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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보리수나무 

 

독일서는 숭배의 대상이자 ‘사랑의 나무’로 여겨져
보리자나무를 인도보리수로 착각하는 경우도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성취한 장소인 인도 보드가야 사원의 보리수나무.
세상에 동명이목(同名異木)인 ‘보리수나무’가 셋이 있다. 우리나라 토종인 보리수나무(보리똥나무)와 부처님께서 그 나무 밑에서 성불(成佛)했다는 인도보리수(印度菩提樹), 또 독일가곡 보리수(Lindebaum)가 그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우리 보리수나무(Elaeagnus umbellata)는 보리수나뭇과의 낙엽관목으로 높이 2~4m이고, 산비탈의 숲 가장자리나 하천가에 난다. 그렇다. 열매의 씨앗이 보리같다고 하여, 또 열매 볼에 이똥(치태, 齒苔)이 묻은 것 같다 해 보리똥나무라고도 한다.

어릴 때 소 먹이러 가서 소목에다 고삐를 칭칭 감아서 산비탈에 풀어놓아 알아서 풀을 뜯게 했다. 여러 마리가 제각각 흩어지는 게 아니고 언제나 무리를 지운다. 그리고 귀신같이 해거름이면 우리가 놀고 있는 신작로(찻길) 옆에 흐르는 강가로 내려와서 물을 마신다.

소가 풀을 뜯는 시간에 우리 또래들은 신작로 가장자리에 둘러앉아 공기놀이를 실컷 한다. 그러고 나서는 강에서 물고기, 징거미새우, 다슬기 등을 잡아 집에 가져가니 그것들이다 아주 귀한 단백질원이었다. 또 보리수나무를 찾아가 보리똥(열매)을 따 먹는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은 산중에 들어가 산딸기에 돌감·머루·다래 등을 찾아다니며 허기진 배를 채운다. 아, 그 어린 시절이 더없이 그리우며, 무엇보다 저승으로 먼저 간 동무들이 매우 보고 싶구나.

어린 보리수나무의 원줄기는 노란빛이 도는 회갈색이지만 묵을수록 어두운 황갈색이 되면서 세로로 갈라진다. 나뭇가지는 은백색 또는 갈색이고, 제멋대로 틀어지거나 기울어져 자라며,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전체가 넓게 둥그스름해진다. 또 가지에는 줄기가 변해서 생긴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동아시아 원산으로 히말라야에서 일본까지 분포한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3~7㎝, 너비 l∼2.5㎝의 긴 타원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줄기나 잎 따위에는 은회색인 비늘 모양의 잔 비늘털(인모, 鱗毛)이 촘촘하게 나 있다. 다른 말로 이른 봄에는 은색 작은 비늘(minute silvery scales)이 잎을 덮지만, 여름이 되면 떨어져 버리고 잎이 연두색으로 바뀐다. 가을엔 잎이 노랗게 물든다. 꽃은 5~6월에 잎 달린 자리나 그 위에 흰색 및 옅은 노란색으로 핀다. 지름 1.2㎝ 정도의 꽃이 1~7송이씩 달리고,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는 암수한그루(자웅동주)이다. 꽃부리(화관, 花冠)는 원통형이고, 끝은 4갈래로 갈라지며, 수술은 4개, 암술은 1개로 암술대에도 비늘털이 있다. 수술 길이는 1㎜ 정도로 짧으며, 암술은 6~7㎜로 수술에 비해 길다.

열매는 약간 긴 공 모양이고, 10~11월에 단단한 씨앗이든 열매가 붉은색으로 여물며, 열매 겉면은 갈색 또는 은색의 잔털로 덮여있다. 그리고 풋과일은 은빛 비늘에 둘러싸인 것이 누르스름하지만 익으면 은색이나 갈색 점이 박힌 것이 빨개진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밑에서 득도했다 해 신성시


▎인도보리수나무의 잎은 한국 토종 보리수나무의 잎보다 두껍고 넓다. / 사진:국립생태원
열매는 푹 다 익으면 약간 떫은 듯 단맛이 난다. 이 열매는 날로 먹기도 하고, 잼(jam)이나 파이(pie)의 원료로도 이용한다. 한의학에서는 잎은 봄과 여름에, 열매는 가을에 채취해 햇볕에 말려서 활용한다. 특히 잎에 포함된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나 라이코펜(lycopene) 성분은 토마토의 10배가 넘는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보리수나무가 콩과식물이 아닌데도 뿌리에 질소대사를 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공생(共生)한다는 점이다.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바꾸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과정을 ‘질소고정’이라고 하는데 콩과식물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 뿌리혹박테리아로 인해 보리수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의미다.

그리고 보리수나무와 매 우 흡사한, 같은 속(屬, Elaeagnus)의 뜰보리수(Elaeagnus multi flora)란 것이 있다. 뜰보리수는 일본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도 화단 등에 많이 심어놓았다. 보리수나뭇과의 낙엽관목으로 줄기는 2m 정도이고, 어린 가지는 붉은 갈색이다. 봄에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동그란 것이 붉다. 보리수나무 열매는 9~10월에 익지만, 뜰보리수는 초여름인 7월에 익는다. 붉은 열매에 은빛 점이 박혀 있는 보리수나무 열매는 팥알만 하지만 뜰보리수 열매는 1.5㎝ 정도로 그보다 더 크다.

다음은 인도보리수나무(Ficus religiosa)와 독일의 린덴바움(Tilia platyphyllos) 이야기다. 인도보리수나무는 인도 원산이고, 뽕나뭇과의 교목으로 잎이 두껍고 넓으며, 30~40m까지 자라는 큰 상록수이다. 인도처럼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열대성 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월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겨울엔 식물원이나 수목원 온실에서나 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이 나무를 신성시한다.

그런데 인도보리수나무와 혼동하기 쉬운 ‘보리자나무(Tilia miqueliana)’라는 것이 있다. 보리자나무는 중국이 원산인 낙엽교목으로 피나뭇과의 낙엽수다. 높이는 10m 정도 자란다. 보리자(菩提子)라 불리는 나무 열매는 동글동글해 염주(念珠)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절에 널리 심겨 있는 이 나무를 스님들이 부처님나무(인도보리수)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린덴바움이다. 이 나무는 피나뭇과에 드는 ‘큰잎유럽피나무(large leaf linden)’로 40m에 달하는 낙엽활엽교목이다. Lindenbaum(linden tree)은 독일을 상징하고, 숭배의 대상이 되는 신성한 나무다. 또한 젊은 남녀의 사랑을 맺어주는 ‘사랑의 나무(tree of lovers)’로 취급된다. 그리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Winterreise) 중 제5곡’인 ‘Der Lindenbaum’으로도 유명한 나무다. “성문 앞 샘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Am Brunnenvordem Tore dastehteinLindenbaum…).”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911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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