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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특집 | 단독 인터뷰] 김영호 前 산자부 장관이 본 韓·日 경제전쟁의 본질 

“한국 정부, 설명책임 다해 일본 시민 마음 얻어야” 

日의 수출규제는 역사·경제·국제정치 요인 뒤섞여… 평화헌법 개정 포석 의미도
한국 정부는 日 백색국가 배제 철회하고 자유무역의 수호자 지향해야


▎김영호 전 산자부 장관은 한·일 경제전쟁 속에서 “한국이 보복을 지양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의 대변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한·일 관계가 시계 제로다. 이럴 때 사람들은 길을 알려주는 현자(賢者)를 원한다. ‘정부를 비판하면 토착왜구’, ‘반일을 강조하면 종족주의’로 공격받는 이분법적 진영논리가 횡행하는 세상이라 더욱 그렇다.

김영호(79) 전 산업자원부 장관(단국대 석좌교수)은 한·일 갈등을 겹눈으로 응시할 수 있는 지일(知日)파 지식인이다. 도쿄대에서 정교수를 지냈고,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은 불법 무효’라고 선언한 한·일 지식인 1000명의 공동성명을 끌어냈다. 2017년 11월 3일(일본 헌법 공포 기념일) 일본 시민 5만 명이 의회를 포위하고 평화헌법 수호를 다짐한 평화시위 모임에 동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ICAN(핵무기 철폐국제행동)과 강연을 했다.

유난히 무더웠던 8월 13일, 월간중앙과 만난 김 전 장관은 ‘본질’을 강조했다. 왜 이렇게 됐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은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을 들려주는 일이다. 나이를 무색케 하는 또렷한 어조로 김 전 장관은 역사·경제·국제정치가 혼재된 본질에 접근할 때 우리의 적절한 대응이 나올 수 있고 나아가 타협점도 모색할 수 있음을 전하고 싶어 했다.

“아베, ‘65년 체제’로 회귀 꿈꿔”

한·일 밀월로 통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1965년 국교 수립 이후 지금이 최악의 관계인 것 같다.

“일본이 잘못했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실히 표현한 것은 고노 외상의 담화(1993년)가 처음이었다. 이후 사회당 출신 총리 무라야마의 담화(1995년)가 물꼬를 텄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무라야마 담화의 테두리 내에 있다. 무라야마 담화는 한국 식민지화의 부당성은 인정했지만 불법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현안은 식민통치의 불법성 문제다. 조금이라도 그 불법성을 인정한 것이 2010년의 간 나오토 담화였다. 간 나오토 담화는 한·일 지식인 공동 성명을 반영한 것이기도 해서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이후 민주당이 완전히 패하고 자민당이 정권을 잡았다. 이들은 간 나오토 담화 때 도달한 수준을 무시하려고 하고 있다.”

왜 아베는 전임 총리들의 노선을 따르지 않을까?

“아베는 1965년(한·일 국교 정상화) 체제로는 한·일 관계가 해결이 안 된다고 물고 늘어진다. 역대 수상들은 ‘65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야 된다는 의미에서 담화를 계속 낸 것이다. 아베가 (더 이상의 사과 담화가 아니라) 65년 체제로 회귀하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새로운 한·일 관계를 만들려는 역대 일본 수상들의 담화 ‘이후’로 가야될 텐데 지금 아베가 ‘이전’으로 가려고 하는 데 문제가 있다.”

아베가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Japan is back’, 일본이 돌아왔다가 그것이다.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脫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벗어남)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1951년 9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강화조약)로 만들어진 것이 일본의 평화헌법이다. 그 이전에는 군국주의 일본의 찬양론과 미화론이 있었다. 거기로 돌아가려는 아베 입장에서는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에서 한국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야 헌법 개정의 명목이 생긴다. 이것이 (아베 내각이) 이번 사태를 일으킨 역사적 원인이다.”

한국도 일본도 총합적 출구전략 결여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은 1998년 일본을 국빈 방문해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아베로선 전임 박근혜 정부 때 과거사에 관한 합의를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다시 가지고 나오니까 약속위반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 때 일본과 맺었던 합의는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 후에 문재인 정부가 파기하는 과정도 저래서는 안 되는데 싶은 점이 있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이 나오고 11월 화해·치유재단 해산 결정이 나왔다. 시기적으로도 일본 입장에서는 (연속적으로 발생하니까) 안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정의롭다’는 의식에서 아마추어적으로 일처리를 했다.”

아마추어적이라고 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본질을 확실하게 하는 것에서부터 대책이 바뀐다. 나는 우리 정부가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베가 이런 일을 벌인 것은 1석 3조(돌멩이 1개로 3마리의 새를 사냥)를 노린 것이다. 하나는 아까 말한 역사적 측면이다. 일본 우익은 과거 군국주의로 되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한마디로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의 입을 닥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이 꼼짝 못할 카드로 입을 막자는 시도였다.”

경제적 노림수도 있을 것 같다.

“또 하나는 미국이 경제적으로 ‘중국이 더 크기 전에 때려잡자’고 나서는 것처럼, 일본을 캐치업(추격)하는 한국 경제를 이때 때려잡자는 계산이다. 전자산업만 해도 소니, 도시바 등이 일본의 상징이었는데 한국의 삼성, LG에 깨졌다.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비메모리까지 한국이 진입하니 위기감이 컸을 것이다.”

일본이 ‘경제전쟁’을 감행한 마지막 노림수는 무엇인가?

“동북아의 질서재편이 일어나고 있는데 일본만 소외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본은 북한과 수교도 하고, 동북아 정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가지려 한다. 또한 한국이 중국과 미·일 사이에서 어느 편인가를 확인하고 싶은 점도 있다.”

역사, 경제, 국제정치를 결합할 때 일본의 의도가 제대로 보이겠다.

“일본은 세 가지 싸움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 쪽 사람들은 역사적 측면만 본다. 경제 쪽 사람들도 역사의 중요성을 모른다. 또 동북아 정세를 논하는 사람들은 앞의 두 가지를 중시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보는 전략이 없다. 경제하는 사람들 중에선 이렇게 말한다. ‘일본한테 배상 받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 한국 정부가 해주자.’ 역사하는 사람들은 ‘한국이 강경하게 역사의식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쪽만 생각한다.”

일본도 한국을 총합적으로 보지 못하긴 매한가지 아닌가?

“일본도 마찬가지로 이 세 가지가 꼬여 있다. 수상(아베 총리)과 경제 관료(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가 한통속이지만 사실 두 가지 논리가 부딪히고 있다. (경제 관료는) 안보를 위한 수출관리의 재검토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베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이 (수출규제의 이유로) 역사문제를 결부시키는 것에 대해 WTO(세계무역기구)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일본도, 한국도 이 세 가지에 대한 종합전략이 안 나오고 있다.”

일본도 오래 못 가는 것 아닌가? 국제적 지지도 못 얻는 데다가 자국 기업의 피해까지 발생할 텐데.

“삼성, LG에 팔던 부품, 소재를 못 팔면 일본의 수출도 안 좋아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삼성이 아니라도 일본 국내, 대만, 미국 등에 수출시장을 열 수 있다. 안심할 순 없다.”

“일본 국민을 우리 정부가 놓쳤다”


▎덕수궁 등 서울시 중구 일대에 설치됐던 ‘NO 재팬’ 깃발은 시민들의 항의로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철거됐다. / 사진:연합뉴스
아직까진 우리 정부도 일본에 강경한 스탠스로 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나온 대안으로 역사적 측면에선 ‘1+1’, 경제적 측면에선 소재 국산화, 국제정치 측면에선 동북아 정세에 일본에 발언권을 강화할 기회 등을 들 수 있다. ‘1+1’은 1965년의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을 가져와서 이득을 본 한국 기업들(대표적으로 포스코)과 신일본제철 같은 (전범기업) 일본 기업들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돈을 내주는 방법이다. 나는 대법원 재판의 정신을 잘못 이해해서 이런 제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은 ‘(1965년 한·일 협정을 통해) 우리가 청구권 자금은 받았지만, 본질적으로 일본 식민지배의 합법성을 전제로 삼았던 것’으로 본 것이다.”

1965년의 한·일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되는지 여부에 관해선 큰 틀에서 3가지 해석이 있다. ▷일본이 강제동원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한 이상,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 ▷협정에 개인 청구권이 포함됐지만 (이는 국가가 외교적 보호를 포기한 것이라) 개인 차원의 청구권은 행사 가능하다.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은 소멸됐다. 피해 국민에게 한국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 대법관 다수 의견은 첫 번째였고, 김 전 장관도 이와 결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도 이를 줄곧 인정했지만 2005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뉴욕지방법원의 재판문제에 임하면서부터 세 번째 입장으로 전환했다.

‘1!’이 대안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되나?

“포스코와 일본 기업에 돈을 내라는 1+1은 본질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일본에 ‘식민 통치의 불법성을 인정해라. 그러면 돈을 안 받고 우리 정부의 재정으로 줄 수 있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이러지 않았는가. 차라리 이러면 떳떳하다. 1+1에 플러스알파를 논하는 구차한 말을 왜 하는가.”

이 과정에서 적반하장 격으로 일본의 과오가 가려지고 있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는 반인도적인 죄다. 그 죄를 보상해야 한다. 독일은 했지 않나. 그런데 지금 아베는 보상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보복을 가하고 있다. WTO (자유무역 정신에 입각한) 규정과도 위반된다. 전후 세계질서를 거스르는 세계사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상황이 길어지더라도 대치해야 하나?

“그야말로 식민지 이후 한·일 간 최대의 싸움이 붙었다. 금방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고 그 싸움에서 물러설 순 없지 않나.”

김 전 장관은 역사 문제에 관해선 ‘원칙론자’에 속한다. 일본과 얽힌 경제와 국제정치 문제에 관해서 실리적 접근을 중시하는 것과 대비된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역동적 균형을 잡느냐가 한·일 관계 회복의 열쇠일 것이다.

“이제 가마우지(韓)는 어부(日)한테 조정당하지 않아”


▎김영호 전 산자부 장관은 ‘1965년 체제’를 조정할 한·일 간 합의를 기다리고 있다.
일본 국민의 한국에 대한 정서는 어떤가?

“평화헌법을 지키자는 여론조사를 해보면 (진보 성향인) [아사히신문]이든 (보수 성향인) [요미우리신문]이든 과반수가 지지한다. 한국이나 아시아에 대해 과거 일본이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도 70%가 넘는다. 그런데 아베의 보복정책에 관한 지지도는 80%가 넘는다. 그러니까 한국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일본 국민을 우리 정부가 놓쳤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에 ‘설명책임’을 묻고 싶다.”

문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옳다고만 생각한다. 문 대통령이 ‘(수출규제 이후의) 모든 책임은 일본이 져야 한다’고 말했을 때 일본의 모든 신문에 ‘한국 대통령의 무책임한 책임전가’로 나왔다. 그래서 내가 <아사히신문> 측에 물어보니 이렇게 얘기하더라. ‘지금 대법원 대법관을 누가 임명했느냐? 대법원이 대통령의 적폐청산 대상 중 하나였다. 그래놓고 삼권분립이니까 정부는 개입 못 한다는 말 뒤로 숨을 수 있느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일본 내 정서가 7월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승리로 표출됐다. ‘우리가 옳으니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 아니라 디테일하게 일본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은 영향도 있겠다.

“일본 사람들 사이에 ‘사과 피로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에 했던 것처럼 의회 결의로 사과한 적이 없다. (한국에 관한 과거사 반성에 대해) 법적인 조치가 아니라 수상들이 말 한마디 하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자꾸 골대를 옮긴다’고 주장한다.

“설명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일본 국민의 (공감을) 다 뺏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일본과 싸우는데 한국 정부를 욕하면 어떡하느냐’라는 정서가 쫙 깔려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스스로가 책임을 찾고 개선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변화하기만 기다리면 되겠나.”

김 전 장관은 ‘가마우지 경제이론’의 주창자다. 1982년 한국 경제를 가마우지에 비유했다. 가마우지는 목줄(일본 부품·소재 산업)에 묶여 물고기(완제품)를 잡아도 삼키지 못하고 곧바로 어부(일본)에게 바친다. 한국 수출 구조의 취약점을 꿰뚫은 통찰이었다. 김 전 장관은 일본 와세다대학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이 학설을 발표했다. 1988년 일본국제경제학회는 이를 검토해 이론의 적합성을 인정했고 연보에 실었다.

경제 얘기를 해보자. 2019년 시점에도 가마우지 경제 이론은 유효한가?

“거시적으로는 지금까지도 그런 측면이 강하다. 한국의 일본에서 가져다 쓴 부품, 소재의 누적 합계가 7조원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 기술혁신이 됐다. 삼성 반도체가 리드를 해서 오히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마우지 이론에서 진화한 것이다. 이제 가마우지(한국)는 어부(일본)한테 조정당하지 않는다.”

일본은 부품, 소재 산업을 무기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은 한국 수출을 경제산업성이 장악해 수돗물처럼 컨트롤하겠다는 중상주의적 무역 형태를 원한다. 반도체 3가지 품목(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중 포토 레지스트는 국산화를 못 한다고 전문가들은 보더라. 나머지는 국산화 내지는 대체 가능하리라고 보더라. 그러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가 국산화를 할 수 있을까?

“정부가 앞으로 7조8000억원을 들여서 국산화를 하겠다고 한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부품 국산화는 어느 정도 했다. 그러나 소재 국산화는 못했다. 소재 국산화까지 20년은 걸린다. 그래서 아무도 안 한다. 기초 과학에 엄청난 투자를 해야 되는데 (임기 중에 안 되는 일이니)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라고 여긴다. 기업도 (당장의 이득으로 돌아오지 않으니) 안 한다. 이번에 나온 투자 계획도 정부 주도형이다. 기업은 ‘어디 해봐라’라는 냉소적인 반응이다.”

“과거사에 관해 미국은 우리의 우군 아니야”

그럼 정부가 산업을 도울 수 있는 방편은 무엇인가?

“갑자기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하지 말고, 혁신성장 5개년 계획을 세워서 기업 주도로 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 같은 것은 규제 완화를 해줘야 한다. 이런 큰 문제 앞에서는 야당과도 빅딜을 해서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야 한다. 최근에 기업체 사람들을 만나면 정부에 대한 반감이 정말 크더라. 아찔할 지경이다.”

대기업도 힘들겠지만 중소기업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부품, 소재가 발달 안 됐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중소기업이 그만큼 발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불공정거래를 해결하라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공정위가 뭐를 했는가? 중소벤처기업부가 뭐를 했는가?”

어디부터 살펴야 될까?

“공정위에 걸려 있는 불공정거래 건수가 지금 2000건이다. 이것은 대기업이 탐을 내는 기술이다. 이것을 뺏으려고 하다가 싸움이 났다는 것이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우리 중소기업의 기술이 좋다는 것이다. 이제는 민간 주도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 산(産)·학(學)협력은 둘이 애정이 없는데 데이트하면 돈 준다는 것이다. 이제는 결혼시켜서 애도 낳게 제대로 해봤으면 좋겠다.”

국제정치 관점에서 미국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한·일 간 경제 갈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문제는 (미·일 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에 있다. 한·일 간 ‘65년 체제’가 나온 근본이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미국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했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못한다고 금지해놨다. 이것은 UN 정신에 위반된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뜻인가?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식민지 문제에 대해선 노터치 하라’는 데에서 출발했다. 나는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 미국이 우리의 우군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8월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시민사회의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 일본 여행 보이콧 움직임에 대해 “결코 한국과 일본을 위한 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보면 반일(反日) 감정이 없다. ‘일본인이 미워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이 아니었다. 이토를 따라가다간 일본이 폭삭 망한다. 그 길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토를 죽인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머지않아 나를 고마워할 것이다. 안중근의 날을 만들어서 나를 좋아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했다. 또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문을 보면 ‘독립 없는 곳에 평화 없다’고 말하지만 반일 개념은 없다.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기(克日) 위해 반일 감정을 내세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찌 보면 시민사회가 정치권보다 더 성숙한 것 같다.

“이번에 ‘NO 재팬’을 ‘NO 아베’로 바꾼 것은 한국 시민의 승리다. 나는 서울 중구청이 건 ‘NO 재팬’ 깃발을 시민들의 항의로 내린 날을 1라운드에서 2라운드로 넘어간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그날 이후로 진정이 됐고, 갈등은 관리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라운드에서는 대통령이 나섰지만 2라운드부터는 총리·장관·수석들이 나서야 한다. 대통령은 사자처럼 뒤에 있으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정부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키는 맞불 조치를 취하려 하고 있다.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빼면 우리가 무슨 변명을 하더라도 그것은 복수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일본과 똑같이 복수로 가면 안 된다. 나는 한국이 민주주의의 우위를 내세웠으면 한다. 사실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해봤자 명분도, 실익도 없다. 한국이 자유무역과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지키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 이게 반일보다 효과가 더 크다. 국산화도 해야겠지만 일본과의 상생은 여전히 필요하다.”

‘오래된 미래’가 된 新한·일 체제

대화를 마친 뒤 김 전 장관은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이 원고를 오랜만에 찾았다”며 건네줬다.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시절(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썼던 ‘65년 체제의 재조정’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일부를 발췌하면 이렇다. ‘냉전이 끝났다. 한국의 군사독재 시대가 끝났다. 일본의 자민당 지배 체제가 붕괴됐다. 65년 체제의 조정은 불가피한 것이 됐다. 지금은 그러한 재조정의 진통기라고 할 수 있다.’, ‘냉전 후 사태는 낙관적인 것만이 아니다. 일본 사회의 보수화 경향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단기적인 외교의 승부 차원에서가 아니라 新한·일 체제 구축에 대한 장대한 비전을 갖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는데도 그때의 구상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만큼 한·일 관계는 진전이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고 했다. 새벽은 오고 있는가.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녹취 정리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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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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