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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긴급진단] 일본의 무역제재 속내와 다음 카드는? 

한국의 수출·생산 차질 선택적으로 유도할 듯 

다음 제재 카드 2차전지용 소재, 전자기기용 동박, 자동차용 반도체
日 정부, 민간 기업과 사전 검토 안 해… 자국 산업경쟁력 제고 효과도 별로


일본이 7월 4일부터 한국만을 대상으로 한 무역 제도 변경을 단행했다. 이로 인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한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이들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을 3년간 유효한 포괄허가 품목에서 수출 계약마다 허가를 받아야 할 개별심사 품목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들 품목은 일본 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70~90%에 달해 단기간 안에 대체하기가 어려운 것들이다.

일본 정부는 정책 변화를 예고하고 3일 만에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충분한 재고를 축적할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수출 심사 기간이 길어질 경우 감산 및 가동중단 우려에 직면할 수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8월 중에 군수품 이외의 모든 품목에서 안전 보장이 의심될 경우 규제를 가하는 캐치올 규제(Catch-All Controls)의 예외가 되는 27개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리 기업에 대한 파장이 확대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공식발표로는 이번 조치가 한국의 전략물자에 관한 무역 관리에 문제점이 있다고 하면서 한국을 안전보장상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전략물자의 경우 선진국 수준의 관리가 이뤄져 왔다는 입장이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일본제 소재, 부품, 기계류가 북한 등의 미사일의 제조에 기여해 왔다고 반박하는 형국이다. 만일, 한국 기업에 사소한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북한 미사일 등에 지대한 기여를 해 왔던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일본 대기업들은 세계 군수 시장 진출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제 고성능 기계류나 첨단소재가 중동 등 분쟁 지역이나 선진국의 무기 생산용으로 수출됐다. 이로 인해 세계평화에 위협이 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고 각종 기술정보의 보안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세계적인 모 자동차 부품 기업의 경우도 지난 2007년 중국인 기술자에 의한 기술유출 사건이 발생해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근거가 미약한 데도 불구하고 일본이 안전보장 문제를 거론해 온 것은 그동안의 한국과 일본의 거듭되는 외교적 마찰, 대북정책 등에 대한 입장 차이 등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불신이 심화됐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일본의 조치는 단순히 선거를 앞둔 지지율 상승 대책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 직접적인 이유는 징용공 판결이다. 일본 기업의 자산이 압류되고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커졌기 때문, 아울러 위안부 합의 파기, 일본 자위대 초계기 레이더 조사 등 한·일 간의 여러 가지 마찰로 인해 양국 관계가 악화됨으로써 한국에게 무역 제도상의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국민 여론이나 자민당 강경 우파들의 압력을 받은 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베 총리도 한국에 대한 보복 의지를 직접 공개 방송을 통해 발언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 산업을 견제하려는 일본의 정책적인 의도도 없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할 경우 첨단 제품에 관한 한·일 간 기술교류, 한국에 대한 첨단 분야 투자도 규제 및 심사 대상에 포함된다. 심사를 관장하게 될 경제산업성은 그동안 한국 산업의 발전을 견제하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 등에서 일본 기업 연합을 지원해 왔다. 이들은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의 기술을 모방해 일본 기업을 추격 및 능가했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기술정보의 보안 정책을 강화해 왔다. 앞으로는 일본의 핵심소재나 헬스케어, 로봇, 우주 관련 첨단 산업에서 일본의 기술적인 우위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美 개입 없다면 2차 공격 가할 듯


이러한 한국 산업 견제세력은 이번 한·일 간의 정치 및 외교 마찰을 한국 산업 견제 정책을 펼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미국 정부가 산업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통상압력을 활용하는 등 정치 및 외교력을 통상전략과 연계해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국제사회 흐름에 아베 정권도 편승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일본의 무역 공격 조치는 ▷한국을 더 이상 우호국가로 보지 않겠다는 강경우파의 편향된 시각 ▷부정확한 정보에 의해 오도된 안전보장상의 우려 ▷징용공 문제로 인한 일본 기업의 피해 발생 우려에 대한 일본 국민의 분노 ▷한국 산업 견제라는 네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일본의 통상 공세의 배경을 볼 경우 일본의 무역 공격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올 6월 말 오사카 G20 회의를 앞두고 징용공 문제 해결을 위한 기금 조성안을 일본 측에게 제시했지만 거절당한 바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한국 정부가 어느 정도 양보하더라도 미국 정부 등의 획기적인 개입이 없다면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하는 2차 무역공격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여러 분야에서 한국 제조업의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기업은 반도체 재료뿐만 아니라 2차전지용 소재,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용 동박, 자동차용 반도체 등에서 압도적인 세계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산업을 위협할 수 있다.

물론, 화이트 국가에서 빠져도 일본이 캐치올 규제의 대상이 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까다롭게 심사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산업성이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제품에 한해서만 심사를 요구하고 일본 기업들이 서류를 제출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단, 첨단적인 부품·기계·소재들의 경우 군사용에도 활용될 수 있는 군수·민수 동시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 기업들이 수출대상 기업의 신뢰성, 수출품의 사용 용도 등을 증명하기 위한 근거자료를 작성해 제출해야 할 부담이 확대된다. 일본 정부가 징용공 문제 등에서 한국의 양보를 얻기 위해 반도체에 이어 한국의 중요한 수출산업 분야의 생산 차질을 선택적으로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중장기적으로 일본 기업 매출 감소 가능성


▎7월 12일, 도교 경제산업성에서 열린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 /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주력 수출 분야에서의 생산이 일시적으로 차질을 빚으면 관련 기업의 비용 상승, 협력업체의 매출감소, 고용 및 주변 지역경제의 악화 등의 영향을 낳게 된다. 반도체 등 일본의 무역공격 대상의 경우 완성품 재고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생산 차질 기간이 길지 않다면 당장 매출에 큰 차질을 부르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일본 수출규제 품목의 재고가 2개월 정도 있고 일본이 수출심사에 3개월 소요될 경우 생산 차질은 1개월 정도가 된다. 여기에 제품 재고가 3개월이 있다면 세계 각국의 고객에 대한 매출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제품의 종류나 사양에 따라서는 일본제 부품의 제고나 제품의 재고가 부족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공급망에 악영향을 줄 우려는 있다.

한편, 일본 정부의 규제를 받게 될 일본 기업의 경우 방대한 추가 서류 작성 작업으로 인해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으며, 이러한 부담이 보다 많은 기업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 일본 기업은 현재 극심한 인력 부족 속에서 근로시간 단축, 육아 휴가 확대 등의 일하는 방식 개혁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출이나 수익에 기여하지 않는 추가 업무 부담의 확대로 인해 다른 분야의 업무에 대한 차질과 매출 감소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일본 기업의 매출 감소 압력은 무역규제 품목 이외에도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번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의 수출이 차질을 빚어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줄어든다면, 일본이 공급하고 있는 다른 반도체 소재·부품·기계류 등에서도 한국에 대한 매출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본 기업이 일시적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타격을 받게 되는 데다 한국 기업이 거래선 대체에 주력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차원에서도 일본 기업의 매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으로 일본의 소재 및 부품 기업에 대한 공급 신뢰도가 하락함으로써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세계 각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고 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자유무역질서를 지키고 정치적 의도로 무역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하던 일본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심각하게 손상되는 효과도 있으며, 이는 일본 기업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반도체 등의 생산 및 판매 차질이 발생할 경우 일본 기업의 각종 제품 생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의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다. 거래선을 쉽게 전환하기 어려운 애플, 아마존 등의 글로벌 기업과 함께 일본 및 해외 소재 일본 기업의 각종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당장 소니의 경우 자사 PC의 생산 차질을 우려하여 대체 기업을 모색해야 할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 차질은 또 다른 분야의 투입재의 생산을 위축시키는 연쇄 효과를 주기 때문에 글로벌한 무역 및 생산 악화 요인으로 작용해 한국, 일본을 포함한 세계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무역공격에도 불구하고 일본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쟁력 회복 효과는 거의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산업을 견제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이번 공격에 작용하고 있지만 미국 트럼프 정권의 대중국 견제 전략처럼 일본 민간 기업과의 폭넓은 대화와 신중한 고민 작업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은 일본 기업에게도 철저하게 알리지 않고 사전의 영향도 심도 있게 검토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산업경쟁력 제고 측면에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모든 품목 국산화, 불가능해… 정치·외교로 해결

일본 정부의 무역공격 사건을 계기로 양국의 일반 국민도 모르는 걸 알게되는 계기를 맞이 했다. 예컨대 한·일 양국이 교역 규모로만 따지기 힘든, 첨단산업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상호이익을 확대해왔다는 점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한·일 산업협력 관계는 쉽게 단절하기 어렵고 세계경제에 대한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간의 자유로운 무역, 자유로운 연구 및 기술 협력이 저해될 경우 한국 제조업뿐만 아니라 일본의 부품 및 소재 산업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이노베이션을 하는 데 있어서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에 대해 우리가 보복이나 대대적인 불매운동 등으로 맞대응하는 것은 연쇄적인 상호 보복을 초래해 한·일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은 WTO 제소 움직임 등을 통해 한국의 분노와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일본 및 국제사회에 호소할 필요가 있다. 이번 조치에 대해 부정적인 일본 내 우호 세력 등과의 협력도 중요할 것이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안전보장상의 이유를 남용한 무역공격 행동으로서 WTO 위반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안전보장 개념을 남용에 해당한다.WTO는 세계 통상질서 개선 차원에서 무역공격을 규제하는 규율을 강화하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이 판결 이전에 타협하는 것이 우호관계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로서는 자유·무차별·공정의 WTO 원칙을 지키면서 보호주의가 강해지고 있는 세계에서 글로벌한 비즈니스 환경 유지에 주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본 기업으로부터 첨단 제품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 기업으로서는 관련 품목의 재고 상황을 점검 중이다. 특히 ▷일본의 거래선 기업과 협력해 재고 확충 ▷일본 기업의 제3국 해외 거점을 통한 조달 확대 ▷일본 이외의 거래선 기업 전환 기회 탐색 등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소재·부품·기계 등의 대일(對日) 의존도를 낮추고 관련 산업의 육성에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의 기초가 되고 대일 의존도도 심한 첨단화학 소재나 산업용 로봇 등의 일반기계 분야 등을 집중적으로 강화해야 할 상황이다. 이번 규제 대상품목을 포함해서 관련 일본 기업 등 해외기업 유치를 위한 비즈니스 환경 개선, 투자 유치 인센티브 강화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일은 무역을 통한 분업으로 상호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품목을 국산화하고 자급자족하겠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일본을 대신해 자유무역 질서를 수호하고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보복을 하지 않는 국가로서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물론,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한·일 우호 및 외교관계를 잘 계승하고 미비점이 있으면 보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에서는 정치·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는 데에 주력해 국민 생활이나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 jplee@lgeri.com

201908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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