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정치이슈] ‘뜨거운 감자’ 패스트트랙 선거법의 운명 

연동형비례제 접고 의원 정수 300석+α로 늘린다? 

민주당 “정권 재창출 기틀” 환영 vs 한국당 “보수 몰락 우려” 반대
패스트트랙 선거법 여론은 점차 싸늘… 강행과 극적 타협의 분기점


▎한국당 관계자들이 4월 25일 국회 의안과(議案課) 앞에서 여당의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제출을 저지하고자 몸으로 막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두고 봐라. 절대 그대로 갈 수 없다. 내 말이 틀리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지난 5월 초 정치권 지인들과의 모임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관계자가 한 말이다. 화제가 4월 30일 우여곡절 끝에 국회 신속처리안건, 이른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의 운명으로 옮아가자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곧바로 갑론을박이 뜨겁게 이어졌다.

선거법의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여야 공방은 훨씬 더 격렬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당은 결사 저지의 입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일단 패스트트랙에 오른 만큼 예정대로 선거법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정의당은 선거법에 당의 사활을 걸며 더 강경한 모습이다. 함께 패스트트랙에 동참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또한 당내 다소간 온도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진 대오를 허물진 않고 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선거법 지정 직후 국회를 전면 보이콧하며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무조건 선거법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무려 80여 일의 장기간 국회 파행이 이어졌다. 막무가내로 버티던 한국당이 사실상 국회에 복귀하게 된 계기 역시 선거법이었다. 여야 협상 결과 각각 정의당과 민주당이 맡아온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또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중 하나를 한국당이 가져가기로 했다. 민주당이 나머지 하나를 계속 맡고, 선택 우선권도 행사하기로 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이를 의총에서 흔쾌히 수용했다. 나름 ‘꽃놀이패’를 쥐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개특위를 맡으면 선거법 처리에 직접 태클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다루는 사개특위도 나쁘지 않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3가지 현안은 어차피 패키지로 연계하기로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약속한 까닭이다. 사법개혁법안만 잡고 있으면 선거법 저지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본격 싸움은 이제부터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에 복귀하자마자 패스트트랙 선거법을 맹공했다. 7월 4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제1야당을 완전히 궤멸하기 위한 법”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민주주의에 숨겨진 악은 다수의 횡포”라며 “지난 패스트트랙이 바로 그 악의 탄생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 질서 바뀌나


▎패스트트랙 상정으로 파행 69일째를 맞은 6월 12일 국회 본회의장. 의원들은 없고 방청석에 어린이들만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실제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선거법에 느끼는 감정은 공포, 그 자체로 보인다. 정치 전문가들 역시 한국당 입장에선 엄살, 호들갑을 넘어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제 개편안의 핵심은 현행대로 의석수는 300석을 유지하되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고 정당별 전체 득표율에 따라 이를 배분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이에 따라 지역구 의석을 253석에서 225석으로 28석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도록 했다. 비례대표 75석은 초과 의석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국 단위 정당 득표율 기준으로 연동률 50%를 적용한 준연동형으로 배분한다.

이런 배분 방식을 정개특위가 2016년 20대 총선을 기준으로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당시 123석을 얻었던 민주당은 17석 줄어든 106석, 122석을 차지했던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은 13석 감소한 109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38석을 차지했던 국민의당은 60석으로 22석이 늘어난다. 6석을 얻었던 정의당도 9석이 늘어난 15석까지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외형상 손해는 민주당이 가장 많아 보지만, 실질적 타격은 한국당 몫이라는 게 지배적 평가다. 지난 총선 당시의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으로 두 쪽 난 것을 감안하면, 거대 두 정당이 잃는 의석이 이번 패스트트랙 강행 처리에 민주당과 힘을 합친 나머지 정당들 차지가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당과 사사건건 공동 보조를 취해온 친여 군소 정당들의 의석 증가는 한국당의 정치적 운신을 옥죄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장 원내 1당은커녕 자칫 제1야당의 지위마저 흔들릴지도 모른다. 개헌 저지선인 100석도 못 건질 경우 정국 주도권은 완전히 잃게 된다.

한국당을 출입하는 베테랑 기자는 “한국당으로선 정권교체가 영원히 물 건너간다고 느낄 만하다”고 말했다. 여기다 준연동형 비례제 틈새를 이용해 우리공화당 주도의 ‘박근혜 신당’의 약진 등 보수 분열이 현실화할 수 있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를 주도해 온 보수 중심축이 순식간 몰락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나 원내대표는 물론 한국당 의원과 관계자들이 패스트트랙 선거법 저지에 저마다 결연한 의지와 함께 “절대 그대로 안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거꾸로 민주당은 차기 총선 승리와 2022년 정권 재창출은 물론 향후 20년 집권의 꿈을 충분히 현실로 만들 수 있다. 현재의 정당 지지율로 볼 때 원내 제1당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비록 과반은 아니더라도 정의당을 비롯한 친여 정당의 약진으로 안정적 지지 의석을 구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불 보듯 뻔한 우파 분열로 보수 ‘분할통치’도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목표인 ‘주류 교체’를 최소한 정치권에선 달성할 수 있다.

정의당 또한 큰 꿈을 그릴 만하다. 선전 여하에 따라 한국당을 제치고 제1야당까지 되는 ‘빅 픽처’ 말이다. 당장 거기까진 안 되더라도 확실한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어 수권정당을 위한 토대는 구축할 수 있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역시 각각 중도층과 호남을 기반으로 정치적 대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한마디로 패스트트랙 선거법은 보수-진보 거대 두 정당이 양분해 온 기존 한국 정치 질서를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

관건은 선거구 획정 작업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이 4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실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들은 여야의 공방으로 논의조차 못한 채 내버려 둬도 상임위원회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부의 60일 등 최장 330일 뒤면 국회 표결 결과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선거법의 경우 현재 정개특위가 상임위 역할을 맡고 있다. 6월 말로 활동시한이 끝났지만 여야 합의로 최근 8월 말로 두 달 연장했다. 만약 이 기간 내에 처리가 된다면 상임위 소요 시한을 60일 줄일 수 있다.

설사 특위가 그때까지 결론을 못 내고 활동을 접더라도 패스트트랙 선거법은 원안 그대로 행안위로 넘어간다. 거기서 결론이 안 나도 상임위 소요 180일 시한이 다하는 10월 말 법사위로 넘어간다. 법사위원장이 한국당 여상규 의원임을 감안할 때 90일 소요 시한을 다 채울 가능성 크다.

그래도 1월이면 본회의 부의(附議)가 가능하다. 이후 관건은 국회의장의 의지다. 민주당 출신 문희상 의장으로선 촉박한 차기 총선 일정 등을 감안해 본회의 표결 처리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국당이 강력 반발해도 현재 의석 분포로만 따질 경우 통과 요건인 출석의원 과반수 동의 확보는 어렵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패스트트랙 선거법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무려 28석이나 지역구를 줄이는 선거구 획정 작업이다.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의원들 간 이해가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탓에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무엇보다 패스트트랙 선거법 원안 강행처리에 반발한 한국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이용해 선거구 획정안 처리 저지에 나설 수 있다.

정당 관계자를 비롯해 현실 정치에 몸담은 이들 상당수는 “법대로 처리는 이상론일 뿐”이라며 코웃음을 친다. 적지 않은 돌발 변수로 인해 패스트트랙 선거법의 앞날은 예측불허,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들이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설득력 있는 변수로 꼽은 것은 지역구 대폭 감축이다. 준비례제를 도입하는 경우 발생하는 초과 의석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패스트트랙 선거법은 의원정수를 300명으로 고정했다. 그러다 보니 애꿎은 희생양이 된 게 지역구 의석이고, 그 결과가 28석 삭감이다.

정치는 현실… 원안대로 될까


▎5월 13일 국회에서 문희상 의장 주재로 여야 대표 모임이 열렸으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불참했다. 왼쪽부터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해찬 민주당 대표, 문 의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당시 정의당 대표. / 사진:연합뉴스
패스트트랙 선거법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당장 선거구 인구 하한 기준선(15만3405명)에 미달하는 26개 지역이 통폐합 대상에 우선적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정당별로 민주당 10곳, 한국당 10곳, 평화당 3곳, 바른미래당 2곳, 무소속 1곳(이용호)이다.

권역별로 수도권 10곳, 영남 8곳, 호남 7곳, 강원 1곳이 인구 미달 지역이다. 단순히 이들 선거구만 직격탄을 맞는 게 아니다. 인접한 이웃 선거구 역시 연쇄 파장이 불가피하다. 한 선거구가 대략 3개의 선거구와 접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전국적으로 최대 90여 곳의 선거구가 직접 영향권에 놓이게 된다.

단순히 선거구 경계 조정을 두고 이웃 지역구 의원 간 눈치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통폐합된 한 선거구를 놓고 한솥밥을 먹는 동료의원과 볼썽사나운 집안싸움까지 벌어야 한다. 한국당 사무처의 한 국장은 “벌써부터 지역구 축소를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한데 패스트트랙 선거법이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내년 1월 말쯤이면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심리적 공포감이 극에 달할 것”이라며 “우리야 어차피 반대 입장이니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될 터이지만 민주당은 사정이 정반대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개혁 명분에 ‘찍’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민주당의 지역구 감축 대상 또는 영향권 의원들의 반란표가 충분히 예상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패스트트랙 선거법에 공조한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의원들도 막상 자기 지역구가 통폐합 대상이 되면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들은 적극 반론하지 않는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며 덤덤한 모습이다.

패스트트랙 선거법에 대한 국민 여론의 변화도 간과할 수 없는 걸림돌이다. 패스트트랙 지정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여권의 패스트트랙 강행 처리에 대해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중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역시 찬성이 우세였다.

하지만 선거법은 상황이 달랐다. 5월 5일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선 반대의견이 43.7%로 찬성(41.7%)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같은 날 매트릭스 조사에선 반대가 47.7%로 찬성보다 무려 10.6%가 많았다. 물론 5월 21일 한국갤럽 조사에선 찬성(37%) 비율이 반대(33%) 의견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결과는 6개월 전 같은 조사(찬성 42%, 반대 29%)와 비교해보면 찬성은 준 대신 반대가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패스트트랙 선거법에 대해서만 여론이 싸늘한 것에 대해 적잖은 전문가들은 복잡한 선거법 내용을 들고 있다.

국회를 출입하는 베테랑 기자는 국민 여론의 악화를 정치적 관행의 일탈에서 찾았다. 그는 “‘게임의 룰’인 선거법은 1987년 민주화 이후 타협과 합의로 결정되는 게 한국 정치 문화로 정착돼 왔는데, 좀 더 진지한 설득 노력은 접은 채 그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민주당의 태도에서 국민들이 오만과 독선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87년 체제’가 낳은 또 다른 정치문화인 ‘총선 직전의 정파 간 이합집산’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한국당 여의도연구원의 핵심 관계자는 “국회의원 선거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정치 구도를 뒤흔드는 헤쳐모여가 끊임없이 벌어지곤 했는데,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면서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현재의 5당 체제를 흔드는 원심력이 커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호남신당 출현으로 4당 공조체제 와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5월 11일 대구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문 스톱’ 규탄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실제 2016년 총선 때 야권의 분열로 출연한 국민의당은 ‘녹색바람’으로 다당제 구도를 만들었다. 바로 그 4년 전에도 당시 제1야당 민주당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배우 문성근,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 등의 ‘혁신과 통합’, 한국노총 등이 ‘민주통합당’을 만들어 상당히 선전한 바 있다.

만약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재의 정치지형이 요동친다면 그 뇌관은 패스트트랙 지정 전후 극심한 내분으로 심리적 분당 상태까지 간 바른미래당이 될 공산이 짙다. “선거제도를 다수의 힘으로 바꾸는 나쁜 선례를 결코 허용할 수 없다”고 공언했던 유승민 의원 등 당내 개혁보수파들은 선거법 저지를 명분으로 당장 한국당 복당은 아니더라도 보조를 맞출게 확실시 된다.

평화당도 흔들리긴 마찬가지다. 선거법에 적극 힘을 보탤 때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손해 보는 장사라는 불만이 당내에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좀체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2%대의 당 지지율로는 준비례제라는 이점도 ‘그림의 떡’에 불과한 탓이다. 여기다 7석으로 예상되는 호남 지역구 축소 가능성도 ‘발등의 불’이다. 유성엽 원내대표는 아예 대놓고 패스트트랙 선거법 “원안 통과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패스트트랙 선거법의 가장 큰 수혜자로 평가받는 정의당은 정작 두 당의 이탈 가능성보다는 민주당에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역시 결정적 계기는 민주당이 국회 정상화를 핑계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맡고 있었던 정개특위위원장을 한국당에 내주기로 합의한 것이다.

아무런 사전 양해도 없이 이뤄진 민주당의 일방적 조치에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민주당이 추경을 얻었나, 한국당이 북한 목선 입항 국정조사 요구를 철회했나”라고 반문한 뒤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선거법 개정을) 하고 싶지 않은 민주당 본심을 드러낸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패스트트랙 이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자신들 의석이 대거 줄어드는 선거법 협상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지난해 지방선거 압승과 한국당보다 훨씬 더 높은 당 지지율을 고려할 때 현행대로 해도 단독 과반을 자신할 수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 나돌던 상황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7월 10일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민주당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몰아붙인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촛불정부에서조차 실망을 안겨준 사례로 최근 흔들리는 선거제도 개혁을 꼽은 뒤 “선거제도 개혁은 특정 당파가 아닌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원칙적으론 공감을 표하면서도 특위 재가동 후 한국당 태도를 본 뒤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겨우 국회가 정상화된 마당에 섣불리 밀어붙였다가 한국당의 반발로 다시 국회가 파행될 걸 우려해서다.

정개특위 위원인 최인호 민주당 의원은 “한국당이 이번에도 시간만 끌면서 합의를 안 하거나, 비례대표 폐지와 지역구 의원 270명만으로 국회 구성이라는 기존 안처럼 합의할 수도 없는 안을 계속 고집할 경우 선거 개혁을 바라는 국민 다수 여론이 있는 만큼 한국당은 정말로 최악의 경우를 당할 수 있다”며 조기 표결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여러 변수들 탓에 정치권 안팎에선 타협을 거론하는 인사들이 점점 늘어나는 분위기다. 특히 몇몇 한국당 인사들은 나름의 희망을 담아 타협 불가피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향후 정국은 대략 이렇게 전개된다. 먼저 패스트트랙 선거법대로 정국이 계속 흘러가면 한국당 입장에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 총선 보이콧은 엄포가 아닌 현실이 된다. 헌정이 마비되는 사태로 치닫는 것이다. 물론 1차적으론 여당이 책임을 져야한다. 한국당 지도부 역시 자리를 보전할 수 없다. 총사퇴 요구 등 극심한 후폭풍에 휩싸인다. 한마디로 모두가 공멸하는 시나리오. 그래서 막판 극적 타결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타협책 솔솔

민주당 당료 시절 정개특위 실무를 봤던 한 인사 역시 “선거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은 일방통행보다는 만만디 전략으로 어깃장만 놓는 한국당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윽박 전술에 가깝다”고 말했다.

중앙 일간지의 정치 담당 논설위원은 “현재 민주당과 한국당의 극한 충돌은 다분히 내년 선거 국면을 염두에 둔 기싸움 성격이 짙어 어떻게든 적절한 선에서 접점이 찾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취재를 바탕으로 “연동형비례 원칙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대신 의원 정수는 현행 300명보다 늘리는 쪽으로 한 발씩 양보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경우 지역구 축소에 대한 현역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고, 늘어난 숫자 모두를 비례대표로 돌리면 나머지 정당도 어느 정도 설득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설득만 된다면 선거법과 연계된 공수처, 검경수사권 문제에 대한 4당 공조체제는 유지되는 탓에 민주당으로서도 나쁘지 않다. 한국당 입장에서도 연동형비례제 도입만 저지해도 손해 볼 것 없다고 판단함 직하다.

당 관계자는 “설사 의원 정수가 늘어나도 현행 방식대로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것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은 못해도 물리적으로 막지는 않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의원 정수 확대 숫자에 대해선 적게는 6, 7석에서 최대 30석까지 전망이 엇갈린다. 바로 이 때문에 타협책의 얼개가 만들어져도 최종 타결까진 상당한 갈등과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타협론이 세를 불려가는 와중에도 이와 반대로 민주당 일각에선 차라리 장렬한(?) 실패를 주장하는 의견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 지역위원장은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미리 꽁무니 뺄 생각부터 한다면 총선은 해보나 마나 한 것”이라며 “만에 하나 패스트트랙 선거법이 본회의에서 부결되더라도 그게 명분이나 실리적 측면에서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실 정치에서 ‘모 아니면 도’식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시도가 반드시 정치적 승리로 귀결된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특히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정략적인데다, 총선 바로 직전에 시도하기엔 모험에 가깝다.

이처럼 패스트트랙 선거법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 속에서 숱한 전망과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만큼 정국의 향방도 오리무중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그래서 “처리 시한에 대못이 박힌 패스트트랙 선거법이 그 정치적 경직성 탓에 분명한 시간표에도 오히려 정국을 긴장과 예측불허로 밀어 넣는 역설적 상황을 빚어내고 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는지 모른다.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 jwhn20@naver.com

201908호 (2019.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