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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전문기자의 ‘마인드풀, 내 마음이 궁금해’(5)] 마음을 치유하는 MBSR 체험(上) 

잡념이 일념이 되다, 건포도 한 알의 마법 

존 카밧진 박사가 고안한 ‘마음챙김으로 스트레스 줄이기’
‘보디 스캔’ 등 8주 프로그램 통해 ‘삶이 곧 명상’ 깨우쳐


▎한국MBSR연구소 회원들이 ‘건포도 마음챙김’ 명상을 하고 있다. 눈으로 보고, 냄새 맡고, 소리를 들어보고, 촉감을 느껴보고, 맛을 보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 사진:한국MBSR연구소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생각과 감정만 떠오르면 좋을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 한순간의 그릇된 생각과 감정이 사태를 그르치는 경우는 일상에서도 흔히 경험할 수 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두려는 다양한 시도는 인류의 문명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런 수많은 시도의 공통점 가운데 명상이 놓여 있다.

수많은 명상 중에 오늘날 영미권에서 인기를 끄는 현대 명상이 ‘마음챙김’이다. 2014년 2월 3일 자 미국 시사주간지 [TIME]에 ‘마인드풀 레벌루션(Mindful Revolution)’이란 표제의 기사가 실렸다. ‘마인드풀 혁명’이란 뜻이다. 마음챙김 명상이 미국 전역의 기업과 학교와 병원 등으로 퍼지면서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인드풀니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계기는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학부 명예교수 존 카밧진 박사가 1979년 의료 명상으로 ‘MBSR’을 창안한 일이다. 의대 교수였던 카밧진은 환자들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덜어주려는 ‘의료 명상’의 일종으로 MBSR을 만들었고 이것이 대중적으로 확산됐다.

MBSR은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의 약자다. 마음챙김을 통해 인간의 고통, 즉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긴데, 구체적으로는 8주간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표준화했다. 많은 종류의 명상이 동양에서 출발했는데 전통적으로 동양은 이런 표준화가 부족했다. 명상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나 해야 하는 지가 막연했다. 이런 문제를 카밧진이 수량화해서 풀어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무렵 때마침 발달하기 시작한 뇌과학의 성과는 명상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했다. 마음챙김을 시작하기 전과 8주간 훈련한 이후의 뇌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 뇌 영상촬영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한국MBSR연구소 안희영 소장 방학 특강


▎누워서도 명상을 한다. 한국MBSR연구소 회원들이 ‘보디 스캔(Body Scan)’을 하고 있다. 45분 동안 발끝에서 머리까지 온몸을 스캔하듯이 자신의 몸에 주의를 기울이는 훈련이다. / 사진:한국MBSR연구소
지난 7월 6일 오전 10시 서울 방배동 한국MBSR연구소. 미국 MBSR 본부에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MBSR 지도자 인증을 받은 안희영 소장이 여름 특강을 이끌고 있었다. 본래 8주 프로그램인데 7월 한 달 동안 4주 만에 8주 수업을 모두 마치고, 두 번째 달에는 격주로 나와서 후속 수련과 점검을 받는 형태의 방학용 특별과정이다. 8주간이라면 한 회에 3시간을 하는데, 이번 특강에선 하루에 6시간을 배정해 두 회의 분량을 소화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대개 국내의 여러 방면에서 이미 상담이나 명상을 지도하는 이들이어서 그런지 6시간 동안의 다소 빡빡한 일정이었음에도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마음챙김은 지금 내 삶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현재 내 몸과 마음에 독특한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이면서 내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알려는 노력이죠. 판단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의도를 가지고 독특한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마음챙김입니다.”

안 소장은 카밧진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음챙김 방법을 소개해 나갔다. 마음챙김의 의도적이면서 독특한 명상법은 도대체 무엇일까. 첫째 주 프로그램에서 주목되는 것은 ‘건포도 마음챙김’과 ‘보디 스캔(Body Scan)’이었다. 건포도와 보디 스캔이란 명칭을 들어본 이들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보는 것이다. 건포도와 보디 스캔을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만들어낸 1979년 무렵에는 무척 획기적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소장은 건포도 두 알씩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듯이 이 물건을 바라보세요. 이 물건의 이름도 기억도 내려놓고 그저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바라봅니다. 어떤 모양인가요? 어떤 색깔인가요?”

안 소장은 건포도라는 이름 대신 ‘이 물건’이라고 불렀다.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귀로 가져가 소리를 들어보고, 코로 냄새 맡아보고, 손으로 촉감을 느껴보고, 입에 넣어 맛을 보는 순서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선입견 없이 그냥 바라보고 느껴보는 일이었다. ‘이 물건’이란 표현을 쓰는 것도 건포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기 위함이다. ‘이 물건’의 자리에는 건포도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무엇이든 그 대상으로 올 수 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주의의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는 자각 그 자체다. 마음챙김은 주의력을 키우는 훈련인 셈이다. 마음챙김의 대상은 우리 삶 전체로 확장된다.

눈앞의 대상에 특정한 이름 붙이기를 꺼리는 노자와 장자의 철학이 떠올랐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최고의 경지를 표현하는 말이 ‘도(道)’인데, 그 도조차도 이름을 붙혀 언어로 개념화하면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노자는 말하지 않았나. 하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삼라만상의 진정한 실상을 선입견으로 뒤덮인 인간의 인식이 모두 포착해 내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건포도 마음챙김을 한 후 곧바로 점심을 겸한 ‘음식 마음챙김’이 이어졌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허겁지겁 먹는 것이 아니었다. 건포도를 대상으로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 적용됐다. 적어도 세 숟가락 정도는 마음챙김을 하며 ‘음식 명상’을 하는 시간이었다.

MBSR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가 누워서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보디 스캔이다. 누워서도 명상을 하는가? 그렇다. 실제 누워서 한다. 두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두 손바닥은 천장을 향하게 해서 편안한 자세로 눕는다. 45분 동안 누운 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몸의 곳곳을 스캔하듯이 죽 돌아가며 그 상태를 자각하는 방식이다.

누워서도 마음챙김… 발끝부터 머리까지 ‘보디 스캔’


▎1979년 의료 명상의 일종으로 MBSR을 창안한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학부 명예교수 존 카밧진(오른쪽) 박사와 그의 제자인 한국MBSR연구소 안희영 소장. / 사진:한국MBSR연구소
안 소장이 지시하는 몸의 부위를 각자 따라가면서 의식적으로 스캔하는데, 45분 동안 가만히 누워있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몸의 곳곳에서 통증을 느끼기도 하는 가운데 머리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보디 스캔을 하면서 따뜻하고 친절한 관심을 내 몸에 보내는 일이 마음챙김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 밖으로만 쏠린 시선을 내 몸 안으로 돌려놓는 일이었다. 보디 스캔을 할 때 몸을 이완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할 필요는 없다. 긴장이 풀어지면 자연스럽게 이완이 되지만 마음챙김의 목표는 깨어있는 알아차림이지 몸의 이완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흡은 앉아서 하는 ‘정좌 명상’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모든 마음챙김 명상의 중심을 늘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였다. 이날 한 번 건포도, 보디 스캔, 정좌 명상을 했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8주간 공식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매일 시간을 내서 실제 마음챙김 연습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보디 스캔의 경우 하루 30분 이상씩 최소한 2주는 연습하라고 권한다. 마음챙김이 새로운 일상 습관이 될 때까지 수련하는 것이다.

마음챙김이 쉬운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카밧진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있다면 그것이 무슨 일이든 관계없이 당신은 마음챙김 명상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존 카밧진 지음 [처음 만나는 마음챙김 명상])

마음챙김 훈련 첫 단계에서 문득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나 자신의 마음을 챙기지 못하고 있었는가. 내가 마음을 챙기지 못하면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 끌려다니게 된다. 이렇게 8주가 지나면 내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중앙SUNDAY와 월간중앙에 모두 공급합니다.

[박스기사] 카밧진 박사와 한국 인연 | 1974년 뉴욕 불교 禪院서 숭산 스님 만나 참선 배워

존 카밧진 박사의 이력을 보다 보면 한국과의 인연이 나온다. 그가 1974년 보스턴 브랜다이스대학 생물학과에서 분자생물학을 가르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뉴욕에 프로비던스 선원을 세워 한국의 참선을 전파하던 숭산 스님을 만났다고 한다. 카밧진은 당시 이미 위 파사나를 비롯한 남방불교의 명상과 요가를 배우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숭산 스님에게 한국 참선을 배우며 ‘마음의 습관’을 벗어나는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불교를 전파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마음챙김 명상을 위해 불교도가 될 필요는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불교뿐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존재해온 수많은 명상의 핵심적 공통점을 현대적인 모습으로 구현해냈다고 한다. 그 공통점이 바로 자각(알아차림)이기에 자각은 당연히 마음챙김의 목표이기도 하다.

마음챙김 수련에서 그가 중시하는 것은 어떤 판단이나 분석을 가하지 않고 대상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사물을 대하는 자세와 통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항상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연습할 것을 권한다. 명상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순간 초심을 잃은 것이라고 했다. 누구라도 명상에 대해 아는 것이 적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꾸준히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했다.

※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중앙콘텐트랩 - 학술기자 20년 외길을 걸어온 국내 굴지의 학술전문기자다.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다.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불전국역연수원·민족문화추진회·도올서원 등을 거쳐 서강대 철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대한제국 120년, 다시 쓰는 근대사] [실학별곡, 신화의 종언]이 있다.

201908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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