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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피서명소로 ‘제2의 전성기’ 맞는 폐광들 

수정동굴에서 스테이크에 와인 한잔 어때요? 

습도·온도에 여유로움까지 3박자 갖춘 여름 동굴여행
‘개발 연대’ 현대사 머금은 광산들, 시대별 스토리도 제각각

찜통더위가 연일 기승이다. 땀으로 흠뻑 젖어 쉰내 풍기는 셔츠를 벗을 때면 일상에서 탈출하고픈 마음이 절로 생긴다. 바다나 계곡이 먼저 뇌리를 스친다. 늦더위에 지친 여름, 폐광 여행은 어떨까. 서늘한 바람과 한국 현대사를 머금은 폐광 동굴들이 피서객들을 반긴다.


▎까브(CAVE).
#. 경북 문경시엔 크고 작은 광산이 67곳이나 된다. 과거 1970~80년 대 산업화 시절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이들 광산도 하나둘씩 폐광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들 중 일부는 폐광과 동시에 관광 명소로 빛을 발하며 ‘제 2의 광생(鑛生)’을 맞이한 곳도 있다.

문경시 동로면 황장산 기슭에 자리 잡은 동굴 카페 겸 레스토랑인 ‘까브(CAVE·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까브는 불어로 ‘와인 저장고’를 뜻한다. 수정·백운석 등을 캐던 지하 150m 깊이의 보석광산을 리모델링해 2012년 개장했다.

좁고 가파른 산길을 자동차로 10여 분간 오르니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맑고도 상쾌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낮은 습도에 1년 내내 17℃ 안팎의 온도를 유지하는 동굴 안은 쾌적하다 못해 서늘한 편이다. 담요를 몸에 두른 사람들을 보는 게 어색하지 않다. 벽면에 반짝이는 순백색 수정을 배경으로 한 ‘인생 샷’은 이곳 동굴의 피서의 백미로 소문이 자자하다. 대전에서 온 김진일(38)씨는 “지난해 여름휴가 때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인파에 치여 피로감만 느꼈었다”며 “여유롭게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이야 말로 진정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 같다”고 추켜올렸다.


▎동양광산.
#. 수정동굴에서 내려와 문경새재를 건너면 곧바로 충북 충주시다. 이곳엔 단일 광산으론 동양 최대 활석(滑石) 생산량을 자랑하던 ‘동양광산(사진)’이 버티고 있다. 활석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물품이 바로 분필이다. 1929년 일본에 의해 개발된 이후 90여 년간 운영되다가 지난해 폐광됐다. 총연장 57㎞에 이르는 동굴 가운데 올해 800m 구간을 체험공간으로 꾸며 일반에 공개했다.

“바깥하고 기온 차가 20도 정도 납니다. 잘 챙겨 입으세요!”

35℃를 웃도는 폭염이 무색할 정도의 두툼한 옷차림에 안전모를 쓴 관람객들이 동굴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출입문을 통과해 어둡고 좁은 길을 따라가면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거대한 동굴 속으로 빨려든다. 통로 곳곳에는 숨가쁘게 돌아가던 탄광의 역사를 상징하듯 거대한 기계들이 육중한 자태를 드러낸다. 채광이 한창인 시절 캐낸 활석을 지상으로 운반하던 권양기와 광석을 1차 가공하던 분쇄기 등이 그대로 남아 관광객을 맞이한다. 이들 기계들 옆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은 동굴 피서의 화룡점정으로 아로새겨질 법하다.


▎1. 수정동굴 내부 온도는 언제나 17℃ 안팎으로 유지된다. 덕분에 한여름에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담요를 두른 채 시간을 보낸다. / 2. 갖가지 조명이 뿜어내는 빛에 물들어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는 충주 활석동굴 내부. / 3. 특제 오미자 소스를 곁들인 스테이크는 수정동굴 레스토랑 ‘까브’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 4. 활석동굴을 찾은 아이들이 바닷속 풍경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5. 커피를 즐기는 방문객들 뒤로 녹슨 활석 분쇄기가 보인다. 한때 이곳이 동양 최대 활석광산이었다는 걸 웅변하는 듯하다.
- 문경·충주=사진·글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909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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