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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대기자의 사랑학개론(마지막회)] 스탕달 '사랑에 대하여' 

백작부인에게 퇴짜 맞고 울다 쓰다 울다 썼다 

매력적 외모는 아니었지만 당대 여배우들과 염문
평생 애태운 짝사랑 삭여 인생 최고의 작품 집필


▎프란체스코 하예즈(1791~1882)가 그린 ‘키스’(1859). 스탕달은 키스 이전에 손잡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고 주장했다. / 사진:위키피디아 카먼스
사랑에 눈이 멀면, 곰보자국이 보조개로 보인다. 결점이 장점으로 보인다.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해 ‘몇 년 설’과 ‘몇 달 설’이 있다. 사랑 유효기간이 지나면 결점이 결점으로 보인다. 장점마저도 결점으로 보일지 모른다. 유효기간 없는 영원한 사랑 속에 푹 빠져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랑과 행복의 관계는 복잡하다. 선택이 필요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한 인간을 평생 무기수 사랑의 노예로 만들 수 있다. 그에게 사랑은 영원하지만 사랑이 성취되지 않았기에 그는 불행하다. 반면 결혼으로 사랑이 일단 성취됐기에, 결혼 후 사랑은 좀 식었지만 ‘아들딸 많이 낳고 잘사는 행복’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발자크(1799~1850), 플로베르(1821~1880)와 함께 19세기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스탕달의 본명은 마리앙리 벨이다. 스탕달은 [적과 흑](1830)과 [파름의 수도원](1839)으로 유명하다. 스탕달은 마리앙리 벨이 사용한 170여개의 필명 중 하나다.

’그는 살았고, 글을 썼으며, 사랑했다’ 묘비명


▎피에르 오귀스트 코트(1837~1883)가 그린 ‘봄’(1873). 사랑에도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다. 어떤 부부들은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봄을 맞이한다. / 사진:위키피디아 카먼스
스탕달(1783~1842)이 스스로 지은 묘비명은 “앙리 벨, 밀라노 사람: 그는 살았고 글을 썼으며 사랑했다.(Errico Beyle, Milanese: visse, scrisse, amò.)이다. 영어로는 “Henri Beyle, Milanese: he lived, wrote, loved.”이다.

스탕달은 자신이 쓴 최고의 작품이 [사랑에 대하여(De l’ amour, On Love)](1822)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대하여]는 사랑에 대한 스탕달의 분석, 이런저런 생각, 아포리즘이 한데 모인 책이다.

스탕달은 [사랑에 대하여]를 쓸 때 몇 줄 쓰다가 울고, 다시 몇 줄 쓰다가 울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지극히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예술 작품을 보고 감격한 나머지 격렬하게 흥분하거나 어지러움을 느끼고 심하면 환각을 체험하는 증상을 ‘스탕달 증후군’이라고 부를 정도다. 스탕달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성십자가 성당의 예술품을 보고 나오다가 무릎에 힘이 빠지며 탈진했다고 전한다.

사랑의 종류는 무한하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8가지 사랑이 인식됐다. 스탕달이 보기에 사랑의 종류는 네 가지다. (1) 우선 최고의 사랑인 ‘열정적인 사랑’이 있다. 열정적인 사랑을 대표하는 인물은 장자크 루소(1712~1778)의 연애 소설 [신엘로이스](1761)의 여주인공인 쥘리 데탕주다.

(2) ‘취미적인 사랑’은 당시 프랑스 상류 사회에서 유행했던 사랑이다. 장난삼아 하는, 게임처럼 하는 연애다. 열정이 없는 연애다. ‘취미적인 사랑’에 대해 스탕달은 이렇게 말했다. “상류 사회에 존재하는 사랑은 결투에 대한 사랑 혹은 도박에 대한 사랑이다.”

(3) 오로지 섹스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육체적인 사랑’과 (4) ‘허영적인 사랑’도 있다.

스탕달은 자신의 주관심사인 ‘열정적 연애’가 7단계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1) ‘감탄’이다. (2) “그녀에게 키스하고 그녀의 키스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한다. 하지만 스탕달은 사랑의 열정에서 키스 이전에 손잡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 듯하다.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처음으로 잡는 일이다.” “사랑하는 여성의 손을 처음 잡는다는 것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3) ‘희망’이다. 희망 단계에 대해 스탕달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을 낳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양의 희망으로도 충분하다. 하루나 이틀 후에 희망이 절망에 자리를 내주더라도 미량의 희망으로 시작한 사랑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4) ‘사랑의 탄생’ 단계다. (5) 제1 ‘결정작용(結晶作用, crystallization)’이 시작된다.

‘결정작용’은 스탕달의 연애론의 핵심이다. 결정작용에 대해 스탕달은 이렇게 말한다. “결정작용이라고 부르는 것은,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사랑하는 상대방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정신의 활동이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참다운 미’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연인을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정작용은 사랑의 전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지속된다.” “일단 결정작용이 시작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된다.” “결정작용은 평범한 남자에게는 생기지 않는다.”

사랑이 주는 최대의 행복은 손잡는 순간


▎[사랑에 대하여]의 한글판 표지.
(6) 의혹이 발생한다. 의혹의 단계를 스탕달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남녀에게 사랑이 탄생하는 방식이 다른 이유는 남녀에게 희망의 본질이 다르다는 데서 비롯된다. 한쪽은 공격하고 다른 한쪽은 방어한다. 한쪽은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거부한다. 한쪽은 대담하고 다른 한쪽은 수줍다. 남자는 궁금하다. ‘나는 그녀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나를 사랑할까. 여자는 생각한다.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농담은 아닐까? 그는 믿을 만할까.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갈지 그 자신 정말 알고 있는 걸까.”

(7) 제2의 결정작용이 시작된다. 평생 금슬이 좋은 부부들이 있다. 그들은 제2뿐만 아니라 제3, 제4, 제5의 결정작용을 체험하는 부부들이다. 이러한 연쇄적 결정작용의 비밀을 현대 심리학과 뇌과학이 풀고 있다.

스탕달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 남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생각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1) 그녀는 완벽하다. (2)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3) 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의 가장 강력한 증거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 것인가.


▎1. 스탕달을 평생 ‘사랑의 노예’로 만든 마틸드 뎀보스키 백작부인. / 2. 루이 뒤시 (1775~1847)가 그린 스탕달 초상화(1835). / 사진:렉투라, 소르마니 공공중앙도서관
스탕달은 ‘사랑지상주의자’였다. 그는 모든 역사적 시기는 각 시대의 방식으로 로맨틱하다고 생각했으며 로맨티시즘이 모든 시대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스탕달은 자신의 본명에서 따온 ‘벨주의(Beylisme)’를 주창했다. ‘스탕달주의’라고 할만하다. 행복의 추구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상이다. 스탕달에게 열정적인 사랑이 행복의 조건이었다.

신(神)은 스탕달에게 로맨틱한 마음과, 여성으로부터 로맨틱한 감정을 이끌어내기에는 불충분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몸, 그리고 로맨틱한 감정을 묘사할 수 있는 불멸의 필력을 주었다.

스탕달은 멜라니 루아종이나 멜라니, 멜라니 길베르와 같은 여배우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몇 달간 동거하기도 했다. 스탕달에게 ‘평생의 사랑(love of life)’은 1818년에 만난 마틸드 뎀보스키(1790~1825) 백작부인이었다. 짝사랑으로 끝났다. 폴란드 출신의 남편과 17세에 결혼해 아들 둘을 낳고 별거 상태였던 마틸드는 스탕달을 거부했다. 마틸드가 35세에 사망했기에 비련(悲戀)의 감정은 증폭됐다.

[사랑에 대하여]에서 마틸드는 실명 거론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스탕달이 마틸드를 생각하며 쓴 책이다.

[사랑에 대하여]의 문체나 구성은 독일 철학자·시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의 저작을 연상시킨다. 둘 다 자신이 천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둘 다 자신의 글을 이해하는 독자층이 제대로 형성되려면 한 100년이 더 필요하다고 예견했다.

니체와 마찬가지로 스탕달의 아포리즘은 마냥 어려운 것은 아니다. 사랑에 대한 다음과 같은 스탕달의 관찰은 쉽다.

- 사랑에는 연령 제한이 없다.

- 누구도 동시에 두 사람과 연애할 수 없다.

- 이해타산이 빠른 여자에게도 속일 수 없는 사랑의 징조가 있다.

- 라이벌에 관한 한 중용이란 있을 수 없다.

- 감추지 못하는 사람은 연애하는 법을 모른다.

선량한 남자는 바람기 있는 여자 선택?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묘지에 있는 스탕달의 무덤. / 사진:제바스티안 발로트
- 사랑하는 여자를 방금 본 남자는 다른 어떤 여자를 보아도 시력이 손상되며, 눈은 생리적인 고통을 받는다.

다음과 같이 알쏭달쏭한 말도 남겼다. (비평가들에게도 [사랑에 대하여]는 이해가 힘든 ‘이상한 책’이다. 당시 풍속이나 사회사를 알아야 재미있는 책이다.)

- 사랑에서는, 다른 대부분의 열정에서와는 달리, 가졌다가 상실한 것에 대한 기억이 미래에 희망할 수 있는 것보다 항상 더 좋다.

-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 첫걸음이다. 즉 남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변화다.

- 매우 선량한 남자는 결정작용을 촉진하기 위해 다소 바람기 있는 여자를 선택해야 한다.

-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고, 그리고 자기가 목숨보다도 사랑하고 있는 남자에게 속해야만 한다.

- 연애는 문명의 기적이다.

-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열정적인 사랑은 야만인들 사이에서 육체적인 사랑이 자연스러운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 전 세계에서 행복한 부부가 가장 많은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라는? 의심할 나위 없이 개신교를 믿고 있는 독일이다.”

[사랑에 대하여]에는 다음과 같이 일반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 타인을 위해 고행을 하는 습관을 나는 덕이라고 부른다.

- 간결한 문체로 쓸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영혼뿐이다.

-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사람은 깊은 호감은 받지 못한다.

스탕달은 비록 남자이지만, 시원적인 페미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남성과 동등한 자유를 향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작가·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는 스탕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탕달은 깊이 있는 로맨티스트였으며 동시에 분명히 페미니스트였다.”

교육·자유 양성평등 주장한 페미니스트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1825~1905)가 그린 ‘사랑의 고통’(1899). / 사진:위키피디아 카먼스
하지만 스탕달은 21세기 기준으로는 생각하기에 따라 비판받을 만한 생각을 했다. 그는 ‘밀당(courtship)’을 주도하는 것은 남성이라고 생각했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여성은 이성보다 감성을 선호한다.”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삶보다 사랑하는 남성에게 속하는 것은 권리다.”

스탕달의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어머니는 스탕달이 7세였을 때 사망했다. 스탕달은 아버지를 혐오했다. 아버지가 충분히 창의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스탕달의 원래 꿈은 프랑스의 극작가·배우 몰리에르(1622~1673)처럼 되는 것이었다. 결국 극작가는 되지 못했다. 스탕달은 군인·외교관·작가다. 1800년 17세 친척 주선으로 나폴레옹 군대에 입대해 이탈리아 원정에 참여했다. 27세에는 나폴레옹 제정의 참사원 서기관이었다. 1812년 29세에는 모스크바 원정에 참여했다. 1814년 31세였을 때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주했다. 음악과 미술, 독서와 사교로 행복하게 지냈는데 38세였을 때 비밀 결사대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추방당했다. 47세에 이후에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치비타베키아 주재 프랑스 영사로 일했다. 건강 악화로 프랑스로 돌아온 후 59세 거리에서 쓰러져 급사했다.

그의 대표작인 [적과 흑]의 주인공인 쥘리앵 소렐은 목수의 아들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출세하려면 군인 아니면 성직자가 돼야 했다. 보통 제목 [적과 흑]에서 군대가 적, 교회가 흑을 상징한다고 해석된다. 소렐은 유혹을 출세의 수단으로 삼았다. 결국 실패하고 사랑과 내면의 풍요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중앙일보에 지식전문기자로 입사, 심의실장과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서강대·한경대·단국대 등에서 강단에 섰다.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등이 있다.

201908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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