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ZOOM UP] ‘GS 트로피 한국대표 선발전’을 가다 

동강에서 피어오른 ‘흙보라’ 

전국 각지 모터사이클 ‘숨은 고수들’ 강원도 영월에 집결
속력 아닌 험지 돌파능력 겨뤄… 1~3위는 세계 본선 진출

강원도 영월을 가로지르는 동강. 늦여름 호젓함이 감돌 법한 이곳에 묵직한 배기음이 울려 퍼졌다. 1200㏄ 엔진을 단 모터사이클 무리가 내뿜는 소리다. 13명의 선수가 지난 8월 31일부터 이틀간 ‘GS 트로피 한국대표 선발전’을 치렀다. ‘GS 트로피’는 모터사이클 선수들이 BMW의 ‘R1200GS’ 기종을 타고 험지 주행 실력을 겨루는 대회다. ‘GS’는 산과 들을 뜻하는 ‘겔렌데(Gelande)’와 길을 뜻하는 ‘스트라세(Strasse)’라는 독일어 약자다. 이번 선발전 입상자들은 2020년 2월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본선에 참가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본선 참가가 인생 목표”라는 선수들의 집념이 동강 둔치를 달궜다.


▎윤연수 선수가 점프 코스를 뛰어넘고 있다. 올해 23세인 윤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선발전 우승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GS트로피는 전 세계 모터사이클 마니아들에게 꿈의 무대다. 2008년 북아프리카 튀니지를 시작으로 2년마다 전 세계를 돌며 국가 대항전 형식으로 열린다. 대회 참가자들은 BMW의 전천후 모터사이클인 R1200GS를 타고 7박8일에 걸쳐 하루 200㎞ 이상 험지를 달리며 실력을 겨룬다. 지난해 열린 몽골 본선에선 남아프리카공화국 팀이 우승했다.

이번 영월 선발전에서는 한국 대표로 파견될 3명의 선수를 선발했다. 참가자들은 무거운 오프로드 부츠를 신은 채 1.6㎞를 달리는 기초 체력 테스트를 시작으로 각종 기술 검증을 통해 우열을 겨뤘다.

GS 트로피는 속도로 경쟁하는 일반 경주대회완 결이 다르다. 참가자들은 구역 별로 심판관인 ‘마셜(marshal)’이 제시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초저속으로 이동하면서 방향전환을 하거나 최소한의 도구로 타이어를 잽싸게 교체하는 등의 미션을 소화해야 한다. 특히 90도로 꺾인 오르막길을 오르는 ‘굴절 업힐 코스’는 멈추면 통과하기 어려워 선수들 사이에서도 난코스로 꼽혔다.

이번 선발전은 적지 않은 이변을 낳았다. 20대부터 40대까지 참가한 이날 역대 최연소 우승자가 탄생해 대회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23세 윤연수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중학생 때부터 오프로드 주행을 시작한 베테랑이다. 오프로드만을 달리는 모터사이클은 도로교통법 적용을 받지 않아 면허가 필요 없다. 윤 선수는 현재 모터사이클 전문지에서 기자로 활동할 만큼 이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깊다.

2위를 차지한 권혁용(46) 선수는 이번 대회 최고령 참가자다. 권 선수는 2년 전 몽골 선발전에서 우승했지만, 본선을 3주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출전의 꿈을 접어야 했다. 권 선수의 왼쪽 어깨엔 지금도 철심 한 다발이 촘촘히 박혀 있다. 마지막으로 뉴질랜드 행 티켓을 따낸 김현욱(31) 선수는 삼수 끝에 꿈을 이뤘다. “모든 인터넷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꼭 간다 트로피’로 설정했었다”고 말하는 열성파다.

영월 선발전에서 1~3위를 차지한 세 선수는 내년 2월 뉴질랜드 행 비행기에 오른다. 개인별 경쟁이었던 선발전과는 달리 한 팀을 이뤄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다.


▎오르막 코스는 자갈과 부드러운 흙으로 채워진 탓에 한번 멈추면 탈출하기 어렵다. 선수들 사이에선 ‘개미 지옥’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코스를 돌파하지 못한 엄재범 선수가 라인을 이탈하고 있다.



▎GS 트로피는 속도 보다 저속 컨트롤 능력을 강조한다. 구경진 선수가 외나무다리 코스 위에서 떨어지고 있다.



▎김현욱 선수가 부채꼴 통나무 코너에서 코스를 벗어나고 있다.



▎허일호 선수가 뒷바퀴를 미끄러뜨리며 코스를 통과하고 있다.



▎권혁용 선수는 경기 내내 “할 수 있다”, “뉴질랜드 가자”고 되뇌며 집중력을 가다듬었다.



▎공냉식 엔진이 달린 2012년식 GS를 타고 경기를 마친 정대근 선수가 동료들로부터 물세례를 맞고 있다.



▎‘풀락(full lock) 코스’는 핸들을 한 방향으로 최대한 돌리고 무게 중심을 반대로 둬야한다.



▎‘2020 뉴질랜드 GS 트로피 본선’에 진출한 권혁용·윤연수·김현욱 선수(왼쪽부터).
- 사진·글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1910호 (2019.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