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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총력취재] 윤석열과 조국의 엇갈린 운명 

타협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살아 있는 권력에 칼 겨눈 검찰의 전술, 과거보다 치밀해져… 여권, 인사·감찰·지휘권 총동원해 역공 준비

"마지막 소명”
“직(職)을 걸었다”
퇴로(退路)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두 사람의 운명이 만났다. 조국과 윤석열. 정권과 검찰의 명운을 쥔 두 사람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저들이 내뱉은 짧은 한마디가 지금의 상황을 압축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각자 운명을 걸고 정면 충돌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타협의 시간은 이미 지났다.


▎조국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각자의 운명을 걸고 정면 충돌했다. 조 장관은 개혁을, 윤 총장은 정의를 내세웠다.
8월 27일 이른 새벽,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이 삼삼오오 준비된 차량을 타고 흩어졌다. 검찰의 움직임은 분주하고 기민했다. 오전 9시경 서울과 경남 양산, 창원 등 10여 곳에서 동시다발 압수수색이 시작됐다.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웅동학원 재단 사무실 등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일가에 제기된 의혹과 관련된 곳들이었다.

이날 압수수색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사실 이날 오전 압수수색 정보가 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들 사이에 한 차례 돌았다고 한다. ‘중앙지검 특수2부가 압수수색을 한다’는 정보였다. 특수2부(부장 고형곤)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이 이뤄지는 것으로 예상했다. 한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는 “삼성에 대해선 몇 차례 압수수색이 있던 터라 한 번 더 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검찰이 보안을 위해 허위정보를 흘려 연막작전을 편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검찰의 보안은 철저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전날 조국 장관 일가에 대한 고발 사건들을 형사부에서 특수2부로 재배당하고 이를 함구했다. 재배당 직후 압수수색 영장도 확보했다. 관행적으로 검찰이 보안을 걸어 청구하는 영장에 대해 법원은 발부 사실을 노출하지 않는다. 수도권 지청의 한 중견 수사관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려면 혐의와 수색 장소,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 압수수색이 이뤄지기 전에 이미 법리검토가 상당히 진척돼 있었을 거란 의미다”라고 말했다.

검찰을 잘 아는 법조계 인사들은 검찰이 다른 사건보다 각별히 보안에 신경을 썼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상대가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인 데다 인사청문회준비단에 한솥밥을 먹던 검사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 준비단장은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이면서 대검 대변인을 지낸 김후곤 법무부 기조실장이었다. 여기에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 출신인 김창진 형사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 출신인 김수현 정책기획단장,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 출신인 박재억 대변인이 청문회 준비를 도맡았다. 특수부의 수사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검찰은 성동격서(城東格西) 전술을 택했을 거란 해석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는 최정예 특수부


▎서울중앙지검 소속 수사관들이 조국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투자 관련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 사진:송봉근
또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은 윤 총장의 고민과 결단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전직 민정수석에다 임명 가능성이 높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상대로 벌이는 싸움인 만큼 검찰 조직의 명운을 걸 수밖에 없었으리란 것이다. 윤 총장이 사석에서 “직을 걸었다”고 한 것을 너스레로 볼 수는 없는 이유다.

윤 총장의 결기는 수사팀 구성원의 면면에서도 드러난다. 조 장관 일가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검찰의 내로라하는 ‘베테랑 칼잡이’들이 다 모여 ‘작은 중수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정예화되어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을 다룬 경험이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분식회계 의혹 사건 수사를 담당하고 있어 ‘특수부 결사체’나 다름없다.

지휘체계는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송경호 3차장-고형곤 부장으로 이뤄져 있다. 고형곤 부장은 2016년 홍만표 변호사의 법조비리 의혹을 담당해 검사장 출신인 홍 변호사를 구속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합류해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시비리 의혹을 맡아 부정입학을 밝혀냈다. 이 밖에 사법연수원 34기부터 41기까지 공인회계사, 경찰대, 로스쿨 등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실력파 검사들이 파견 형태로 합류해 있다. 특수2부 소속 검사는 10여 명에 이른다. 말 그대로 특수통 맏형인 윤 총장의 최정예 친위대나 다름없다.

검찰 내 핵심 보직을 거치고 변호사로 개업한 전직 검사장은 “수사는 개시 결정이 어렵지, 시작하면 알아서 굴러간다”고 말했다. “수사는 생물처럼 살아 움직인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윤 총장이 가장 고뇌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언제 시작할지를 결정하는 게 제일 어렵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윤 총장이 압수수색에 나섰을 때만 해도 검찰이 조 장관에게 명분을 만들어 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 어린 시각도 없지 않았다. 조 장관 주변을 ‘클리어’ 해 줌으로써 향후 걷게 될 정치적 행로의 장애물을 걷어내 줄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여권 내부 사정에 밝은 민주당의 한 인사는 “두 사람은 그리 가까운 편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문무일 총장의 후임자를 고를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장관은 윤 총장이 아닌 다른 인물을 추천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때 보여 준 윤 총장의 원칙주의자 면모가 오히려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적폐 수사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같은 개혁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자칫하다간 검찰에 끌려갈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조 장관이 천거한 인사는 조직 내에서 신망이 두텁고 기획에 능한 관리자형이었다”고 말했다.

우상호 의원도 윤 총장 지명 당시 라디오 시사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슷한 속내를 내비쳤다. 우 의원은 “야당에서 ‘코드 인사’라고 말하지만 우리도 두렵다. 우리 말도 잘 안 듣는 분으로, 진짜 원칙주의자”라고 말했다.

세간의 의심을 일축하듯 수사팀의 그물은 시시각각 조국 장관의 일가를 조여 들어가고 있다. 검찰이 잡고 있는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조국 장관 딸의 입시비리 의혹과 조 장관 일가가 투자한 사모펀드 관련 의혹이다.

입시비리 의혹에 대해 검찰은 조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를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정씨가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에 도움을 주려고 동양대 총장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혐의다. 최성해 동양대 총장도 표창장 위조 의혹에 힘을 싣고 있다. 동양대에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이 행정경찰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법조계의 한 인사는 “공소시효 만료시한이 임박했다는 이유만으로 법무부 장관이 될 사람의 아내를 소환조사도 하지 않고 기소했겠느냐”며 “사전에 충분한 법리 검토를 거쳤고, 혐의 입증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수사팀에는 정유라 이화여대 입시비리 사건을 다룬 노하우도 축적돼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달리 말하면, 증거만 확보돼 있다면 혐의를 입증하기가 비교적 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건의 분수령은 사모펀드 투자 부분이다. 검찰은 사모펀드 운용사의 실소유주 의혹을 받는 조 장관의 오촌 조카 조 모씨가 해외를 떠돌다가 9월 14일에 입국하자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조사를 벌인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조씨에게는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허위공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횡령·배임), 증거인멸 교사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그가 조 장관 가족이 14억원을 투자한 사모펀드(블루코어밸류업 1호)를 운용하는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의 실소유주로서 코링크 대표 이모씨와 회삿돈 수십억원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둔다. 조 장관 인사청문회 이전에 증거인멸을 주도한 혐의도 받는다.

“수사는 생물, 시작하면 알아서 흘러간다”


▎조국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준비단장을 맡고 있는 김후곤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 사진:김경록
코링크PE의 정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회사가 맞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회계사 A씨는 “사모펀드 시장은 밸류에이션에 기초해 수치를 해석하고, 규제나 사회적 흐름에 대한 법률적 예측과 진단, 기업 운영 방향에 대한 컨설팅이 어우러진 자본주의의 종합예술”이라며 “몇 가지 기본적인 정보만 살펴봐도 코링크PE는 정상적인 곳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우선 회사 소재지가 불투명하다. 등기부등본상 본사가 있던 곳은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아파트 상가였다. 현 등본상 주소지는 신축건물인데 업체가 입점한 근거가 없다. A씨는 “건물주와 업체가 특수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했다.

특히 그는 업계에서 코링크PE란 사모펀드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더구나 투자처가 대부분 정부지원금을 받는 사업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점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A씨는 “조국 장관 가족이 70억원을 약정하고 10억원을 납입했다면, 계약 조건에 따라 펀드 청산 시 약정액 기준으로 분배가 이뤄질 수도 있다. 일곱 배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다는 의미다”라고 지적했다.

핵심은 조 장관 일가가 사모펀드에 투자하면서 조씨와 공모해 법을 위반한 것은 없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조 장관의 아내 정씨가 투자처 선정 등 사모펀드 운용에 개입했는지를 밝혀낸다면 적어도 “투자처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조 장관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수순은 정씨의 검찰 소환이다. 현직 법무부 장관의 아내가 검찰에 소환되는 것은 전례 없는 초유의 일이다. 조 장관이 직접 개입했는지 여부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조 장관에게 치명상이 될 수밖에 없다. 공정과 정의, 도덕성을 강조해 온 현 정부의 신뢰가 급전직하(急轉直下)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부와 여당으로선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해당한다. 더구나 사모펀드를 둘러싼 의혹에 여권 핵심관계자가 관련돼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돌고 있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의원은 “정 교수가 소환되고 나면 보수 야권에서 여권 중심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여론을 조성하려 할 것”이라며 “결국 대통령에게 책임지라고 요구할 텐데 그냥 볼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의원의 말처럼 정부와 여당은 정씨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최악의 장면이 연출되는 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는 심산이다.

현직 장관 부인이 포토라인에 설까


▎조국 장관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 의혹의 ‘몸통’격인 조 장관의 오촌 조카가 9월 16일 새벽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뒤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에 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 방편으로 들고 나온 게 수사공보준칙 개정이다. 법무부 훈령인 공보준칙은 2001년에 언론과 학계, 시민단체, 법조인 등이 참여하는 수사공개제도개선위원회 심의와 각계 여론 수렴을 거쳐 만들어졌다. 언론의 취재활동이 검찰의 수사를 견제하고 축소·은폐 가능성을 차단하는 순기능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수사 상황이 실시간 중계되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검찰은 수사 개시, 압수수색, 소환조사 등 단계별로 제한된 정보를 브리핑이나 소환장면 공개 등의 방법으로 어느 정도 허용해 왔다.

하지만 민주당은 9월 18일 조 장관이 참석하는 당정 협의를 통해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현행 공보준칙을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으로 바꾸기로 했다.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할 경우 대검찰청이 감찰을 받는 등 처벌규정을 강화했다. 공보준칙을 완전 폐기하는 것이다.

법무부가 마련한 초안은 수사 시작부터 재판에 넘겨진 이후까지 사건 내용에 대해 일체 공개할 수 없도록 했다. 기자와 검사, 수사관의 접촉도 금지했다. 규정이 시행되면 검찰이 수사하는 거의 모든 사건에 대해 내용을 알 수 있는 곳은 검찰 수사 담당 부서와 대검찰청, 법무부, 청와대뿐이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권력형 비리를 감시할 창구도 모두 차단되는 셈이다. 더구나 이전에 공보 준칙을 만들 당시 7개월간 여론 수렴 절차를 거친 것과 달리 이번에는 별도의 여론 수렴 과정도 계획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조 장관 일가를 위한 방패’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야당과 언론계의 반발은 물론이고 법조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종우 서울변호사협회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조 장관 일가의) 검찰 수사에 대한 여당 반응을 보면 만약 지금 공수처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우려가 된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협도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공식 입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주당 안에서도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걱정이 새어 나오고 있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건 누가 봐도 조 장관을 위한 방편이란 게 빤히 보인다. 가뜩이나 민심 이탈이 눈에 보일 정도인 상황인데 이대로 가다간 사법개혁이나 검찰개혁의 순수성마저 오염될 여지가 크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이런 논란에도 조 장관은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인다. 조 장관은 9월 16일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제 가족 관련) 수사를 일선에서 담당하는 검사들의 경우 헌법 정신과 법령을 어기지 않는 한 인사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방점은 ‘법령을 어기지 않는 한’에 찍혀 있다. 그는 “시행령·규칙·훈령은 물론 실무 관행이라고 간과했던 것도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흔들림 없다. 조 장관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 수사와 기소를 포함한 법무 행정 일반이 헌법 정신에 맞게 충실히 운영되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감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삐 죄어 통제 강화… 개혁인가, 보복인가


▎조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연구실 명패. 정 교수는 사문서 위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여당과 정부가 조 장관의 방패가 되어 주는 동안 조 장관이 윤 총장에게 맞서는 전략은 올가미다. 윤 총장을 고립시켜 검찰을 법무부가 직접 통제한다는 밑그림이다. 조 장관 스스로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을 이용해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내비친 적이 있다. 당장 공석인 대검 감찰본부장(검사장급)과 대검 사무국장 인사에서 윤 총장의 의견이 배제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감찰본부장은 검사의 비위를 감시하고, 대검 사무국장은 특수활동비 등 검찰의 살림을 꾸려 가는 핵심 보직이다.

또 조 장관 취임 직후 김오수 법무부 차관과 이성윤 검찰국장이 각각 대검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윤 총장을 제외한 수사팀을 꾸리자’고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이와 함께 검찰 내부에선 비주류에 힘을 실어 검찰을 장악한 특수통의 힘을 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 장관이 취임 직후 고 김홍영 검사의 묘소를 참배한 뒤 “검사 조직문화를 바꿔 비극을 막겠다”고 다짐한 것이 향후 이어질 행보의 첫걸음이란 것이다. 조 장관은 감찰제도 전반에 관한 개선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고 지시하면서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 등 검찰 내부의 자정과 개혁을 요구하는 검사들로부터 의견을 들으라고도 했다.

인사권과 감찰권 행사 강화 방침에 이어 조 장관이 꺼낼 수 있는 마지막 히든카드는 ‘수사지휘권’이다. 조 장관이 수사지휘권까지 행사하면 참여정부에서 벌어졌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이 재현될 수도 있다. 참여정부 때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이 인사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송 총장의 측근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이후 송 총장은 대검 중수부 폐지와 공수처 설치 등 검찰 개혁에 반기를 들었다. 마침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졌고, 안희정, 이광재 등 정권 실세들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송 총장의 뒤를 이은 김종빈 총장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처리를 두고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다가 사퇴했다. 천 장관이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자 이에 불복한 것이다. 두 명의 검찰총장이 잇따라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검찰개혁 동력이 크게 약화됐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천정배 장관은 이후 개혁 의지가 부족한 인물을 참여정부의 첫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것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두 사람 사이에 극적인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소멸된 상황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들은 “더는 조 장관이 물러나고 싶어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한 민주당 인사는 현재 상황을 “조 장관이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은 이렇다.

여론의 격랑 속에 준비된 자가 살아남는다


▎서울중앙지검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 법무부는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고 포토라인을 없애는 내용의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신설을 추진해 논란을 빚었다.
“학자로서 조 장관은 자기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처신을 결정할 수 있었지만, 민정수석으로 운명 공동체에 합류한 이상 개인이 아닌 조직의 논리에 따라 처신할 수밖에 없다. 그가 무너지면 민주진영 전체로 파도가 덮친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게 지금 상황을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당장은 지지자들을 결집해 여론전에서 우세할 순 있지만, 무당층과 중도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것은 정부와 여권의 고민이다. 지난 9월 11일 문 대통령이 발표한 추석 인사에 대해 민심의 반응은 차가웠다. 문 대통령은 “활력 있는 경제가 서로를 넉넉하게 하고, 공정한 사회가 서로에게 믿음을 주며, 평화로운 한반도가 서로의 손을 잡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란 비판과 냉소가 쏟아졌다.

검찰이 쥔 패에 따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현재로선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지나치게 검찰을 죌 경우 자칫 집단 항명사태를 부를 위험도 있다. 특수통을 해체하면 아직 끝내지 못한 적폐 청산의 동력 약화도 불가피하다. 역대 정권에서 반복된 것처럼 결국 개혁보다 안정적 관리로 방향이 틀어질 수도 있다.


▎조국 장관이 9월 14일 부산 기장군 부산추모공원에 안장된 고 김홍영 전 검사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조 장관은 검사 조직문화 개혁을 예고했다. / 사진:조국 장관이 9월 14일 부산 기장군 부산추모공원에 안장된 고 김홍영 전 검사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조 장관은 검사 조직문화 개혁을 예고했다.
윤 총장은 박근혜 정부 때 댓글수사 때문에 시련을 당한 경험이 있다. 그를 잘 아는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배신당했던 경험은 뼈아프지만, 타협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며 “원칙대로 밀고 나가는 게 윤 총장의 스타일이자, 그를 살릴 생명줄”이라고 했다. 윤 총장 스스로도 “나는 검찰주의자가 아닌 헌법주의자”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초동에 개인 사무실을 낸 검사장 출신의 중견 변호사는 현 사태에 대해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왜 검찰개혁이 필요한가. 그리고 왜 꼭 조국이어야만 하는가. 누구를 위한 검찰개혁인가. 근본적인 질문에 답이 들어 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잘못하다간 박근혜 정부 때 채동욱 총장 찍어 냈던 험한 꼴이 되풀이될 수 있다. 그 결말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나.”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1910호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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