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보보행진 步步行進 

 

서윤후

▎사진:박종근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그들은 그림자를 먼저 보고 고른다
나란히 걷는 자들을 선택하지 못한다 어둠 속에 덜 어두운 것을 심어도
그들을 분간할 수 없었으므로
하나의 신체를 앗아갈 때 남겨진 한 사람의 그늘에 대해 생각하는
유령의 늑장 속에 우리는 걷게 된다
보폭 속에 흐르는 간단한 대화라든지
겹사람, 영영 녹지 않는 이름을 불러줄 때
유령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이제 방금 왔다는 말
알아들을 수 없는 온기가 이 길을 멈추게 할 수 없어
빛이 번질 때까지 구경만 하는 유령들
떨어진 능소화 자리…… 걷고 싶은 것들이 떨어져 내려 발목을 지을 때
유령은 눈부시다는 말을 처음 이해하게 되었다

* 박민정 소설의 제목을 빌려옴

※ 서윤후 - 1990년생. 2009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과 [휴가저택], 여행 산문집 [방과 후 지구], 만화 시편 [구체적 소년]을 펴냈다. 제19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201908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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