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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리포트] 트럼프와 김정은, 비핵화 게임의 종착지는? 

북핵 동결의 연기가 모락모락 

판문점 깜짝 정상회담 통해 트럼프는 재선 홍보, 김정은은 제재 완화 노려
영변 핵폐기 범위 놓고 미국이 양보하는 ‘미들딜’ 대두… 강경파 볼턴은 강력 반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역사적 만남을 가졌다. 흥행은 성공했지만 앞으로의 협상이 관건이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야구 경기로 치면 3회말을 마치고 4회초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3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시점에서 이 게임의 승부를 정확하게 예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게임이 초반 탐색전을 지나 본격적인 공방으로 흘러가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까지는 동점 경기다. 1회(싱가포르)에 김정은이 득점했고, 2회(하노이)에는 트럼프가 득점했다. 3회(판문점)에는 양측이 득점을 해서 결말을 예측하기 어렵다. 내년 상반기까지 2~3차례의 공격과 수비가 진행되며 승부의 윤곽이 나올 것이다. 9회말 경기가 끝났을 때,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승부는 내년 11월 미국 대선 전인 가을까지 계속될 것이다.

과거 정상회담은 경호와 의전 및 의제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 간에도 폐쇄주의가 원칙이었다. 하물며 체제와 이념이 상이하고 심각한 안보 현안이 달려있는 국가 간에는 ‘공식 발표 전까지는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정답이었다. 특히 특사와 밀사를 파견하는 사전 조율을 통해 개최 조건이 맞아야하는 비수교국간 최고 지도자 간 회동은 성사되기 전까지 모든 언론의 추측과 보도는 무조건 부인된다.

가장 은밀한 사전 접촉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이후 3개월간 진행된 남북한 사례다. 언론의 시선을 회피하기 위한 실무자들의 제3국 만남이 다반사였다. 결국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은 박지원 당시 문화부 장관(현 민주평화당 의원)의 대북 비밀 접촉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김태효 청와대 비서관 등이 주도한 대북 접촉은 북측의 일방적 폭로로 세상에 드러났고 판은 깨졌다.

美가 한번 떠봤는데 즉각 반응한 北


▎2019년 시점에 추정되는 북한의 핵시설이다. 영변 핵시설의 폐기 범위를 놓고 북·미 협상은 교착 상태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깜짝’ 평양 방문이 성사됐다. 최초의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협상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린 채 진행됐다. 북측 비밀특사로 활약한 미스터 X는 일본 측의 다나카 히토시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을 상대로 1년여 간 30차례에 걸친 비밀 접촉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 간의 평양회담을 성사시켰다. 이때도 일본 정부는 미스터 X의 존재는 물론 협상 자체를 끝끝내 숨겼다. 베일에 싸인 인물은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으로 추정된다. 비밀과 보완이 생명인 접촉이었다. 비선이 공개되는 순간 협상은 중단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외교 격식과 의전을 파괴하고 SNS를 통해 비무장지대(DMZ) 접촉의 물꼬를 텄다. 공개적으로 정상 간 만남을 제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29일 오전 7시 51분, 미국 시간으로 저녁 6시 51분에 트위터를 올린 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그곳에 있을 것이고, 그래서 한번 떠본 것(put out a feeler)”이라고 말했다. 영어 단어 feeler는 ‘타진하다, 속을 떠보다’라는 의미다. 김 위원장이 면담에 호응하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정식 만남이란 걸 (어제) 오후 늦게야 알았다”고 했고, 트럼프는 “오지 않았다면 굉장히 민망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판문점 이벤트는 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부터 트럼프의 관심사항이고 하노이 회담 이후 물밑 접촉의 결과라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으나 가동 중인 북·미 간 물밑 채널로 성사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트럼프는 전날 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1차 토론회가 1810만 명이 시청하는 흥행에 성공하자 한 방에 미국 유권자들의 관심을 돌릴 만한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낸 것이다. 트럼프는 과거 베트남 전쟁 당시 4차례나 징집영장을 받고도 학업과 발목 부상 등을 이유로 최종적으로 병역을 기피했다. 병역은 기피했지만 본인이 분쟁을 해결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싶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는데 올인하고 있는 트럼프로서는 월경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비무장지대 이벤트가 욕심났을 것이다.

32시간 만에 회담은 성사됐고 53분간의 화려한 외교 쇼는 역시 예상대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언론의 촌평은 최초의 판문점 만남이라는 차원에서 과장이 아니었다. 항상 긴장이 감도는 국경지대에 최고 지도자들의 등장은 묘한 흥분과 감동을 줬다. 과거 1963년 6월 26일 케네디 대통령은 베를린을 방문, 붉은 천이 걸려있는 브란덴부르크 장벽 앞 루돌프 빌데 광장에서 ‘케네디’를 연호하는 100만 군중 앞에서 “Ich bee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라는 명연설을 해 위대한 대통령의 신화를 남겼다.

화해와 협력을 향해 미국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방문해 회담을 하는 판문점 이벤트 자체는 세간의 관심 측면에서 대박이라는 표현이 결코 지나치지 않았다. 물론 오사카를 향해 비행기를 탑승할 때부터 트럼프의 머릿속은 G20 정상과의 만남보다도 김정은과의 조우가 매스컴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그렸을 것이다.

단계적 타결로 미국이 셈법을 바꿨다?


▎2002년 9월 당시 김정은 국방위원장(오른쪽)은 2002년 9월 평양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만났다. / 사진:연합뉴스
트위터로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32시간 만에 분단의 상징인 국경선에서 전격 회동하는 자체는 현대 국제정치 외교사에서 유일무이할 것이다. 비인습적(unconventional) 지도자인 트럼프 대통령만이 결행할 수 있고, 향후 누구도 이와 같은 외교 행태를 모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화려한 외교 퍼포먼스는 1시간 만에 막을 내리고 이제 냉정한 현실로 돌아왔다.

북·미 양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대로 7월 안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휘 하에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이끄는 실무대표단이 지난해 겨울 최선희 부상과 예비 접촉을 했던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별장에서 김명길 전 베트남 대사와 끝장 협의에 들어갈 것이다.

향후 양측의 협상 시나리오를 검토하기 전에 첫 번째 분석이 필요한 의제는 워싱턴 정가에서 스멀스멀 연기가 올라오자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북한 비핵화의 범위를 ‘빅딜(일괄 타결)’에서 ‘스몰딜(단계적 타결)에 의한 핵동결(Nuclear Freeze)’로 미국이 협상 전략을 전환했는지 여부다. [뉴욕타임스]는 7월 1일 ‘회동 수주 전부터 트럼프 행정부 내에선 북한과 새로운 라운드의 협상을 준비하기 위해 핵동결 구상이 구체화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 행정부가 김 위원장에 단기간 내 핵 포기라는 최대치를 요구하는 것은 아무 성과를 낼 수 없다고 인정하고, 제한적인 첫 단계를 시작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비둘기파 협상가들은 일부 제재 해제를 대가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하노이 제안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싶어 한다. 영변 밖의 강선 및 분강 등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은 일차적으로 제외하고 영변 핵시설만의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는 핵동결을 비핵화 1단계 조치로 추진한다는 뜻이다.

북한은 2월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영변 폐기, 제재 해제 제안이 거부되자 “미국이 셈법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며 협상을 거부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영변만으로 핵심 대북제재 5건의 해제를 요구하자 “당신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베트남 회담장을 떠났다. 미국은 ‘영변 이외에 분강 및 강선에서 24시간 우라늄 농축이 이뤄지고 있다’는 정보당국의 기술 및 위성정보를 근거로 김정은에게 비핵화 추가 목록의 제출을 요구했다. 양측이 평가하고 있는 영변의 가치가 확연히 다른 것이다. 향후 비건과 김명길 대표 간의 협상에서 접점을 찾아야 할 핵심 부분으로 4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DMZ 회동이라는 즉흥적 트위터 제안을 수락해 판문점에 나타난 데 이어 2~3주 이내에 실무협상을 재개하는 데 전격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53분 회담에서 하노이의 격차를 좁힐 ‘어떤것(something)’이 포함된 제안을 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협상 도중 일정 시점에 무언가 일어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만남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7월 1일 트위터에 “김 위원장과 지난 주말 만나 정말 좋았다”며 “그를 곧 다시 만나길 고대 한다”고 올렸다. 그러면서 “그 사이 우리 협상팀들이 아주 오랜 기간 지속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만날 것”이라며 “서둘지 않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아주 오랜 기간 지속한 문제”라는 표현은 바로 비핵화의 범위에 대한 이견이다. 북한 역시 미국의 미세한 입장 변화에 상당한 기대감을 표명했다.

北, 이미 15개 이상의 핵무기 보유

판문점 회담 직후 조선중앙통신은 북·미 정상 간 단독 환담과 회담이 진행됐다며 “(북·미 정상이) 조선반도(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며 조·미 두 나라 사이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끝장내고 극적으로 전환해나가기 위한 방도적인 문제들과 이를 해결함에 있어서 걸림돌로 되는 서로의 우려 사항과 관심사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설명하고 전적인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셨다”고 밝혔다.

‘우려와 관심사항에 대해 전적인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셨다’는 표현은 미국이 자신들의 요청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는 것으로 평양이 이해했다는 의미이다. 물론 미국이 진정으로 입장 변화를 언급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최소한 북한이 흥미를 가지는 제안에 대해 미국이 언질을 줬다는 것은 추론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실무협상 과정에서 무언가 일어날 수 있다”는 표현은 비핵화 대상인 ‘영변+α’에서 북한이 미국의 기존 협상을 계속 거부하면 α를 뒤로 미루는 합의를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영변+α’ 라는 표현은 간단하나 내용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북한이 주장하는 영변 핵시설은 핵물질인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좁은 의미의 핵시설을 의미하는 반면, 미국이 판단하는 영변과 관련 핵시설은 분강과 강선 등, 여타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이 포함된 넓은 의미다. 조율해야 할 부분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동결이라도 과거, 현재 및 미래의 핵무기 중 단순히 현재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만을 의미하는지 분강 및 강선까지도 포함하는지, 그 범위는 매우 애매하다. 특히 과거 제조된 20개 정도의 핵무기는 언제 어느 조건 하에서 폐기되는 것인지 안보 측면에서 매우 우려스런 부분이다.

지난 1월 14일 주일미군사령부(USFJ) 홈페이지(http://www.usfj.mil)의 동영상을 보면, 주일미군은 북한의 핵 위협을 지적하면서 북한을 중국, 러시아와 함께 동아시아의 3개 핵보유 선언국(3 declared nuclear states)으로 표시했다. 특히 3개국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 핵무기 숫자(nuclear weapons)도 공개했는데, 러시아는 ‘4000+’, 중국은 ‘200+’, 그리고 북에 대해선 ‘15+’라고 표기했다. 이미 북한은 인도, 파키스탄 및 이스라엘과 함께 ‘실질적인 핵무기(substantial nuclear state)’ 보유국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분류되고 있다. 1972년 미국·영국·소련·프랑스 및 중국은 향후 어느 국가가 핵실험을 해도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이후 실험을 한 국가들은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으로 지칭된다.

핵동결로 비핵화의 1단계를 시작하려는 구상은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부터 주장한 비핵화 입구론과 유사하다. 문 대통령은 6월 26일 세계 6대 통신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북한이 영변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시설에 대해 완전한 검증 하에 폐기하는 것을 두고 “비핵화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6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폐기가 실행되는 것을 “실질적 비핵화의 입구”라고 판단하고, “이후 국제사회가 제재 완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文 대통령, “핵동결은 실질적 비핵화의 입구”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왼쪽)와 북한의 김명길 전 베트남 대사는 북핵 협상의 파트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하나의 단계일 뿐”이라고 다른 입장을 보였다. 트럼프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영변 폐기에 관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단계”이고, “아주 좋은 느낌”이지만 영변만으로 제재 완화가 시작된다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트럼프는 제재 해제에 대해 “이란과 마찬가지로 급하게 서두르지 않겠다. 서두르면 문제가 생긴다”고 일축했다. 김정은과의 면담 전이어서 그런지 기존 미국의 원칙을 고수했었다.

“실무 협상을 개시하겠다”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합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제안을 논의할 것인지는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스티브 비건의 기내 인터뷰에서 윤곽이 감지됐다.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북한의 핵 동결 시 인도적 지원 허용과 상호 수도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판문점에서 양 정상이 나눈 스토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7월 2일 비건 특별대표가 6월 30일 한국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말한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공개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비건 특별대표는 “우리가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포기한 건 아니다”면서도 “우리가 추구하는 건 북한 WMD(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한 동결”이라며 일단 현 단계에서 ‘포기’ 대신 ‘동결’에 방점을 찍었다.

이어 “개략적으로 우리는 비핵화 전엔 제재 완화에 관심이 없다”면서도 “그 사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양보할 수 있는 건 인도주의적 지원과 인적 대화 확대, 상대방 수도에서의 존재(humanitarian aid, expanded people-to-people talks, presence in each other’s capitals)” 등이라고 예시했다. 동결을 전제로 미국이 북한에게 제공할 목록의 예시를 선보인 것이다. 북한이 만약 미국 측의 핵동결 요구를 받아들일 시 대북 식량 지원 등, 인도적 지원 허용과 함께 워싱턴과 평양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그들이 우리에게 핵무기 20개를 준다고 가정해보자”며 “나는 (국무)장관에게 가고, 그는 대통령에게 가고, 대통령은 그걸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내년 미국 대선 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에 건네기를 희망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비건은 지난해 대북정책 협상 대표를 맡아 그동안 협상을 진행해 본 결과,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요구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최근 ‘동시적-병행적 접근’을 제시한 비건 대표가 7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북한과 세부적인 스몰딜과 빅딜을 동시에 논의하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협상 시도를 예상해 볼 수 있는 근거다.

스몰딜과 빅딜의 절충인 ‘중간 딜(middle deal)’도 타협안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비건을 중심으로 한 국무부의 비둘기파 협상팀은 “달성 가능한 부분적 해법(partial solution)”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한 완전한 해법(total solution)”을 고수할 것인지 다양한 선택 시나리오에 관한 보고서를 트럼프에게 직접 올렸을 것이다. 비즈니스 리더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를 기본으로 하되 중간 선택지인 핵동결 시나리오를 검토하였음은 판문점 회동 전후 상황을 감안할 때 개연성이 높다.

미국의 입장이 유연하고 탄력적일 수 있다는 점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연락사무소 설치는 북한에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나 인도적 지원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서울과 평양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북한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폐쇄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북한 입장에서 평양에 외국인이 상주하는 것은 피곤한 일로서 유럽 일부 및 동남아 국가 등 전통적인 우호국가 이외에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의 평양 연락사무소는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다르다. 미국이 최소 10만t 이상의 밀가루과 옥수수 등 식량과 영·유아식 등을 평양에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할 경우 함의는 적지 않다. 중국 등에서 인도적 지원과 동시에 제재 완화에 슬금슬금 나설 것이다. 미국의 인도적 지원은 필연적으로 때를 기다리던 한국의 인도적 지원으로 연결돼 미국 대북 제재의 그물을 느슨하게 할 것이다.

달성 가능한 부분적 해법 vs 거의 불가능한 완전한 해법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의 완전한 핵폐기를 강조하는 강경파다. / 사진:연합뉴스
물론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빅딜 대신 핵동결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에 강하게 반발했다. 판문점 회동 당일 서울을 떠나 몽골 울란바토르를 방문 중인 볼턴 보좌관은 트위터에 “[뉴욕 타임스] 보도를 호기심에 읽어봤다”며 “나와 국가안보회의(NSC) 직원은 북한의 핵동결을 수용하는 데 대해선 논의한 바도, 들은 바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대통령을 꼼짝 못하게 가두려는 누군가의 비난받을 만한 시도이며 응분의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제재완화가 없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진화가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만남 후 “제재는 유지한다. 하지만 협상 중간에 어느 시점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어떤 시점에서 나는 그것들이 해제되길 바라고 있다”며 상황에 따른 제재 완화 가능성에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

비건 대표는 [뉴욕타임스]에 “순전한 추측”이라며 “협상팀은 현재 어떤 새로운 제안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비건 입장에서는 볼턴의 심기를 건드리기보다는 트럼프의 결정을 통해 협상의 전권을 유지하려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김정은의 중장기적인 관심은 체제 안전보장일 수 있지만 현실적인 관심은 대북 제재 해제란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공식매체 등을 통해 ‘6·12 북·미 합의’를 언급하며 대북제재 해제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5월 “유엔 안보이사회 결의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가 이미 수차 천명한 바와 같이 주권국가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전면 부정하는 불법 무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6월 26일에도 담화를 통해 “제재 압박으로 우리를 굴복시켜보려는 미국의 야망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며 대북 제재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한번 풀면 돌이키기 어려운 대북 제재

핵동결의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가운데 7월 중 스웨덴에서 개최되는 실무협상은 다양한 의제를 검토하며 최소 3개월 정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핵동결 범위에 대해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전개될 것이다. 인도적 지원과 제재 완화를 연계시키려는 북한의 치밀한 공격과 제재 완화 없이 인도적 지원을 약속하며 영변 핵만이라도 동결시키려는 미국의 수비가 창과 방패처럼 부딪칠 것이다. 베스트 시나리오는 북한이 영변 핵과 여타 시설에 대한 우선 신고를 하고, 이후 영변에 대한 동결을 시작한다. 그 대가로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한 이후 동결이 완성되면 북한이 요구한 제재 중에서 2017년 11월 2397호와 2017년 7월 2375호에 대한 제재를 동시에 두 개 완화하거나 연차적으로 하나씩 완화하는 시나리오다. 2397호와 2375호는 원유 수출량의 상한선을 설정하며 노동자의 신규 송출 금지 및 24개월 내에 기존 파견 노동자 송환 및 북한과의 합작사업 전면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해제를 추진하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에너지 공급의 숨통이 트이는 조치다. 핵 동결을 유도하자면 제재 완화는 필연적인 조치다. 미국이 전체 혹은 부분 제재 완화 없이 무작정 북한을 협상에 붙들어 매기는 어렵다. 다만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풀어주는 것은 미국의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제재를 풀어준 다음에 이행하지 않으면 다시 조이는 스냅 백(snap back) 조항이 거론되지만 한번 풀어진 제재를 다시 묶기는 놓아준 물고기를 다시 잡는 것만큼 어렵다.

최근 아베 일본 총리가 한국에 경제보복을 취하는 명분으로 한국이 대북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북·미에 이어 한·일 갈등으로 대북제재를 둘러싼 동북아의 국제정치가 점입가경이다. 북·미 협상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역설적으로 재선 필승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술이다.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카드는 향후 15개월 동안의 레이스에서 승리를 향한 조커로 활용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위한 선거 운동에서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도전이 위협적일수록 적절하게 김정은 위원장과의 극적인 만남을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트럼프는 과거 오바마 대통령의 무득점 경기와 본인의 득점을 비교하며 자신의 기량을 과시할 것이다.

민주당 바이든 후보를 무득점 경기에 그친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의 부통령으로 폄하하며 민주당 후보의 도전을 물리치는 데 김정은과의 이벤트는 대타 카드로 적절히 활용될 것이다. 특히 비핵화로 포장한 동결 방식의 합의로 2019년 혹은 2020년 노벨상을 수상하는 전략도 협상에 하나의 변수가 될 것이다.뉴욕 양키스의 전설적 포수 요기 베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s not over until it’s over)”라고 말했다. 이란과 달리 북한을 상대로 한 트럼프의 화려한 외교 쇼는 일단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파격적인 이벤트는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7월 5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가 “그럼에도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흥행에 성공한 판문점 회동 이후가 주목되는 이유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1908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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