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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일본 9·11 개각이 시사하는 차기 권력 향배 

“아베, 측근인 스가 관방장관에게 밀렸다?” 

오키나와 반환, 일·중 수교 등 역대 총리 치적에 못 미치는 아베 조바심
태풍 피해로 농사 망친 북한에 대규모 식량 지원 모색


▎사진:연합뉴스
오는 11월 20일 아베 신조 총리는 하나의 ‘일본 신기록’을 달성한다. 그것은 1885년 12월 22일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 총리가 등극한 이후, 134년의 일본 헌정사에서 총리 재임 일수로 최장 기록을 갱신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2차세계대전 전인 1901년~1908년 동안 총리를 역임한 가쓰라 다로 총리의 2886일이 최고 기록이다.

지난 8월 24일 아베 총리는 작은 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사토 에이사쿠는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임)의 총리 재임 일수 2798일을 제치고 역대 2위에 올랐다. 이때 주변에서 “결국 작은 할아버지를 뛰어 넘었군요”라고 축하하자, 아베 총리는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9월 15~16일 발표된 아베 내각 지지율은 [아사히신문] 48%, [요미우리신문] 53%, [마이니치신문] 50% 등으로 모두 50% 전후의 안정세를 보였다. 일본에서는 “정권 출범 반년이 지나면 지지율 50%가 무너지고, 1년 지나면 30%를 밑돈다”라는 속설이 있다. 이에 견줘보면 정권 출범 후 7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50% 전후의 지지율은 기적에 가깝다고 하겠다.

아베 정권은 어떻게 장기집권이 가능했을까. 얼마 전 만난 아베 총리의 측근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우선 내정에 관해서는 위기 관리가 신속하고 확실하다. 매일 여러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베 정권은 대응이 빠르다. 그리고 문제를 개선했다는 것을 국민 앞에 확실히 나타낸다. 그 점이 2012년까지 집권했던 ‘악몽 같은’(아베 총리의 단골 표현)민주당 정권과 다른 점이다.

예를 들면, 지진이나 태풍이 일어나면 초동 대응이 굉장히 빠르다. 즉시 회견을 열어 최신 정보나 피해 상황을 발표하고, 적절한 대응을 취한다. 이는 고령화와 저출산이 진행되고 있는 일본 국민에게 안정감을 준다.

또 10월 1일에 소비세율을 8%에서 10%로 높였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소비세율을 올리면 경기가 후퇴한다. 그것을 최소한으로 막고자 경감 세율(주요 식료품 등의 세율을 그대로 두는 제도)을 도입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

외교에 관해서는 동맹국인 미국과의 안정되고 공고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그 특이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사이가 좋은 세계 정상이 누구인가라고 세계 지도자들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많은 지도자가 ‘일본의 신조 아베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일본 외교에서는 무엇보다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며 반석과 같은 미·일 관계는 일본의 안정에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전후 70여 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

차기 총리로 각광 받는 고이즈미 신지로 신임 환경장관


▎일본 개각 이후 차기 총리 후보 물망에 오르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장관,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왼쪽부터).
이하 아베 정권의 최근 내정과 외교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9월 11일 아베 총리는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아베 총리를 제외한 19명의 각료 중 13명이 첫 입각하는 등 신선한 인물이 대거 등용되었다. 이번 개각의 핵심 인사는 처음으로 환경부 장관에 취임한 38세의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이다. 개각 이후 일본 언론은 마치 다른 12명의 신인 장관들은 안중에 없다는 듯 고이즈미 신임 환경장관의 일거수일투족만을 쫓았다.

고이즈미 장관은 아베 총리의 정치 스승에 해당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지금까지 남성 최연소 장관은 중·일 수교를 성사시킨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로, 39세인 1957년에 우정 장관에 올랐다. 그러다가 62년 만에 그 기록을 갈아 치운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게는 세 아들이 있지만 2006년 9월 총리 자리를 아베 총리에게 물려준 뒤 차남인 신지로를 후계자로 삼았다. 신지로는 얼굴에서부터 말투까지 아버지와 꼭 닮았다.

1981년에 도쿄 근교의 미군 주둔지인 항구도시 요코스카에서 태어난 신지로가 출생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준이치로가 이혼했다. 신지로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준이치로의 누나, 즉 고모를 친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자랐다. 요코하마에 있는 무명의 관동학원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신지로는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획득했다. 귀국 후 2006년의 총선거에서 28세의 나이로 첫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간 고이즈미 신지로에게는 언제나 ‘미래의 총리 후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의 인기는 이제 아베 총리를 능가할 정도다. 개각을 실시한 9월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음 총리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에서 이미 그는 아베 총리의 16%를 넘어선 20%로 1위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는 한번 장관을 경험하면 차기 총리 후보가 되기 때문에 어쩌면 신지로는 불혹이 되기 전에 역대 최연소 총리에 취임할지도 모른다.

고이즈미 신지로에 대해서 일본 언론과 국민들이 지난 10년간 가장 궁금해 했던 문제는 “도대체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단정한 마스크와 명문 혈통으로 인해 “일본 여성에게 가장 인기 있는 미혼남성”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었으며, 과연 누가 “일본의 신데렐라”가 될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30대 중반이 되어도 결혼을 하지 않아 한때는 ‘동성애자설’까지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하지만 8월 7일 일본을 경악케하는 결혼 회견이 열렸다. 고이즈미 신지로는 약혼자를 동반하고 일본 정치의 중심인 총리 관저에서 결혼 회견을 열었다. 그런 일을 벌인 정치인은 전대미문이다. 본인은 결혼 인사차 아베 총리를 찾은 뒤라며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한 면에서도 신지로는 완전하게 ‘신세대 정치가’인 것이다.

게다가 그 결혼 상대가 유명 여성 아나운서인 타키가와 크리스텔이다. 41세인 그녀는 현재 임신 중이고 내년 1월에 출산 예정이라는 것까지 밝혔다. 그녀에게는 결혼 상대라고 소문난 다른 남성도 있었으므로 일본 전체가 그야말로 경악의 연속이었다. 두 사람은 이 회견 다음 날 혼인 신고서를 제출했다.

1977년생인 타키가와 크리스텔은 아버지가 프랑스인, 어머니가 일본인인 혼혈이다. 아오야마 학원대학을 졸업하고 후지TV 아나운서가 됐다. 그녀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것은 201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IOC 총회이다. 그녀는 여기서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 유치를 영어와 프랑스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녀의 프레젠테이션 후 이뤄진 투표에서 도쿄가 승리했기 때문에 ‘도쿄 올림픽을 가져온 여신’이라는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패전후 아베의 최연소 총리 기록(52세)을 갈아 치울 기세


▎아베 총리는 맹방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의 돈독한 관계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고이즈미 신지로는 장관 자리를 차지하고 유명한 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4개월 후에는 후계자까지 태어난다. 바로 구름 한 조각 없는 ‘만월의 인생’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럼 고이즈미 신지로는 미래에 총리가 될 수 있을까? 그의 윗세대와 같은 세대에 유력한 총리 후보가 적은 점을 고려하면 그가 총리가 될 확률은 높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연소 총리는 2006년 아베 총리로 당시 52세였다. 신지로는 아마 아베 총리가 가진 최연소 기록을 당당히 경신하게 되지 않을까.

정치가 고이즈미 신지로의 최대 장점은 연설에 강하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 정치인 중에서 신지로만큼 연설이 능란한 정치가를 필자는 알지 못한다. 일본에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자민당의 정치인들은 누구나 신지로에게 응원 연설을 부탁하기 때문에, 신지로는 일본 전역을 뛰어다닌다. 그럴 때 그는 어디를 가도, 그 고장의 방언을 즉석에서 외우고 교묘하게 이야기 속에 끼워 넣는다. 그런 능력은 바로 명연설가로 알려진 아버지로부터의 유전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신지로의 결점은 고생을 모르고, 너무나 순조로운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신지로는 젊고 잘생겼고 언변도 능하다. 하지만 정치란 알다시피 더할 나위 없이 뒷거래의 세계다. 신지로는 그런 ‘탁한 세계’를 잘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나 ‘순진한 존재’인 것이다.

더구나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 환경장관을 자신의 다음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에 환경장관으로 첫 입각시킨 것도 아베 총리의 뜻이 아니라 정부의 2인자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뜻이었다. 고이즈미 환경장관은 스가 관방장관과 같은 가나가와현에 지반을 둔 정치인으로 스가 관방장관의 후원을 받고 있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후계자로 염두에 둔 인물은 자신과 비슷한 연배인 62세의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무조사 회장이다. 한국에서 기시다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에 서울을 방문,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룬 외무장관으로 기억에 있을지도 모른다.

기시다 정조회장은 할아버지가 기시다 마사키 전 중의원 의원, 아버지는 기시다 후미타카 전 중소기업청 장관으로, 3대째 이어진 히로시마 출신 정치인이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장기신용은행 은행원 생활을 거쳐 아버지의 비서가 됐다. 아베 총리와 같은 1993년 초선 의원으로 원내 진출했다.

기시다 정조회장은 2012년 12월부터 2017년 8월까지 4년 8개월의 긴 세월에 걸쳐서 아베 총리 밑에서 외무장관을 지냈다. 당시 기시다 외무장관의 부하였던 외무성 간부로부터 필자가 들은 기시다 평은 다음과 같다.

“우리 외교관의 입장에서 상사로서 훌륭한 외무장관상이란 첫째, 일본 외무성의 의사를 총리 관저 및 외국에 제대로 대변해 주는 것. 둘째, 총리와 의견 차이가 없는 것. 셋째, 국회 답변에서 실수가 없는 것이다. 기시다 외무상은 바로 이 3박자 갖춘 이상적인 외무장관이었다. 아소 다로 전 외무장관(현 부총리 겸 재무장관)과 함께 과거 수십 년 만에 최고의 외무장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시다 정조회장이 2012년 이후 취하고 있는 포스트 아베 전략은 오로지 아베 총리에게 충성을 다하고 아베 총리의 ‘선양’(총리 자리 물려받기)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 점이 아베 총리에게 라이벌 의식을 드러내는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과는 대조적이다.

아베의 낙점을 기다리는 기시다, 아베를 뛰어넘으려는 스가


▎제13호 태풍 ‘링링’이 북한 농업 생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사진:조선중앙TV
현재 자민당에는 9대 파벌이 있다. 호소다파(아베파) 97명, 아소파 54명, 다케시타파 53명, 기시다파 46명, 니카이파 46명, 이시바파 19명, 다니가키파 16명, 이시하라파 11명, 스가 총리파 10명 등이다. 기시다 정조회장의 목적은 아베 총리가 퇴진할 때 호소다파와 아베 총리와 운명을 함께 하는 아소파, 거기에 기시다파의 3파 연합으로 다수파를 만들어 총리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실제로 아베 총리 자신도 이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정조회장이 포스트 아베를 지향하는 데 있어서 최대 라이벌은 스가 관방장관이다. 스가 관방장관(70세)은 동북지방인 아키타현 태생으로 고교 졸업 후 도쿄의 종이공장에서 일하다가 그 옆에 있었던 호세이 대학에 들어갔다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 뒤 정치가의 비서를 11년 맡아 요코하마 시의회의 의원이 됐다. 국회의원이 된 것은 1996년으로 아베 총리와 기시다 정조회장보다 3년이 늦었다.

스가는 국회의원이 된 뒤 여러 파벌을 두루 거친 뒤 아베 총리와 함께했다. 2006년에 제1차 아베 정권이 들어서자 총무장관에 취임했다.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후보를 만드는 주역이 되고, 그 논공행상으로 아베 정권이 들어서자 정권의 2인자인 관방장관에 취임했다. 이 후 7년 가까이를 정가와 재계, 관가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으며 이제는 “아베 정권이 아니고 스가 정권이다”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스가 장관은 자신의 파벌에 더해, 우호 관계에 있는 니카이파, 아베 총리와 거리를 두는 다케시타파와 이시바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차기 총리에 오르려 하고 있다. 그것을 막고 싶은 아베 총리는 9월 11일 개각에서 스가 장관과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교체하려고 획책했지만 반대로 이 두 거물에게 역습을 당하고 말았다. 그 결과, 장관·부장관·정무관 등, 이번 개각의 다수 인선이 스가 관방장관의 손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처럼 아베 총리는 이례적인 장기집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절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본의 정치 용어로 말하는 ‘레거시(정치적 유산)’가 없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의 장기 집권을 돌이켜보면 1970년대의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미국의 오키나와 반환을 이뤘다. 1980년대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국철, 일본전신전화공사, 일본 전매공사의 민영화를 단행했다. 2000년대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방북을 단행하고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담판, 납북피해자 5명과 그 가족을 되찾아 왔다. 모두 일본 현대사에 남을 ‘레거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베 총리에게는 현재 레거시가 없다. 굳이 말하면 소비세를 2차례 올린 것과 안보법을 개정한 것 정도이지만, 이런 것은 유산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단지 ‘가장 오랫동안 총리 자리에 있던 사람’으로 밖에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아베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27차례 회담을 하고 북방 영토를 되찾으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납치문제를 해결하고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시도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잘 될 것 같지 않다. 여기에 한국과의 관계도 최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초조해 하고 있으며, 이제 지론인 헌법 개정을 강행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3월의 자민당 대회를 취재하는데, 올해 아베 총리는 “쇼와 30년(1955년)에 자민당을 창당한 이후의 비원인 헌법 개정을 꼭 이루고 싶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9월 11일의 개각을 보면 ‘헌법 개정을 위한 포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스가 관방장관이 헌법 개정에 관심이 없는 것과도 관련돼 있을 것이다. 만약 진짜로 헌법 개정을 노린다면 영국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EU 이탈 내각’을 만들었듯이, 개헌론자들을 더 많이 입각시켰어야 했다.

이 점을 앞서 언급한 아베 총리의 측근에게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번 개각은 스가 관방장관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린 모양새로, 아베 총리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베 총리는 올해 말 중의원을 해산하여 ‘헌법해산선거’로 끌고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 여름의 도쿄 올림픽을 끝내고, 국민투표 실시를 통해 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를 헌법 제9조에 명기한 뒤 퇴진한다. 그리고 그 뒤는 기시다 정무회장에게 맡기겠다는 시나리오다.”

‘레거시’ 업적 없어 초초한 아베


▎지난 5월 자민당 호소다파의 정치자금 모금 파티에 참석해 인삿말을 하는 아베 신조 총리. / 사진:지지통신
아베 총리는 1993년에 첫 당선된 이후 자민당 내에서는 ‘요령 좋은 아베’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선배 의원들을 기쁘게 해주는 데 유달리 요령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이 특기로 그 파천황 같은 트럼프 대통령을 농락해버렸다는 것이다. 측근이 계속해서 증언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크론 프랑스 대통령부터 로하니 이란 대통령까지 아베 총리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 그것은 국제회의장 등에 참가하면 일목요연하다. 각국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떻게 친분을 쌓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아베 총리에게 ‘00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 ‘**에 대한 건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설득할 수 있을까’라는 등의 상담과 의뢰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정작 백악관 관리들의 부탁을 받기도 한다. 부하들도 상사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직접 건의하지 못하고 아베 총리를 의지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쌓아가는 키워드는 ‘돈, 가족, 취미(골프 등)’의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고집하는 부분은 시원하게 타협하고, 그 밖의 부분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타협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런 아베 총리의 대미(對美) 외교가 여실히 드러난 게 9월 25일 유엔 총회가 열린 뉴욕에서의 미·일 정상 회담이었다.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무역협정의 최종 합의를 확인하고 공동성명에 서명한 것이다.

당초, 일본에서는 일·미 무역 교섭이 마무리되는 시점을 미국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는 내년 여름 정도로는 전망해왔다. 그런데 결국 조기에 깨끗이 타결해 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러 미국의 농가 대표들을 미·일 정상회담 장소로 불러들이고, “미국 농가에게 있어서 큰 가치가 있는 합의”라고 자랑했다. 아베 총리도 미·일 상호 이익에 부합되는 합의가 됐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트럼프는 ‘본 무대’인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앞두고 일본과 타결해 놓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질보다 속도를 중시했고, 그것이 일본에게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운 내용이 되었다.

또 다른 대국인 중국과의 관계도 최근 급속히 회복되고 있다. 이것은 미·중 관계의 악화에 수반해, 중국 측이 일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처지와 맞물린다. 내년 봄에는 시진핑 주석의 첫 방일도 예정돼 있다.

중·일 관계가 한·일 관계를 웃돈다


▎지난 8월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 이후 한·일 관계가 급랭하면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에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
9월 19일 도쿄의 호텔 뉴오타니에서는 ‘중국인민해방군 방일단’을 환영하는 리셉션이 열렸다. 필자도 행사에 참가했다. 방일단 대표인 송옌차오(宋延超) 소장 이하, 20명의 참석자 누구에게 물어도 상냥한 미소를 보이며 “중·일 우호”를 강조했다. 그 자리에서 만난 방위성 간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사적으로 볼 때, 지금처럼 중·일 관계가 한·일 관계를 웃도는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 아닌가 싶다. 한국과의 군사 교류는 이미 모든 것이 중단되고 있는 상태다. 사실은 그 반대(한·일간의 군사 관계가 중·일보다 좋아야 한다는 뜻)가 되어야 하는데…”

한·일 관계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상태를 맞았다. 10월 3일 개천절에는 역시 호텔 뉴오타니에서 도쿄의 한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파티가 열렸다. 필자는 이 자리에도 참석했지만 지금까지 참가했던 약 25년간의 파티 중 가장 경직된 파티였다.

파티장에서 만난, 한국과의 외교에 오랜 세월 몸담고 있는 구면의 일본 외교 관계자는 주위를 꺼리는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과거에도 한국과 관계가 나쁜 시기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가장 큰 문제는,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 측은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를 연장해줄 수 있지만, 그 대신 한국을 다시 ‘화이트국’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일본 측은 ‘그럼 징용공 문제로 일본 기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 달라’고 주장한다. 이번에는 한국측이 ‘강제 징용 문제는 독립된 법원의 결정이며, 문재인 정권의 근간에도 관여된 문제라서 타협할 수 없다’고 한다. 거기서 대화가 끊기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일본으로서 전략은 없나”라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굳이 말한다면 아베 총리가 취하고 있는 전략은 ’전략적 무시‘다. 이제 마음대로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11월 22일에 한·일 지소미아가 만료되어도 상관없다. 12월에 중국이 베이징에서 주최하려는 한·중·일 정상회의가 연기되어도 상관없다. 만일 내년 여름의 도쿄 올림픽을 한국이 보이콧이라도 한다면 망신을 당하는 건 한국 쪽이라는 것이다.

지금 아베 총리의 뇌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남쪽이 아닌 북쪽이다. 북·일 관계에 최근 여기에 ’순풍‘이 불기 시작했다. 북한이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확대와 더불어, 가을걷이 전의 중요한 시기에 대형 태풍에 휩쓸리면서 식량 수확에 심대한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이 외교 관계자가 말하는 ‘순풍’이란 이런 것이다. 일본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 방북 당시 25만t의 인도적 식량 원조를 약속했으나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북측은 일본과 협상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서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에게 17년 전 약속을 지키겠다는 조건으로 아베 총리가 평양에 가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일본에 있어서 한국과의 관계는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전체를 놓고 보자면,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이 ‘중국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의 치킨 레이스는 양국의 국력을 소모시키고 경제력을 줄여나간다. 그러는 사이에 점점 중국과의 ‘격차’가 확대되어 갈 것이고, 그 사이 한국도 일본도 중국의 속국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릴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속국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은 20세기 냉전 시대의 동유럽 국가들을 보면 알 것이다. 20세기 말에 소련은 붕괴했지만 지금의 중국은 10월 1일에 건국 70주년을 맞아 점점 ‘거룡’으로 변하고 있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 현대] 특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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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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