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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엔진 달고 세계 5위로 항공우주산업의 메카 KAI를 가다 

‘민수·군수·MRO’ 엔진 달고 세계 5위로 

원천 기술 탑재한 스마트 팩토리, “日업체 접근 원천봉쇄”
독자 생산 항공기 잇달아 수출… 동남아 시장 개척에 올인


▎최초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이 KAI 본사 항공기동 앞에 자리하고 있다. T-50은 2011년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이라크, 필리핀 등에 수출됐다. / 사진:KAI
항공우주산업의 수준은 그 나라의 기술 경쟁력을 파악하는 바로미터다. 그간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위상에 미치지 못했다는 게 국내외 업계의 주된 시각이었다. 그러나 후발주자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국내 관계자들이 고군분투하면서 세계 시장에서의 지위는 점차 올라가는 중에 있다. 그 중심에 한국항공우주산업(주)(이하 KAI, Korea Aerospace Industries)이 자리한다.

KAI는 1999년 국가 차원의 인위적 구조조정으로 삼성·대우·현대 3사의 항공 부문이 통합하면서 출범했다. 올해로 만 20주년을 맞이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KAI는 국산기본훈련기(KT-1), 고등훈련기(T-50), 다목적 전투기(FA-50)를 거쳐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 개발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상공을 우리 힘으로 지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올 7월에는 육군의 노후 공격헬기를 대체할 소형무장헬기(LAH·Light Armed Helicopter)의 초도비행에도 성공했다. 방산 선진국들의 기술 이전 기피 등 견제 속에서 이뤄낸 성과라고 KAI는 말한다. 민수 분야에서도 보잉, 에어버스 등의 대형 민항기 기체 생산 기반을 꾸준히 넓혀오고 있다.

성장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최근 KAI가 발표한 올 상반기 매출은 1조4367억원, 영업이익은 1506억원, 순이익은 1356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2.9%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102.7%, 순이익은 129.8% 급증했다. 이제 KAI는 2030년 매출 20조원, 세계 5위의 항공우주체계 종합업체로의 부상을 준비하고 있다.

월간중앙은 한국 항공우주산업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는 KAI의 심장부인 경남 사천 본사를 찾았다.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는 항공우주산업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대지 면적만 82만㎡에 달하는 사천 본사에는 ▷개발본부 ▷항공기동 ▷부품동 ▷조립동 ▷창정비·성능개량 ▷스마트 팩토리 등 여러 부설 공장이 자리한다.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만 4700여 명. 가보지 않으면 위용을 실감하기 어려운 스케일을 자랑한다.

세계가 탐내는 ‘스마트 팩토리’… “원청이 물어봐도 NO”


▎KAI가 자랑하는 스마트 팩토리에서 에어버스 A350 윙립(wing rib)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 사진:KAI
기자가 둘러본 공장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었던 곳은 프랑스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의 A530 기체를 제작하는 ‘스마트 팩토리’였다. 약 1000억원가량의 재원이 투입된 스마트 팩토리는 2010년부터 에어버스 A350 기종의 주익(비행기 동체의 좌우로 뻗은 날개 중 가장 큰 날개) 가운데 갈비뼈 모양 구조물(윙립, wing rib)을 제작하고 있다. 3.1t에 달하는 알루미늄- 리튬의 합금을 약 97.4% 깎아내 약 80㎏의 윙립을 얻는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제작 공정에서 사람 손길이 닿은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모든 장비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이를 기반으로 작업 상의 손실은 최소화하면서 공정은 신속하게 가져가는 효율적인 공정이 눈길을 끌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9개의 절삭기에 알루미늄-리튬 합금 덩어리가 쉬지 않고 투입돼 윙립을 생산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스마트 팩토리에서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운영 시스템을 설명해준 KAI 관계자뿐이었다. 이 관계자는 ▷원자재 하차 및 보관 ▷치공구 장착 ▷기계 가공 ▷비파괴검사 ▷정밀검사 등 윙립 가공 공정에 필요한 인력은 하루 24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KAI 관계자는 “스마트 팩토리가 완공되기 전 기술자들의 손을 거쳐 1개의 윙립을 생산하는 데 8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45분으로 단축됐다”며 “공장은 24시간 돌아가고 있으며 가동률은 90%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9대의 절삭기가 깎아내는 윙립의 개수는 매월 660개로 A350 10대에 공급하는 분량이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가 결합된 스마트 팩토리에서 작업자들은 35개의 CCTV를 통해 공정 진행 상황을 체크한다.


▎올 7월 4일, 육군의 노후 공격헬기를 대체할 ‘소형무장헬기(LAH)’ 시제 1호기가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 사진:KAI
KAI 관계자는 “원청인 에어버스가 ‘스마트 팩토리 운영 정보를 알려 달라’고 요청하지만 원천기술이기 때문에 알려주지 않는다”며 “에어버스의 다른 해외 협력업체들이 KAI로 견학을 오더라도 스마트 팩토리는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상당히 빠르게 벤치마킹하는 일본 업체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하고 있다며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음을 덧붙이기도 했다.

KAI는 스마트 팩토리를 통해 에어버스와 계약한 800대 가운데 2010년부터 현재까지 약 500여대의 해당하는 윙립을 납품했다. 공장 관계자는 품질에 만족한 에어버스쪽에서 내년 추가 계약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약 3년 뒤에는 인공지능(AI)을 적용해 가동률을 95%선까지 끌어올리는 등 새로운 공장으로의 진화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동화 시스템은 동체를 최종 조립해 완성하는 항공기동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개별 조립된 전방·중앙·후방동체를 파스(FASS, Fuselage Automated Splice System)를 통해 자동 결합하는 공정이 이뤄진다. 레이저로 설정된 좌표에 완성된 동체를 흔들림 없이 이동시키는 것이다. 자동물류시스템도 가동되고 있었다. 작업 중 필요한 물품을 컴퓨터로 요청하면 전방에 센서가 달린 무인대차(AGV)들이 제품과 자재 등을 실어다 준다. 항공기동 곳곳을 활보하는 AGV는 주변에 사람이 있을 경우 작동하지 않는다. 실제로 기자가 AGV 앞을 막아서자 잠시 멈췄고, 옆으로 비켜서자 다시 움직였다.

아파치 헬기에 에어버스까지… 믿고 맡기는 제작능력


▎KAI는 미 해군 노후 항공기인 P-3CK를 들여와 한국 해군의 최신 해상초계기로 개조했다. / 사진:KAI
스마트 팩토리에서 민수 항공기인 A350이 만들어지고 있다면 조립동에서는 미국 육군에서 주력으로 사용하는 아파치 헬기가 제작되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공격헬기인 아파치 헬기를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은 드물다. 현재 KAI에서는 매달 5대 규모의 아파치 헬기의 동체 구조물을 제작하고 있다. 2002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아파치 헬기는 이미 600대 이상 출하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전투기 제작사 록히드마틴의 F-16 제작 공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KAI는 2005년부터 F-16의 전방·중앙 동체 일부를 제작, 납품하고 있다. 조립동을 방문했을 당시 록히드마틴이 바레인에 납품할 F-16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밖에 조립동에서는 ▷보잉737의 수평·수직 꼬리날개 ▷에어버스의 A321 동체 16번째 섹션 부품 조립이 이뤄지고 있었다. K AI는 세계 유수 항공사의 기체 제작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우리 기술력으로 만든 항공기를 수출하기도 한다. 기자가 찾은 날 사천의 항공기동에서는 태국에서 주문한 T-50 고등훈련기의 최종 조립이 이뤄지고 있었다. 근처 격납고에는 이미 완성된 태국의 T-50 5호기·6호기가 대기 중이었다. 후면 꼬리 날개에 불을 뿜는 용이 그려진 도장이 이색적이었다. 해당 항공기는 올 하반기 태국으로 인도돼 태국 영공을 지킬 예정이다.

격납고에는 올해 말부터 세네갈로 납품될 KT-1 기본훈련기도 늠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태국과는 다르게 세네갈의 KT-1에는 사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KAI 관계자는 “주문한 국가마다 후면 꼬리 날개에 각 나라의 특색이 담긴 문양을 그려 넣어 줄 것을 요구한다”며 “화려한 외국과 달리 우리 국군의 경우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항공기가 KAI의 손에 의해 제작, 수출되기까지 현장에서 뛰는 실무진의 고충은 남다르다.

박상신 미주수출팀장은 “국방산업특성상 보안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계약이 진행되는 과정은 물론 계약 체결 이후에도 국가 간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항공기 계약 체결 전후의 내밀한 사정과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의문부터 불쑥 제기하는 이들로 인해 실무진들의 어깨에 힘을 빠질 때도 있다는 것이다. KAI측은 “잘못된 정보가 협상 상대국으로 흘러갔을 경우 계약이 틀어질 가능성도 있고, 나중에 수출국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들이 직·간접적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꼭 알아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항공우주산업 성장 로드맵 통해 세계5위로


▎경남 사천에 위치한 KAI 본사 항공기동에서 태국에 인도할 T-50 고등훈련기가 조립되고 있다. / 사진:KAI
KAI가 만드는 항공기의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게 실무진의 전언이다. 김재홍 아시아수출팀장은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가격 경쟁력도 일정수준 확보하고 있다”며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위상 제고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하면서 KAI 항공기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히 동남아 시장의 전망이 괜찮은 편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초 T-50 4대를 구매했던 태국은 8대를 추가로 주문했고, KT1 기본훈련기를 도입했던 인도네이사 역시 T-5O을 추가 구매했고, 현재 KF-X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김 팀장은 “기존에 KAI 항공기를 선택했던 국가들의 재구매율이 높다”며 “최근 들어 동남아 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민수와 군수를 넘나들며 항공기 제작 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KAI는 최근 항공기 MRO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MRO란 ‘Maintenance(유지)’ ‘Repair(수리)’ ‘Overhaul(점검)’의 앞글자를 딴 말이다. 노후화된 항공기의 안전 정비를 실시하고, 성능 개량을 통해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KAI는 앞서 미 해군의 해상초계기였던 P-3CK, 보잉의 E-737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수송기 C-130H 등을 완벽하게 재정비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기자가 해당 공장에 방문했을 당시 미 태평양지역 공군 소속의 F-16을 정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KAI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 오산과 군산 기지, 주일미군 미자와 기지에 주둔 중인 F-16 90여 대를 정비할 예정이다.

KAI는 항공기 MRO를 위해 자회사인 한국항공서비스(캠스, KAEMS)를 설립하기도 했다. 저가 항공사(LCC)의 확대로 민간 항공기의 정비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와 맞물린 조치다. KAI는 항공기 MRO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싱가포르를 따라잡아 아태지역 정비의 허브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제조업이 매출 저하 등 전반적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항공우주산업이 한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거듭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계 항공우주 시장은 2017년 700조원 규모로 연 3~4%의 지속적 성장을 자랑한다. 특히 여객 수요 증가로 민항기 시장은 안정적인 발전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KAI 관계자는 “항공우주산업은 최첨단 과학기술이 융·복합된 미래 산업이자 지식·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전문적인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개발과 양산을 비롯해 후속 지원을 포함하면 40~50년 동안 지속가능한 특성을 갖고 있고, 타 산업에 견줘서도 안정적인 이윤 창출과 성장이 가능한 산업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직접 둘러 본 KAI 공장에는 첨단 공정과 재래식 공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세계가 궁금해하는 스마트 팩토리와 같이 첨단 기술이 적용된 공정이 있는가 하면, 일일이 수작업으로 부품을 조립하는 공정까지 사람의 노동력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부분도 많다. 한국 제조업의 또 하나의 성장동력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의미이다.

KAI는 항공우주산업이 지역과 중소기업과의 상생 모델을 이끌 수 있다고 전망한다. 2017년 기준으로 국내 항공우주 관련 강소기업의 숫자는 220여 개 정도로 추산된다. 국내 항공우주산업이 성장하면서 이들 기업에 기술 및 재정 지원이 더해진다면 2030년까지 강소기업이 1000개로 늘어난다는 게 KAI의 추산이다. 항공우주산업 고용인원 또한 2017년 1만4000여 명에서 2030년에는 17만 명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항공우주산업을 이끌고 있는 KAI의 역할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를 위해 KAI는 한국형전투기(KF-X), 소형무장/민수헬기(LAH/LCH) 사업 등 대형 개발사업의 성공적 수행과 양산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4차 산업 혁명과 연계한 무인기 개발 ▷군·민수 위성개발과 한국형 발사체 총조립을 통한 민간 주도 우주산업화 추진 ▷MRO 분야 민항기 정비 및 군 정비물량 위탁 확대 등을 항공우주산업 로드맵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2030년 매출 20조원을 달성, 세계 5위의 항공우주업체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다.

기자가 만난 KAI 관계자들은 경남 사천의 항공기 공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세상은 잘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국내 기술과 노동에 의해 양산된 첨단 항공기들이 세계를 향해 비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KAI 조립동 앞에 내걸린 현수막에는 ‘KAI의 꿈과 미래를 조립합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KAI 관계자는 “비단 한국항공우주산업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꿈과 미래를 높이 쏘아 올릴 마중물이 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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