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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연초보다 값 3배 오른 비트코인의 미래 

‘떡상(급상승)’ 기대 높았지만 뭉칫돈 신호 없어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신규 투자는 막히고 기존 보유자들 본전 찾기 눈치작전
조급한 단타 매매는 위험… 적금 붓듯 장기 투자할 때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오프라인 객장 앞 시세 전광판에 암호화폐 가격이 표시돼 있다.
7월 5일 금요일 저녁 강남 선정릉역 인근 라마다 서울호텔. 4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곳 2층 연회실에 몰려들었다. 이들의 가슴팍엔 이따금 ‘떡상 가즈아’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떡상’은 급상승을 뜻하는 은어로, 암호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로 쓰인다. 스티커가 웅변하듯, 이날 행사는 신생 암호화폐를 소개하는 동시에 ‘대장주’ 비트코인 시황을 전망하는 자리였다. 암호화폐 정보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비트고수] 측이 주최했다. 비트고수는 동종 업계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 수(4만6000여 명)를 자랑한다.

“충분히 준비해서 월말에 개최했으면 1000명은 거뜬히 왔을 것이다.” 홍보 담당자는 준비 시간만 더 있었다면 훨씬 많은 인파를 불러모았을 것이라며 이같은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대중 관심도, 비트코인 최저점일 때와 같아


▎7월 5일 서울 선정릉역 인근 라마다서울호텔에서 열린 ‘비트고수 밋업(Meetup)’ 행사. / 사진:문상덕 기자
이 업체에서 행사를 서두른 이유가 뭘까. 현장에서 만난 황규훈 비트고수 대표는 급등하고 있는 비트코인 가격을 첫손에 꼽았다. 황 대표의 말이다.

“시청자들에게 비트코인이 7000달러일 때부터 상승장이 온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엔 두 달 안에 비트코인이 2만5000달러를 찍을 거라고 전망했다. 2017년 12월에 기록한 고점을 돌파한단 뜻이다. 나중에 결과를 보고 근거를 끼워 맞췄단 말을 들을까 봐 서둘러 행사를 열었다.”

그의 말처럼, 비트코인은 2017년 말 이후 두 번째 상승장을 맞고 있다. 암호화폐 시세정보 사이트인 코인마켓캡(coinmarketcap.com)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개당 3768달러까지 추락했던 비트코인은 6월 26일 연중 최고가(1만3880달러)를 찍었다. 행사가 열린 7월 5일엔 다소 떨어진 1만1228달러를 기록했다. 하루 사이 1000달러를 오가는 ‘롤러코스터’ 변동성을 보이는 탓이다. 그런데도 정초와 비교하면 3배 가까이 오른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페이스북·스타벅스 등 글로벌 대기업의 암호화폐 시장 진출 소식을 가격을 끌어올리는 동력으로 분석했다.

신생 혹은 예비 암호화폐 개발자들의 발표는 3시간여 이어졌다. 다소 지루한 듯 방청객들이 연회장 주변을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밤 9시, 마침내 황 대표의 순서가 오자 440개 좌석이 금세 가득 찼다. 외국에서 초빙한 전문 애널리스트가 비트코인 차트를 분석하면, 그가 통역과 함께 해설하는 식이었다. 방청객들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발표자는 현란한 차트 분석 끝에 “It’s still magic even if you know how it’s done(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도 여전히 마법이다)”란 말을 남기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열띤 박수가 뒤따랐다.

하지만 이날 현장엔 신규 투자자들이 그리 많이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대화를 나눠본 방청객 모두 2017년 말~2018년 최고점에서 비트코인을 매입했다가 발이 묶인 기존 투자자들이었다. 연회장을 빠져나가던 A씨는 “지난해 초 신용대출까지 끌어모아 1억원을 투자했다”며 “전(前)고점까지 올라간단 확신을 얻고 싶어 행사를 찾았다”고 말했다.

유력 게임개발사에서 근무하다 알트코인(신생 암호화폐)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B씨는 “암호화폐 생태를 알기 위해 모은 돈을 모두 투자했었다”며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수업료라고 생각한다”고 멋쩍어했다. B씨는 “비트코인이 그동안 꾸준히 공격받았지만 버텼다”면서 “비관적인 이야기가 외부에서 나올수록 (비트코인은) 바닥을 다진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행사장을 찾은 방청객 다수가 중년층을 점했다. 현장에서 만난 암호화폐 트레이딩 플랫폼 ‘플루토스’의 이기행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하락장이 온 뒤 종잣돈이 적은 젊은 세대부터 시장을 빠져나갔다”며 “중년 투자자 비중이 높다는 건, 그만큼 신규 투자자가 유입되지 않고 있단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이기행 COO는 자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시청자 분포를 근거로 들었다. 그가 공개한 유튜브 애널리틱스 자료에 따르면, ‘플루토스’ 채널을 찾은 시청자 가운데 4050세대 남성 비율이 70%에 육박했다.

비트고수 측 관계자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 가입자 수가 한 자리에서 두 자릿수로 올랐다”면서도 “신규 투자자가 본격적으로 진입한단 신호로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해당 관계자는 “오늘 행사장을 찾은 분들은 기존에 비트고수 채널을 구독해온 분들이 다수”라고 덧붙였다.

정리하면 비트코인이 연일 오르는 상황에서도 신규 투자자들은 그다지 유입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외부에서 으레 가지는 기대감과 실제 현장의 분위기 사이엔 온도 차가 꽤 크단 이야기다. 이유가 뭘까.

신규 투자자는 4대 거래소 이용 못 해


가장 큰 이유로 제도 진입장벽이 꼽힌다. 지난해 정부가 초강력 규제를 꺼내 들면서 신규 투자자 유입이 사실상 막혔다. 신규 자금을 말라붙게 한 결정타는 지난해 1월 30일부터 시행된 거래 실명제다. 당시 정부는 명의도용을 막고 투명한 금융거래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로, 실명인증을 해야 새 가상계좌를 발급받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기존엔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신청 버튼만 누르면 내 입출금계좌와 연동되는 일회용 입금 전용계좌를 생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부 발표 이후 시중 은행들이 금융당국을 의식해 신규 계좌 발급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4대 암호화폐 거래소(코인원·빗썸·업비트·코빗)에 입출금계좌를 등록해 둔 기존 투자자들만이 1회용 가상계좌를 생성해 암호화폐 거래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초 하루 최대 10조원에 달하던 국내 암호화폐 거래액은 올해 들어 5000억원대로 급락했다.

우회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NH농협은행은 신규 실명확인 가상계좌 발급이 유일하게 가능한 시중 은행으로 꼽힌다. 이런 소문 탓인지 농협은행은 입구에 ‘암호화폐 거래는 금융거래 목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신규 입출금통장 개설 현수막을 내걸었다. 개별 고객에게도 “가상통화 거래 목적으로는 신규 계좌를 신청할 수 없다”고 안내했다. 신규 개설 계좌를 암호화폐 거래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도 받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중소 거래소는 가시밭길


▎일본 신주쿠의 한 양판점 계산대에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실효성을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암호화폐 거래를 위해 신규 계좌를 발급받았다는 직장인 A씨는 “암호화폐 거래 목적으로는 신규 개설이 안 된다고 들었다. 그래서 월급 관리용이라 말했더니 은행 직원이 건강보험공단에 조회해 직장을 확인하고는 바로 개설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고등학생·무직자 등 신분과 무관하게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들었던 상황에 비하면, 시장으로 진입하는 문이 그리 넓진 못한 상태다.

그래서 지난해 초부터 이른바 ‘벌집계좌’가 대안으로 떠올랐었다. 벌집계좌란 암호화폐 거래소 명의의 법인계좌로 암호화폐 거래자의 투자금을 받는 형태를 말한다. 거래내역은 엑셀 등 파일 형태의 장부로 관리한다. 투자자들이 법인 계좌를 둥지 삼아 거래하는 행태가 벌 군락 같다고 해서 ‘벌집계좌’라는 이름 붙여졌다. 중소형 거래소들은 대부분 벌집계좌로 투자금을 받으며 영업해왔다. 4대 암호화폐 거래소에 계좌를 등록하지 못한 신규 투자자들도 이 방식을 우회로로 삼아왔다.

그러나 장부 형태로 관리되는 통에 거래자 수가 많아지면 자금이 뒤섞이는 사달이 벌어질 수 있다. 더욱이 법인계좌의 자금이라 법적 소유권이 거래자가 아닌 법인에 있다. 때문에 거래자가 출금을 하려해도 거래소가 거부하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 벌집계좌를 운영하는 거래소 일부가 실제로 이 같은 방법으로 고객들에게 피해를 끼친 사례가 적지 않다.

올 4월 경북 안동 소재 암호화폐 거래소 ‘인트비트’의 운영진이 투자자 자금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버 점검을 빌미로 출금을 정지하고 사이트를 폐쇄한 뒤 그대로 잠적한 것이다. 대구지검 안동지청은 7월 11일 해당 거래소 전·현직 대표 2명을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청약 방식의 암호화폐 배당’을 명목으로 투자자 38명에게서 56억원의 예치금을 송금받아 이 중 14억원을 횡령한 혐의다.

안동지청에 따르면, 이들 운영진은 실제보다 많은 양의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전산시스템을 조작해 허위 매도·매수로 가격이 오를 것처럼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중소 거래소의 일탈이 이어지면서 신규 투자자들의 발길도 끊겼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신규 투자자의 진입을 원천봉쇄하는 정부 규제와 더불어, 우회로마저 돈벌이로 전용하는 탓에, 새롭게 투자를 고민하는 사람들까지 주저하게 만든 것이다.

“비트코인, 여전히 펀더멘털보다 센티멘트”

한국투자증권의 송승연 연구원은 5월 27일 자사 홈페이지에 ‘비트코인: 2017년과 2019년’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올렸다. 올해 들어 증권사에서 나온 첫 암호화폐 시황 분석 자료였던 만큼,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송 연구원은 “비트코인 상승세가 중장기적인 트렌드가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암호화폐라고 하지만 화폐 본연의 역할을 하기엔 펀더멘털이 불분명해서 투자심리에 따라 변동성이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선 “시중 비트코인 관련 리포트들이 기술적 분석에 의존해 가격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점 역시 비트코인이 펀더멘털보다 센티멘트(투자심리)에 보다 의존한단 걸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보고서는 “(단기적으론) 최근 상승세를 고려해 1만 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란 예측을 담았다. 그러나 7월 초 시점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이미 1만 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 P씨는 “비트코인 시세가 1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추세적으로 하락장에서 상승장으로 전환된 건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비트코인이 오를 조짐이 보이니 빨리 버스에 올라타야 한단 심리로 투자하는 건 금물”이라고 경고했다.

“최근에 지인들 연락이 쇄도했다. 포털사이트 기사로 연일 소식이 들리니 혹하는 거다. 사면 바로 오를 거란 기대를 품고 매수시점을 묻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사실 지금 비트코인을 보유한 사람들은 단기적으로 매도한 뒤 저점 매수를 노린다. 신규로 들어가더라도 돈을 물리기 딱 좋다.”

암호화폐 개발업체 ‘페이앤페이’의 류도현 대표는 장기 투자 관점에서 접근하라고 조언한다. 적금 넣듯이 매달 월급의 일정액을 비트코인에 투자하란 거다. 이른바 ‘비트코인 적금’이다. 실제로 2030세대 직장인들이 이미 많이 활용하고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신용대출로 무리하게 투자금을 조달한 뒤 시세상승분으로 이자를 메우던 2017년 풍속도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기행 COO는 “현재 진행되는 조정세가 마무리되는 걸 확인하고 들어가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 비트코인 시세가 조정을 받는 국면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를 테면 적정가격을 100원이라고 치면, 90원에서 110원을 오르내리는 상황이다. “조급하게 90원에 살 필요가 없다. 120원으로 올라가는 걸 확인하고 사는 게 안전한 투자”라고 그는 강조한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비트코인 상승장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모양새다.

201908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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