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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보수 논객 이상돈 국회의원이 말하는 국내외 정세 

“촛불 든 사람들도 文정부 포퓰리즘에 굉장히 실망” 

■ 문재인과 조국, 황교안은 세상을 철저한 이분법으로 보는 정치인
■ 조국 페이스북 정치는 정상에서 벗어난 것… 장관 지명 국정에 좋은 선택 아냐
■ 보수 대통합은 자충수 되거나 자멸 부를 수도… 선거전 통합 성공한 예 없어
■ 미국, ‘한·일이 다투면 행복한 나라는 따로 있다’고 우려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에서 메인스트림이 퇴조하고 포퓰리즘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초선, 비례대표)은 국회 본회의장보다 본업이던 교단(중앙대 법대 교수)에서 울림이 더 큰 목소리를 냈던 인물로 기억된다. 보수 이론가로 활동하던 교수 시절 진보 진영으로부터 합리적 보수, 열린 보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한국 사회의 메인스트림에 제 기능을 해줘야 나라가 평안하다고 믿는 정치인이다.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도와 정권 창출에 기여했고, 2016년 총선에서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함께 국민의당 바람을 일으켰다. 지금은 바른미래당에 당적을 두고 있는 이 의원은 이제 의정 활동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와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미·중·일·러 4대 강국이 한국을 옥죄거나, 흔들거나, 일부러 방치하는 듯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2014년 그가 펴낸 [공부하는 보수 - 위기의 보수, 책에서 길을 묻다]라는 책은 지구적 차원에서 보수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고찰했다. 인터넷 교보문고는 이 책을 일러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지식인들이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9·11테러와 전쟁, 미국 현실과 보수의 실패, 중동 문제 등의 주제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고 평했다. 이 의원은 전에 없는 한·일 갈등 국면에서도 중재에 나서지 않는 미국의 속내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적임자일 수도 있다.

또 국내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은 통합보다는 이념을 앞세운 거침없는 질주에 나섰고, 보수 일각에선 대통합 논의가 나오고 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제 길을 잘 들어선 것일까? 월간중앙은 8월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 의원을 만나 한반도 안팎에서 일어나는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에 대한 해석과 해법을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던 2011년 5월 여당인 한나라당으로부터 민심은 등을 돌렸고, 진보 진영에서는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이 만든 [진보집권플랜]이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월간중앙은 이 교수를 비롯해 박세일 서울대 교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 보수 논객 3인을 초청, ‘보수재집권 플랜’ 대담을 개최한 적이 있다. 그때는 그나마 보수에 희망이 있었다면 지금은 거의 절망적 상황이라고 한다.

“그 시절 보수 진영에는 박근혜라는 확실한 대선 주자가 있었고 진보 진영에는 마땅한 인물이 부각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야당이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띄우고 그랬겠나. 지금은 거꾸로 됐다. 여당은 차기로 일컬어지는 인물이 넘쳐 나는데 야당 인물군은 변변하지 않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문재인 정부가 저렇게 못하는데도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40%를 달리고 야당은 그 반 토막인 20%에 맴돈다. 여당 의원들이 ‘우리는 야당 복이 있다’며 재밌는 얘기를 하더라. ‘홍준표가 (당 대표를 그만두고) 나가서 속상했는데 전원책이 (조강특위 위원) 들어오더라. 그리고 전원책이 나가서 서운했는데 이제는 황교안이 들어온다며?’라고 말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여당 의원들은 황 대표의 한계를 꿰뚫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보수 대통합은 되지도 않는다”


▎최근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보수 대통합 논의가 일고 있다. 8월 7일 당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 둘째) 등 당 지도부.
여당 의원들이 주로 거론하는 황교안 대표의 한계란?

“대중과 호흡하는 공감 능력은 정치인의 기본 자질인데 그게 안 된다고 보는 것 같더라.”

자유한국당이 집권하면 박근혜 국정농단 적폐의 재판(再版)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야당에 정권을 넘겨주면 안 된다’는 심리가 아직도 완강한 것 아닐까?

“수도권 지역구를 가진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많다. 알다시피 경제나 외교나 다 답답하고 엉망이다. 그렇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이들에게선 그런 기색을 볼 수 없다. 총선에서 경쟁할 상대방 후보들이 별 볼 일 없으니까 위협이 안 된다는 식이다. 보수 진영은 인물 경쟁에서 지고 있다. 앞서 얘기했지만, 과거에는 보수에 인물이 넘쳤는데 지금은 정반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있던 사람들 중 많은 이가 ‘큰집(교도소)’을 들락날락하고 있고 새 인물은 키우지 않은 탓이지. 노태우·김영삼·이회창 시절만 해도 보수 진영이 인재들을 많이 길러냈는데 말이다.”

보수 진영에서 내년 총선 전 대통합을 화두로 띄우고 있다.

“보수 대통합 되지도 않는다. (웃음)”

내년 총선에서 보수가 뭉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위기의식이 보수의 결집을 자극하지 않겠나.

“한데 뭉친다고 반드시 선거에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2012년 19대 총선만 해도 진보 진영의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과 통합진보당이 야권 연대를 맺었지만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과반의석(152석)을 차지했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선 더불어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 세력이 국민의당을 만드는 등 야권이 분열됐지만 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을 누르고 1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다면 보수 진영의 통합이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통합이 되지도 않겠지만 된다고 해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안철수 전 대표가 자유한국당에 간다고 해서 그나마 아직도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자유한국당을 찍을까? 정치인들이 자기 욕심에 이것저것 모아서 하는 게 통합인데 성공한 예가 별로 없다. 보수의 유력 인사들을 자유한국당에 다 묶는다 해도 그들의 지지율이 자유한국당에 다 더해지는 건 아닐 것이다.”

기존 한국 사회와 정치의 주류가 보수였다면 앞으로는 진보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는 건가?

“우리나라 주류가 바뀌었다면 바뀐 것이고… 이제는 진보-보수 구도라기보다는 ‘메인스트림(mainstream)’이냐 ‘포퓰리즘(populism)’이냐의 선택 아닐까. 통상 세계 정치는 ‘mainstream’인 중간 지대에 보수나 진보를 얹어서 정부를 이끌어 가는 추세였다. 대표적인 나라로 독일·프랑스·영국을 들 수 있는데 이번에 브렉시트(EU 탈퇴)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보리스 존슨 총리가 나온 영국은 다른 길을 가는 것 같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mainstream’인 줄 알았으나 ‘populism’을 앞세운 극우로 가 버렸고, 프랑스도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 같은 이들이 득세할 가능성이 있다.”

레프트 포퓰리즘과 라이트 포퓰리즘의 적대적 공생


▎이상돈 의원(왼쪽)과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추진한 다당제 실험은 최근 양당제 구도 고착화 추세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포퓰리즘의 득세는 세계적 흐름이라는 말이 나올 법한데.

“그렇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리더가 나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위험한 현상 아니겠나.”

한국도 세계적 추세와 동조화하는 것인가?

“내가 봤을 땐 한국도 똑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3분의 2가 동의한 탄핵의 힘으로 당선됐다. 다시 말해 한국의 ‘mainstream’을 가져가서 탄핵을 성공시킨 것이다. 근데 지금 하는 모습은 완전히 레프트 포퓰리즘(Left Populism)의 전형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주력은 태극기 부대와 친박 세력 아닌가. 라이트 포퓰리즘(Right Populism)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mainstream’이 실종되다시피했고,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다. 우리가 알았던 세상과 다른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내가 지금 너무 걱정하나? (웃음) 메인스트림 정치는 원래 격앙된 국민들의 정서를 가라앉히는 정치를 한다. 선동하지 않는다. 포퓰리즘 정치는 그걸로 선동해서 밥을 먹는다. 원래 이들은 무시해도 될 정도의 소수파였는데 지금은 무시 못 할 중심세력이 됐다.”

그렇다면 현 정부 핵심들도 자기네만 유별나게 옆길로 새는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다고 여기겠는데.

“그렇다. 지금 트럼프 같은 사람이 미국 대통령을 하니까 일본도, 우리나라도 고삐가 풀린 면이 있다. 세계는 우리가 알던 세계가 아닌 것이다. 트럼프가 한다면 하는 세상이다. 트럼프가 우리가 아는 모든 기준을 다 깨버린 것이다. 이런 마당에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을까? 미국 정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트럼프는 완전히 ‘abnormal man’이다. 말 그대로 비정상적인 사람이지. 그는 미국이 가진 메인스트림의 미덕을 다 부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그러하니 이것은 글로벌 리스크다.”

같은 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해석한다면?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반사이익을 많이 봤으니까 국민통합을 해 주리라, 대다수를 바라보는 정치를 하리라고 국민이 기대해 온 게 사실 아닌가. 이를테면 DJ식 국민 화합 정치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이 잘한 것도 있지만 국정은 정의(正義)와 부정의(不正義)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 따라 운영했다. 이런 점에서는 지금 문재인 정권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촛불을 든 사람들 중에도 문재인 정부에 굉장히 많이 실망하는 분들이 있다고 본다. 청와대만 들어가면 사람이 바뀌는 것 같더라.(웃음)”

자연인 문재인을 잘 아는 편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두 번인가 만났다. 정치하는 리더십이라기보다는 그냥 말수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기 의사 표현을 활발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으로 안다.”

한·일 갈등 이슈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이 아주 강한 메시지를 발산하고 여론을 이끄는 면모를 보였다.

“그건 본인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생각이 맞는다고 봐야지. 그런데 1970년대나 1980년대에 감명 깊게 있은 책에서 얻은 생각, 그 시대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잖나. (문 대통령은) 일정한 틀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닌가 싶다. 인권 변호사,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야권의 대표….”

“문 대통령은 일정한 틀 안에서 살아온 사람 ”


▎이상돈 의원은 “한·일 갈등 국면에서 양국 국민들의 마음도 냉각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면 보통 사람 이상의 경험을 한 것이고, 대통령에 도전할만한 스펙 아닌가?

“당시로서는 야권도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될 수밖에 없었잖아. 이제 자기가 살아온 세계에서 벗어나 좀 더 큰 정치를 해야 하는데. 하긴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박근혜 정부 때도 그랬고, MB 때도 다 똑같았다. (웃음)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자기 사람만 보고 정치했다. 오죽하면 경선에서 뽑은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를 그렇게 핍박했겠나.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해서 자기 무덤을 판 거다.”

요즘 국회 인사청문회의 경우 보고서도 채택되지 않은 국무위원의 임명을 강행하는 게 일상화하는 분위기다.

“현 정부 출범 직후에는 그래도 노골적으로 야당을 무시하진 않았다. 야당의 목소리를 듣는 척이라도 했다. 요즘은 그런 것도 없어졌다.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야당 시절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일러 오만하고 독선적인 정권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들이 지금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더러 오만하고 독선에 젖어 있다고 비난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야당은 조국 법무장관 지명에 극력 반발한다. 문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굳이 조국 카드를 강행한 배경을 생각해 본다면.

“글쎄, 나도 그 의도를 모르겠다. 앞으로 검찰 개혁을 하려는 것일까? 조국 법무장관이 추진하는 일은 정권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테니까. 아마도 여권은 국회 신속처리안건, 즉 패스트트랙 절차에 들어간 선거법과 고위공직자수사처 설치법 중 후자는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선거 제도는 시기적으로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지만 공수처 설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일부가 반대해도 민주당과 정의당, 평화민주당 일부가 찬성하면 가능하다. 조국 전 수석의 기용은 공수처 설치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조국 전 수석은 과거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래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국가전복을 꿈꾸는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법무부 장관에 앉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냐”며 반발했는데.

“사노맹 사건을 구체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 당연히 문제가 된다. 국회나 정당의 인정을 받는 게 중요하다는 측면에서는 논란을 야기할 인물의 임명은 피하는 게 좋다. 조국 법무장관 카드는 정부의 국정운영에도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검찰 출신은 절대로 법무장관에 임명하기 싫다는 뜻일까. 하여간 이해가 잘 안 되는 인선이다.”

조국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 재직 시 한·일 문제와 관련한 포퓰리즘을 부추겼다는 비판에 수긍하나?

“조국 전 수석은 페이스북에 ‘죽창가’ 같은 거 올리고,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부정하는 사람은 친일파라고 했다. 내가 볼 때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라는 현직에 있을 때 한 것이 더 문제다. 법관은 판결로, 국회의원은 의정활동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나는 조국 전 수석이 청와대 들어가서 페이스북으로 그런 얘기를 한 건 정상을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고 본다. 조국과 황교안은 세상을 철저한 이분법으로 본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그런 걸 ‘매니케언(Manichaean) 정치’라고 그런다. (Manichaean은 ‘마니교적인’이라는 뜻이며 세상이 선과 악, 빛과 어둠 등의 대립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고 보는 경향을 말한다)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서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를 비꼬는 용어다.”

“한국, 일본이냐 중국이냐 고통스러운 선택에 직면”

지금 한·일 관계가 1965년 한·일수교협정 이후 최악의 지경으로 빠져든다는 데 이견이 없다. 외교 이슈가 한국의 정치를 압도하는 형국인데.

“고(故)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박사는 생전인 2012년 저서[전략적 비전(Strategic Vision)]에서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미리 본 것처럼 기술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영향력이 쇠퇴할 수밖에 없고 한국은 아주 고통스러운 선택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중국에 의존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쇠퇴하는 미국을 대신해서 역사적으로 불행한 관계에 있는 일본과의 관계를 보다 강화하는 것이라고 브레진스키 박사는 전망했다. 한·일 두 나라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고,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브레진스키 박사의 진단은 우리에게 참으로 뼈아픈 얘기다. 한국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더 강화할지, 더 완화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미국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한·일간에 이렇게 다투면 행복한 나라는 따로 있다(other countries will be happy)’며 싸우지 말라고 하더라. 여기서 ‘아더컨트리’라고 하는 나라는 러시아·중국·북한을 뜻한다.”

한국과 일본 양쪽에 다 불리하다는 말인데.

“양쪽에 다 불리하다. 불리한데도 일본은 그 정도 감수하겠다는 거고, 우리도 감수하겠다는 거 아닌가.”

문재인 정부도 한·일 간 다툼이 다른 나라에게 이롭다고 볼까?

“그게 우리하고 생각이 다른 것이다. 기본적으로 일본과의 관계에서 할 말은 하겠다, 과거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겠다, 이런 것 아닌가. 이는 실용주의로 계산해선 답이 안 나오고, 오로지 명분으로 하는 정치일 뿐이다. 그런데 일본도 그렇게 되어 버린 거 같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미국·일본·한국의 관계는 유지·관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는 데서 심각해진다. 한국-미국-일본이라는 이 축이 우리의 안보와 번영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부라면 국민의 고조된 반일(反日) 감정을 다독이고, 과열되기 쉬운 국면을 진정시켜야 한다. 지금 한·일 관계는 강경 대치 단계에서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듯하다. 그런데 한번 무너진 한·일 관계가 쉽게 복원될까 싶다.”

일본도 포퓰리즘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일본인들은 흥분한다고 해도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다. 우리가 접하는 일본은 혐한을 내건 일본인들, 그리고 이와 대척점에 있는 지식인 집단 정도인데 중요한 것은 일본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다. 일본을 잘 아는 이들의 말로는 일본인들의 한국을 이웃으로 여기는 생각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거다. 사실 지금까지 국민 교류로 본 한·일 관계는 아주 가깝고도 친밀했다. 일본 음식, 일본 맥주 이런 게 한국 시장에서 인기를 얻었고, 일본 관광에 나서는 한국인도 나날이 늘어났다. 이제 일본 사람들이 냉정하게 계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일반인들의 생각은 정부 간 관계가 호전되고, 정책으로 푼다고 해서 쉽게 달라지는 게 아니라서 걱정이다. 양국 국민 사이의 공감대가 무너지지나 않을지 말이다.”

검투사 시합 보듯 대통령제를 대하는 국민들


▎광복절인 8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아베 규탄 범국민촛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주한일본대사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이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그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브레진스키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더라. 바로 국민에 관한 내용이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홍콩은 완전한 중국의 일부인데, 최근 중국 우산 혁명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대만만 해도 중국의 일부가 될까? 안 그렇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빠질 때 우리가 중국에 의지하는 상황에 왔을 때 그런 선택에 동의할 사람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진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 국민은 반세기 동안 미국, 일본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왔다. 또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살고 있다. 홍콩처럼 국민이 저항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에게 현실정치에 몸담은 소회를 물었다. 그는 “명분이 없어서 내가 해 줄 말이 별로 없다”며 소리를 낮췄다. 그는 패권주의 배격과 다당제 구현을 명분으로 국회에 발을 디뎠다. 한국에 제 기능을 하는 제3, 제4 당이 나와 거대 양당의 독주를 견제하고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대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마치 유럽 각국에 중도 좌파, 중도 우파 정당이 약진하듯 말이다. 하지만 다당제의 한 축을 이루는 평화민주당은 의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당의 형체를 유지하는 것도 벅차 보인다. 그가 속한 바른미래당 역시 손학규 대표와 소속 의원들 간 알력이 고조되는 등 내홍에 시달린다. 그가 말한 한국 정치의 다당제는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는 중이다. 그는 “더 이상 내가 (정치권에) 설 명분이 없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현실 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한 셈인가.

“한국 정치는 두 가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대통령 중심제, 또 하나는 정당 당대표제다. 둘 다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이어서 사생결단식으로 싸우고 이긴 자는 제왕적이 된다. 그래서 나라가 양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의 사이에 국민의당이 자리해 정치개혁을 추구했으나 세력화에 실패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에도 비문(非文), 비박(非朴) 등 (제왕적) 대통령제와 당대표제에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힘을 한데 모으지 못했다. 20대 총선 직후에 안철수 전 대표, 유승민 의원이 의원내각제나 의회중심 분권형 대통령제에 동의했다면 당시의 분위기나 의원들의 동태로 볼 때 개헌도 가능했으리라 본다. 그 와중에 최순실 태블릿PC 사건이 터지고, 민주당이 정권 획득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면서 의회 중심의 분권형 대통령제는 영영 실종되고 말았던 것이다.”

의회 중심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말인데, 국민들이 가장 불신하는 기관의 하나가 국회다.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말하자면 지금 국민들이 대통령제를 보는 시각은 로마 시대의 검투사 경기 관전법과 유사하지 않을까.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가 누구인가가 궁금하고, 그게 중요한 그런 검투사 시합 말이다. 그런데 그런 구경을 하다가 로마는 거덜이 나고 말았다.”

- 대담 박성현 월간중앙 편집장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녹취 정리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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