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양영유 전문기자의 대학총장 열전] 공격적 교육 혁신가 민상기 건국대 총장 

전공·교과·수업·학기 파괴, 미래 밝힐 융합·창의 인재 키운다 

독일 유학파로 토론 수업과 실용 학풍에 밝아 개혁 주도
시끄러운 도서관 K-큐브, 창업 산실 스마트팩토리 도입
공대·사회계열 대단위 단과대로 통합하는 파격 실험도


▎민상기 건국대 총장은 “미래 대학의 역할은 명확한 커리큘럼과 맞춤형 교육 등 프로그램화된 비전을 보여주는 설계 중심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 대학 캠퍼스에 널찍한 호수가 있는 것은 축복이다. 자그마치 그 면적이 5만5661㎡(1만8000여 평), 둘레가 1.4㎞다. 봄에는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에는 은은한 단풍이 아름답다. 왜가리와 백로도 날아드는 서울 광진구 능동로 건국대 캠퍼스에 있는 일감호(一鑑湖) 얘기다. 캠퍼스가 좁은 대학들은 건물 몇 개는 너끈히 들어설 만한 호수를 가진 건국대를 부러워한다. ‘거울같이 맑은 호수’라는 뜻의 일감호는 건국대가 캠퍼스를 조성하기 시작한 1955년부터 만들어졌다. 캠퍼스 부지는 원래 물이 많은 낮은 습지였는데 부지 중간지역의 질 좋은 황토를 파내 건축용 벽돌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웅덩이에 인공호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일감호는 건국인들 만의 공간이 아니다. 지역 주민은 물론 다른 대학 학생들과 서울시민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일감호는 변함이 없지만, 호수 주변을 둘러싼 캠퍼스는 상전벽해 그 자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재단의 파격적인 투자가 일궈낸 외형확장의 변화상이다. 2009년 이후 ▷생명과학관 ▷산학협동관 ▷수의학관 ▷의생명과학연구동 ▷예술문화관 ▷상허연구관 ▷제2생명과학관 ▷법학전문대학원 등 신·증축 건물만 22개. 여기에 2015년에는 부동산학의 요람인 ‘해봉(海峰) 부동산학관, 이듬해에는 미래 공학발전의 상징인 ‘신공학관’이 문을 열었다.

교육 환경과 인프라를 강화한 건국대는 새로운 교육, 새로운 대학 모델 창출 사령관으로 2016년 9월 민상기 바이오산업공학과 교수를 선택했다. 독일 유학파로 토론식 수업과 실용학풍에 밝아 파괴적 교육혁신을 주창해온 그에게 대학의 속을 꽉 채워달라는 중책이 떨어진 것이다. 미국 계관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詩) ‘가지 않은 길’에서 던진 메시지처럼 “변화가 없으면 발전이 없다”는 소신을 가진 민 총장은 취임식에서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며 대대적인 혁신에 나섰다. 그게 2016년 9월이었다. 그 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파고가 밀어닥치고 있는 고등교육 환경 속에서 여타 대학들은 ‘방어적’ 관리를 하는 추세다. 그런데 민 총장은 ‘공격적’ 학사 개편으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이끌며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개방형 학습 공간 K-큐브, 방학 중에도 북적


▎건국대 캠퍼스의 일감호 전경. 전체 면적은 5만5661㎡, 둘레는 1.4㎞로 석촌호수에 이어 서울에 서 두 번째로 큰 인공호수다. 1950년대 캠퍼스 조성 당시 만들었다. / 사진:건국대학교
7월 12일 건국인의 뚝심과 성실함을 상징하는 캠퍼스 중앙 광장의 ‘황소상’을 지나 본관 총장실에 들어서자 민 총장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상허기념도서관에 새로 만든 개방형 학습공간 ‘K-큐브(K’reative Cube)’부터 둘러보자는 것이었다. 상허(常虛)는 건국대 설립자인 독립운동가 유석창(1900~1972) 박사의 호로 ‘항상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민족을 위해 마음을 비운다’는 ‘상념건국(常念建國), 허심위족(虛心爲族)’의 첫 글자다. 상허기념도서관은 유석창 박사의 성(誠)·신(信)·의(義) 설립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도서관이다. 건국대 개교 43주년이었던 1989년 5월 15일 신축 개관해 올해로 30년이 됐다. 개관 당시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대학 도서관으로 300만권의 국내외 도서와 4000석의 열람실은 대학가의 화제를 불렀다. 상허기념도서관 6층에 자리 잡은 1100㎡ 규모의 K-큐브에 들어서니 조용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방학인데도 학생들로 꽉 찼고, 6면체의 큐브 방에선 열정적인 토론이 이어졌다. 차영준(수학교육과 3)씨는 “같은 과 친구들과 ‘해석학’ 문제를 놓고 토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칠판과 화이트보드에는 문제 풀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민 총장과 자연스럽게 현장 인터뷰가 이뤄졌다.

분위기가 일반 도서관하고는 확 다르네요.

“그렇죠. K-큐브는 조용한 도서관이 아닌 시끄러운 도서관입니다. ‘개방·창의·융합·소통’이 컨셉입니다. 기존 열람실처럼 칸막이가 있는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이 토론하며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협동 학습 공간이죠. 전자 칠판과 무선화면 공유기, 휴대용 빔프로젝터, 캠코더, 카메라, 조명장치, 노트북, 태블릿 PC 등을 갖췄어요.”

도서관을 둘러보니 실감이 났다. 요즘 기업체에서 인기인 카페와 휴게실, 회의실, 팀플 세미나 룸과 도서관을 결합해 만든 공유오피스 같은 느낌이었다. 김준호(수학교육과 3)씨는 “1인 미디어 촬영 시설도 있어 1인 방송가나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학생들이 즐겨 찾는다”며 “강의 영상 촬영 등 온라인 학습 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시 민 총장과 얘기를 나눴다.

왜 이런 시설을 만들었습니까?

“학생들이 함께 토론하고 교류하며 창의성을 높이고 아이디어를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죠. K-큐브는 한마디로 첨단 개방형 창의·융합 학습 라운지입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허기념도서관(1100㎡)을 비롯해 공학관(1200㎡), 생명과학관(287㎡), 상허연구관(400㎡), 동물생명과학관(186㎡) 등에 개방했어요. 모든 건물에 만들 생각입니다. 교수용 큐브도 만들고 있습니다.”

민 총장은 신공학관의 ‘KU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도 둘러보자고 했다. 현장 기자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날씨가 더웠지만 실내로 들어가니 쾌적했다. “‘KU스마트팩토리’는 학생들의 창작 공간이자 제작 실험실입니다.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고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곳이죠.”

민 총장의 설명을 들으며 실내를 둘러보니 가상현실(VR)실, 금속장비실, 목공장비실, 3D프린터실, 설계실, 드론운영시험장 등 다양한 공간과 첨단 장비가 인상적이었다. 반바지 차림의 학생들이 설계실마다 시제품 제작에 몰두해 열기가 뜨거웠다. 경영학과 3학년 임계수씨는 ‘개인맞춤형 음식점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었다. 예비창업패키지로 9월까지 베타테스트를 마치고 올해 상용화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창업동아리의 정의훈(경영학 4)씨는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열린 도전의 무대”라며 “방학 동안 시원한 설계실에서 글로벌화가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학생들은 총장의 뜻밖의 방문을 반기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소중한 추억이 될 성싶었다.

영어 이름을 붙인 공간이 참 많네요.

“(웃으며) 글로벌 마인드를 불어넣으려다 보니 그리됐네요. 법학관의 ‘글로벌 라운지(Global Lounge)’와 학생회관의 ‘커리어 라운지(Career Lounge)’도 영어 명칭이네요. 글로벌 라운지는 외국인 유학생들과 편리하게 교류하고 학습할 수 있는 오픈 공간으로 영어 토론과 튜터링 학습모임, 팀 기반 학습 모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커리어 라운지는 학생들의 취업 도우미입니다. 기업들은 인재 채용 설명회와 상담을 하고, 취업준비생들은 스터디룸으로 활용합니다.”

K-큐브와 스마트 팩토리, 글로벌·커리어 라운지가 참신합니다.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는 않을 테지만 학생들이 변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부딪혀 보자는 도전 정신, 발상을 바꾸는 사고, 그리고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어요. 학생 창업의 경우 2016년 4명에서 올해 25명으로 6배 이상, 창업 동아리는 13개 팀에서 66개 팀으로 5배 이상 증가했고요. 창업 교과목도 27개에서 122개로 늘어났고, 이수 학생도 3197명에서 6316명으로 급증했어요. 숫자보다는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4차 혁명시대엔 Why와 How 교육으로 승부해야


▎학생들이 함께 토론하고 교류하며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시끄러운’ 협동 학습 공간인 K-큐브 모습. 상허기념도서관 등 캠퍼스 곳곳에 들어서 있다. / 사진:건국대학교
현장을 둘러본 뒤 총장실로 돌아와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대학원장과 교학부총장, 프라임사업단장 등을 두루 거친 데다 총장 4년 차에 접어들어서인지 고등교육에 대한 고민과 통찰력이 남달랐다. 민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 교육이다. 창의성 교육은 정답이 무엇(what)인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왜(Why)라는 질문을 통해 어떻게(How) 답을 구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을 ‘ICT(정보통신기술)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혁명에 기반해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융합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학사개편을 통한 커리큘럼 파괴에 나선 것도, 그런 트렌드에 대비하지 않으면 대학이 사회변화와 격리되는 ‘외딴 섬’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란다.

독일 유학 생활 13년은 민 총장의 교육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학사와 석·박사 공부를 하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것이 토론식 수업이었다고 한다. 문제의 답만 찾는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 있던 터라 서로 토론하며 끊임없이 ‘왜’와 ‘어떻게’를 주고받는 수업에 적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험을 교수와 토론식으로 치르는 것도 생소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시험만 보고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던 지식이 독일에서는 정반대였다. 구두시험 내용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는 것이다. “건국대 교수가 되고 나서 저도 구두시험을 도입해봤죠. 학생들이 정말 힘들어하더군요. 그렇지만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내려면 토론식 수업은 기본이고, 시험도 토론식으로 봐야 한다는 소신이 생겼어요. 정형화된 커리큘럼의 틀을 확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죠. 총장이 됐으니 학부교육 혁신은 당연한 소명이 됐고요.”

학부교육 혁신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칸막이를 없애는 겁니다. 현재 수십 개의 학과로 쪼개진 것은 과거 2차 산업혁명 시기의 산물입니다. 분업화를 기반으로 한 대량생산시대, 빠르게 전개되는 기술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역별 성장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고안된 게 학문영역별 칸막이 전략이었습니다. 지금은 융·복합 시대입니다. 지식의 총량이 아니라 지식 통합을 통한 새로운 지식 창출이 중요합니다.”

공과대와 사회계열 단과대를 대단위로 통합한 것도 그런 맥락이군요.

“그렇죠. 공대는 14개 학과를 5개 대규모 학부로 재편해 커리큘럼을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직무중심의 ‘융합-모듈클러스터’로 바꿨어요. 예컨대 인프라시스템공학과(옛 토목공학과)·사회환경플랜트공학과·환경공학과가 합쳐진 ‘사회환경공학부’는 3개 전공의 벽을 완전히 허물었어요. ‘기술융합형 글로벌 건설·환경 분야 인재양성’을 목표로 5개 트랙(ICT융합 국토환경 및 대기공학, 구조 및 구조재료공학, 수리해양생태공학, 지반환경공학, 환경플랜트공학)과 10개 모듈로 커리큘럼을 새로 짰어요. 학생들이 5가지 트랙별로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자유롭게 공부하고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했죠. 강의실에서 벗어나 진로에 따라 현장실습과 연구 활동, 개인 창작활동을 하는 시스템입니다.”

사회계열은 공대와는 다를 것 같은데요?

“2017년 기존의 정치대·상경대·글로벌융합대 등 3개 단과대의 7개 학과를 사회과학대로 통합했어요, 사회과학 분야의 융합시너지를 창출하려는 대(大) 단과대죠. 정치외교·경제·행정·국제무역·응용통계·융합인재·글로벌비즈니스 전공이 있습니다. 학과 간 교육과정 협업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폭넓은 수업선택권을 위해 다양한 학과목 수강 제도를 가동 중입니다.”

학생 스스로 과제 설계하고 수행해 학점


▎민상기 총장(왼쪽 두 번째)이 지난해 11월 13일 건국대 신공학관의 학생 창의 공간 ‘스마트팩토리’에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 세 번째),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네 번째), 당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다섯 번째)과 함께 VR 체험을 하고 있다. / 사진:건국대학교
대단위 단과대를 운영하는 건국대는 학기제도 파격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4학년 8학기제로 굳어져 있는 틀을 바꾸는 작업이다. 세상이 바뀌는 데도 꿈쩍 않는 교육 틀로는 4차 혁명의 큰 흐름이나 산업계·학생 등 다양한 수요자의 니즈를 맞출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바꾸었나요?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기와 커리큘럼을 입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유연 학기제를 도입했어요. 현장성 강화를 위한 ‘현장실습 2+1학기제’, ‘채용연계성 3+1학년제’, ‘4+1학·석사 통합과정’이 대표적입니다. 학사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창의적 활동을 하는 드림(Dream) 학기제 등 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

드림학기제는 학생들이 꿈을 실현해보는 학기 같네요?

“그렇죠. 학생 스스로가 자기 주도적 창의활동 과제를 설계하고 수행해 학점을 받는 시스템입니다. 8학기 중 한 학기 동안 드림학기제(7+1 자기설계 학기제)를 통해 창의성과 역량,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고 있어요. 유형은 5가지입니다. 창업연계·창작연계·사회문제해결·지식탐구·기타 자율형이죠. 처음엔 겁을 먹었던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합니다. 계속 확대될 겁니다.”

그러다 보면 산업현장과의 연계도 강화되겠네요?

“현장을 모르는 이론은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현장실습 기업 수를 2016년 155개에서 올해는 699개로 늘렸어요. 실습 참여 학생 수도 365명에서 1014명으로 급증했습니다.”

토론 수업 정착이 쉽지는 않은 일인데 어떤 시도를 하고 있습니까?

“학생들이 먼저 온라인으로 학습한 뒤 수업시간에 교수와 토론하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을 도입했어요. 현재 81개 교과목에 적용 중입니다. 전공 특성에 따라 다른 교수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단과대별 교수법 워크숍을 지원하고, 강의실을 토론식 적합형으로 개조하고 있어요. 토론식 수업 교과목도 77개에 이릅니다. 플립러닝을 합치면 158개 교과목인데 계속 확대될 겁니다.”

민 총장은 전공의 벽을 깨지 않으면 인재 양성의 미래가 없다는 신념이 확고하다. 융합과 통합, 통섭의 시대에 학문의 경계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올 1학기부터 경직된 전공 학과 간 벽을 허물고 학생들의 전공 선택 폭을 넓혀주는 전과(轉科) 성적 제한 규정과 수료학점 기준을 모두 폐지했다. 신입생들에게도 “건국대생이 됐으니 공부해보고 원하는 전공을 마음대로 선택하라”고 말했다.

입학 당시의 전공을 바꿀 수 있는 전과제도가 파격적입니다.

“전공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융·복합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제도를 확 뜯어고쳤습니다. 기존에는 총 평점 평균 2.7 이상, 수료학점 기준(1학년 31학점, 2학년 62학점, 3학년 93학점 이상)을 충족해야만 전과가 가능했어요. 그걸 폐지하고 문턱을 낮춘 게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3학년 전과는 4개 학기 수강을 마친 5학기 진급 예정자만 가능했지만, 새 제도에서는 학기 수를 맞추지 않은 5개 학기 수강 재학생(3학년 1학기 학생)도 3학년으로 전과 신청이 가능해요. 학과별 전과 모집정원의 변경은 없기 때문에 인기학과로 학생들이 대거 몰릴 염려는 없을 겁니다. 전과 모집정원은 2학년은 입학정원의 최대 20%, 3학년과 4학년은 전년도 2학년과 3학년의 전과 잔여 인원을 모집합니다.”

“전공 마음대로 선택” 전과(轉科) 학점 제한 폐지


▎학생들의 창작 공간이자 제작 실험실인 스마트 팩토리에서 학생들이 드론을 조립하고 있는 모습. / 사진:건국대학교
시행과정에서 문제점은 없을까요?

“계열별로 등록금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제한된 실습 공간에 학생이 과다하게 많아지는 문제도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입학정원 20% 제한을 두기는 하지만 100% 허용하는 과도 있어요. 고3 수험생들 사이선 서울 소재 대학 중 제일 전과가 잘 되는 대학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어요.”

학부생 교양 교육도 혁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우려면 교양과목부터 바꿔야 합니다. 교양과목 이수를 27학점으로 늘리고 필수 소프트웨어(SW) 교과목을 2개로 확대했어요. SW 영역의 경우 컴퓨팅적 사고와 프로그래밍을 통한 문제 해결 등 6학점을 이수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4주 동안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마이크로 레슨’도 도입했어요. 한 학기 16주 중 학생이 원하는 4주 간을 선택해 집중 강의를 받고 1학점을 이수하는 시스템이죠. 예들 들면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은 ‘인공지능의 이해’를, 공학 계열 학생들은 ‘스타트업 기업법률 실무’를 4주간 공부합니다.”

중요한 건 교수들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수들한테 욕을 많이 먹을 것 같네요.

“젊은 교수들은 환영하지만, 고참 교수들은 싫어하는 것 같아요. 미세 조정이 아닌 파괴적 조정이니 당연하죠. 젊은 교수들이 이끌자 선배 교수들이 많이 따라 하고 있어요.”

교수 수업 공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나요?

“10% 정도로 시작에 불과합니다. 전체 교수 강의를 녹화해 공개하려는 시도지요. 학생들이 관심 있는 타 전공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이게 교육 혁신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과연 전체 수업 공개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지적재산권이나 초상권 침해라는 교수도 있고, 녹화에 자신 없어 하는 교수도 있어요.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서 개설된 강의이므로 그런 주장은 성립이 안 돼요. 그보다는 현실적인 제약이 문제지요. 전체 강의를 녹화해 사이트에 올리는 건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단계적으로 차근차근히 하려 합니다. “

학사 개편이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글로벌 대학으로 뻗어 나가려면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화에도 더 눈을 돌려야 한다. 세계의 유력 대학들은 이미 AI 인재 양성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도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다”라고 강조했다. 민 총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빅데이터, 소프트웨어, AI, 딥러닝 부문은 전문가 양성이 시급합니다. 공학 기반의 교육 틀에서 전문가들이 나와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AI 기반의 전문가가 현저히 부족해요. 서울대가 해외 유명 교수를 영입하려 해도 비용적인 측면과 역량을 발휘하게 할 기반이 부족해 실패하고 있잖아요. 정부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인재양성에 팔을 걷어붙여야 합니다.”

건국대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내년에 AI 전문대학원을 만들려 합니다. 얼마 전 학교에 위원회도 만들었어요. 대학원 특성화 BK 사업을 추진하는 데 핵심은 AI입니다. 앞으로 6개월간 전문가 영입에 힘을 쏟을 겁니다. 그게 총장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내년에 AI대학원 설립, 전문가 영입 힘 쏟을 것


▎민상기 총장이 2016년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에서 창의 융합형 인재양성을 위한 대학의 모델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사진:건국대학교
커리큘럼 파괴 등 개혁을 많이 했지만, 여전히 배가 고픈 분야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은 끊임없이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러려면 교수 사회의 체질 변화가 중요합니다. 정말 좋은 교수는 시대 변화에 따라가는 교수입니다. 교육 방식도 계속 바꿔야 합니다. 자기만의 전공에 매몰되지 말고 시야를 넓혀 융합 교육을 해야지요. 특히 글로벌화는 갈 길이 멀어요.”

건국대의 글로벌 브랜드 파워에 고민이 많아 보입니다.


▎민상기 총장과 학생들이 건국대의 상징인 ‘황소상’ 앞에서 자기설계 커리큘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사진:건국대학교
“세계대학 평가에서 500위권, 아시아에서는 100위권에 들었지만(QS평가 기준) 인정합니다. 2+2 (2년 건국대, 2년 외국대학) 공동 학위제인 듀얼 디그리(Dual Degree)도 확대하려 합니다. 현재는 중국 남경대와 미국 일리노이 공대 등 몇 곳 정도죠. 교류 대학은 세계적으로 600곳이 넘습니다.”

건국대의 미래를 어디에 두려 합니까?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공학과 바이오 기반의 특성화는 계속 추진돼야 합니다. 명문 사립대 반열에 들려면 세계 100위 권에는 들어가야 합니다. 대학의 뼈를 깎는 노력은 기본이고, 정부 정책도 바뀌어야지요. 사실 정부의 교육 정책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아요.”

다른 대학 총장들도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 방향이 모호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과 중국을 보면 고등교육이 급성장하고 있어요. 시스템이 안정적이고 계속 밀고 나가는 장점이 있죠. 그런데 한국은 교육부 장관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따라 바뀝니다. 대학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고 하니까 지속 가능한 제도가 안 나와요. 개인적으론 고등교육만 다루는 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해 지속가능한 정책을 책임졌으면 좋겠어요. 사립대에 문제가 생기면 사법적으로 처리하면 됩니다. 규제나 종합감사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아요.”

8월부터 강사법이 시행되는 데 대학들이 힘들어합니다.

“강사법은 양면성이 있어요. 학문 후속 세대인 강사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일이지만 현실적으론 외려 강사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잖아요. 강사도 교원 충원의 일부로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요. 반면 겸임·초빙교수는 교원충원으로 인정해 주니깐 대학이 강사들을 덜 쓰게 되는 모순이 생겨요. 탄력적으로 운영했으면 합니다.”

미래 대학 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요?

“학생들에게 뭐라고 말한다고 먹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명확한 커리큘럼과 맞춤형 교육 등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그램화한 비전을 보여줘야 합니다. ‘너는 이렇게 하면 이런 사람이 될 거야’라고 미래를 제시해주는 ‘설계된 미래’ 제공자가 대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까칠한 교수에서 포용하는 총장으로 변신


독일에서 공부한 민 총장은 건국대 교수가 되자 독일 대학들처럼 1:1 구두시험을 시도했다. 학생들은 어려워했다. 그래도 밀어붙였다. 까칠하고 깐깐하다는 평이 나돌았다. 그런 교수가 총장이 됐으니 구성원들은 긴장했다. 교수 민상기와 총장 민상기는 어떻게 다를까? 직접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교수 민상기는 학생들에게 날카롭고 까다롭게 비쳤어요. 구두시험을 보면서 비판적 사고를 강요했고, 연구실에서는 정확성·준비성·위험성을 강조하다 보니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군요. 하지만 총장이 되고 나서는 성격을 바꿨어요. 전체 학생과 전체 교직원을 이끌려면 남의 말을 잘 듣는 포용의 리더십, 배려와 존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민 총장의 고백처럼 건국대는 그의 재임 중 강도 높은 개혁이 진행됐지만, 구성원간 큰 잡음 없이 ‘프라임 사업’ 등 굵직한 국책사업을 잇달아 유치했다. 까칠했던 교수가 포용형 리더로 바뀐 데는 유학 시절 독일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궁금해서 유학 스토리를 물어봤더니 드라마 같았다.

청년 민상기는 건국대 축산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육군 사병으로 입대해 군 복무를 마친 뒤 복학해 2학년까지 다녔다. 복학생은 독일어에 빠졌다. 당시 독일 기업의 한국지사장 부인이 건국대 축산대에서 독일어를 가르쳤는데 흥미를 느끼고 파고들었다고 했다. “독일어 시험을 치르니 독일어과 학생들보다도 잘 봤어요. 모두 깜짝 놀랐죠. 그런데 한국에서 계속 대학을 다니면 희망이 없을 것 같았어요. 복학생의 방황이 시작됐죠.” 그래서 유학을 결심했다. 가정 형편상 미국은 갈 수가 없었다. 마침 독일어를 공부하던 터라 학비가 없는 독일행을 선택했다. “독일은 한국에서 대학 2학년을 마쳐야 학부 신입생으로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줘요. 그래서 2학년을 마치고 1981년에 독일로 갔죠. 그때 스물여섯이었는데 결혼하고 혼자 떠났어요.”

민상기는 2학년 때 4학년인 여학생을 만나 ‘사랑의 돌직구’를 날리고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처가에서, 특히 장모님이 엄청 반대하셨죠. 술을 좋아하는 장인과 대작을 하고 도장을 받아내 혼인신고를 했어요. 그런데 아내와 함께 유학을 갈 수는 없었어요. 제가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아내는 한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독일에는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오는 거로 결정했어요.”

민 총장은 양가 도움 없이 유학을 마쳤다고 했다. 학비는 무료였지만 생활비가 필요했는데 마침 정당 장학금을 받아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내도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로 왔지만, 그사이 태어난 외동딸은 한국에 남겨뒀었다고 한다. 그 자체도 쉽지 않고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그럼 원래 꿈이 교수였나요?

“유럽에서 세계적인 회사에 들어가서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기업체 회장 면접까지 봤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그런데 교수는 달랐어요. 1994년 독일에서 이학 박사를 마쳤는데 프랑스 리옹 대학에 교수로 가게 됐고, 이듬해에는 건국대 교수가 됐으니 말이죠. 결국 교수의 길이 제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 총장은 속도(speed)를 즐긴다. 오토바이와 스키·수상스키를 좋아하는데 성격도 스피디한 편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며 ‘No pain, No gain’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는다. 그는 유치원 운영을 버킷리스트로 꼽았다. “초심으로 돌아가 아이들 교육을 하고 싶어요. 독일에서 보니 대학의 기본 교육은 유치원에서 시작되더군요. 항상 애들한테 ‘왜?’라고 물어봅니다. 자신이 경험하고 본 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나이에 아이들이 ‘왜’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자라는 게 진짜 성장입니다. 그런 교육을 해보고 싶어요.” 민 총장이 꿈꾸는 또 다른 가지 않은 길이다.

※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고려대 영어교육학과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교육저널리즘으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교육데스크, 정책사회데스크, 사회1데스크, 행정국장, 사회에디터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마음은 따뜻하고 시선은 엄정해야 한다는 저널리즘 소신을 갖고 있다. 공저[한국의 파워 엘리트]와 역서[멀티미디어 조직혁명]이 있다.

201908호 (2019.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