜨리게 된다.

“산까치야 산까치야 어디로 날아가니? 네가 울면 우리 님도 오신다는데 너마저 울다 저 산 너머로 날아 가며는 우리 님은 언제 오나 너라도 내 곁에 있어다오….” ‘산까치야’는 집사람이 노래방에서 가끔 불렀던 애창곡이기도 하다!

저어새는 우리나라 산림 조류의 대표적인 텃새로 산책로에서도 발견되는 친근한 새다. 필자가 매일 다니는 애막골 야산에도 때때로 녀석들이 떼거리로 설쳐댄다. 사람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깩깩거리면서 삭정이가 많은 소나무 숲을 나지막이 미끄러지듯 빠져 나간다.

사실 지난해 어치 한 쌍이 내 서재(글방) 귀퉁이에 있는 신나무에 둥지를 틀어 새끼 다섯 마리를 키워 나갔기에 나름대로 놈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

‘산까치’는 보통이름(common name)이고, 생물이름(Korean name)은 ‘어치(Eurasian jay)’다. 흔히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뱁새’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향명(鄕名)이고, 생물명은 ‘붉은머리오목눈이’듯이 말이다.

어치의 에스페란토(국제보조어) 격인 학명(學名, scientific name)은 Garrulus glandarius 이고, 참새목 까마귓과의 조류로 총중에 몸집이 좀 작은 편이지만 같은 과(科)의 까마귀와 까치(까막까치)를 여러 모로 참 많이 닮았다. 세계적으로 34종의 아종(亞種, subspecies)이 있고, 한국에 서식하는 아종은 Garrulus glandarius brandtii 이다. 속명(屬名) Garrulus 는 잘 지껄인다는 뜻이고, 종명(種名)인 glandarius 는 도토리를 모아 숨기는 습성을 뜻한다. 이렇게 어느 생물이나 학명에는 그 생물종의 중요한 특징이 들어있고, 학명은 모두 라틴어(Latin)이기에 엇비스듬히 드러누운 글자체인 이탤릭체로 쓴다.

품새가 늘씬한 어치는 몸길이 33㎝ 안팎이고, 전체적으로 분홍색을 띤 갈색으로 암수구별이 쉽지 않다. 머리와 목은 적갈색이고, 등과 어깨는 회갈색이며, 가슴과 배는 연한 황갈색이다. 눈 아래 뺨, 꼬리, 날개는 검고, 허리부위는 흰색이며, 날개덮깃은 특징적인 뚜렷한 파란 무늬(blue wing patch)가 있다. 또한 부리는 암갈색이고, 다리는 갈색이며, 날갯짓은 비교적 느린 편이다.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면서 땅에는 거의 내려앉지 않는다.

‘개미목욕’ 통해 기생충 없애기도

여름엔 높은 산에 지내다가 겨울에는 작은 무리를 이뤄 저지대로 이동한다. 단독생활을 하지만 봄에는 짝을 찾아 서로 모여들고, 생식활동이 끝난 가을에는 떼를 지운다. 텃세가 상당히 심해 깩깩 매우 시끄럽게 구는데, 가만히 보고 있을라치면 몸의 깃을 바짝 치켜세우고, 부리를 치켜들기도 하고 엉뚱한 청설모에도 대든다.

4~7월에 소나무나 잣나무 위에다 나뭇가지나 풀뿌리 등을 얽어 가장자리 얼개를 두르고, 나무껍질이나 이끼(선태식물) 등을 진흙으로 반죽해 붙여 밥공기 모양의 둥지를 짓는다. 보금자리 안의 알자리에는 보드라운 풀줄기나 이끼, 나뭇잎을 깐 뒤에 4~6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청록색 바탕에 연한 갈색의 무늬가 있고, 16~17일간 암컷이 포란(抱卵)하며, 부화 후 19∼20일간의 육추(育雛, 새끼를 기름) 기간을 거쳐 둥지를 떠난다.

“시인의 귀에는 숲속의 새소리가 어머니의 음성으로 들린다”고 했는데…. 암튼 “케익, 켁, 캬야 캬야”거리며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끌벅적 거친 울음소리를 내지르니 산골짜기가 쩌렁쩌렁 울린다. 휘파람소리를 썩 잘 내고, 새나 고양이, 염소소리 시늉을 내기도 하며, 구관조나 앵무새처럼 길들이면 사람소리도 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자기를 공격하는 올빼미나 매 따위의 포식자(捕食者) 소리를 흉내 내는 일종의 짓시늉(의태, 擬態)을 하니 약삭빠르게도 소리로 상대를 기죽이고 혼란시킨다.

까마귓과의 새들은 하나같이 영리해 까막까치는 물론이고 어치도 겨울이 코앞에 닥칠 무렵이면 도토리를 물고와 낙엽 밑이나 풀줄기 사이사이에 몰래 갈무리해뒀다가 겨우내 찾아 먹는 습성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겨울 눈이 내리면 영락없이 떼거리로 모여들어 기웃기웃 근방을 서성거리다가 대뜸 바닥을 후벼 판다. 까마귀도 그 짓을 하는데, 묻어둔 것을 죄다 찾아 먹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래서 누가 뭔가를 자꾸 까먹으면(잊으면) ‘까마귀 고기 먹나’라 하고 핀잔을 먹인다.

하지만 어치나 다람쥐들이 마저 찾아 먹지 못한 도토리는 그 자리에 싹이 돋아 참나무 숲을 이루니 이렇게 동물과 식물은 서로 멋진 공생(共生)을 한다. 세상에 공짜 없는 법이요, 또 공짜보다 비싼 건 없다지.

어치 먹이는 도토리나 곡식 낟알, 나무열매들이고, 까치밥 홍시도 파먹는다. 그러나 새끼들에겐 반드시 송충이·거미·여치·청개구리·개구리·물고기 등 고단백질을 먹여 번듯하게 키운다. 또한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 지능이 높고 장수하는 것도 육류 단백질을 먹은 때문이라 한다. 결국 단백질은 매우 중요한 영양소다. 특히 맹자가 ‘70세가 넘은 이가 고기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七十者可以食肉)’고 얘기한 것처럼 노인들에게도 귀중하고 요긴한 영양소가 단백질이다.

그리고 어치는 몸의 기생충을 없애기 위해 개미집(ant hill) 위에 너부죽이 날개를 쫙 펴고 엎드린다. 놀란 개미들이 기어올라 개미산(의산, 蟻酸)을 닥치는 대로 마구 뿌려 제치니 기생충들이 죽어난다. 이를 ‘개미목욕(ant bathing)’이라 한다. 참 영리한 어치로고! 닭이 온통 밭 흙을 뒤집어쓰는 ‘모래목욕(sand bathing)’도 같은 이치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907호 (2019.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