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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총력분석] 레임덕 갈림길에 선 文 대통령 지지율 대해부 

“참여정부 트라우마가 지지층만 바라보게 해” 

30·40세대와 호남이 받치는 40% 지지율, 조국 임명 강행으로 확장성 상실
내년 총선 이후 레임덕 위기 클수록 유시민 등판론 탄력받는 구도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9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과 나란히 섰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국정 지지도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개인적 호감도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대통령 지지율을 이렇게 직시했다. 윤 전 장관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그룹은 큰 틀에서 셋으로 나뉜다.

첫째, 문 대통령 개인에 대해 호감을 품은 사람들이다. 정치인 문재인의 브랜드와 히스토리에 매료된 이들이다. 외모, 품성, 삶의 궤적, 정책과 비전 등 뭐라도 하나가 마음에 든 것이다. 문 대통령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이들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둘째, 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국민 앞에 약속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대해 기대를 품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감성보다 이성으로, 애정보다 필요에 의해 대통령을 지지한다. 대통령의 정책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틀렸다고 판단하면 태도를 선회할 수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먹고사는 문제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셋째, ‘마땅히 대안이 없어서’ 지지층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저 사람들(보수 정당)보다는 낫다’는 정서다. 여기 속하는 이들은 대통령에 실망하면, 아예 투표장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정치평론가나 여론조사 기관은 “20대가 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듯 대통령을 좋아한다(혹은 지지한다)는 것은 복잡한 이유의 총합이다. 어쨌든 지지율은 숫자로 찍힌다. 그리고 국정운영의 동력이 된다. 지지율 하락은 곧 레임덕의 징후로 읽힌다.

한국갤럽은 1988년부터 매년 분기별로 역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관한 긍정·부정 평가를 해 왔다. 어느 대통령이나 전고후저(前高後低) 지지율 패턴을 그렸다. 부정이 긍정을 넘어서는 소위 ‘데드크로스’를 김영삼·김대중·박근혜 대통령이 3년 차 때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3년 차의 3분기부터 부정(61%)과 긍정(28%)의 갭이 극도로 벌어졌다.

이제 2년 차인 문 대통령의 권력은 언뜻 견고해 보인다. 그러나 9월 12일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긍정 44.8%, 부정 53.3%, 같은 날 SBS가 칸타 코리아에 의뢰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긍정 45.1%, 부정 51.6%를 기록했다. 부정이 긍정을 앞서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 “‘지지율 40%’는 대통령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해석한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터진 조국 사태는 대통령 지지층을 강하게 결집시켰다. 민주당이 청와대를 거스르지 않고, ‘원 보이스’를 낸 근원적 힘이었다. 반면 부정 평가 50% 돌파는 권력의 미래에 불안을 드리운다. ‘레임덕은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방아쇠가 무엇이며, 언제 당겨지느냐가 관건’임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을 얻고 중도층을 잃다


▎20대 청년들이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유세장에 몰려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취임 직후 긍정 평가는 81%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지막 4년 차 4분기 부정 평가가 80%였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문 대통령을 향한 기대로 반영된 것이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도 71%의 지지로 출발했다. IMF 외환위기를 막지 못한 전임 김영삼 대통령에 관한 실망(부정 74%)이 상당 부분 투영된 셈이었다.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부터 지지율이 빠지는’ 징크스도 무난하게 돌파했다. 2년 차 1분기까지 지지율은 75%에 달했다. 2분기(긍정 60%)와 3분기(긍정 55%)까지 초강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4분기부터 46%:44%로 지지와 반대가 팽팽해지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치는 3년 차 1분기(45%:45%)까지 지속됐다.

이런 흐름에서 조국 사태가 발생했다.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8월 넷째 주부터 9월 첫 주까지 3주 연속 대통령 직무수행에 관한 부정 평가는 49%로 나타났다. 근소하게 부정이 긍정을 넘긴 시점에 추석 연휴가 왔다. 추석 이후 민심의 행로에 관해 예상은 엇갈린다. 여론조사 업계 관계자는 “이제부터 총선까지 여론조사 실력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더 빠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쪽이다. “지난 대선 때문 대통령이 41.1%,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6.2%를 얻었다. 47.3%가 범(汎)진보였다. 그 밑으로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중도 성향 진보에서 이탈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20대 여성과 50대가 해당한다. 이제까지 20대 여성은 30·40대 화이트칼라, 호남과 더불어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이었다. 정부·여당에 비판적이었던 20대 남성과 달랐다. 김 교수는 “조국 장관의 딸 (입시) 문제니까 20대 여성도 (비판에) 관여할 것”이라고 봤다.

그동안 문 정부 지지율은 20~50대가 결합해 60대 이상을 포위하는 구도로 짜였다. ‘86세대’인 50대는 이 정부에 동질감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조국 사태로 50대 중도 성향 진보들은 정부와 자신을 분리하는 감정을 갖기 시작했다. “이제 20대와 50대 이상 세대가 문 정부를 철옹성처럼 지지하는 30·40세대를 역으로 고립시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김 교수는 바라봤다. 그 근거로 8월 26일 발표된 [중앙일보] 여론조사를 들었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에 관한 찬반을 묻는 조사였다. 반대(60.2%)가 찬성(27.2%)을 압도했다. 특히 여성(58.9%), 20대(68.6%), 50대(64.8%)의 거부반응이 뚜렷했다.

익명을 요청한 여권 관계자는 “(임명된 순간) 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며 “(정부·여당) 안에서는 ‘이 국면에서 물러서면 오히려 총선을 못 치른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기류를 전했다. 이 인사는 “집토끼(지지층)만 챙기다 중간 경계선을 이탈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총선 끝나면 레임덕 온다


▎서초동 대검찰청 정문에 검찰을 응원하는 꽃다발이 쌓여 있다.
“검찰 수사로 조국 장관이 낙마하지 않는 한, 40% 지지율은 굳건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이 정부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기술이 뛰어나고, 대안세력이 뚜렷하지 않다”고 봤다. 그는 “중도층은 자유한국당에 마음을 못 주는 데다 아직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그늘에 있다”고 덧붙였다.

윤여준 전 장관도 “(조국 사태) 이슈 자체에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장관 임명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가?”라고 반문했다. 문 대통령의 스타일을 고려할 때 놀라울 것도 없다는 뉘앙스다. 다만 그는 “지금 즉각적으로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것은 분노가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의 밑바닥에 쌓아 두는 단계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현 시국을 “내전적 상황의 초입”이라고 압축했다. “이 정부는 언론과 포털을 통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진영 싸움으로 가져가면 승산이 있다고 계산한 끝에 (조국 장관 임명을) 결행한 것이다. 한국당이 메신저로서 흠결이 있기에 대정부투쟁의 구심점 역할을 못한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이들에게 문제는 한국당이 아니라 검찰이다. 검찰의 (조 장관을 향한) 공격이 들어오면 검찰을 향해 총공세를 펼칠 것이다. 인사권을 동원해 검찰을 압박할 수 있다. 이때 국민이 검찰 편을 들면, 결집도 높은 전통적 지지층이 나서서 검찰을 때릴 것이다. 여기서 검찰과 전면전을 하는 순간 지지율이 어떻게 될지 봐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유지되는 한 조기(早期) 레임덕 가능성은 희박하다. 레임덕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될 때 잉태한다. 권력 내부의 균열과 경제 불안이 그것이다. 이런 토대 위에 중간 선거 패배와 부패 스캔들이 겹치면 레임덕은 표면화된다.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간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여당 의원들이 각자도생하는 순간 권력은 광채를 잃는다.

문 대통령을 둘러싼 상황은 과거 레임덕 사례와 비교할 때 복합적이다. 경제 심리는 불안하지만 권력 내부는 결속해 있다. 검찰은 권력의 실세를 겨누고 있지만 중간 선거(2018년 지방선거)에서 이겼다. 그 결과, 내년 4월 총선 길목에서 조국 사태란 대형 악재가 터졌음에도 여권 내 권력투쟁은 없었다. 문 대통령의 잠재적 견제자로 거론된 안희정 전 충남 지사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고, 이재명 경기지사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나마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소수의견’을 피력했을 때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아주 세게 당을 내부단속했다. 더 이상의 이견은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해도, 당의 언로를 통제해도 레임덕은 거스를 수 없는 섭리에 가깝다. 대통령학연구소 부소장인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레임덕은 올 수밖에 없는데, 이런 식으로 권력 누수를 억세게 막으려다간(나중에) 절뚝거리는 차원이 아니라 심하게 부러질 수 있다”고 봤다.

여야를 막론하고 문 정부 레임덕이 본격화될 시점으로 총선 이후를 지목했다.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거나 신승을 거두는 수준으론 못 막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권은 “총선에서 압승하면 늦춰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반면 야권은 “이겨도 화장실(총선 당선) 갔다 나온 여당 의원들은 다음 대권 주자에게 줄을 설 것”이라고 권력의 냉엄한 생리를 부각했다.

참여정부는 문 대통령의 ‘반면교사’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한·미 FTA 타결의 주역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현 국가안보실 2차장)과 대화하고 있다. 그 뒤로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도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2019년 8월 한국갤럽의 유권자 이념성향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24%가 보수, 28%가 중도, 29%가 진보라고 응답했다. 2016년 10월까지 보수라고 밝힌 국민이 더 많았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계기로 대세가 바뀐 것이다. 2017년 5월엔 진보(37%)가 보수(23%)보다 14%나 많아지기도 했었다. 그러다 다시 진보와 보수가 힘의 균형을 맞춰가는 추세다.

이런 국면에서 문 대통령은 조국 장관 임명으로 ‘중도 확장’이라는 정치의 정석을 역행하는 선택을 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지층만 보고 가는 정치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평했다. 문 대통령이 외길을 가는 근원적 배경을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성”에서 찾았다. “(참여정부 때) 지지층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트라우마로) 가장 컸다. 국민 전체를 바라보기보다 ‘지지층이 등 돌릴 일은 안 하겠다’가 우선인 것 같다. 대통령으로서 불행한 일을 자초하고 있다.”

이갑윤 서강대 명예교수와 이지호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대우교수는 2015년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책을 펴냈다. 대통령 노무현의 실패와 지지율 저하는 원인이자 결과였다.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노 대통령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은 협소해졌고, 그럴수록 우군은 이탈하고 지지율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갇혔다. 책은 ‘레임덕(lame duck)이 아니라 데드덕(dead duck), 인기 없는 대통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통령’이라고 적시했다.

노 대통령도 80%의 지지로 출발했다. 그러나 대북송금 특검 수용, 이라크 파병 결정으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이었던 호남과 젊은 유권자 상당수가 돌아섰다. 지지율은 반 토막 이하로 급락했고, ‘못 한다’가 ‘잘한다’보다 많아졌다. 급기야 신주류와 구주류가 갈등하던 민주당은 2003년 8월 이후 분당수순을 밟았다. 이 와중에 화물연대 파업과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사태로 중도와 보수로부터 국정운영 능력을 의심받았다. 부정 평가는 긍정보다 25% 이상 올라갔다. 지지율 하락은 노 대통령 탄핵소추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나 탄핵 역풍에 힘입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기사회생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것이다. 탄핵소추가 기각돼 돌아온 노 대통령의 시간이 왔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민생경제 대신 개혁으로 방향타를 잡았다.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청산,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개혁이라는 소위 4대 개혁을 실행하려다 극심한 이념적 대치상황에 직면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실과 국익에 입각해 우파적 시장경제 정책을 불가피하게 용인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양극화 해소와 대기업 규제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반발했다. 그렇다고 보수우파에서 노 대통령에게 딱히 고마워한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은 고립됐고, 재보궐선거에서 연전연패했다. 지지율은 다시 내려갔다.

지지층 결집할수록 반대도 격렬해진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9월 16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는 삭발을 하고 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참패는 노 대통령에게 치명타로 다가왔다.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는 긍정보다 57% 이상 높아졌다. 여소야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대연정은 야당에 의해 묵살됐다. 이 와중에 부동산은 폭등했다. 10번 이상 종합부동산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2006년 12월 조사에서 노 대통령 지지율은 부정이 긍정보다 무려 72.6%가 많게 나왔다.

그래도 노 대통령은 끝까지 지지층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노선을 지켰다. 지지층의 반대 속에서도 결단한 한·미 FTA 협정은 야당의 찬성을 얻었음에도 국회통과를 못 했다. 결국 다음 정부로 비준을 넘겨야 했다. 남북정상회담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임기 말인 2007년 10월 이후 노 대통령 지지율은 오히려 30%대로 올라갔다. 그러나 주도권을 상실한 뒤였다. 야당인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선거 사상 최다 표 차이로 승리했다. 진보정부 10년은 마감됐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연쇄 탈당으로 힘 빠진 대통령을 떠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이자 청와대 수석으로서 당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정권을 넘겨준 노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온 뒤 어떤 비극을 겪었는지도 목도했다.

대통령이 된 뒤 정치인 문재인은 결정적 순간마다 호남, 30·40대 화이트칼라, 젊은 여성층의 지지를 놓지 않으려는 방향성을 보여 줬다. 이 지지 세력만 결집하면 ‘노무현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는 셈법이다. 신념에 충실한 문 대통령의 비(非)정치성은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정치적인 결과를 얻고 있다.

대통령 지지층은 한·일 분쟁과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에 관해 정부의 강경책에 찬성을 표시했다. 2019년 8월 마지막 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한·일 관계에 관해 ‘잘하고 있다(55%)’는 ‘잘못하고 있다(34%)’를 앞섰다. 이런 숫자가 나올 수 있었던 원인은 호남(78%), 30대(66%), 40대(69%), 화이트칼라(70%)의 전폭적 지지였다.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서도 호남(65%), 30대(64%), 40대(68%), 화이트칼라(69%)가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 덕분에 ‘잘한 일’이라는 응답이 53%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여론 동향은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하는 결정 배경으로 작용했다. ‘외교를 여론조사로 하느냐’는 외교가의 우려는 다음 문제였다.

이 정도로 정부가 지지층 여론을 중시한다면, 그 여론을 생성하는 이들의 생각이 얼마나 정밀한지가 중요해진다. 한국갤럽은 이를 유추할 수 있는 한 가지 조사를 했다. 9월 3~5일 대통령 직무 수행에 관한 긍정과 부정 평가자를 대상으로 구체적 이유를 물은 것이다. 부정 평가자 488명 중 다수는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22%), 인사 문제(21%) 등 비교적 명확하게 이유를 꼽았다. 반면 긍정 평가자 432명 중 다수는 외교 잘함(25%), 최선을 다함/열심히 한다(8%), 전반적으로 잘한다(8%)고 답변했다. 윤여준 전 장관의 분석처럼 “(정책의 지향성이나 성과 여부가 아니라) 호감도로 지지자들이 결속돼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꼭 문 대통령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지금 유력 정치인의 지지도는 아이돌 연예인의 팬덤 현상을 연상시킨다.

문제는 정치 영역에서 지지가 무조건적일수록 반작용도 그만큼 격렬해진다는 것이다. 한국갤럽 9월 첫 주 여론조사를 보면, ‘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에 관한 지역별 조사에서 유일하게 호남(69%)이 50%를 넘었다. 그런데 ‘잘못하고 있다’가 가장 높은 대구·경북의 비율은 71%였다. TK의 반문 정서가 오히려 더 강하게 응집하는 추세인 것이다. 게다가 부산·울산·경남(57%)과 서울(49%)에서도 ‘잘못하고 있다’가 상승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진영 논리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찬반이 팽팽할수록 갈등은 증폭으로 치닫는다. 이런 구도에서 대통령이 확장성을 꾀하긴 어렵다. 김형준 교수는 “지지율을 유지하는 조건은 퍼포먼스인데(이 정부는) 없다”며 “진보와 보수를 분열하는 (진보 진영의) 프레임은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엔진이 고장 났다”고 혹평했다.

유시민, 문 정부의 ‘위기체감 지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이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한 행사장에서 만났다. / 사진: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9월 16일 삭발식을 결행했다. 명분은 ‘조국 파면 촉구’였다. 한국당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제1야당 대표의 전례 없는 삭발은 절박함의 표출로 받아들여진다. “(조국 사태 이후에도) 여론조사 지지도가 너무 낮게 나와 당이 충격을 받았다. 오히려 6월보다도 빠졌다. 한국당 혼자서는 어렵다는 뜻이다. 민심이 조국을 반대하는데도 한국당으로 오지 않는 원인이 뭐냐? 황교안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야당이 해법을 못 찾고 지리멸렬하니) 민주당은 한국당보다 검찰을 신경 쓰고 있다. (한국당이 반발하니까) ‘분풀이’라고 정리하더라. 정확한 말이라서 뼈아프다.”

황 대표 체제에 결정적 흠결이 없음에도 지지율이 안 오르니 더 답답하다는 소리다. ‘내일 당장 총선이라면 어디를 찍겠는가’라는 한국갤럽의 추석 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38%)과 정의당(12%)이 한국당(26%)과 바른미래당(6%)을 압도했다. 조국 사태로 촉발된 민주당을 향한 실망감보다 한국당 하면 조건반사처럼 떠오르는 비호감도가 더 강렬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한국당 다른 당직자는 “할 거면 빨리하지, 삭발마저 타이밍을 놓쳤다”며 “추석 이후 (조국 장관에 분노하는) 동력의 불씨가 꺼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반면 여권의 한 인사는 “(조국 사태는) 저쪽(한국당)이 바른미래당 유승민계와 묶이는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며 “(범여권은 조국 임명을 용인한) 정의당도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경계했다. 다만 그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정계 복귀에 대해선 “이 정부가 급속도로 레임덕에 빠지지 않는 한 안 나온다”고 봤다. 적어도 총선 전은 때가 아니란 뜻이다.

유 이사장은 조국 사태에 관한 여론이 비등했을 때 발언대로 나왔다. 정치권에선 “상처를 각오하고, 예상보다 일찍 등판했다”고 봤다. 그만큼 여권이 상황을 엄중하게 여겼다는 시각이다. 유 이사장은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말을 쏟아 냈고, 그 대가로 비판도 많이 들었다. 위기상황이 닥치면 불을 끄러 등장하는 소방수. 역설적이게도 문 대통령의 레임덕을 측정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유 이사장의 행보일 수 있다.

[박스기사] 여론조사,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2017년 대통령선거 운동 당시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바 있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9월 10일 “(주기적으로 대통령 지지도를 측정하는 여론조사 기관인) R사와 G사의 여론조사 결과는 유의미한 ‘편향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표본이 모집단(유권자)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최근 조국 후보자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체감 여론에 비해 여론조사 결과가 지나치게 긍정적이었던 사례나 과거 실제 투표 결과에서 뒤집힌 사례 등에서 보듯이 여론조사만으로 전체의 여론을 살펴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만약 의구심처럼 문 대통령의 실제 지지율이 여론조사보다 훨씬 낮다면, 의도했든 아니든 민심을 왜곡한 것이 된다. 실제로 여론조사에 대해 ‘문재인 지지자가 더 많이 참여한다’, ‘주변 의견과 여론조사 결과가 다르다’는 등의 불신을 듣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와 관련해 회자되는 사례가 R사의 2019년 5월 7~8일 조사였다. 당시 정당 지지도에서 민주당 36.4%, 자유한국당 34.8%가 나온 것이다. 지지율 20%의 박스권에 갇혀 있던 한국당이 일약 민주당과 대등한 지지율로 올라서게 됐다.

세부 자료를 살펴보면, 호남지역 조사에서 뜻밖의 결과가 포착된다. 광주·전라에서 한국당이 22.7%의 지지를 얻은 것이다. 당시 한국당이 ‘5·18 망언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음을 고려할 때 더 의외다. “이상한 조사 결과”라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저격이 나왔다. 그 1주일 후 민주당 43.3%, 한국당 30.2%로 격차가 벌어지자 이번엔 한국당이 좌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여론조사 업계 관계자는 “회사마다 여론조사 기법이 달라서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순 있어도 의도적 조작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가령 ‘표본을 조작해 의도적으로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의심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사실 여론조사는 곧잘 틀렸다. 대표적 사례가 2010년 서울시장 선거였다. 당시 오세훈 후보의 대승을 예측했지만, 실제 결과는 신승이었다. 여론조사에서 격차가 너무 벌어진 탓에 한명숙 후보 지지자들 중 기권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분석을 낳았다. 이때의 예측 실패 원인은 집 전화로 여론을 추출했기 때문이었다. 무선전화를 경시한 결과, 보수정당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과잉 대표된 것이다.

지난 5월 초 일시적으로 ‘돌출된’ R사 조사에 관해서도 업계에서는 “ARS(자동응답방식, 유·무선전화 비율 90%) 방식의 특수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중평이다. “ARS의 속성상, 표본이 일정하게 분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개연성을 담은 해석이다.

김종석 의원의 발언은 한국당 내에서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예전 홍준표 대표 시절에도 ‘여론조사 못 믿는다’고 했었다. 그러다가 선거에서 졌다”고 여론조사 조작설을 경계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1910호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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