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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위기 직면한 트러블메이커 

‘탄핵’ 트럼프의 미래는 닉슨인가 클린턴인가 

대선 라이벌 바이든 견제하려다 내부고발에 부메랑 맞아
상원서 가결되려면 공화당 의원 최소 20명 반란표 필요


▎미 하원의 탄핵 조사가 시작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 사진:AP/연합뉴스
미국 하원은 1998년 12월 19일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하원은 같은 해 10월 8일 아칸소 주지사 시절 함께 일한 폴라 존스 및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 등과의 클린턴 대통령의 성(性) 추문이 공개되자 탄핵절차를 시작했었다. 클린턴은 성 추문을 완강하게 부인하다 각종 증거물이 나오자 연방 대배심 증언에서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했다”고 인정했다. 클린턴에게 적용된 혐의는 연방 대배심원 위증, 존스 민사사건 위증, 사법방해, 권력남용 등 총 4개였다.

하원은 같은 해 11월 19일부터 청문회 등을 거쳐 4개 혐의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같은 해 12월 13일 탄핵소추안 본회의 상정을 결정했다. 하원은 4개 혐의 가운데 연방 대배심원 위증(찬성 228표, 반대 206표)과 사법방해(찬성 221표, 반대 212표) 혐의를 통과시켰고, 나머지 2개 사안은 부결시켰다. 이에 따라 탄핵재판을 시작한 상원은 1999년 2월 2일 본회의를 열고 연방 대배심 위증과 사법방해 혐의에 대한 탄핵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모두 가결정족수(전체 의석 3분의 2, 67표) 미달로 부결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가 하원에서 진행되면서 앞으로 의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클린턴을 비롯해 미국 역대 대통령 45명 가운데 의회가 탄핵소추 절차를 공식 진행한 것은 지금까지 모두 3명이다. 미국에선 상원과 하원이 탄핵 권한을 갖고 있다. 민주당 출신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9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식적인 탄핵 조사를 결정함에 따라 정보위 등 하원 6개 상임위원회는 각자 분야별로 트럼프 대통령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각 상임위에서 조사가 마무리되면 법사위가 이를 취합해 탄핵소추안을 만들어 본회의에 제출하고, 탄핵소추안이 과반수의 찬성으로 통과되면 상원에서 탄핵 재판이 진행된다.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하원의원 일부가 팀을 이뤄 검사의 역할을 한다. 대통령은 변호인을 세울 수 있다. 탄핵 재판에서 상원의원들은 배심원 역할을 한다. 전체 상원의원 중 3분의 2가 탄핵안에 찬성하면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야 한다. 이 경우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트럼프, 외국 정상에게 바이든 조사 압력”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올 9월 24일 워싱턴 국회 의사당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식적인 탄핵 조사 개시를 발표하고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탄핵소추가 진행된 첫 사례는 1868년 제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이었다. 1865년 암살 당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존슨은 취임 초부터 공화당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존슨은 1867년 에드윈 스탠턴 전쟁 장관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로렌조 토머스 장군을 앉히려고 시도해 관직보유법(Tenure of Office Act) 위반 혐의를 받았다. 하원은 이듬해 3월 3일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탄핵안은 두 달간 심리를 거쳐 같은 해 5월 16일 상원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졌지만, 가결정족수(67표)에 1표가 모자라 부결됐다.

두 번째 사례는 1974년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었다. 닉슨은 민주당 대선 캠프 도청사건인 ‘워터게이트 스캔들’ 때문에 탄핵에 직면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1972년 6월 닉슨의 선거캠프가 재선을 위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워싱턴포스트(WP)]가 이 사건을 특종 보도하면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하원 법사위원회는 1974년 7월 사법방해와 권한남용, 의회 모욕 등 3개 혐의를 적용해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닉슨은 하원 본회의 표결을 앞둔 같은 해 8월 5일 백악관 집무실 녹취록을 공개하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워터게이트 은폐에 직접 관여한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닉슨은 하원은 물론 상원에서 탄핵안 가결이 확실시되자 그해 8월 9일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만약 사임하지 않았더라면 닉슨은 미국에서 탄핵당한 첫 번째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소추 절차가 공식 진행되면 네 번째 사례가 된다. 트럼프는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 때문에 조사를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자신의 정적이자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차남 헌터의 부패 연루 혐의를 조사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말한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가 코미디언 출신으로 대선에서 승리해 올 5월 취임한 젤렌스키에 7월 25일 축하 전화를 걸면서 시작됐다. 당시 전화 통화는 의례적인 축하 인사가 아니었다. 그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은 8월 12일 국가정보국(DNI) 등 정보기관 감찰관실(ICIG)에 중앙정보국(CIA) 소속으로 추정되는 관리가 내부 고발을 했기 때문이다. 이 관리는 트럼프가 외국 정상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우려스러운 요구와 부적절한 약속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내부 고발을 접수한 마이클 앳킨슨 정보기관 감찰관이 이를 조셉 매과이어 국가정보국(DNI) 국장 대행에게 보고했지만, 일주일 내에 의회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매과이어 대행은 이를 묵살했다. 그러자 앳킨슨 감찰관이 9월 9일 상·하원 정보위원회에 이런 내부고발이 접수됐다는 사실을 직접 알렸다. 아담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9월 10일 DNI에 “고발 내용을 의회에 전달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매과이어 대행은 9월 17일 “내부고발 내용이 법률에서 의회에 통보하도록 한 ‘긴급한 우려’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의회에 통지할 의무가 없다”며 고발 내용 제출을 거부했다.

이처럼 DNI와 하원 정보위가 다툼을 벌이자 이를 눈치챈 WP는 9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부적절한 약속을 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9월 19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한 외국 정상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미국 언론들은 앞다퉈 두 정상의 전화통화 내용을 비롯해 각종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캔들 본질, 바이든 부자(父子) 비리 의혹”


▎올 9월 25일 유엔총회가 열린 뉴욕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사진:AP/연합뉴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젤렌스키와의 첫 전화 통화에서 자신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협력해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父子)에 대한 의혹을 재조사할 것을 8차례나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두 정상이 통화했을 시점은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에 4억 달러 규모의 군사 원조를 보류하고 있었을 때였다. WP는 “트럼프가 군사 원조를 빌미로 젤렌스키에 압력을 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NYT도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거론하면서 젤렌스키에게 바이든 부자를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실제로 줄리아니가 두 정상의 통화가 이뤄진 뒤 일주일 뒤인 8월 3일 젤렌스키의 보좌관인 안드리 예르마크를 스페인에서 만나 바이든 부자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언론들이 연일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대서특필하자 트럼프는 9월 22일 젤렌스키와 전화통화에서 바이든 부자에 대해 논의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트럼프는 “내가 젤렌스키와 나눈 대화는 당선 축하 인사와 부패에 대한 것, 바이든 부자와 같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부패를 저지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9월 23일에도 젤렌스키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바이든 부자에 대한 조사 요구와 군사지원에 대한 연계 의혹도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바이든 부자의 비리 의혹 문제가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본질이라며 오히려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 전략은 트럼프의 자충수가 됐다. 펠로시 하원의장이 트럼프에 대한 탄핵조사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펠로시 의장은 그동안 러시아 스캔들로 트럼프를 탄핵해야 한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요청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펠로시 의장은 로버트 뮬러 특검 수사 결과에서 트럼프를 탄핵할 수 있는 확실한 ‘한 방’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탄핵을 시도할 경우 트럼프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은 물론 국민의 반감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처럼 탄핵에 소극적이던 펠로시 의장이 이번에 칼을 빼 든 이유는 러시아 스캔들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전화 통화 녹취록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무엇 때문에 바이든 부자를 겨냥했을까.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경선 주자 중에서 자신과 겨룰 가장 강력한 적수가 바이든이라고 생각해왔다. 올 76세인 바이든은 산전수전을 겪은 노련한 정치인이다. 1972년부터 2009년까지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냈고 오바마 대통령 시절 8년간 부통령으로 일했다. 특히 노동자 집안에서 성장한 바이든은 백인 노동자들이 많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 쇠락한 공업지대)’에서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말을 들어왔다. 민주당 선거 전략가들은 2016년 대선에서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패배한 이유 중 하나가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해왔다.

러스트 벨트는 미국 중서부와 동북부의 공업 지대로, 굴뚝산업이 많이 있는 오하이오·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 주 등을 말한다. 러스트 벨트는 원래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뜻밖에 트럼프가 러스트 벨트에서 승리했고 결정적 당선 요인이 됐다. 때문에 내년 대선에서 러스트 벨트를 누가 차지하느냐가 대선 승리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에 따라 트럼프로선 바이든을 민주당 경선에서 중도 탈락시키거나 흠집을 내서 지지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트럼프가 고심 끝에 내놓은 카드가 바이든의 최대 약점인 차남 헌터의 의혹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올 49세인 헌터는 아버지의 지역구인 오하이오주 델라웨어 소재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처음 취업했었다. 당시에도 아버지가 주도한 파산 구제안 법안 혜택이 해당 은행에 몰렸다는 의혹을 샀던 적이 있다. 이후 헌터가 국영 철도회사 암트랙 이사로 일할 때도 “철도 관련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암트랙은 “헌터가 기차 여행을 많이 했다”는 억지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헌터는 마흔에 해군 예비군 소위로 임관했다가 마약 투약이 발각돼 불명예 제대하기도 했다.

“10억 달러 내세워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해임 받아냈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올 6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이후 그는 2014년 4월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회사인 부리스마 홀딩스의 사외이사로 취직해 월 8만 달러의 보수를 받았다. 당시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친 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물러나고, 친서방 노선의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상당한 지원을 한 바 있다. 헌터가 이사로 발탁된 것은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협력자였던 부리스마 홀딩스의 사주가 오바마 정부와 관계를 강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란 말이 나왔었다. 부리스마 홀딩스의 사주는 돈세탁과 횡령 등의 혐의로 우크라이나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다. 바이든은 2015년 12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포로셴코 대통령에게 “빅토르 쇼킨 검찰총장을 해임해라. 그러지 않으면 10억 달러 대출 보증을 중단할 것”이라고 압박했었다. 결국 쇼킨 검찰총장은 해임됐다. 결국 부리스마 홀딩스에 대한 수사는 중단됐다.

트럼프는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바이든 부자의 비리 의혹을 제기해왔다. 그 이유는 2018년 1월 워싱턴 싱크탱크인 외교협회 행사에서 바이든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을 때 포로셴코 대통령을 만나 쇼킨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10억 달러 대출 보증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해 사임 약속을 받아낸 적이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시 바이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바이든과 관련해 어떤 혐의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바이든이 오바마 정부 정책에 따라 우크라이나가 고질적인 부패를 척결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전 라이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바이든이 부패 수사에 미흡한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경질을 요구하라고 압박한 것은 미국의 이익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는 바이든이 업적이라면서 자랑한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트럼프가 젤렌스키에게 이 문제를 철저하게 재조사할 것을 요구한 것도 바이든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원 6개 상임위가 트럼프에 대한 탄핵조사를 시작하자 백악관은 9월 25일 두 정상의 전화통화 내용 녹취록을 공개했다. A4 용지 5장 분량인 녹취록에 따르면 트럼프가 젤렌스키에게 바이든 부자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바이든 아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다. 바이든이 기소를 멈추게 했다고 자랑하고 다닌다.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해 알고 싶어 해서 무엇이든 해 준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가 윌리엄 바 법무부 장관과 함께 당신에게 전화하도록 하겠다”고 얘기했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는 “내가 소속된 정당이 의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해 차기 검찰총장은 100% 내 사람이 될 것”이라며 “인준을 받아 9월부터 업무를 시작하면 당신이 말한 그 사건을 조사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녹취록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의 이름을 세 차례, 줄리아니의 이름을 다섯 번 각각 언급했다.

별도 저장 녹취록 내용이 탄핵조사 관건


▎백악관이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7월 25일 전화 통화 녹취록.
그런데 녹취록에는 트럼프가 직접 조사를 요구하는 대목은 없었고, 강한 암시를 주는 발언들만 있었다. 이를 두고 트럼프는 “압박은 없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탄핵 증거”라는 입장이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하원 정보위는 9월 26일 내부고발자의 9장짜리 고발장을 일부 내용을 가린 채 공개했다. 내부고발자는 고발장에서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 외국의 개입을 요청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확보했다”면서 “이러한 개입에는 대통령의 민주당 정적 중 한 명에 대해 조사하도록 외국을 압박한 것이 포함된다”고 적시했다. 특히 내부고발자는 “백악관 참모들이 전화통화 관련 모든 기록과 백악관 상황실에서 만들어진 녹취록을 감추려고 했다”면서 “백악관 법률고문 등 참모들이 두 정상의 전자 녹취록을 통상적으로 저장해온 컴퓨터 시스템에서 제거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전자 녹취록은 민감한 기밀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별도의 극비 컴퓨터 시스템으로 옮겨졌다”고 폭로했다.

이에 따라 향후 하원의 탄핵조사에서 백악관이 별도로 저장한 녹취록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밝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정상 간 통화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총괄 지휘하는 국가안보보좌관이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듣거나, 웨스트 윙(백악관 참모 공간)의 사무실에서 청취한다. 부통령을 비롯해 국무장관과 관련 부처 장관 및 참모들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이들 외에 백악관의 별도 보안 공간에선 NSC 직원들도 이 통화를 듣는다. 이들은 컴퓨터의 음성 인식 기능이 작성한 텍스트와 대조해 최종 녹취 메모를 작성한다. ‘멤콘’(memcon, memorandum of telephone conversation)이라 불리는 이 녹취록은 트럼프 정부 초기엔 백악관·국무부·국방부의 관련 부서 직원들도 다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통화 내용이 몇 차례 언론에 유출된 이후 백악관은 멤콘의 복사·공유를 절대 불가 시켰으며 국무·국방장관에게만 보이고 회수한다. 백악관은 또 통화 내용의 보안을 위해 멤콘을 극비 컴퓨터 시스템에 저장한다. 역대 정부들도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와 나눈 통화 기록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가 들어 있지 않은 한 극비 컴퓨터 시스템에 보관하지는 않았다. 내부고발자는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통화 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10여 명이 내용을 들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하원의 탄핵조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반격에 나서고 있다. 팻 시펄론 백악관 법률고문은 10월 8일 펠로시 의장 등에게 보낸 서한에서 “하원의 탄핵 조사가 근거가 없고 위헌적”이라면서 “하원이 탄핵조사 착수 여부에 대한 찬반 표결 없이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백악관의 이런 방침에 따라 국무부는 핵심 증인 중 한 명인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에게 하원 청문회 증언을 거부하도록 지시했다. 하원은 그동안 백악관을 비롯해 국무부, 국방부 등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연루된 기관 및 고위 관리들에게 자료 제출과 청문회 출석 등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보내왔다. 백악관의 전략은 ‘시간 끌기, 알기 어렵게 만들기, 공격하기, 반복하기’ 등을 통해 하원의 탄핵 조사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백악관의 비협조가 권한 남용이자 조사 방해라며 새로운 탄핵 사유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탄핵 찬성 공화당 의원 나오면 예측불허


아무튼 하원의 탄핵조사는 당분간 실질적 진전 없이 트럼프와 민주당 간 정치적 공방만 가열시킬 가능성이 높다. 미국 언론들은 백악관의 비협조 방침으로 민주당의 조기 탄핵소추안 의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탄핵 정국이 자칫하면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정치적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를 닉슨과 비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과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학자 더글러스 브링클리 라이스대 교수는 “트럼프와 닉슨은 자신의 재선을 위해 대통령 권력을 남용했다는 점, 이를 은폐하기 위해 백악관과 정부 관료들을 동원했다는 점 등에서 놀라운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닉슨과는 다르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닉슨이 사임한 것은 탄핵에 대한 국민적 찬성 여론과 민주·공화당 의원들 대부분이 탄핵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현재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의 탄핵조사에 대한 찬성이 반대보다 높지만, 아직 압도적인 수치는 아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임기 내내 30% 후반에서 40% 초반대에 머물러 있는데 우크라이나 스캔들 이후에도 지지율의 큰 변화는 없다. 게다가 트럼프 탄핵에 찬성하는 공화당의 상·하 의원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 선임 고문을 지낸 정치 전략가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지금의 트럼프는 트위터 한 줄로 누군가의 정치 인생을 끝낼 힘이 있다”며 “닉슨은 트럼프만큼 뻔뻔하지도 않았고, 트럼프를 적극 지지하는 폭스뉴스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민주당이 과반을 점하고 있는 하원에선 탄핵소추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만, 공화당이 과반을 점하고 있는 상원에서는 탄핵안이 부결될 것으로 보인다. 하원의 경우 전체 의석수는 435석인데 민주당은 235석으로 절반(218석)을 훨씬 넘는다. 상원은 전체 의석 100석 가운데 공화당이 53석, 민주당은 45석, 무소속 2석이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최소 20명 이상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반란표가 필요한 셈이다.

트럼프는 탄핵안이 상원에서 부결된다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클린턴 탄핵에 실패한 공화당은 이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참패했다. 반면 민주당이 탄핵에 실패하더라도 트럼프에 거부감을 가진 중도층을 결집시키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도 있다. 하원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해 어떤 조사 결과를 내놓을지, 탄핵이라는 오점을 남길까 봐 트럼프가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탄핵조사를 지켜보고 있는 여론의 흐름이 어떻게 변할지 등 변수가 아직 많다. WP가 “불확실성의 트럼프 시대에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했듯이, 트럼프 대통령 탄핵 여부는 미지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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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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