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이름처럼 농작물 초토화시키는 멸강(강토를 멸망시키다)나방 

 

잡초까지 먹어치우는 습성으로 농가 골머리
액즙 빨아 벼 말라 죽이는 멸구도 악명 높아


▎중국에서 편서풍 타고 날아오는 멸강나방 성충. / 사진:한영식 곤충생태교육연구소(한숲) 대표
밭농사를 오랫동안 지으면서 올해처럼 이렇게 지독한 녀석들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멸강나방이란 벌레로 보통은 밀·보리·옥수수·콩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지만 논벼는 그보다 덜하다고 한다. 그런데 옥수수 따위의 밭곡식들에다 얼갈이배추·당근·케일·들깨·근대 따위의 채소는 두말할 것 없고, 괭이밥 같은 잡초까지도 깡그리 뜯어 먹는 판이다.

언뜻 보아 ‘몰살’, ‘황폐화’란 말이 번듯번듯 떠오를 정도이고, 정말로 무지막지(無知莫知)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마구 먹어치운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농약(살충제)을 확 뿌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로 비참했다. 나처럼 심심해서, 재미로, 또 장난삼아 땅을 파는 사람 마음이 이럴지 언대 농사를 업으로 삼는 농부의 마음(農心)이야 어떠하겠는가.

전국 각지의 시·군 농업기술센터에서는 서둘러 성페로몬 트랩(sex pheromone trap, 끈끈이 트랩)을 이용해 멸강나방의 마릿수를 조사해 방제작업에 나섰다고 한다. 요즘은 세상이 하도 몰라보게 달라져서 드론으로 살충제를 뿌려 방제를 한다고 한다. 농약을 넣은 작은 보자기를 장대 끝에 매달고 살살 흔들어 뿌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소와 같은 가축의 먹이로 이용되는 작물은 섣불리 살충제를 살포할 수 없어 방제작업에 난항이 따른다고 한다. 그래서 오리를 풀어놓거나 나방(moth)에 알을 낳는 기생벌을 이용하는 등 생물학적 방제법(biological control)을 찾느라 여러 연구를 하며 노력하는 중이라고 한다.

멸강나방(Mythimnaseparata)은 밤나방과에 속하는 나방 곤충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남부·동남아·인도·호주·뉴질랜드 등 더운 곳에 서식한다. 멸강나방은 추운 우리나라에서는 겨울 월동이 불가능하고, 이동성이 있는 종(migrant species)이라서 계절풍을 타고 1500㎞나 날아든다. 그래서 해마다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경까지 편서풍을 타고 중국에서 나방(성충)으로 날아와 알을 깐 뒤 유충들이 짧은 기간에 큰 피해를 주는 돌발외래해충(突發外來害蟲)이다.

멸강나방은 알을 낳아 애벌레가 된 다음 6월 중순경에 볏과 식물이나 다른 잡초를 갉아먹는다. 멸강나방의 한살이(일생/1세대)는 다른 곤충에 비해 상당히 짧은 편이다. 알을 낳은 뒤 4~5일이면 부화해 유충(caterpillar)이 되고, 15일 후면 번데기(pupa)가 되며, 그 뒤 15일이면 날개돋이(우화, 羽化)하고 성충이 된다.

중국서 황사 타고 벼멸구 날아와


▎농촌을 황폐화시키는 멸강나방 유충. / 사진:한영식 곤충생태교육연구소(한숲) 대표
멸강나방은 강한 번식력으로 ‘강토(疆土)를 멸망(滅亡)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멸강나방 애벌레가 대량 발생하는 날에는 작물의 잎줄기를 마구잡이로 먹어 초토화시킨다. 오죽하면 서양에서 멸강나방 유충을 ‘army worm(야전군 벌레)’이라 불렀겠는가. 유충이 집단으로 발생해 떼거리로 초원 풀밭을 따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면서 꾸준히 앞으로 나가고, 그렇게 작은 강을 건너기도 한다.

물론 풀을 갉아먹는 놈들은 멸강나방 유충들이다. 그런데 박과(科)의 한해살이풀인 여주 잎만은 먹지 않는다. 유충의 행동을 억제하는 모모르디신(momordicine)라는 물질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물질은 당뇨와 고혈압, 대사 장애 등에 유용한 성분이다.

멸강나방 성충은 주로 꽃의 꿀물(nectar)이나 여러 식물에 기생하는 진딧물의 분비물을 빨아먹는다. 몸길이는 20㎜ 정도로 암수가 크게 다르지 않고, 머리와 등은 회갈색 또는 황갈색이다. 앞날개는 회색을 띤 황갈색이고, 뒷날개는 어두운 갈색이며, 날개 편 길이(wing span)는 38~48㎜이다.

암컷은 한배에 300~1600개의 알을 풀잎 아래(뒷면)에 산란하고, 알은 구형으로 0.5~0.6㎜로 하얗다. 유생은 여러 번 허물을 벗으면서 자라 6령(齡)이면 40㎜ 남짓 크고, 전 연령대에 잎을 먹지만 4~6령에 제일 큰 피해를 준다. ‘齡’이란 누에 따위의 곤충 나이를 세는 단위로, 1령은 잠과 잠 사이로 누에는 5령(다섯 번째 잠) 끝에 가서 고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사실 중국에서 바람 타고 오는 것에는 황사나 미세먼지만 있는 게 아니다. 멸강나방 말고도 멸굿과의 곤충인 벼멸구(Nilaparvatalugens)가 있다. 중국 남부나 동남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중국 남부에서 6~7월 남서풍을 타고 옮겨오는 벼멸구는 우리나라 남·서해안에 나타난다. 경남 산청(山淸)이 내 고향이라, 어릴 때 멸구가 나타났다 하면 농약 뿌리기에 폐(허파)가 남아나지 못했다. 시기가 빠른 해에는 6월 하순부터 발생해 3세대(1세대는 알에서 성충이 되는 기간)를 지나면서 피해를 준다.

벼멸구를 갈색 멸구(brown plant hopper)라고도 하는데, 흰등멸구나 노랑 다리 멸구와 함께 벼에 큰 해를 끼친다. 벼멸구는 날개가 긴 장시형(長翅型)과 짧은 단시형(短翅型)이 있고, 온몸이 연한 갈색이며, 약간 광택이 난다. 중국에서 바람에 묻어오는 멸구는 날개 긴 장시형일 것이다. 그래야 날개를 활짝 편 상태로 바람을 타고 먼 길을 날아올 수 테니까 말이지. 벼멸구는 벼대(벼줄기) 아래에 붙어 벼 액즙(plant juice)을 빨아먹어 벼가 쉽게 쓰러지고, 말라죽는다. 어릴 적에 온 논이 벌겋게 타들어 가는 것을 보고 애태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쌀은 누가 뭐래도 둘도 없는 생명줄인 시절이었으니까….

“가을 멸구는 나락 벼늘도 먹는다”란 멸구가 나락(벼)의 벼늘인 벼 껍질까지 먹을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는 뜻의 속담이다. 그리고 “그 집구석 멸구 들었다”고 하면 한 집안이 폭삭 망했다는 의미로 쓰인다. 멸구가 얼마나 무서운 병해충인지 짐작이 가고 남는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910호 (2019.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