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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의 ‘인간혁명’ (새 연재)] 세대전쟁으로 번지는 ‘기후변화 공방전’ 

지구 난방 시스템의 변화가 ‘얼음 지구’ 부를 수도 

16세 소녀의 ‘등교거부’ 시위, 유럽 전역으로 확산
지구 평균기온 2℃ 상승 못 잡으면 대멸종 올 수도

왜 중국보다 영국에서 먼저 산업혁명이 시작됐을까. 시장과 기술 어느 면에서나 당대 중국이 앞섰는데 말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청교도 윤리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정신’에서 답을 찾는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정신·문화·제도가 감당하는 수준에서 ‘혁명적’이란 이야기다. 동도서기에 바탕을 둔 조선의 근대개혁이 줄줄이 실패한 이유다. 4차 산업혁명 논의가 활발한 지금, 우리는 또다시 기술에만 골몰하는 우를 범하고 있진 않을까. 윤석만 중앙일보 기자가 산업혁명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인간혁명’의 방법론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3월 15일 로마의 학생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정치권과 기성세대의 각성을 촉구하는 등교 거부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여름 전 세계는 이상기후로 열병을 앓았습니다. 6월 프랑스 남부의 몽펠리에는 한낮의 기온이 45.9℃까지 치솟아 기상관측 역사상 최고치를 선보였습니다. 이전의 기록(2003년 44.1℃)을 무려 1.8℃나 갱신했죠. 이웃 나라인 독일과 폴란드·체코 등도 역대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UN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5년 연속 기록적인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 중 하나인 알래스카도 예외가 아닙니다. 1952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지난 6월 최고기온(32.2℃)을 기록했습니다. 1월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 역시 46℃로 역대 가장 높은 기온을 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멕시코 제2의 도시인 과달라하라에선 한여름에 우박 폭탄이 떨어져 시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이곳은 30℃를 훌쩍 넘기는 불볕더위였는데 말이죠.

한국도 매년 폭염일수가 늘고 있습니다. 2018년 폭염(낮 33℃ 이상)은 31.5일, 열대야(밤 25℃ 이상)는 17.7일을 기록했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01~2010년 평균 11.1일인 서울의 폭염일수는 2071~2100년 68.7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부산은 7.5일에서 40일로, 목포는 6.5일에서 52.5일로 늘어납니다. 이쯤 되면 폭염이 이상기후가 아니라 ‘일상기후’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변화는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어른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먼 미래’의 일로 여기며 미래 세대가 겪을 재앙을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있습니다.

빙하가 녹아 또다시 빙하기?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 중 한 명인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는 지난해 12월 24차 UN 기후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과연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얼마나 큰 문제일까요? 툰베리의 말처럼 지금의 어른들이 정말 자녀들의 내일을 빼앗고 있는 것일까요? ‘윤석만의 인간혁명’ 첫 회에서는 기후변화의 원인과 전망, 우리의 대응 실태와 문제점 등을 영화 [투모로우](2004)를 토대로 살펴봅니다. [인디펜던스 데이] [2012] 등 재난영화의 대가인 롤랜드 에머리히가 감독한 [투모로우]는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인류에게 큰 재앙을 안긴다는 내용입니다.

영화는 기후학자인 잭 홀 박사가 남극에서 빙하를 조사하던 중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국제회의에 참석한 그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기상이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급격한 온난화가 갑작스러운 빙하기를 부를 수도 있다는 그의 주장은 각국의 대표들로부터 비웃음만 사고 맙니다.

하지만 홀 박사의 경고대로 정말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바닷물의 온도가 내려가고, 급기야 해류의 흐름까지 바뀌어 위도가 높은 지역부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도쿄 하늘에선 수박만 한 우박이 떨어지는가 하면 뉴욕은 30m 높이의 해일이 덮쳐 거대한 마천루를 쓰러뜨립니다. 거대한 허리케인과 태풍이 북반구에 휘몰아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벌여 나갑니다. 특히 갑작스러운 기온 하강은 미국 전역을 빙하기로 몰아넣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지구가 뜨거워져서 문제인데, 갑자기 빙하기가 찾아오는 것’이 말이 되냐는 거죠. 이는 우리의 통념과 달라 언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설정은 매우 과학적입니다. 2004년 미국의 우즈 홀 오션그래픽 연구소(WHOI)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화 [투모로우]처럼 북대서양 조류의 변화로 영국과 북유럽의 기후가 급격히 변화해 빙하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데에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같은 온실가스의 영향도 있지만, 해류의 흐름도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해류는 극지방의 차가운 물과 적도의 따뜻한 물을 순환시켜 지구의 온도를 조절합니다. 그러나 이 순환이 멈추면 고위도 지방의 해수는 더욱 차가워지고 육지의 기온까지 떨어뜨립니다.

실제로 1만2700년 전 북대서양의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 시대가 그랬습니다. 당시 영국 땅은 영구동토층으로 변했고, 다른 유럽 지역도 한여름의 기온이 8~9℃로 싸늘했습니다. 겨울에는 영하 20℃ 밑으로 내려가는 소빙하기를 겪었고요. 이 추위는 1000년간 지속했습니다. 이처럼 소빙하기가 시작된 원인은 1만4000년 전쯤에 일어난 급격한 빙하 붕괴인 ‘해빙수 펄스(Meltwater Pulse)’의 영향이 큽니다.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피터 브래넌이 쓴 [대멸종 연대기]에 따르면 당시 그린란드 3개 만한 빙하가 한 번에 바다에 빠지며 해수면을 18m나 치솟게 했습니다. 빙하는 서서히 녹아 해수의 온도를 낮췄고 바닷물의 염도를 떨어뜨렸습니다. 여기서 차가운 물은 밑으로 가라앉고, 염도가 낮은 물은 수면에 머뭅니다. 이는 고위도 지역 해수의 밀도를 변화시켜 적도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멕시코 만류의 흐름을 방해합니다. 결국 극지방의 차가운 물과 적도의 따뜻한 물이 섞이지 않아 지구의 난방 시스템이 고장 나게 된 것이었죠.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또다시 벌어질지 모릅니다. 2015년 독일의 알프레드 웨그너 연구소(Alfred Wegener Institut)는 그린란드 인근 해역의 염도가 7%가량 떨어진 것을 관측했습니다.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 바다로 유입되면서 해수의 밀도를 변화시키는 중이었습니다. 이는 영국과 북유럽에 빙하기가 닥쳐올 수 있다는 기존의 연구를 뒷받침합니다. 즉, 온난화가 ‘뜨거운 지구’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얼음 지구’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영국의 왕립학회장과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를 지낸 마틴 리스 박사는 그의 저서 [온 더 퓨처]에서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2배가 될 때 지구 기온이 1.2℃씩 올라간다는 것은 매우 간단한 계산에 속한다”며 “이보다 이해하기 어렵고 예측하기 더욱 힘든 것은 온실가스와 연관돼 일어나는 해류의 순환과 구름·수증기 등의 변화”라고 경고합니다.

500만 년 간 지금보다 1℃ 이상 높았던 적 없어


▎그레타 툰베리(왼쪽 첫째)가 올 1월 다보스포럼이 열린 스위스 다보스 콩그레스센터 앞에서 기후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더 큰 위험은 ‘얼음 지구’보다는 ‘뜨거운 지구’입니다. 앞서 살펴본 드라이아스기 사례처럼 소빙하기는 고위도 지방의 국지적 문제지만, ‘전 지구적 온난화’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재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기보다 이미 1℃가량 높아진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2015년 파리 기후협약에선 지구의 온도를 산업혁명기와 비교해 2℃ 아래로 묶어 두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현재보다 1℃ 이상 더 오르지 못 하게 하는 것이죠.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대기과학자 조천호 박사는 자신의 책 [파란하늘 빨간지구]에서 “지난 500만 년 동안 지구의 기온은 산업혁명기 바로 이전보다 2℃ 이상 따뜻해 본 적이 없다”며 “이는 인류가 2℃ 이상 온난화된 상태에서 생존해본 경험이 없다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산업혁명기보다 2℃ 이상 높아지면(현재보다 1℃ 높아지면) 지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2013년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0만 년 동안 지구가 가장 뜨거웠던 때는 플라이오세(300만 년 전)입니다. 이때의 온도가 산업혁명기보다 2℃가량 높았습니다. 즉, 현재보다 1℃ 정도 더웠을 뿐인데 해수면은 지금보다 25m 높았습니다. 조천호 박사는 “해수면이 상승하면 베네치아처럼 고도가 낮은 지역이나 네덜란드, 방글라데시처럼 저지대에 있는 나라부터 위험에 처한다”며 “해수면이 6m만 높아져도 전 세계 해안가의 평야 지대와 강 하구의 삼각주 지역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단 1℃만 더 오른다 해도 인류의 삶은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약 30%가 사는 해안 지대부터 침수가 시작되기 때문이죠. 특히 세계의 유명 대도시들은 주로 바다에 인접해 있습니다. 미국의 뉴욕과 마이애미, 중국의 상하이와 홍콩,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호주의 멜버른과 시드니 등 주요 도시들이 바다를 끼고 있죠.

피터 브래넌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온난화 때문에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라는 점에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며 “다만 그 시기와 정도가 문제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특히 “2003년 유럽에선 2주간의 폭염이 3만5000명을 죽였고 3년 뒤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산업혁명기보다 불과 1℃ 올랐을 뿐인데 인류의 생명을 이 정도로 위협했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 같은 생태환경을 누리는 현재의 인류는 매우 축복받은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인류가 처음 출현한 이후에도 지구는 소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했고 1만2000년 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간빙기인 ‘홀로세(Holocene)’에 진입했습니다. 이는 그리스어로 ‘완전하고 조화로운(Holo)’ 시대(cene)라는 뜻입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기후 변동성이 적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계절을 예측할 수 있었고, 농경을 통한 정착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면 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작물을 키워 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는 믿음도 갖게 됐죠. 농경 생활은 인류에게 잉여생산물을 증대시켜 경제적 혁명을 안겨줬고, 사회·제도·문화가 발달하며 지금의 문명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파괴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조그만 기온 상승도 인류에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구의 자연적인 환경의 변화는 인간이 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45억 년의 지구 역사상 5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빙하기와 화산폭발, 운석 충돌로 인한 기후변화가 주원인이었습니다. 가장 심각했던 3번째 대멸종(2억5000만 년 전)에선 전체 생명 종의 96%가, 6500만 년 전 5번째 대멸종에선 지구의 주인이었던 공룡을 포함해 76%의 종이 사라졌습니다.

‘조화로운 홀로세’에서 ‘혼란의 인류세’로

그런데 지금 당장 우리의 눈앞에 6번째 대멸종이 다가와 있습니다. 지구의 생태 시계에 따르면 아직 대멸종이 올 때가 아니지만,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인위적인 활동이 종말을 앞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피터 브래넌은 “인류의 환경 파괴로 100년 안에 6번째 대멸종이 올 수 있다”며 “이때 전체 생명 종의 70%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2020년까지 경로를 바꾸지 않으면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개별 국가의 정상들은 적극적 노력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2015년 195개 국 정상이 모여 파리 기후협약을 체결했지만 2017년 트럼프가 제일 먼저 탈퇴를 선언하면서 다른 나라들도 협약의 이행이 불투명해졌습니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 상태를 만들어야 하지만 다수 국가가 기후협약에서 약속한 목표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저감 조치만 시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국제회의 등을 개최하며 기후변화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해온 조인원 전 경희대 총장(현 경희학원 이사장)은 “과학자들의 절대다수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말하고 있지만 ‘눈앞의 이익’이 ‘보편적 진실’을 가로막고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 있다”며 “모든 국가가 전시와 같은 전폭적인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수백만 년간 선조들이 그랬듯 건강한 인류의 터전을 미래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책임이자 의무”라고 주장합니다.

마틴 리스 박사는 “기후 논쟁은 정치와 비즈니스의 이해관계가 심하게 뒤얽혀 생산적인 토론을 해본 적이 없다”며 “기후변화에 대한 예측을 부정하는 이들은 더 나은 과학을 요구하기보다 과학 자체를 비난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는 한번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온다”며 “파리 기후협약에서 제시한 2℃의 목표치, 가능하면 1.5℃ 이내에서 기온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금 우리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아들·딸, 손주들이 직접 그 피해를 볼 것입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후손들은 제때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대재앙을 초래한 현세대를 원망하겠죠. 트럼프와 같은 지도자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들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미래의 진실’에 눈 감았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죠. “어른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는 16세 소녀의 비판에서 여러분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 윤석만 기자/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 -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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