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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전문기자의 ‘젊은 작가 列傳’(6)] K스릴러로 해외 시장 개척하는 소설가 김언수 

“욕심 버려 마음 고요해야 ‘왕좌의 게임’ 같은 대작 나온다” 

감성 입힌 조폭 소설 [뜨거운 피], 살인청부업 다룬 [설계자들]로 주목
“조울증 투병 경험 인간 이해에 도움… 가치 없는 소설 아무도 안 사”


▎감성적인 범죄 스릴러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각광받는 소설가 김언수. 시력 보호를 위해 변색렌즈 안경을 썼다. / 사진:신인섭 기자
3년 전 늦여름. 일간지 문학 담당 기자의 일상이 대개 그렇듯 조금은 단조롭고 그래서 어느 정도 심드렁한 날들을 보낼 때다. 나름의 바쁜 일정에 치어, 소개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책들이 출간되기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긴급 상황-가령 대형 부고 기사 같은 걸 써야 하는 상황-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상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달 젊은 작가 열전의 주인공인 소설가 김언수와 기자와의 인연은 그렇게 무심하게 지내던 어느 날 시작됐다. 소심하고 나태한 기자 앞에 이름만 들어 아는 정도이던 그의 새 장편소설 [뜨거운 피]가 도착했다. 한눈에도 두꺼운 두께. 600쪽에서 불과 몇 쪽 모자라는, 일간지 기자 입장에서는 ‘테러’에 가까운 분량이었다. 경박단소가 대세로 자리 잡은 소설 트렌드를 이리도 모르나. 아니, 무시하나. 작가의 무신경함에 대한 반감과 딱한 감정은, 진부한 수사법이겠으나, 몇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그만큼 소설은 뭔가 살아 있었고, 문장이 날카로웠다. 작가의 고향인 부산이 배경인 조폭소설인데, 피와 살이 튀는 폭력, 늙다리 조폭과 그의 첫사랑 창녀 사이의 저릿한 사랑,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구성과 전개가 시선을 붙들어 책장을 줄곧 넘기게 하는 페이지 터너로 손색없었다. 기자의 제한된 독서 경험에 비춰 비교하자면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도나 타트의 장편 [황금방울새] 비슷한 독서의 재미를 느꼈다.

당연한 수순처럼 이어진 인터뷰. 김언수는 자신의 작품만큼이나 인상적인 화술과 논리로 또 한 번 기자를 놀라게 했다. 다시 찾아본 당시 중앙일보 기사(2016년 9월 9일자 22면)에는 이런 문장들이, 정확하게는 그의 이런 말들이 아직도 빛을 잃지 않고 있다.

“한국문단 전체가 문학 자체를 관습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한국문단은 문장을 워낙 강조한다. 문장주의다. 나도 한때 거기에 빠졌었다. 내 별명이 문장에 관한 한 우완정통인데 그게 문학의 전부인 줄 알았다” “한국문학은 내면에만 빠져 있다. 충무로적 사건을 소설에 집어넣어야 한다.”

쉽게 말해 한국문학은 뭔가 거대한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 그 착각의 내용은 문학은 고상하고 예술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 자신의 작품이 그 물증이리라는 것. 이런 얘기였다.

김언수가 단순히 소설 잘 쓰는 반골에 그치고 말았다면 이번 작가 열전을 위해 그를 다시 만난다는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의 둔감함을 다시 한번 타격이라도 하듯 김언수가 또 한 번 놀라움을 선사한 건 지난해 봄이었다. 그의 2010년 장편 [설계자들]의 미국 판권이 여섯 자리 숫자의 액수, 억대의 계약료를 받고 명문 더블데이 출판사에 팔렸다는 소식이었다. 영국의 권위지인 가디언은 그런 뉴스를 전하며 살인 청부업자를 등장시킨 김언수의 범죄 스릴러가 북유럽의 음산한 누아르 소설과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창조하고 있다고 평했다. 기자는 운 좋게 이 사실을 타 매체에 앞서 특종 보도할 수 있었다. 김언수에 대한 국내의 박한 평가에 일정한 균열을 냈다고 내심 자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설계자들]은 지금까지 전 세계 24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신경숙 다음으로 해외에서 관심 보이는 한국 작가


▎김언수는 스토리 텔링이 돋보이는 장편소설로 승부한다. 팔려야 가치 있는 책이라는 게 그의 소설 지론이다. / 사진 : 문학동네
신경숙의 전무후무한 [엄마를 부탁해]가 몇 나라에 번역 소개됐는지 모르겠다. 이번 열전 인터뷰에서 직접 들어보니 판권들의 계약금들을 합산하면 5억원도 넘을 것 같다는 게 작가 김언수의 얘기였다(아닐 수도 있다, 김언수는 정확한 금액을 계산하지 못했다). 어떤 경우든, 그러니까 5억을 넘어서든 그에 미치지 못하든 아직까지 한국문학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수치들이다. 가령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기자의 기억에, 10만 부라는 엄청난 미국판 초판 인쇄 부수가 뜨거운 화제였지 판권 계약금이 얼마였는지가 관심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김언수의 경우 판권 계약료가 고스란히 그의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하청에 재하청으로 분업화된 국제 판권 거래 시장을 거쳐 원작자 몫이 정해지면 이 돈을 다시 정해진 비율에 따라 작가와 작가의 소속 출판사인 문학동네가 나눠 갖는다. 그렇더라도 원래 총액 덩치가 컸던 데다 [설계자들] [뜨거운 피], 두 장편에 대한 국내·외영화 판권료까지 더하면([설계자들]은 해외에도 영화 판권이 팔렸다) 김언수는 소설을 써서 밥 먹고 살 수 있는, 약간 과장하면, 일정한 여유도 누릴 수 있을 법한, 국내에서는 아직 소수에 불과한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반복이지만, 해외 문학 시장에서의 반응이나 흥행 가능성 측면에서 이제는 김언수를 신경숙 다음으로 꼽아야 할 것 같다는 점이다.

대개의 성공 스토리가 그렇듯, 또 그래야 신데렐라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거겠지만, 김언수의 경우도 꽃길만을 걷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균치 이하의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1972년생, 만으로 올해 마흔일곱인 김언수는 지금은 감천문화마을로 이름이 바뀐 부산의 변두리 달동네에서 태어났다. 2016년 [뜨거운 피] 출간 당시의 인터뷰와 이번 열전 인터뷰를 종합하면, 20가구쯤이 워낙 얇은 벽들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지내, 쌍욕 하며 아내를 때리다 잠시 후 ‘사랑해~’ 하며 덮치는 소리까지 적나라하게 들리던 민망한 동네였다고 한다. 아이들은 양아치를 거쳐 조폭으로 성장하거나, 마을을 탈출하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공부해 서울대에 합격하거나, 극단적으로 길이 갈렸다. 부산의 조폭 세계를 다룬 [뜨거운 피]는 그래서 김언수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어쩌면 고향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들은 아비에 대한 애증의 교차를 경험하며 어른으로 성장하는 법. 김언수의 경우 아버지에 대한 감정 진폭이 평균치 이상으로 컸던 것 같다. 왜 이런 소설책이 더 많이 안 팔리고 묻혀 있나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2013년 소설집 [잽]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 김언수는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의 부재, 그로 인해 학비와 생계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성장 과정 김언수의 문제였겠지만, 그런 환경은 단순한 생활의 결핍을 넘어 예민한 마음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그 앞에서 절대 쿨해질 수 없고 한없이 착잡하기만 한, 도망치고 싶어도 결코 도망칠 수 없고, 극도로 증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닮게 되는 원천이자 배후. 자기 자신을 지독히 미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역시 어쩔 수 없이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 김언수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의 아버지는 단순히 작가 내면의 일부를 구성하는 수준을 넘어 그가 산출하는 작품들에 직접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서 [설계자들]이나 [뜨거운 피]의 기본적인 갈등 구도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 관계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설계자들]의 주인공인 암살자 래생(來生)과 그의 보스인 너구리 영감 사이의 관계가 그렇고, [뜨거운 피]의 주인공인 ‘낭만 조폭’ 희수와 그가 모시는 손 영감의 관계가 그렇다. 어쩌면 소설 속 유사(類似) 부자 관계에서 보이는 복합감정을 김언수 소설 전체로 확산해 적용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의 소설 속 어떤 인물들은 늘 되돌아보고 마음을 뒤척이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맺고 끊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단호함과 냉정함이 생명일 조폭이나 암살자들에게 그런 착잡함을 적용시키는 데서 단순 누아르로 환원되지 않는 ‘김언수표 누아르’가 발생한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앞서 밝힌 대로 [뜨거운 피]의 주인공인 사십 줄 코앞의 조폭 희수는 창녀로 전락한 첫사랑 인숙을 잊지 못한다. 그를 낭만 조폭이라고 표현한 건 그래서다. [설계자들]의 주인공 래생은 본거지가 도서관이다. 그것도 ‘개들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지적이고 우수에 찬 듯한 이 암살자는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카프카를 논한다.

열전을 위해 김언수를 다시 만난 건 5월 28일. 이날 김언수에게 또 한 번 놀랐다. 그가 자신의 ‘병력(病歷)’을 담담하게 털어놓아서다. 김언수는 자신이 오랫동안 단순 우울증보다 훨씬 상태가 좋지 않은 양극성장애, 즉 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극단적인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공황장애를 경험한 적도 있노라고 했다. ‘~있노라’라는 과거형 종결 어미를 사용한 건 지금은 그 마음의 병을 극복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인터뷰어의 궁금증은 당연히 이런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의 경험은 작품 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악어를 그리려면 악어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왼쪽부터) 2006년 장편소설 [캐비닛] 2010년 장편소설 [설계자들] 2013년 소설집 [잽] 2016년 장편소설 [뜨거운 피]
“소설을 쓰는 데 매우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데는 유리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발언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그리된다는 걸까. 말하자면,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마음 탐구가 자연스럽게 마음공부로 이어지고, 그 결과 작품을 쓰는 마음 자세를 가다듬는 데 있어서나 작품 속 캐릭터의 성격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나 도움이 되는 통찰을 얻었다는 얘기였다.

가령 김언수가 양극성장애 투병 경험이 소설 쓰는 데 유리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그렇지 않은 작가들에 비해 자신이 인간 감정을 훨씬 풍부하게 맛보았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김언수에 따르면 작가의 마음은 어떤 면에서 소설의 전부다. 소설 속에 나오는 어떤 캐릭터도 작가 아닌 건 없다. 작가가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본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을 경유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유대교의 신비주의 전승(傳承)인 ‘카발라’에서 세상에 완전한 선인이 있다면 어떤 악도 볼 수 없다고 선언했던 것도 김언수가 보기에는 같은 의미다. 그렇지 않겠는가. 이런 식의 강변이 허용된다면, 선험적인 합리론이든 그 반대 경험론이든,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보는 이의 시야 이면에 어떤 ‘아이디어’가 있어야 그에 대응하는 외부 세계의 사물이나 사태를 식별할 수 있을 거 아닌가. 타인에게서 질투나 역겨움을 느낀다면 내 안에 이미 그런 감정들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김언수라는 작가 안에 양아치 감정이 들어와 있어야 조폭의 생리를 그럴싸하게 그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 부탁으로 원양어업 소설 집필

물론 그렇다고 마음만 가지고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김언수의 방법론은 말하자면 묘사하려는 대상과의 동일시였다. 악어의 생리를 그리려 한다면, 그게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악어가 됐다고 치고 악어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식이다. 사과의 맛을 묘사하기 위해 사과의 맛에 관한 논문을 찾아 읽는 따위의 짓도 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과를 직접 먹어보는 거다. 김언수는 아마도 늦깎이로 들어간 경희대 국문과에서 배웠을, ‘소설을 살아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철칙을 믿는다고 했다. 생생한 체험이 살아 있는 소설 쓰기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2006년 판타지 소설 [캐비닛]은 좋은 소설이 아니라고 했다.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김언수는 지금까지 소설책을 네 권 출간했다. 신기하게도, 출간 연도 대로 소설책들을 줄 세우면 주제넘은 언급이겠지만, 그의 소설이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 2006년 [캐비닛]보다는 2010년 [설계자들]이, 그보다는 2016년 [뜨거운 피]가 어딘가 자연스럽고 보다 생생하다. 김언수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건 그래서다. 소설책들의 추세를 살필 때, 지금까지 이룬 것보다 앞으로 그가 가는 길이 기다려진다.

그는 2017년 말부터 지난해 6월까지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탔다.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의 부탁으로 참치 원양어업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소설가 최인호가 김재철 회장의 부탁으로 신라 시대의 해상왕 장보고를 소재로 한 장편 [해신]을 쓴 바 있다. 그렇다면 김언수는 과거 최인호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인가.

칭찬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법. 하지만 김언수가 간단히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서다.

“세계적인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처럼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작품을 쓰려면 먼저 마음이 고요해져야 한다. 누구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욕심도 가지면 안 된다. 일확천금을 벌려면 웃기게도 욕심이 없어야 하는 이상한 아이러니를 상대해야 하는 거다.”

김언수는 이런 말도 했다. “많은 사람이 모든 걸 돈의 크기로 환산하는 자본주의를 욕하는데, 사실 자본주의의 가치는 정확한 거다. 가치가 없으면 아무도 사지 않는다.”

종합하면, 이런 발언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두면서도 자본주의의 생리에 적대적이지 않은, ‘제3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다. 그런 태도로 김언수는 일단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다.

※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사에서 10년 가까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상식의 눈에는 괴짜인 문인들, 그들이 생산한 영롱한 것들을 초롱초롱한 독자들에게 중개하는 일, 제도로서 문학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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